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정체 (7)
염준열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으나 말하는 어조는 상냥하고 예의 발랐다.
착하고 성실한 내 제자가 과제 진척도와 연습 방법을 보고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그러나 그 내용은 염준열의 비통함과 무력감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나는 일순 내가 염준열이 말한 내용을 잘못 들은 건지, 제대로 이해한 건지 분간을 못 했다.
잠깐 멍청하게 있다가 뒤늦게 염준열이 한 말을 알아듣고 후회했다.
‘염준열이 어떤 심정일지 배려하지 못했어…… 그 자리에서 그런 일을 겪었으면 충격이 컸을 텐데.’
잘 생각해 보면 상대가 스승 노릇을 하던 후배라 한들 눈앞에서 이런 꼴을 보이면 다정다감한 염준열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자명했다.
그렇게 충격을 받은 제자가 생방송까지 마치고 왔는데, 다독여 주질 못할망정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무심하게 묻는 게 스승이 할 짓인가?
새삼 내가 얼마나 못난 스승인지를 실감했다.
염방열이나 방랑벽이 있는 염준열의 다른 스승이라면 좀 더 제대로 된 말을 해 줬을 텐데.
죄책감에 염준열의 말이 끝나고 한참 답하지 못했다.
‘제자가 이렇게나 나를 걱정해 주는데 나는 위로의 말도 제대로 못 건네다니!’
못난 모습을 보인 걸 사과해야 할지, 아니면 먼저 염준열을 달래고 자신감을 주는 말을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고민 끝에 사과부터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입을 열려 했을 때.
문득 내가 염준열의 안위를 묻자 그가 눈물을 보였던 일이 떠올라 말을 삼켰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하면 염준열의 속이 더 상할지도 몰라.’
지금 상황에서 염준열을 염려하는 말을 하면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행여 염준열이 또 눈물을 보인다면 나는 죄악감에 못 이겨 청룡이나 염방열에게 내 죄를 자진 신고 하고 불벼락을 맞으러 갈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을 하지 못하자 염준열이 자조적인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는 저를 만나기 전부터 위험을 감수하고 많은 이들을 구했어요. 저를 제자로 받은 후에도 그러셨고요. 그러니 스승님께 있어서 오늘 사건은 큰일이 아니었던 거겠죠.”
딱히 오늘 사건을 사소하게 여긴 건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보인 태도나 했던 말을 생각하면 그렇게 해석되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 봐도 내가 다친 것보다는 염준열과 용제건의 목숨이 위험했던 게 더 큰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겨도 같은 생각을 할 것 같은데.’
그때에도 비슷한 선택을 할 거다.
아직 흑막의 수를 전부 파악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자살수를 두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지만, 다소의 희생은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내 선택에 이렇게나 괴로워한다면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에 더 신경을 기울이고, 불가피한 상황이면 적어도 신경 쓰지 않게 조용히 움직여서…….’
혼자 반성하고 있는 사이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염준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스승님의 그런 면모를 동경해 제자가 되기를 청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점이 저를 괴롭게 해요.”
담담하게 한 말에 뼈가 있었다.
스승인 내가 제자를 괴롭게 한다는 말이 화살처럼 꽂혔다.
“스승님보다 한참 약한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설득력이 없는 걸 알아요. 이런 말을 해 봤자 스승님이 곤란해하실 뿐이라는 걸 아는데도…… 전…….”
염준열이 말을 흐렸다.
그가 말을 흐리는 것과 동시에 홍룡의 힘이 깃든 눈도 조용히 일렁였다.
그 움직임에서 얼마나 내 제자가 괴로워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염준열이 달여 준 감잎차가 온기를 완전히 잃은 후에도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건 몰라도 ‘스승님보다 한참 약한 제가’라고 자책하는 건 그만두게 하고 싶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저번에 내가 했던 말 중에 네가 나보다 더 성장할 거라는 말 기억 나?”
“……스승님이 제게 해 주신 말씀은 한 마디도 잊지 않고 있어요.”
예전 수업에서 염준열이 내가 소환한 홍룡을 보고 전의를 상실한 적이 있었다.
힘의 격차에 염준열은 나를 영영 따라잡지 못할 거라며 좌절했다.
그때 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너는 지금의 나보다 더 성장할 거야. 내가 잘 가르칠게.
플마고 속, 친구의 죽음 앞에 폭주해 염준열은 새로운 힘 ‘홍룡화’를 각성했다.
염준열이 그 힘을 온전히 제 것으로 한다면 그날 내가 부른 홍룡 정도는 ‘이능 삼키기’로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은 제자를 격려하기 위해 둘러댄 거짓말이 아니었다.
“너는 지금의 나보다 더 성장할 거야. 그 증거가 지금 네 눈에 있어.”
“……제 눈이요?”
“그래.”
염준열이 반사적으로 자신의 눈가를 더듬었다.
그 정도로는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는지 아리송한 얼굴로 나를 봤다.
“홍룡은 광림을 통해 네 힘을 구현화한 결정체야. 광림을 사용하지 않는 한 힘의 잔재가 드러나는 일은 없어. 하지만 지금 네 눈에 홍룡의 힘이 깃들어 있어.”
“아……!”
염준열은 그제야 제 눈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염준열은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눈가를 어루만졌다.
“너는 단순히 홍룡을 소환하는 게 아니라, 불꽃의 용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어.”
“불꽃의 용…….”
염준열이 용의 화신의 모습을 할 수 있다고 하나, 외견이 용의 모습으로 바뀔 뿐이다.
그가 불러내는 홍룡처럼 불꽃 그 자체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스승님도 불꽃의 용이 되실 수 있나요?”
게임 속 플레이어블 캐릭터 염준열은 폭주의 결과 ‘홍룡화’를 터득해 불꽃의 용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능력을 다룰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조작이 가능한 캐릭터를 플레이어블 캐릭터라고 부르는데, 폭주한 캐릭터는 조작이 불가능했다.
‘……김유리가 폭주했을 때도 조작이 불가능했지.’
폭주한 이후 습득한 능력은 내 손 밖의 일이었다.
염준열이 게임 내에서 조작 가능할 때 사용했던 광림, 스킬, 가호는 플레이어의 궤적을 통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저 ‘홍룡화’는 내가 사용할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사용할 수 없어. 너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야.”
내 말에 염준열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존재에 흥분한 듯, 불꽃을 머금은 눈 외에도 피부에 온기가 도는 게 눈에 띄었다.
“네가 그 ‘홍룡화’를 완전히 터득하면 내가 소환한 홍룡의 불꽃도 어렵지 않게 삼킬 거야.”
이 말엔 어떤 과장도 없었다.
내가 확신을 갖고 말하는 게 전해진 건지 염준열이 처음으로 밝은 얼굴을 했다.
“스승님은 제가 제 몫을 할 때까지 다른 제자는 절대 받지 않는다고 약조하셨죠. 제가 못난 제자라 해도 버리지 않고 제자로 삼아 준다고 답해 주셨고요.”
“그래.”
“제가 그 힘을 완전히 얻고, 스승님의 홍룡의 불꽃을 삼켜도 저를 가르쳐 주실 건가요?”
그 상황이 오면 내가 스승으로 있을 필요가 없어지지 않을까?
그때가 오면 염준열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더니 염준열이 몹시 기뻐했다.
“앞으로는 스승님의 유일한 제자답게 더 노력하고, 스승님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만큼 강해질게요! 스승님의 제자로서.”
내 제자의 성실한 다짐을 들으니, 오늘 용들을 위해 피를 쏟은 게 조금도 아깝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염준열의 홍룡화 각성을 위해 나도 스승으로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속으로 함께 다짐했다.
염준열은 다짐에 이어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의신이의 선배로서도.”
그렇게 말하는 염준열은 은광고 학생회장다운 얼굴을 했다.
‘제자로서도, 선배로서도 노력하겠다는 말이구나!’
역시 내 제자는 마음가짐이 남달랐다.
제자의 기특한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 염준열은 새로 차를 한 잔 더 달여 마시고, 앞으로의 수업 계획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 * *
평소처럼 꿈 없이 잠들고 일어난 오전.
염준열을 배웅한 후 바로 잠든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이른 아침이라고 생각했는데, 디바이스를 통해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등교 시각을 지나 있었다.
나를 배려해 아무도 깨우지 않은 것 같았다.
‘어차피 학교를 빠질 생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좀 깨워 주지. 진짜 푹 잤네.’
안내해 준 청룡이 이르길 이 처소에 거주하는 용족과 방문한 손님들의 편안한 수면을 위해 곳곳에 축복을 걸었다고 한다.
잠결에 이능파를 발산하는 용족 탓에 숙면 대책을 세웠다고 하는데, 그 덕인지 잘 자고 일어났다.
염준열과 용제건이 이런 곳에서 머문다니 마음이 놓였다.
‘염준열은 학교에 갔다고 했지.’
염준열은 학생회장으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정시에 등교했다고 한다.
성실하게도 학교에 가기 전,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염준열이 보낸 메시지는 두 개로 나뉘어 왔다.
하나는 ‘그 단어’의 스승에게, 다른 하나는 1학년 후배 조의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염준열] 스승님, 안녕하세요.
[염준열] 아침에 직접 문안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주무시는 것 같아서 메시지로 보내요. 오늘은 다소 구름이 꼈던 어제와 달리 맑을 예정이에요. 볕이 좋지만 오전에는 전년 대비 쌀쌀하다고 하니 가능하면 처소에 오래 머물러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염준열] (스탬프)
염준열은 그 뒤에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있는 홍룡 스탬프를 하나 덧붙였다.
염준열은 선언한 대로 내 정체를 알아도 나를 스승님으로서 대할 생각인 듯하다.
‘선배 역할도 동시에 할 생각인가 보네.’
다른 메시지는 선배 염준열이 보낸 메시지였다.
[염준열] 의신아, 너는 오늘 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먼저 갈게. 쉬고 있어.
[염준열] (스탬프)
선배가 할 법한 말투였지만, 평소와 다른 게 있었다.
바로 메시지 끝에 붙인 스탬프의 존재였다.
‘이젠 후배 조의신에게 보내는 메시지 쪽에도 스탬프를 붙여 주는구나.’
이 홍룡 스탬프는 가까운 사람한테만 첨부하는 걸까?
뭐가 어쨌든 정체가 드러난 스승과 후배 양쪽에 메시지를 각각 보낸 제자의 넓은 마음과 배려심에 감격했다.
“의신아, 일어났구나.”
“……조의신 군, 안녕하십니까.”
몸단장을 마치고 나갔더니 기다린 듯이 문 앞에서 용제건이 튀어나왔다.
용제건 뒤에는 김신록이 있었는데, 그리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당장이라도 용제건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옆에 청룡이 있어서 참는 건가.’
아침 인사를 하고 나니, 청룡이 입을 열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말씀하세요.”
“호족의 수장에 관해서다.”
“……네?”
그걸 왜 나한테 묻지?
황지호에 관해 물어볼 게 있으면 김신록한테 묻는 게 낫지 않나?
김신록도 같은 생각인지 의아해하는 기색이었다.
내가 의문을 품었을 때, 청룡이 부가 설명을 했다.
“어제 준열이가 나온 방송을 복기하느라 인지하지 못했다만, 마법진을 통해 호족의 수장이 연락하려고 했더군. 연결이 되지 않아 전언만을 남겼는데…… 자네에 관해서 묻던데.”
그러고 보니 염준열의 메시지를 확인할 때, 유독 메시지가 많이 밀려 있는 곳이 있긴 했다.
계속 디바이스 메시지 확인을 안 했더니 황지호가 다른 곳에 연락을 넣었나 보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