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믿음과 시험 (1)
도원우의 어린 시절.
그는 옛날이야기나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오만방자한 재벌가 도련님이었다.
도원우의 부모는 콩가루 도씨 집안에서 보기 드문 정상인들이었으나, 그가 어린 시절엔 차기 총수직을 두고 바삐 움직이느라 그를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또 도원우는 출중한 외모와 재능과 더불어 처세술도 타고나 부모를 비롯한 힘 있는 어른들 앞에서 제 성질머리를 숨길 줄 알았다.
반찬을 가리고 간식을 독차지하거나, 수업 시간을 멋대로 낮잠 시간으로 지정해 자는 등 유치원생이 부리는 갑질은 귀여운 축에 속하긴 했다.
그러나 이대로 성장하면 어떻게 될지, 주변인들의 걱정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그 걱정은 초등학생이 된 도원우가 일찌감치 이능을 각성하니 더욱 커졌다.
―도원우 도련님이 이능을 각성했다고……?
―아직 광림을 쓰지 못하는데 저 정도로 싸우다니.
―선박왕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군. 성품을 빼고 재능만 고려한다면 말이지.
한국을 대표하는 4대 그룹 차기 총수의 외아들 도원우.
동년배 아이들보다 확연히 우수한 두뇌, 아역 모델보다 준수한 외모에 강력한 이능이 더해졌다.
모든 걸 타고난 도원우의 자아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
도원우의 행보와 콩가루 도씨 집안을 대표하는 난봉꾼과 탕아들의 어린 시절이 겹쳐져 보좌진의 고뇌가 깊어졌을 때였다.
―원우야, 이능 센터에 들어가 볼래?
―……이능 센터요?
―응, 이능 센터에 원우 또래 아이들이 몇 명 있다 하더라.
도원우도 이능 센터의 존재에 관해선 알고 있었다.
이능 센터는 출신 여부에 상관없이 어린 시절 이능을 타고난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이었다.
도원우는 그 이념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여겼으나 자신이 거기에 섞이긴 싫었다.
철없는 도원우는 사람은 타고난 배경, 재능, 인생이 모두 정해져 있다고 믿었고,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 인간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도원우가 그 제안을 거절하기 직전, 그의 부모가 몇 마디 덧붙였다.
―혜지도 다니고 있다는데, 어떠니?
―수혁이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다닐 예정이라고 하는데.
오혜지, 주수혁의 이름은 도원우도 잘 알고 있었다.
동갑인 오혜지와 두 살 연하인 주수혁.
두 사람은 집안과 능력, 무엇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접점을 늘려 친목 관계를 단단하게 다지면 차후 도움이 되겠군.’
도원우는 이 기회에 두 사람과 친분을 다져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도원우는 얕은 계산을 끝마친 후,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혜지와 수혁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렇게 도원우의 이능 센터행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도원우는 그 이능 센터에서 어떤 만남으로 인해 가치관이 뒤바뀌고 말았다.
당시 도원우는 고작 10년 남짓한 인생을 살았지만, 지나치게 영민하고 비대한 자아를 가진 그에게 있어서 식음을 전폐하고 생각에 잠길 만큼 강렬한 존재와 만나고 만 거다.
그게 바로 유상희였다.
―이 이능 센터에 치유 이능을 가진 아이가 있다고!
―……응, 우리랑 동갑이야. 가호는 이미 받았고, 광림이 사용 가능해지면 아케아의 힘을 쓰게 될걸?
이능 센터에서 유일하게 말을 트고 지내던 오혜지의 말에 도원우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치유 이능이 얼마나 희귀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상희의 이능 앞에선 도원우의 이능은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치유 이능에 비하면 내 이능은 흔한 축에 속하지. 힘이 강력하긴 하지만, 특별한 건 아니야!’
이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유상희는 몹시 우수한 편에 속했다.
이능 센터에서는 신청하는 학생에 한해 일반 교과목 시험도 치르도록 했는데, 종합 성적 1등은 도원우였으나 일부 과목에선 유상희가 1등을 차지했다.
도원우는 처음엔 그 부분적인 패배를 부정하다가 몇 번의 성적 재검토 과정을 거친 후에야 패배를 받아들였다.
―종합 성적은 1등이잖아. 전 과목 1등을 못 한 게 그렇게 아쉬워?
―……흥.
어느 날부터인가 도원우의 시선은 늘 유상희를 따라다녔다.
유상희는 도원우나 오혜지와 달리 늘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햇살 속에서 온화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유상희의 뒤에 후광이 어린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도원우는 제멋대로 유상희의 출신을 상상했다.
‘어디 출신일까. 내가 아는 유씨 중에 짐작 가는 사람이 없는데. 해외에 유망한 창업가의 딸일지도 몰라. 이름을 감춘 스타 플레이어의 대를 잇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 아니, 사실 한반도 왕조의 피를 타고난 건 아닐까?’
오혜지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도원우를 향해 일침을 날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쟤는 도원우 네가 생각하는 거랑 좀 다를걸?
그 다르다는 말은 간단한 조사로 판명되었다.
유상희는 도원우에 비해 극히 평범한 배경을 타고났다.
유상희의 부모는 맞벌이를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가족이나 친척 중에 이름을 남긴 플레이어도 없었다.
도원우는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얼마나 쓸모없고 하찮은지 새삼 깨달았다.
그러나 도원우가 유상희에게 말을 걸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 쌓아 온 가치관과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
―응? 원우야, 안녕. 인사하는 건 처음이네.
유상희는 처음으로 말을 걸어온 도원우의 눈을 곧게 바라보며 마주 웃었다.
도원우는 순식간에 유상희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도원우는 바뀌었다.
편협하게 사람을 재던 오만하고 무례한 가치관이 부수어지자, 겸손한 천재가 탄생하였다.
도원우의 세계는 넓어졌고, 모두가 그 변화를 환영했다.
―원우 형, 도와줘서 고마워!
―……시후야, 일찍 죽기 싫으면 수영은 그냥 그만해라.
―응, 싫어! 수영 가르쳐 줘!
―…….
가장 극적으로 변한 건 도시후와의 관계였다.
도시후는 선박왕의 아들인 주제에 수영도 못하고, 그런 주제에 물에 뛰어드는 바보로 유명했다.
도원우는 명이 짧아 보이는 패배자 도시후를 철저하게 무시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도시후를 돕게 되었다.
전부 그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뀐 탓이었다.
물론 도원우가 좋은 쪽으로만 변한 건 아니었다.
―처남, 오랜만이야!
―미친 새끼. 또 저 소리를 하고 있네.
―원우야, 왜 내 동생한테 미친 소리를 하고 있어.
도원우는 유상희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유상희는 선을 그었지만, 도원우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유상희가 정말 사람을 밀어낼 때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유상희는 여태껏 자신에게 고백한 사람 모두에게 어떤 여지도 주지 않았다.
그중에는 이름난 플레이어도 있었고, 도원우처럼 힘 있는 집안 출신의 인물도 있었고, 유상희와 동갑인 이들도 있었고, 같은 은광고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의 지위, 배경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유상희는 아니다 싶은 사람에겐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도원우를 제외하고선.
그래서 도원우는 생각했다.
‘내 마음을 받아 주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 거다. 그때까지 포기해선 안 돼!’
유상희는 도원우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도원우의 권유를 받아들여 학생회 서기직에 재임했다.
도원우를 밀어내려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텐데, 유상희는 도원우를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었다.
유상희도 도원우를 특별히 여기기에 여지를 남겨 주는 것이라고, 도원우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 도원우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일부 눈치 빠른 주변 인물들도 둘 사이에 뭐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기에 학생부회장 지명수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두 사람을 응원해 주는 이도 존재했다.
그래서 도원우는 언젠가 유상희와 맺어지리라는 믿음을 품고 유상희가 선을 긋지 않는 이들, 예를 들자면 1학년 후배 조의신 등을 대상으로 추하게 굴었다.
그 믿음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끝났다.
―상희 누나 건으로 얘기할 게 있는데.
―될 수 있으면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
사관학교 교류전 당시, 농구부 주전 선수로 선출되어 바쁠 도시후가 자신을 불러냈다.
도시후는 맥주병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실없는 바보였지만 머리는 좋았기에 그가 하는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TC 연구소에서 위험한 프로젝트에 상희 누나를 참여시키려 한다고 들었어.
―……뭐?
최근 진로 문제로 유상희가 고민하고 있다는 건 도원우도 알고 있었다.
그 고민을 덜어 주기 위해 TC 연구소의 연구직 중, 유상희의 적성에 맞을 법한 자리를 조사해 권하기도 했다.
그런데 위험한 프로젝트라니!
도원우는 분노를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그런 프로젝트가 있었어? 걱정하지 마라. 상희를 그런 곳에 가게 하지 않아.
―……원우 형은 그 프로젝트에 관해 몰랐나 보네.
도원우는 그 프로젝트의 존재도 몰랐고 유상희가 묘한 권유에 시달린다는 사실도 당연히 몰랐다.
도원우가 유상희에게 질척거리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도원우는 초등학생 시절 유상희의 집안에 관해 조사한 걸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집안의 힘을 이용해 유상희를 어떻게 하려 한 적이 없었기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도원우는 자신의 무지에 관해 변명하듯 말했다.
―상희는 너와 달리 자신을 소중히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프로젝트에 함부로 몸담지 않을 거다.
―……그건 그래.
―내가 나서지 않아도 거절하겠지.
도원우가 그렇게 말하자 도시후가 고개를 저었다.
―원우 형,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는데 뭔가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그 사람들은 상희 누나가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어.
―……뭐? 대체 왜?
도원우가 도시후를 추궁했으나, 연줄이나 힘이 전혀 없는 도시후가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듯했다.
도원우는 그날부터 유상희와 TC 연구소 사이에 얽힌 일을 조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유상훈의 이능 각성 과정에 TC 연구소가 개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원우가 알게 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설마, 그러면, 상희가 그동안 나를 어느 정도 용인한 것도.’
유상희가 TC 연구소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
그간 유상희가 도원우의 존재를 용인한 이유.
그 이유는 일치하는 게 분명했다.
‘TC에 상훈이의 목숨 빚을 져서 그런 건가……!’
도원우가 유상희를 애틋하게 여긴다는 걸 TC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그중에선 유상희가 유상훈 건으로 TC에 부채감을 안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아무도 도원우에게 그 사실을 일러 주지 않았다.
도원우는 자신의 무지에 뒤늦게 한탄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너무나도 늦어 있었다.
도원우는 더는 유상희에게 추하게 굴지 않았다.
지명수를 비롯한 학생회 임원들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이미 늦었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도원우는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모든 것을 조사했다.
TC 연구소에 얽힌 비밀.
그날 이능 센터에 유상훈을 각성시킨 존재.
유상희가 참가하도록 강요 중인 ‘상위 존재 인공 강림 프로젝트’.
그리고 오늘, 모든 조사를 마치고 계획을 세운 도원우가 움직였다.
TC 연구소 정문.
도원우가 서 있었다.
‘……내가 해야 해.’
도원우가 결의를 다지고 연구소를 향해 한 발 내디뎠다.
한편, 어느 호랑이의 눈이 도원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