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25화 (424/925)

64. 믿음과 시험 (4)

도원우가 이상하다.

아니, 도원우가 정상이 되었다.

원래 도원우는 유상희와 관련된 일에 있어선 추하고 이상했으니까.

도원우의 지인 중, 그가 이상해졌다는 걸 눈치 못 챈 건 연애 쪽에 극히 둔감한 선도부 소속 주수혁 정도였다.

한편, 도원우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건 학생회 임원들이었다.

“……오늘도 멀쩡했어.”

“교류전을 계기로 철이 든 게 아닐까?”

“졸업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곧 학생회장 자리도 준열이한테 가잖아.”

그럴싸한 의견과 근거가 나왔지만, 도원우가 뒤늦게 철이 들었다는 가설은 금방 무너졌다.

도원우가 유상희를 대하는 태도가 과하게 사무적이었던 탓이다.

이쯤 되면 유상희도 도원우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알아챌 법했지만, 그녀는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있어 그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듯했다.

인수인계 탓에 잔업이 많아져 학생회 임원들이 늦게까지 남아 있는 일이 많았는데,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 조심스레 둘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

“상희한테 관심이 식은 건가?”

“그건 아닌 듯.”

“아니면 어디에서 ‘밀고 당기기’에 관해 배워서 혼자 밀당하는 중인 거 아니야?”

“그럼 지금 원우 형 혼자 열심히 밀고 있는 건가요?”

도원우 단독 밀당설이 유력해지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가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그럴 리가 없어.”

딱 잘라 말한 인물은 전 학생부회장이자 도원우의 절친, 지명수였다.

지명수가 알고 있는 도원우는 헛똑똑이였다.

그렇게 총명한 도원우가 유상희와 관련된 일에 한해선 그녀와 처음 만난 초등학생 시절처럼 행동했다.

초등학생 모습으로 저럴 땐 귀엽기라도 했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저러니 추하게 보였다.

어른의 눈으로 볼 땐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같은 고등학생의 눈으로 봤을 때 도원우는 당길 줄밖에 모르는 오만하고 무례한 멍청이였다.

도원우가 어느 정도로 멍청했냐면 유상희 앞에서 완전무결한 학생회장을 가장하거나 TC 그룹의 힘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못 할 정도로 멍청했다.

지명수는 도원우가 밀당 같은 잔꾀를 부릴 여유나 머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명수 형, 혹시 원우 형한테 무슨 얘기 들었어요?”

“아니.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건 아니야. 아, 경구야. 다음 해 응원단 말인데…….”

그 이후로 지명수는 눈치껏 화제를 바꿨다.

다들 도원우가 왜 저러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고, 걱정도 하는 듯했으나 원인을 모르니 일단 방치하기로 했다.

‘잠깐 저럴 수도 있겠지. 뒤늦게 사춘기가 왔을 수도 있잖아.’

사실 도원우가 사춘기를 겪었을 때로 추정되는 시점이 존재하긴 했지만, 지명수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도원우와 유상희, 두 사람 다 신경이 곤두서 보였고 지쳐 보였다.

학생회 임원들 앞에서 숨기려 하고 있었지만, 임원들 전원 플레이어인 데다 두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금방 들통나고 말았다.

“……도원우 선배님, 어디 아프신 걸까.”

“집안에 우환이 있다거나.”

“TC 그룹에는 늘 우환이 있었어. 참고로 뉴스 메인에 일주일 내내 TC 그룹 이름이 걸렸을 때도 안 저랬다.”

“상위 존재나 진족에게 홀려 정신을 빼앗겼을지도 몰라.”

“사실 저 도원우는 가짜고, 진짜는 어디 이계에 잡혀 있는 거 아니야?”

학생회 임원들의 걱정이 깊어졌다.

도원우의 이상을 기민하게 눈치채고 걱정하는 이들은 2, 3학년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그중에는 1학년생인 안다인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인이는 그간 은근히 원우와 상희를 배려해 줬지.’

혹시 안다인이 도원우에게 빚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지명수가 슬쩍 떠보니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도원우 선배님을 응원하고 싶어서요.”

안다인은 그렇게 말하며 선도부 건물 쪽을 바라봤다.

아마 주수혁을 생각한 듯했다.

도원우를 보며 주수혁을 짝사랑하는 자신의 처지를 겹쳐 떠올린 것 같았는데, 지명수는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인이가 하고 있는 건 엄밀히 따지면 짝사랑이 아니지 않나?’

주수혁도 저렇게 대놓고 좋아하고 있으니 추한 도원우와 안다인의 입장은 비교할 바가 못 됐다.

어쨌든 안다인을 시작해 1학년 중에서도 도원우와 유상희를 걱정하는 이들이 늘기 시작하자 지명수가 나서기로 했다.

지명수는 도원우와 유상희를 제외한 학생회 임원을 소집했다.

그러자 대외 활동으로 바쁜 임원 몇몇을 제외한 모든 학생회 임원이 소집에 응했다.

소집에 응하기 전부터 임원들 전원 지명수가 부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원우랑 상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지명수는 학생회 임원들이 예상한 말을 했다.

학생회관 대회의실 중심에 선 지명수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나는 학생회 임원이자 친구로서 두 사람을 도울 생각이야. 하지만 원우나 상희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나 혼자의 힘만으론 안 될 거야. 도와주라.”

지명수는 평소 유상희 앞에서 멍청해지는 도원우를 보고 재밌어하곤 했으나 어쨌든 두 사람을 소중한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지명수의 진심이 묻어나는 말에 학생회 임원들이 모두 두 사람을 돕겠다고 했다.

이 자리에 있는 학생회 임원들만 해도 어지간한 프로 플레이어 팀보다 나은 구성이었는데, 여기에 용족의 후예가 더해졌다.

개인 스케줄 탓에 뒤늦게 도착한 염준열도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명수 형, 저도 도울게요.”

“원우가 너한테 그렇게 추하게 굴었는데…… 고맙다, 준열아.”

“아버지의 옛이야기를 들어 보면 원우 형이 딱히 추해 보이진 않아요.”

염준열은 도원우의 추함을 개의치 않는 듯 웃어넘겼다.

애처가이자 아들 바보 염방열의 이야기는 은광고 내에서도 유명했다.

염방열의 젊은 시절은 도원우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염방열이 염준열의 어머니와 맺어진 반면, 도원우의 추한 짝사랑의 결말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최근 원우가 TC 연구소의 뒤를 캐고 있어.”

“유상희 선배님이 방과 후에 TC 연구소에 들어가는 걸 확인했습니다.”

알아볼수록 두 사람과 TC 연구소 사이에 무언가 있는 게 점차 확실해졌다.

학생회 임원들이 TC 연구소와 두 사람을 주목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점점 흘렀다.

그리고 오늘, 방과 후.

“명수야.”

도원우가 지명수를 불러 세웠다.

지명수는 도원우를 보니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에 정신이 팔렸던 근래의 모습과 달리 오늘의 도원우는 날이 서 있었다.

마치 이계에 돌입하기 전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왜?”

“이거 내 사물함 비밀번호다.”

그렇게 말하며 도원우가 홀로그램을 하나 전송했다.

도원우가 전송한 홀로그램은 규칙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숫자와 알파벳이 적혀 있었다.

정말로 도원우가 쓸 법한 비밀번호였다.

지명수의 의문이 더욱 깊어졌다.

“……이걸 나한테 왜 알려 줘?”

“요새 내가 바빠서 학생회 일을 못 도왔잖아. 나랑 연락 안 되면 거기서 자료 찾아봐. 개인적으로 데이터 칩에 기록한 활동 일지를 보관 중이다.”

그 말에 지명수는 도원우가 오늘 무슨 일을 벌이리라 확신했다.

도원우의 말대로 사물함 안에는 활동 일지가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방대한 활동 일지 어딘가에 유서가 섞여 있을 것만 같았다.

‘원우 미친놈,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냐……!’

지명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 비밀번호를 받아 갔다.

그리고 즉각 오늘 움직일 수 있는 임원 중, 전투에 능한 이들을 모았다.

모인 이들 중, 가장 전투 이능이 뛰어난 이들은 지명수 본인과 염준열, 곽경구, 안다인이었다.

“유리는 오늘 수업이 있다고 해서 못 온대요. 만약의 경우엔 제가 유리 몫까지 싸울게요.”

“다른 임원들은 서포트로 돌리죠. 이렇게 넷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안다인과 곽경구의 말을 받아들여 넷이서 파티를 짜고 도원우를 감시하기로 했다.

인원이 이 이상으로 늘면 도원우가 눈치챌 가능성이 컸다.

이때, 변수가 하나 생겼다.

“오늘 학생회 일로 조금 늦게 하교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오늘 경호를 담당하시던 분은 그냥 넘어갔는데…….”

“설마…….”

“그랬더니 제건이 형…… 용제건 선생님이 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까 같이 가자고 하셔서요.”

휘익!

염준열의 뒤, 허공에서 무언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은 실눈의 교사, 용제건이었다.

“……말리기 어려울 것 같아서 같이 왔어요. 죄송합니다.”

“안녕, 얘들아. 아, 준열이가 잘못해서 들킨 건 아니야. 요새 원우랑 상희가 이상했잖아. 나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거든.”

용제건이 황홀하게 웃고 있었다.

여유 넘치는 유희계 용의 작태를 보니 보나 마나 개입할 타이밍을 재고 있다가 염준열이 경호원을 떼어 놓으려 하자 바로 달라붙은 게 분명했다.

‘용제건 선생님은 전력으로 부족함이 없어.’

‘무슨 일이 생기면 100초의 은총으로 모두를 지키려고 했는데. 여차하면 용제건 선생님을 방패로 쓰면 되겠다.’

‘……뭐, 재밌을 것 같으니까 됐나! 용쌤이 가는 게 원우도 안전해질 것 같고.’

염준열은 면목 없어 했으나 안다인, 곽경구, 지명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이중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용제건이었다.

“빨리 가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원우가 TC 연구소에 도착할 시간인데.”

“……가죠.”

그리고 이들이 TC 연구소 지척에 당도했을 때.

TC 연구소에 거대한 벼락이 몰아쳤다.

파지직! 파아아아앗!

용제건이 전개한 투명한 공간 너머로 거대한 힘이 TC 연구소를 집어삼키자, 연구소는 곧 어둠에 잠겼다.

도원우가 보인 맹렬한 기세에 전원 말을 잃었다가 조급한 마음이 치밀었다.

“들어가자. 다들 무장해!”

지명수가 돌입하려 하기 직전, 염준열이 그를 저지했다.

“잠깐만요!”

“급한 일이야? 일단 들어가면서 이야기하자.”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려 했지만 염준열이 다시 한번 지명수를 붙잡았다.

“기다려 주세요. 급한 일이에요. 지금 메시지 두 개를 받았어요.”

“어떤 메시지인데?”

염준열의 얼굴엔 당혹스러움 반, 기쁨 반이 섞여 있었다.

“하나는 동하가 보낸 메시지에요. 출발하기 전, 동하에게 TC 연구소에 관해 물었어요. 동하가 보낸 자료에 의하면 지하에 결계와 비밀 연구소가 존재해요.”

“원우가 향하는 곳이 그쪽인가……. 그럼 다른 메시지는 뭔데?”

염준열은 바로 답하지 않고 말을 신중하게 골랐다.

혹시 지금 말하는 내용에 실수가 있어 메시지를 보낸 상대에게 누를 끼칠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하나는 제가 존경하는 분께서 보낸 메시지입니다. 저희 일행과 원우 형이 TC 연구소에 있는 걸 알고 계세요.”

“……응?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걸 안다고?”

지명수가 혼란스러워했지만, 용제건은 더 황홀하게 웃었다.

학생회 임원진들은 용제건의 얼굴에 불길함을 느꼈으나, 염준열의 표정과 목소리에선 그 존경하는 대상에 대한 믿음이 넘쳐 나 입을 다물고 듣기로 했다.

“그분이 협동 작전을 요청해 오셨어요.”

염준열이 보고 있는 화면엔 그의 스승, 조의신이 적벽괴도로서 보낸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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