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71화 (370/925)

59. 정체 (6)

방송국에서 학교 기숙사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1학년 0반 아이들 몇몇은 눈물을 글썽였는데, 독고미로의 홈마였던 정해온과 2학년 0반 학생들은 결과가 발표되자 대놓고 줄줄 울기 시작했다.

그들은 독고미로가 마지막으로 카메라와 방청석을 향해 인사할 때는 거의 대성통곡을 하였고, 협회와 이야기를 마친 제갈재걸이 와서 달래 줄 때까지 계속 울었다.

제갈재걸이 달래 주니 금방 그치는 게, 처음부터 제갈재걸이 달래 줄 때까지 계속 울 생각이었던 듯했다.

“이 시간에 기자가 왜 이렇게 많냐.”

귀가하기 위해 방송국 1층 로비로 향할 때,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유리창 너머로 기자들이 몰려 있는 걸 발견한 맹효돈이 혀를 찼다.

사월세음과 김유리가 민그린을 뒤로 숨기며 그 말에 답했다.

“아, ‘플레이어와 사회·문화’ 시간에 언론을 다룰 때 들은 적이 있어요. 각 방송국의 보도국에선 ‘이계부’를 두고, 24시간 교대 근무를 한다고 해요.”

“통계상 이계는 낮에 주로 나오지만 밤에도 나오잖아. 이계는 밤낮을 가리지 않으니 언론이 24시간 대응할 필요가 있어.”

맹효돈을 제외한 아이들은 다들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황호는 ‘디바이스를 사용하지 않고 어딘가에 연락하는 중’이라서 혼자 무리 내에서 붕 떠 있긴 했지만.

“기자들은 플레이어 협회 언론 홍보실에 맡기기로 했다. 우리는 다른 쪽으로 빠진다. 다른 입구에 잠복한 기자가 없는지 확인하고 오마.”

함근형의 말에 맹효돈이 예전에 본 뺀질뺀질한 인상의 남자를 떠올렸다.

최편득의 파이트 클럽에서 탈출하고 며칠 후, 함근형과 함께 협회 사람을 만났다.

그 협회 사람이 건넨 명함에 써 있던 직함이 맹효돈에겐 지나치게 길어 확실하게 기억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홍보 어쩌구의 홍규빈이라는 건 대충 생각이 났다.

‘그때도 기자들은 자기한테 맡기라고 했었는데. 그때 그 사람이 또 왔나?’

그때 맹효돈의 시야에 예의 그 능글맞은 협회 직원, 홍규빈이 잡혔다.

홍규빈은 예전에 봤을 때보다 핼쑥해져 보였으나 여전히 옷차림에 신경 쓰는 듯, 멀쑥한 차림새가 아나운서나 시사 교양 프로의 MC나 패널 못지않았다.

‘그때 다짜고짜 내 이름을 묻고 사인해 달라던 부하인지 뭔지도 같이 있고…… 그 부하를 패던 상사 같은 사람도 있네. 인사하러 가야 하나? 어?’

도움을 받았으니 인사를 하러 가고 싶은 마음.

일하는 중에 방해가 될까 하는 걱정.

두 개를 두고 맹효돈이 망설이는 사이, 한 명 더 사람이 늘었다.

그 누군가의 얼굴을 본 맹효돈이 의아해했다.

‘저 사람은 그 3등 한 회사원 후보 아니야?’

무대 의상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긴 했으나 방금까지 무대 위에 있던 인물이었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회사원은 겁에 질린 듯 파르르 떨며 무언가를 홍규빈에게 얘기하려 했지만, 홍규빈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듣는 귀가 많으니 자제하라는 제스처 같았다.

‘저 사람은 이번 사건에 관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맹효돈은 나름의 추리를 해 보려 했지만, 싸움 외에는 영 머리가 굴러가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그 대신 잡생각과 싸움 생각이 머리를 차지했다.

맹효돈은 머릿속에서 광림을 발동해 에너미와 제갈재걸의 발을 묶었던 순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광림을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과 이능파가 상승하는데, 그 순간 싸움 스킬을 사용할 때의 감각이 생생했다.

‘아까 좀만 더 싸우면 그 도인이 말한 파생 스킬인지 필살기인지 감이 잡힐 것 같았는데.’

맹효돈이 머릿속에서 홍규빈의 존재를 잊고 싸움을 복기하는 사이, 함근형이 돌아오고 홍규빈은 회사원 후보와 함께 사라졌다.

그 후에 은광고 일행은 귀갓길에 오르게 되었다.

함근형과 제갈재걸은 은광고 거주 구역의 교직원 사택에 머물고 있었으나, 아이들이 전원 기숙사 소속인 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둘로 나뉘기로 했다.

“제갈재걸 선생님, 통학하는 아이들은 제가 바래다주겠습니다. 기숙사까지 아이들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해온아, 오늘은 기숙사로 가니?”

2학년 0반 학생은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해온의 경우 일단은 기숙사에 소속하긴 했으나 등교 거부와 홈마 활동을 하느라 기숙사보다는 집이나 방송국 주변의 호텔에 묵는 일이 많았다.

정해온은 퉁퉁 부은 눈으로 고민하다가 말했다.

“……네, 기숙사로 갈게요.”

그렇게 답하는 정해온은 아주 잠깐 한이를 흘끗 봤다.

그리고 기숙사로 향하는 에어 택시에 타기 직전, 정해온은 교사들의 눈을 피해 한이에게 쪽지를 하나 썼다.

쪽지 안에는 독고미로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시간을 내 달라는 요지의 글과 디바이스 코드가 적혀 있었다.

한이는 조용히 쪽지를 내려다보다가 정해온의 디바이스 코드를 자신의 디바이스 주소록에 입력했다.

*    *    *

염준열과 무슨 이야기를 어디까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부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촬영하느라 고생한 내 제자를 밖에 세워 둘 수 없어 바로 답했다.

“네, 일어나 있어요. 들어오세요.”

답한 직후,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객실 중앙에 있는 티 테이블 주변을 살폈다.

간단한 요깃거리가 준비되어 있다고 안내받았는데 차 종류가 보이지 않아 어디서부터 찾아봐야 할지 고민되었다.

끼익.

고민하는 사이 문이 열리고 염준열이 들어왔다.

염준열은 방송을 마치자마자 곧장 돌아왔는지 플레이리스트 방송 속에서 착용한 의상, 메이크업 그대로였다.

마치 TV 속 존재가 화면 밖으로 걸어 나왔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후배로서 선배 염준열에게 인사를 하려 했으나 염준열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앉아 있어. 너는 우리의 은인이자 손님이잖아.”

염준열은 의자를 빼 주고 내가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자리에 앉자 염준열이 슬라이딩 타입의 선반을 열어 안을 살폈다.

그 안에는 티백 서버와 개별 포장된 삼각 티백들이 놓여 있었다.

티백 타입이긴 하지만, 삼각 티백 라벨에는 에어 호텔에 납품하는 업체의 브랜드 로고가 새겨져 있는 게 척 봐도 고급 제품인 것 같았다.

그러나 염준열은 실망한 얼굴로 눈썹을 내렸다.

“여기까지 오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 간단한 것밖에 없네. 미안해.”

“아뇨. 마시고 싶었던 차가 그중에 있어서…….”

나는 곧바로 삼각 티백 중 하나를 지목해 마시고 싶었던 차였다고 둘러댔다.

염준열이 밝아진 얼굴로 감잎차 티백을 우려내 나도 안심했다.

차향이 방을 채우자 분위기도 누그러졌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종방연은 하고 오신 건가요?”

“종방연은 미루어졌어. 오늘은 사건이 많았고, 수습도 아직 안 끝났으니까. 스태프, 출연자 중에 플레이어 협회 쪽에 조사를 받으러 간 사람도 있어서.”

플레이리스트의 출연자는 셋.

여래훈이나 독고미로가 조사를 받는 대상자가 될 리가 없으니 남은 건 하나다.

‘남궁물산 소속 회사원인 세 번째 후보가 협회에 불려 갔구나.’

그 회사원 후보가 대피하라며 경고한 타이밍은 어딘가 이상했다.

그 타이밍에 다수의 이계가 전조 현상 없이 발생하고, 정체불명의 진족이 방송국을 습격했다.

‘바로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았지.’

플레이어 협회의 입장에선 생방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것도 많이 양보한 걸 거다.

방송국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

남궁물산, 즉 남궁 그룹이 얽혀 있는 사건이라는 점.

이 두 가지를 미루어 보았을 때, 파견된 협회 직원은 홍규빈일 가능성이 컸다.

‘출국하기 전에 홍규빈과 이야기해야겠네.’

홍규빈에게 어떤 식으로 운을 뗄까 생각했는데, 좀처럼 사고가 진행되지 않았다.

제자가 달인 감잎차를 마시고 조금 정신이 맑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의신아?”

생각이 더디게 이어져 차를 몇 모금 더 마셨다.

따뜻한 찻물 덕에 몸이 도리어 나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스승님.”

몽롱한 정신이 또렷해졌다.

조의신의 모습으로 ‘스승님’이라고 불린 건 처음이었다.

염준열의 말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염준열이 마주 앉은 자세 그대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줄곧 염준열의 눈을 마주치는 걸 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곧게 나를 응시하는 염준열의 눈에선 비난의 기색이라곤 일절 없었다.

오히려 염려하는 마음이 전해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위화감을 느꼈다.

‘평소와 뭔가 달라. 눈동자에 홍룡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상하다. 예전 수업에서 힘을 너무 써서 세로로 동공이 열렸을 때와는 다른 눈이야.’

염준열의 눈을 자세하게 들여다봤다.

순간 염준열의 눈이 불꽃처럼 일렁였다.

‘홍룡의 기운이 서린 정도가 아니라, 이건 그냥 홍룡의 눈과 비슷한데. 아니, 잠깐……!’

거기까지 생각에 미치자 경악했다.

염준열은 후예지만 용을 소환하는 광림을 가진 존재다.

어디까지나 홍룡은 염준열과 다른 개체로 소환되었는데, 이는 염준열의 진정한 힘이 아니었다.

염준열의 숨겨진 힘은 천동하와 마진승이 그를 구하기 위해 사망한 걸 알게 되었을 때, 폭주의 형태로 각성하게 된다.

그 결과 염준열은 ‘홍룡소환’이 아닌 ‘홍룡화’를 하고 만다.

‘진족이나 후예는 짐승의 화신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어. 염준열은 용의 형태로 변해도 나이가 어리니 몸체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어. 기껏해야 인간보다 좀 큰 정도였지.’

플마고 서브 스토리 이벤트에서 염준열이 용의 모습으로 변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었다.

염준열에게 미안하지만 그 모습은 ‘소홍룡’이라는 이명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용으로 변한 모습과 ‘홍룡화’는 전혀 달랐어.’

플마고에서 폭주한 염준열이 ‘홍룡화’한 순간.

스마트폰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온통 불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폭주한 염준열은 하늘을 뒤덮어 태양을 가릴 만큼 거대한 불꽃의 용, 홍룡이 되어 하늘과 땅과 주변을 불태웠다.

지금 염준열이 홍룡과 흡사한 눈을 한 건 ‘홍룡화’를 각성할 조짐일지도 모른다.

‘설마 플레이리스트 촬영 중에 또 무슨 일이 있던 건가!’

염준열의 ‘홍룡화’는 친우를 잃은 충격으로 벌어진 폭주였다.

즉, 염준열은 큰 충격을 받은 무언가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방금 염준열에게 ‘스승님’이라고 불린 것도 있고, 예전 수업 생각을 했던 탓인지 나도 모르게 ‘그 단어’의 모습을 할 때 썼던 말투로 입을 열었다.

“플레이리스트 촬영 때 무슨 일이 있었어?”

“……네?”

“내가 간 이후에 에너미와 교전을 했거나,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 있었다거나…….”

나는 말을 다 맺지 못했다.

염준열의 눈에 깃든 불꽃이 더 강한 빛을 뿜었던 탓이었다.

“네, 큰일이 있었어요.”

염준열의 미성이 한 톤 가라앉았다.

“제가 존경하는 스승님이 저와 제 가족을 구하기 위해 어깨와 배에 관통상을 입었습니다.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강력한 이능을 써서 각혈까지 하셨죠. 저는 아무것도 못 하고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라 기척을 숨기고 지켜봐야만 했어요.”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7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