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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02화 (401/925)

62. 귀갓길 (2)

이국의 땅에 서 있는 같은 반 급우 겸 호족의 수장을 본 순간.

처음에는 놀라움과 당혹감을 느꼈으나 곧 의문과 위화감이 차올랐다.

‘왜……?’

왜 황지호가 여기에 와 있는가.

황명 그룹 로고가 새겨진 저 비행기는 황지호의 전용기인 걸까.

신문부 취재 여행 때도 안 꺼낸 전용기를 어떻게 지금 준비해 온 건가.

대체 왜 은광고 교복을 입고 있는가.

교복은 황지호가 여기에 있는 것 자체에 비하면 큰 문제는 되지 않긴 했다.

‘한반도를 벗어나면 능력이 제한될 텐데……!’

황지호는 호족 하나 동반하지 않고 혼자 서 있었다.

전용기 전용 터미널에는 우리 일행과 황지호, 공항 직원뿐.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일 뻔했는데, 그 전에 입을 다물었다.

황지호는 나를 걱정해서 여기에 왔을 테니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안녕.”

말을 고른 결과 짧은 인사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내 어색한 말에 황지호는 평소에 0반 교실에서 아침 인사를 나눌 때와 다를 바 없는 얼굴과 태도로 답했다.

“너는 안녕한가?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은데 피곤해 보이는군.”

황지호는 나를 살펴보다가 성국언과 전무영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걸었다.

“장소를 고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시간에 맞춰서 왔습니다.”

황지호가 존댓말을 쓰고 있다!

평소에도 교사나 선배들한테 존댓말을 쓰는 걸 보긴 했지만, 몇 번을 봐도 미묘한 광경이었다.

“홍경복 화백님 경유로 부탁해 왔는데 거절할 수 없지. 너는 0반 후배이기도 하고.”

성국언은 사람 좋은 선배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나와 대화를 나눌 때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굳이 비유해서 표현하자면 정치가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황지호가 황명 그룹에 연관된 걸 알고 있겠지.’

성국언과 전무영은 나와 1학년 0반에 관한 조사를 했으니, 황지호라는 가짜 신분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거다.

성국언은 황지호가 분신을 부리는 것까진 모르더라도 진족이나 후예라고 의심할 가능성이 컸다.

내 생각이 맞는지 성국언이 한마디 덧붙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은광고 이사장이랑 닮았군.”

닮았다기보다는 은광고 이사장과 동일 존재다.

아마 황명호와 황지호가 본신과 분신으로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성국언이 둘 다 같은 진족이라는 걸 추측해 냈을지도 모르겠다.

황명 그룹의 실세가 진족이라는 소문은 성국언 정도 되는 정치인의 정보력이라면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 15년 전 학생회장에 재임하던 시절, 성국언은 황명호의 모습을 한 황지호를 상대로 1 대 1 담판을 지어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성국언이 황지호의 정체를 파악할 재료는 충분히 모인 셈이다.

성국언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면 어쩌나 잠시 고민했는데, 의외로 유한 태도를 보였다.

“화백님이 최근에 황명 그룹에 신세 졌다고 들었다. 알고 있나?”

홍경복 화백이 황명 그룹에 신세 질 일이 있었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럴싸한 답을 찾았다.

최근에 황지호가 적극적으로 홍경복 화백과 연관된 일이 있었으니까.

‘황지호가 직접 나서서 홍경복 화백이 파문한 옛 제자의 손을 잘랐지.’

홍경복 화백은 그 건이 황명 그룹과 연관이 되어 있는 걸 알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일이 호족과 관계가 있다는 것도.

황지호는 예의 바르되 빈틈없는 태도로 성국언을 상대했다.

짧은 대화를 마친 성국언이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의신아, 나중에 다시 연락하마. 네 친구에게 순서를 양보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말하는 성국언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무슨 순서를 말하는 거지?

성국언은 이대로 나를 황지호의 전용기에 보낼 생각인 듯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붉은 사자의 전용기 쪽으로 걸어갔다.

“아, 성국언 선배님과 아직 얘기할 게 있는데…….”

“가자.”

내 시도는 순식간에 무산되었다.

성국언과 전무영에게 인사를 할 틈은 주긴 했지만, 말을 마치기 무섭게 걷기 시작했다.

황지호가 내 손목을 움켜쥐었는데 가볍게 쥔 것처럼 보이는데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힘으로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완력 차만 실감할 뿐이었다.

황지호를 상대하다가 분해하는 한이의 심정에 절절하게 공감이 갔다.

차이를 느낀 건 팔 힘뿐만이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체격 차가 더 벌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황지호 키가 커진 것 같은데. 일부러 늘린 건가?’

매일 봤을 땐 몰랐는데, 며칠 안 봐서 그런지 체격의 변화가 느껴졌다.

나는 이 세계에 오고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 키가 조금 컸다.

그런데 황지호는 더 큰 것 같다.

진족은 자신의 겉보기 나이를 조절할 수 있으니 조금씩 몸을 성장시킨 듯했다.

30대 모습의 황지호나 황명호의 체구를 고려해 보면 저기서 더 클 것 같지만.

황지호가 손을 놓은 건 황명 그룹 전용기에 탑승하고 문이 닫힌 후였다.

쉬익.

문이 완전히 닫히자 황지호가 엄격한 목소리로 물었다.

“연락하기 어렵더군. 목적지를 알려 주고 간 걸 칭찬해야 하나?”

“…….”

“네 생각은 짐작하고 있다. 내가 말리거나 같이 갈 거라고 생각해서 입을 다문 거겠지.”

황지호는 내 의중을 정확하게 짚은 듯했다.

카드모스 건이 벌어진 직후였지만 일정을 변경할 수 없었다.

한편, 호족의 후예를 구한 건이나 은호와 연관된 일로 황지호는 나를 호족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 황지호가 영국에 전용기를 끌고 온 것처럼 따라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사전에 말하는 게 어려웠다.

“저번에 내 약점을 말한 게 실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후회는 되는군.”

황지호는 자리에 앉도록 권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황지호는 내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황지호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앞으로 이런 계획은 일찍 말하도록. 네 의사와 안위 모두 고려한 방안을 모색하겠다.”

여기까지 와서 저렇게 말하는데 거절하기 어려웠다.

“……알았어.”

“그래, 알았다면 앞으로 청룡에게 그런 심부름을 시키지 말거라.”

그렇게 말하며 황지호가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은광고 교표가 새겨진 금속 박스 안에는 이어링 타입 디바이스가 들어 있었다.

디바이스 위치 추적을 하는 황지호를 따돌리기 위해 청룡에게 맡겼던 내 디바이스였다.

“전용기는 평소에 정비해 뒀어? 바로 꺼내기 어려웠을 텐데.”

“돈과 인력으로 해결했다. 은인을 모셔 오는 길인데 소홀함이 없어야 하지 않겠나?”

무슨 과정을 거쳤는지는 몰라도 황명 재단 직원들이 혹사당했을 거라는 건 분명했다.

무사히 이륙하여 안전벨트를 풀어도 좋다는 안내 문구가 나온 후.

‘영국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게 좋겠지.’

괴도 네온의 화려한 예고장 덕에 황지호도 내가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지 알아챘을 거다.

황지호라면 포모르 마족의 경매에 관해서, 또 성국언이 ‘이무기의 귀천’을 찾고 있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곳에서 있던 일을 전부 말하지 않더라도 몇몇 사실은 황지호에게 전해야 했다.

‘갑작스럽게 공간이 이계화되어 가든으로 끌려간 건은 이야기해야 해.’

플마고의 주수혁 일행이 3학년이 된 시점.

갑작스러운 이계화 현상으로 나비령의 가든에서 사월세음이 리타이어했다.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능력인 만큼 사전에 인지하고 파훼법도 익힐 필요가 있었다.

“영국에 온 이유 말인데…….”

“조의신.”

황지호가 손을 들어 내가 말을 중단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내 이름을 불렀다.

“쉴 생각이 없는 것 같군. 지금은 복잡한 대화는 하지 않기로 하지. 일분일초를 다투는 시급한 상황이라면 듣도록 하지.”

황지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고민 끝에 입을 다물기로 했다.

지금 논의해도 답이 나올 사안이 아니니 머릿속에서 좀 더 정리한 다음에 전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늦었지만 내부를 안내하지. 식사는 했나?”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지 몇 시간 정도 지났더라.

대답을 늦게 했더니 황지호가 멋대로 결론지었다.

“아직인가 보군. 식당부터 가 볼까.”

황지호는 앞장서서 전용기 내부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터미널에서 봤을 때 붉은 사자의 전용기보다 기체가 크다는 인상을 받긴 했는데 내부에 들어와 보니 더 넓었다.

곧바로 식당으로 향할 생각인지 대부분의 시설은 눈으로 훑고만 갔지만, 척 봐도 인테리어, 소품, 설비의 수준이 뛰어났다.

이 정도의 전용기가 격납고 안에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었다니, 아깝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붉은 사자 전용기는 잠시 해외로 유학 가 있던 염준열을 보러 갈 때 썼을 텐데.’

언젠가 흑막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면 이 전용기도 자주 쓰일 날이 오지 않을까.

‘곳곳에 호랑이를 모티브로 한 소품들이 있네.’

전용기에 비치된 휘장이나 램프, 액자 등등이 호랑이를 연상하게 했다.

소품들 대부분이 황지호의 이능파 색인 황금색이었지만, 적호, 청호, 백호, 은호의 색도 조화롭게 섞여 있었다.

단순히 친우들이 그리워서 이런 배치를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올 친우들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었던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그 생각에 미치니 신화 속에서 ‘어디에도 갈 수 있는 것’을 소원했으나 지금은 신역의 수인이 되어 은광구에 묶인 백호군이 떠올랐다.

아직 여행을 갈 입장이 아닌 다른 호랑이들도.

‘언젠가 호랑이들이 여행 갈 날이 오면 좋겠네.’

은호의 후예들과 올무도 아주 좋아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불투명한 유리 자동문 앞에 도착했다.

자동문 옆에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픽토그램을 보니 이곳은 식당인 듯했다.

“조의신, 먼저 들어가도록.”

계속 앞장서던 황지호가 저런 말을 하니 어딘가 꺼림칙했다.

“왜?”

“문을 열겠다.”

이유를 물었지만 황지호는 대답하지 않고 터치 패널에 손을 올렸다.

문이 열리자 그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명이 꺼져 있잖아.’

보통은 외부에서 문을 열면 자동으로 내부 조명이 켜질 텐데.

구형 적외선 센서는 가끔 내부에 사람이 들어가야 인식하긴 하지만, 이 최첨단 전용기에 그런 걸 설치하다니.

의문스럽게 여기면서 문 너머로 들어섰을 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토메틱 메이드만 있는 게 아니었나?’ 하고 생각한 순간.

펑! 퍼퍼펑!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빛과 꽃가루로 시야가 막혔다.

동시에 조명이 전부 켜졌다.

기척에 반응해 얼굴을 가린 손을 내리자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의신아, 생일 축하해!”

“해피 버스데이!

“야, 축하한다.”

지금 들리는 건 우리 반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살피니 폭죽을 들고 웃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체스 피스 모양의 양초가 올라간 케이크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알록달록한 색종이로 만든 축하 카드들이 붙어 있었다.

“의신이 깜짝 놀란 거 같은데?”

“이번엔 지호가 스포일러 안 했나 봐요!”

“하하하하! 난 저번에도 스포일러하지 않았다.”

“하려고는 했었지.”

황지호, 김유리, 한이, 권레나, 맹효돈, 사월세음, 민그린, 송대석, 목우람 그리고 독고미로까지.

우리 반 아이들이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와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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