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또 다른 후보 (3)
[플레이어 마이스터 고교, 서버 종료 안내.]
“이런 개새끼들!”
공지를 본 순간 그의 입에서 욕부터 나왔다.
최종장이 업데이트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공지를 올리다니!
진작에 망하고 서버 종료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게임이었지만 욕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섭종 아직도 안 했냐고 악플을 달긴 했지만.
‘과금도 했는데 섭종을 한다고?’
사정이 넉넉지 않은 그는 그렇게 과금을 많이 한 것도 아니었다.
사 봤자 안다인의 아바타, 스킨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적은 돈도 돈이었기에 열이 올랐다.
그는 플마고가 진짜로 서버 종료를 하면 곧바로 플랫폼에 환불 요청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오, jo2god111이 공략 올리면 보면서 하려고 했는데.’
업데이트가 되면 칼같이 공략 글과 리뷰 글을 올리던 ‘jo2god111’이 묘하게 잠잠했다.
게시판이나 블로그를 다시 한번 찾아봐도 완성된 공략 글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반까지 공략하며 정리한 공략 메모가 올라오긴 했지만, 그 이후의 글이 보이지 않았다.
‘플마고에 목숨 걸던 놈이니까 섭종 소식에 충격받았겠지. 이제 현생 살기로 한 건가?’
기다려 봐도 jo2god111의 공략 글은 끝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서버 종료 시각이 점점 가까워지자 그는 공략 글을 기다리는 걸 포기하고, 직접 플레이하기로 마음먹었다.
툭하면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죽이는 스토리상 제대로 된 엔딩이 나올 리가 없지만, 그동안 타이틀 히어로와 히로인은 살아남지 않았던가.
타이틀 히로인 안다인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지켜보기 위해서라도 플마고를 플레이해야 했다.
‘하…… 개망겜, 최종장 난이도 헬이네. 이따위로 만드니까 하는 사람이 없지.’
난이도는 높았지만, 최종장 직전까지 플레이해 둔 상태였기에 엔딩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그는 플마고 서버 종료 전에 엔딩을 보는 데에 성공했다.
엔딩을 보고 난 그는 허무해졌다.
‘이게 끝이라고?’
안다인을 비롯한 주인공 일행이 다 죽고, 목숨을 던졌는데도 흑막을 저지하는 데에 실패했다.
지킨 것도 없고, 구원받은 선인도 없었다.
그는 엔딩 크레딧을 보는 내내 쌍욕을 뱉었다.
플마고가 개망겜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열심히 전파하던 그였으나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엔딩을 보느라 생고생을 했는데 그 고생한 결과 엔딩이 개판이라 더 화가 났다.
그를 더 빡치게 만드는 건 엔딩을 보고 난 다음에 날아온 게임 앱 알람이었다.
[최종장 클리어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선물함을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미친, 부모 출타한 개망겜! 플레이어블 캐릭터 다 뒈졌는데 클리어 보상이 뭔 소용이야!”
10년 가까이 제대로 된 알람을 받아 본 일이 없는데 다 죽고 나서 보내는 게 개소리라니.
이 망겜은 튜토리얼부터 엔딩, 엔딩 후까지 모든 게 다 최악이었다.
욕을 하며 선물함을 열었더니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초상(超象)우주와의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접속한 플레이어의 적합성을 심사합니다.〉
〈심사가 종료되었습니다. 선정을 보류합니다.〉
소리는 금방 끝났다.
처음에는 환청인가 싶었지만, 곧 옆집이나 윗집에서 들린 층간소음일 거라고 판단했다.
“조용히 좀 살아라!”
그는 층간소음 보복용 고무망치를 풀스윙해 벽을 가격하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우니 천장과 벽에 붙은 플마고 포스터가 보였다.
플마고 오픈 전, 홍보용으로 배포된 포스터로 주수혁과 안다인이 등을 맞대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구도였다.
망겜답게 굿즈도 잘 나오지 않아 나름 레어한 굿즈였다.
“미친 개망겜, 개애애애애망겜!”
둘의 마지막이 떠올라 다시 기분이 엿같아진 사이 서버 종료 시간이 가까워졌다.
그의 비뚤어진 20대를 함께한 국민망겜도 역사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플마고 서버가 종료된 순간, 스마트폰에 끊임없이 알람이 왔다.
플마고 관련 키워드가 언급된 기사가 올라왔다는 알람이었는데, 기레기들이 서버 종료 시각에 맞춰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 낸 듯했다.
평소라면 득달같이 눌러 바로 댓글을 달고 제 말에 반박하는 놈들과 키배를 떴겠지만 어쩐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때, 또 층간소음이 들렸다.
〈인원수 부족으로 인한…… 플레이어 ……를 이차원…… 적합체 후보로 선정…….〉
어쩐지 희미한 소리였다.
그는 소리의 근원지를 파악하고자 조용히 손을 뻗어 고무망치를 들고 귀를 기울였다.
윗집이든 옆집이든 걸리기만 하면 개싸움을 해 줄 예정이었다.
기묘한 목소리는 뚝뚝 끊겨서 들리는 바람에 알아듣기 어려웠다.
〈자격 미달 적합체 후보……를…… 하기 위한…… 지원 프로그램…… 개시…… 다……. 5…… 2…… 0 .〉
‘0’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새하얀 빛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그게 이전 세계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계이담의 말에 신경 쓰이는 키워드가 많이 있었다.
인원수 부족, 자격 미달 적합체 후보, 지원 프로그램.
키워드를 종합해 가설을 세웠다.
‘층간소음으로 착각했다는 환청은 나와 은호도 들었던 시스템 메시지일 거야. 이놈은 클리어는 했지만, 처음엔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나 보네.’
갑자기 초상우주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했다.
사람 볼 줄 아는구나.
물론 모든 게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자격 미달 판정을 내렸지만 결국엔 적합체 후보로 이놈을 데려왔으니까.
‘후보의 수가 부족하다 보니 이런 놈도 뽑은 거겠지.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
초상우주의 선택이 별로이긴 했지만, 마침 더 별로인 게 앞에 있었기에 여기에다가 화풀이하기로 했다.
“그 목소리가 끊긴 뒤엔, 나는 은광고 신입생이 되어 입학식에…… 컥!”
퍽!
뭐라 더 설명을 하려던 계이담이 발로 걷어차이자 숨을 들이켜며 몸을 뒤틀었다.
이번엔 힘 조절이 살짝 안 되는 바람에 계이담의 말이 끊겼는데,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초상우주 잘못, 정확히는 계이담 잘못이었다.
다음에 다른 부위를 노려서 걷어차야겠다고 다짐한 후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하얀빛을 본 건 서버 종료 공지가 뜨기 전이야. 은호는 서버 종료가 1시간 정도 남았을 때 봤다고 했고.’
그런데 ‘계’새끼는 서버 종료 이후에 하얀빛을 봤다.
서버 종료 시각에 맞춰 기사가 쏟아진 걸 봤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나나 은호가 이 세계에 온 시점은 작년 말, 실기 시험을 치르던 때다.
계이담이 작년 초, 신입생이 되어 입학식에 참석했다는 것과 비교된다.
‘가장 늦게 출발한 계이담이 제일 빨리 도착한 셈인데.’
나는 내가 고시원에서 하얀빛을 보고 바로 13조가 있는 체육관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사실은 다를지도 모른다.
내가 한순간이라고 생각한 초상우주의 전이는 그보다 훨씬 길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 입학식에서…… 아악! 아프다고! 말할 땐 좀 그만 패라!”
아직 쌩쌩하네.
나는 상보심금파를 계이담의 머리통에 들이대며 말했다.
“말을 못 할 정도로 처맞고 싶어?”
“아오…… 악! 말한다고! 그러니까, 다음에 내가 기억하는 건…….”
계속 처맞으면서 이야기를 하라는 엄포를 알아들은 건지 계이담이 고통을 참으며 입을 움직였다.
안 궁금하지만 일단 알아는 둬야 할 것 같은 계이담의 비화가 계속 이어졌다.
* * *
“선서. 은광 플레이어 마이스터 고등학교의 입학을 허가받은 저희 신입생 일동은 재학 중 학업과 역량 발달에 힘쓰고 학교의 교풍과 교칙을 존중하며 생활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스피커에 고저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이담은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거대한 연회 홀, 은광고 중앙대강당 상인관(上寅館)은 현재 입학식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어? 내가 왜 여기 있지? 그러니까…….’
계이담은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도통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러다가 지금 자신이 은광고 신입생이고, 입학식에 참석했다는 걸 뒤늦게 생각해 냈다.
뭔가 사고 과정이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신입생 대표 천동하.”
수석으로 입학한 신입생 대표, 천동하가 선서를 마치고 내려올 때쯤엔 느꼈던 위화감이 희미해져 갔다.
사고를 하다 보니 흐릿해진 위화감보다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얘기가 더 신경 쓰였다.
“천동하라면 걔 아냐? TC 그룹에서 갈라져 나온 그 집안 출신.”
“올해 신입생 중에 용족의 후예가 있다던데. 그 후예를 제치고 수석 먹은 거면 대단하네.”
“홍염의 제왕 선배님 아들이랬지.”
“……용족은 팔불출로 유명하던데. 잘못 걸리면 우리 죽는 거 아냐?”
“지금 용족의 후예가 문제냐? 올해 1학년 0반 장난 아니래. 옛날에 은광구의 패왕도 애를 먹은 그 금찬솔이…….”
“찬솔이란 이름 듣고 순간 왕찬솔 생각함.”
“걘 또 누구야.”
“님 혹시 ‘느루’ 모름?”
쏟아지는 대화 속에서 아는 이름이 몇 개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떻게 아는 건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계이담은 자신이 착각했다고 단정 지었다.
‘입학식이라서 긴장했나? 데자뷔가 왜 이렇게 심하지?’
계이담은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지냈다.
계이담은 상당히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불안정한 사춘기를 보내서 그런 건지 이능을 늦게 개화했다.
그래서 은광고에 들어오기 전까진 플레이어계와 연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 거론되는 학생들에 관해 알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마도.
‘……아마도?’
입학 초, 계이담은 위화감을 느끼다가 잊고 다시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반복했다.
특히 일어나서 거울을 볼 때마다 위화감을 크게 느꼈다.
자신의 얼굴임이 분명한데, ‘그럴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곤 했다.
매일 아침 혼란을 느끼다 보니 말수도 적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계이담은 딱히 과묵하지도 않았고, 진중한 성격도 아니었으나 주변에서 오해하기 시작했다.
그저 위화감에 휘둘리며 멍하니 있었을 뿐인데 멋대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3학년 0반의 담임이자 선도부의 고문인 함근형이 그를 불러냈다.
“계이담, 선도부에 들어올 생각 있나?”
계이담을 아는 은광고 학생들은 다들 그 제안이 합당하다고 여겼다.
계이담은 꽤 우수했고, 주변에 휩쓸리지 않으며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는 학생으로 보였으니까.
그러나 정작 제안을 받은 본인은 당혹스럽기만 했다.
‘아, 미친…… 얼굴 개 무섭네.’
멀리서 봐도 무섭다고 생각한 얼굴이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더 무서웠다.
겉보기에만 담대해 보일 뿐,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기에 계이담은 쫄아서 바로 승낙했다.
워낙 표정 관리가 잘된 턱에 함근형은 계이담이 저를 무서워서 승낙한 것을 알지 못했다.
‘동아리 활동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으니 마침 잘됐다고 생각하자.’
계이담이 그렇게 정신 승리를 시전할 때였다.
‘만약 동아리 활동을 한다면 학생회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어?’
갑자기 그런 생각이 튀어나왔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자신은 학생회에 들어가고 싶었는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수험 준비를 하다가 정신이 나간 건가?’
태권도를 그럭저럭하니 주 공격 스킬을 체술로 잡으면 좋을 텐데, 영 소질이 없는 이능 총을 주 무기로 삼은 것도 그랬다.
자신은 어딘가 이상한 게 분명했다.
“네가 계이담이지? 1학년 중에선 제일 먼저 왔네. 어서 와.”
처음 선도부실로 가니 2학년 학생들밖에 없었다.
선도부의 고문인 함근형도, 3학년 학생도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오혜지가 1학년 학생들의 의문을 읽고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 줬다.
“아, 3학년 선배님들은 지금 구교사로 가셨어. 함근형 선생님이랑 같이 3학년 0반을 정리 중이야.”
3학년 0반 학생 중 하나가 구교사에서 귀신을 본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담력 시험을 하던 3학년 0반 학생들은 겁에 질린 나머지 물리적 제령 작업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구교사 폭파 계획을 입수한 선도부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
‘……지금이라도 때려치울까?’
계이담이 진지하게 빠른 퇴부를 고려할 때, 오혜지가 말을 걸었다.
“자, 이것부터 받아!”
2학년 학생 오혜지가 코드 세 개를 전송했다.
코드의 내용물은 0반 담임들의 연락처였다.
1학년 0반 담임, 교무부장 제갈재걸.
2학년 0반 담임, 연구부장 임연화.
3학년 0반 담임, 학생부장 함근형.
선도부 고문인 함근형은 그렇다 쳐도 왜 다른 교사들의 연락처를 주는지 알 수 없었다.
“이유 모를 괴사건이 발생하거나, 협박 메시지를 받았을 때에는 먼저 0반 담임 선생님들한테 상담받아. 아마 0반이 보낸 걸 거니까.”
이유를 듣고 나니 더더욱 선도부를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