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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08화 (407/925)

62. 귀갓길 (8)

황명호 대저택 별채.

푹 자고 눈을 뜬 후 시작된 아침은 최고였다.

왕……!

나보다 먼저 일어난 올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무가 아침 인사를 해 주니 순식간에 잠기운이 달아나고 몸에서 활력이 넘쳤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어? 더 안 자도 돼?”

왕왕!

천사가 나 때문에 무리한 게 아닌가 싶어 말을 걸었으나 올무는 천재라서 그런지 아침부터 건강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대견해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올무를 쓰다듬고 칭찬을 쏟아 냈다.

정신을 차린 후에야 올무를 귀찮게 한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착한 올무는 관대하게 넘어가 줬다.

‘기숙사에 들르지 못할 가능성을 생각하는 게 좋겠지.’

별채에 마련된 방에는 드레스 룸이 있었다.

드레스 룸에는 교복부터 평상복, 가방, 운동화, 구두 등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손이 잘 가지 않아 주저하다가 교복 와이셔츠를 입었는데 사이즈가 정확하게 맞았다.

‘지금 입고 있는 교복은 소매가 좀 짧아진 느낌이 들기 시작했는데.’

여기 준비된 것들은 내가 학기 초에 신청한 교복과 신발에 비해 조금씩 사이즈가 컸다.

아마 키가 컸다는 걸 알아챈 것 같다.

내년에는 내 성장 속도를 고려한 사이즈로 교복을 신청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방 밖으로 나섰다.

“…….”

문을 나서니 내 주력 플레이어블 캐릭터 백호군이 서 있었다.

백호군과 눈이 마주친 순간 반사적으로 ‘뭘 봐.’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한 걸 삼켰다.

‘저번과 같은 실수를 할 순 없지!’

백호군과 처음 이 세계에서 마주쳤을 때 했던 말실수를 또 할 뻔했다.

내가 말을 삼키는 사이에 백호군이 먼저 물었다.

“잘 잤나.”

멍청한 말실수를 할 뻔한 게 아니면 내가 먼저 인사했을 텐데.

모처럼 과묵한 내 주력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인사했기에 기쁜 마음으로 답했다.

“어, 너는?”

“…….”

백호군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잘 잤다는 답변 대신 자신의 몸 상태는 괜찮다고 말했는데, 그 말로 보아 백호군은 한숨도 자지 않은 듯했다.

‘자기 전에 은호와 산령에 관해 이야기했지. 그것과 관계가 있나?’

혹시 산령이 백호군의 숙면을 방해하고 있는 건가.

다음에 기회가 되면 산령 포획에 힘을 보태야겠다.

백호군과 별채 1층으로 내려가는 사이 은호, 황지호하고도 마주쳤는데, 둘 다 나를 보자마자 내 몸 상태를 확인했다.

나를 걱정해서 그런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환자 취급받는 것 같아 조금 미묘했다.

그래도 진찰당하는 걸 그냥 거부할 수는 없었다.

특히 은호는.

‘……은호가 천성헌 시절 봤던 내 마지막 모습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나.’

은호가 이전 세계의 나에 관해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은호가 내 마지막을 염두하고 있다는 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짧은 진찰 결과 내 몸 상태는 괜찮다고 판명 난 건지, 두 호랑이는 별말 없이 식당으로 안내했다.

“아침도 이 몸이 전부 만들었다. 어제 조금 과식했으니 속에 부담 없을 메뉴로 간단히 준비했다.”

황지호는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긴 했는데, 식탁을 보니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팥밥과 들깨 북어 미역국을 제외하고도 준비된 찬의 가짓수가 10개가 넘어가는데 어디가 간단하다는 건가.

어제 받은 생일상만큼 메뉴의 가짓수가 많은 건 아니었으나 생일상과 겹치는 메뉴도 없어서 결코 간단히 준비한 것 같진 않았다.

또 황지호는 본채와 별채에 있는 호랑이들을 위해 각각 아침 식사를 마련한 듯했다.

‘본채 쪽에는 김신록과 은호의 후예들이 거들어 메뉴 수가 더 많겠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은호가 별채에 머무는 걸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후예에 관해 입에 담는 건 자중하기로 했다.

대신 다른 생각을 해 은호의 후예와 은호 사이에 관한 걱정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백호군과 은호는 얼굴이 닮은 것 같진 않지만 상징하는 색이 비슷해서 형제다워 보이네.’

아침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호랑이들에게 눈이 갔다.

은호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면 백호군이 묵묵히 듣고 가끔 올무가 꼬리를 살랑이며 관심을 표했다.

백호군과 은호, 올무가 모두 하얀 탓인지 참 가족다워 보였다.

‘하얗지 않은 호랑이도 뭐…….’

황지호는 저들하고 닮은 부분이 없었지만 열심히 말을 붙이고 잘 처웃어서 그런지 일단은 가족으로 보였다.

이곳에 내가 섞여 있다는 사실이 뭔가 좀 어색했다.

이 세계에 오기 전이나 온 직후에는 아침을 거의 걸렀고, 은광고에 온 이후엔 지익회관의 기숙사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이런 단란한 분위기에 섞여 아침 식사를 하는 게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화제라도 바꿀 겸 어제 못다 한 이야기를 입에 담으려고 했지만, 망설여졌다.

‘……이런 아침 밥상에서 일 얘기를 하는 건 좀 그렇지.’

가족들끼리 모인 자리에 끼어든 꼴인데, 화제 선택은 좀 신중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결국 이 자리에선 밥이나 잘 먹기로 했다.

그렇다면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나 앞으로 해야 할 일에 관해선 언제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차라리 학교를 빠지고 얘기를 할까.’

출석률을 또 떨어뜨리게 되는 셈이니 꺼려지기도 했다.

함근형 선생님과 우리 반 아이들이 섭섭해하는 얼굴과 빨리 앞으로의 이야기를 해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의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여 주고자 하는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요새 학교를 자주 빠진 덕일까, 우리 반 아이들하고 비행기에서 바로 어제 만난 탓일까.

천칭이 학교를 빠진다 쪽으로 기울려고 할 때, 은호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의신이 형, 그냥 편하게 드세요. 생각이 많으면 천천히 드셔도 체해요.”

내가 타이밍을 재고 있는 걸 알아챈 걸까.

은호가 선수를 쳐 내 입을 막았다.

“오랜만에 등교하시잖아요. 이야기는 나중에 들을게요. 일단 학교에 다녀오세요.”

그 말은 오늘 또 학교를 마치고 저택 별채에 오라는 건가.

아니, 일단 다녀오라는 말도 그렇지만 ‘오랜만에 등교’라는 말에 뼈가 있는 것 같았다.

그간 등교를 하지 못한 이유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결석한 건 변함이 없으니까.

“정 급한 일이 있으면 저나 황호 님이 대응하면 돼요. 의신이 형은 은광고와 은광고에 있는 분들을 좋아하시잖아요? 학교생활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그래, 조의신. 내가 너와 함께 등교하고, 이 저택에는 내 분신을 남겨 둘 거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할 수 있다.”

두 호랑이의 설득은 계속되었다.

은호는 디바이스를 착용하고 있는지 홀로그램을 전개해 내 쪽으로 띄웠다.

화면에 쓰여 있는 건 처음 보는 디바이스 코드였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황지호가 은호 몫의 디바이스를 개통했나 보다.

“제 디바이스 코드예요. 황호 님이 바쁘실 때는 저한테 바로 연락을 주셔도 돼요.”

그렇게 은호와 디바이스 코드를 교환했다.

아니, 은호의 주소록에 이미 내 디바이스 코드가 입력이 되어 있었기에 일방적으로 코드를 받았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거다.

“그럼 다녀오세요.”

“…….”

왕왕!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 활동이 끝나면 곧장 별채에 오기로 약속한 후였다.

호랑이들이 준비한 덫에 걸린 기분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해 둬야 할 일도 있었고 당장 급한 일정도 없었기에 수락해도 괜찮을 거다.

그렇게 하얀 호랑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등교하는 길.

“안녕, 의신아. ……지호도 안녕.”

아직 이른 아침이라 한산한 정문 앞.

교문 지도를 하고 있던 천동하와 마주쳤다.

보통 선도부는 최소 2인 1조로 교문 지도를 하는데, 서 있는 건 천동하 하나였다.

“천동하 선배님, 안녕하세요.”

나는 평범하게 인사했는데, 천동하 앞에서 인간인 척하기를 그만둔 노친네가 아침부터 나잇값을 했다.

“그래. 아침부터 수고가 많군.”

“……지호가 인간이 아니란 건 알지만, 참 어색하다.”

천동하는 황지호를 보며 복잡한 얼굴을 했다.

황지호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말투를 바꿀까요?”

“……그건 그거대로 어색해. 어차피 지호는 0반이잖아. 0반 후배가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그냥 받아들일 수 있어.”

……뭐, 0반이라면 납득할 수 있을 거다.

우리 반 아이들은 이미 황지호가 저런 노친네 말투를 쓰는 걸 다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하여튼 천동하는 포기한 건지 해탈한 건지 모를 얼굴로 답했다.

최근 숨겨진 동생이 품고 있던 비밀이 드러난 충격적인 일이 있었으니 웬만한 일에는 면역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천동하는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고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은하하고도 따로 다시 얘기할 예정인데, 은하의 거취는 당분간 호족 쪽이 맡는 게 좋을 것 같아.”

“집안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은가 보군.”

천동하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천동하의 집안은 손이 귀한 재벌가다.

그것도 온갖 의혹이 들끓고 있는 TC 그룹의 한 축이던 천씨.

천동하는 올곧은 인물이나 그의 가족이나 친지가 전부 그러리라고는 볼 수 없었다.

“응. 가능하면 은광고 입학시험이 치러지는 직전까지는 여전히 감금 증후군인 상태로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때 일어나도 문제없게 준비하고 있을게.”

“알겠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하도록.”

“……또 황명 그룹에 빚을 지게 될 줄은 몰랐네.”

천동하와 황지호는 한동안 은호의 거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들어 봤을 때, 은호가 별채 밖으로 나올 날은 아직 먼 듯했다.

둘이 말을 마쳤을 때쯤, 분위기를 바꿀 겸 물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교문 지도를 시작하신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나요?”

“함근형 선생님이 부탁하셔서.”

함근형 선생님의 부탁이라고?

요 근래에 선도부를 일찍 소집해서 교문 지도를 할 만한 일이 있었나.

“저번에도 방송사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잖아. 선도부를 곳곳에 배치해서 사전에 문제를 막으려는 거지.”

“다른 선도부원들은 전부 분산시켜 배치했나 보군.”

“응. 나는 시야가 넓어서 혼자서 대처할 수 있으니까.”

방송사가 일으킨 문제.

함근형 선생님.

선도부와 교문 지도.

거기까지 들으니 왜 천동하가 여기에 서 있고, 함근형 선생님이 무슨 부탁을 하신 건지 짐작이 갔다.

“독고미로가 오늘부터 등교하나요?”

독고미로가 다시 등교를 시작한다면, 첫날에는 이 정도로 대처할 필요가 있긴 했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천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미로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준우승자잖아. 그리고 마지막 화에는 큰 사건도 있었으니까 언론이 또 사고를 칠지도 모르니까 대비해 두는 거지. ……응?”

천동하는 무언가를 봤는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봤다.

보아하니 광림 ‘건곤(乾坤)을 품은 눈’을 발동시킨 건 아니지만, 천리안 스킬로 주변을 살피고 있는 듯했다.

“……왜 저걸 타고 오는 거지?”

천동하는 의아해하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황지호도 무언가의 접근을 감지했는지 마찬가지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내 눈에도 그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불꽃 같은 강렬한 이능파가 허공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염준열이다……!’

하늘에서 염준열이 홍룡을 타고 은광고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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