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53화 (451/925)

66. 또 다른 후보 (5)

시간이 갈수록 계이담의 상태가 나빠졌다.

성시완은 계이담의 상태가 어떤지 아는 것처럼 자주 말을 걸곤 했다.

2학기가 시작될쯤엔 성시완뿐만 아니라 선도부원들도 계이담이 이상해졌다는 걸 느낀 듯했다.

“이담아, 컨디션이 안 좋아?”

“…….”

계이담은 오혜지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저었다.

계이담이 생각해도 최근 자신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신경 쓸 때마다 울컥한 기분이 치밀어 올랐다.

특히 특정 인물이 자신을 걱정할 때 더 그랬다.

그 특정 인물의 공통점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성별, 학년, 소속, 성격 무엇 하나 일치하는 게 없었다.

선도부 내에서 유독 그런 울컥한 기분을 부추기는 인물을 꼽자면 선도부 고문인 함근형, 차기 선도부장인 오혜지, 동기인 천동하와 마진승…….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제 몸이나 신경 쓸 것이지. 어차피 쟤들은, 쟤들은…….’

생각이 다시 뚝 끊겼을 때, 디바이스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함근형의 권유로 중앙 구역 제1양호실에서 정밀 검진을 받았는데, 그 결과가 나온 듯했다.

계이담은 급히 메시지를 확인했다.

‘검사 결과는…… 전부 정상.’

몸 상태는 물론, 이능파도 전부 정상.

수면 부족 징후가 보이는 것 외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계이담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정상이라고?’

대한민국 최고의 플레이어 명문고의 전문의가 자신을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수명대로 살다 죽기 전에 언젠가 미칠 게 분명했다.

“이담아.”

급히 홀로그램을 끄고 목소리가 들린 방향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천동하가 보였다.

뭐든 꿰뚫어 볼 것 같은 시선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담이 약한 이들이라면 천동하의 차가운 시선과 기백에 질려 없는 죄도 술술 불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이담은 천동하를 몇 개월 봐서 익숙해진 건지, 저래 보여도 주변 사람들에게 유하게 대하는 걸 알아서 그런 건지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천동하가 평소대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당분간 선도부 활동은 쉬어.”

“……왜?”

왜냐고 묻긴 했지만 그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최근에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호전적으로 대응한 게 문제가 된 게 분명했다.

얼마 전에도 3학년 0반이 벌인 5차 구교사 습격 사건 때에 이능 총을 잘못 쏴서 마진승이 다칠 뻔했다.

마진승이 앞뒤 가리지 않고 튀어 나간 것도 잘못했지만, 바로 총을 빼 들고 조준을 엉성하게 한 계이담의 잘못이 더 컸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마진승이 다쳤겠지…….’

그날, 함근형이 화살로 총탄을 격추시키는 신기를 보여 위기를 모면했다.

함근형은 계이담에게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으나 이능 무기 사용 매뉴얼을 정독한 후, 이번 건에 관해 반성문을 제출할 것을 지시했다.

천동하도 질타의 말을 던질 줄 알았는데, 그 건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요새 1학년 0반이 제갈재걸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니까 일이 적잖아. 나랑 진승이가 알아서 할게.”

언제든 선도부를 그만두려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일에 손을 놓는 건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알았다고 답변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계이담을 안심시켜 주려는 듯 천동하가 한마디 덧붙였다.

“무슨 일 있으면 말해. 선도부랑 관계없는 일이라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계이담은 선도부 활동을 쉬게 되었다.

여유 시간이 생긴 계이담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사하면 할수록 답은 나오지 않고 의문이 깊어질 뿐이었다.

‘과학으로도, 이능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증상과 현상…….’

디바이스를 통해 자료를 찾아보던 계이담은 중앙 도서관을 방문했다.

괴짜 교장, 책벌레 황보윤이 모아 둔 서적 중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품었다.

계이담이 중앙 도서관에서 키워드를 정해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있으니, 같은 반 허채아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은광고 괴담 조사하는 거야?”

허채아는 도서부 소속이었다.

은광고의 도서부는 방대한 장서량과 규모 탓에 장서 정리, 미아 안내로 늘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

허채아는 바쁜 와중에도 계이담을 도와줄 생각인 모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거절했겠지만, ‘은광고 괴담’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은광고 괴담?”

“응, 검색 키워드 보고 그쪽인가 싶어서. 신문부에서 2, 3년에 한 번씩 취재하는데, 해명이 안 된 것들이 많아.”

은광고의 유능한 학생들이 조사해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가 괴담이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그 사실에 계이담은 희미한 희망을 품었다.

자신의 증상도 은광고에 와서 더더욱 심해지지 않았던가.

어쩌면 은광고 괴담과 자신의 증상이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이후로 계이담은 은광고 괴담 조사에 매달렸다.

‘괴담의 수도 많고 불명확한 게 많아서 어느 게 나와 관련된 건지 모르겠다…….’

계이담의 은광고 괴담 조사는 곧 난항에 부딪쳤다.

은광고 최고의 정보통들이 모인 신문부에서도 제대로 진상을 밝혀내지 못했는데, 계이담의 개인적인 조사로 괴담의 실체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계이담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 이담이잖아. 어서 와. 어떻게 온 거야?”

천익산에 관련된 괴담을 조사하기 위해 방문한 지익회실.

한산할 때를 노려서 지익회실에 방문했는데, 들어온 지 얼마 안 있어 성시완이 등장했다.

하필 가장 오지랖 넓은 지익회 인물이 들어왔다.

귀찮은 선배한테 걸렸다고 생각하며 계이담이 건성건성 답했다.

“……열려 있어서 들어온 건데요.”

“하하하, 뭐라고 하려고 묻는 게 아니라 찾는 게 있으면 도와주려고. 지익회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

성시완은 옆에서 ‘지익회실이 항상 열려 있는 이유’에 관해 설명해 줬다.

지익회실의 문은 지익회관 내의 다른 시설과 달리 자동문이 아니라 수동문이고, 문에 잠금 기능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익회실은 기숙사생 누구에게 열려 있음을 설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은광고 괴담 관련 자료 같은데. 괴담 좋아해?”

계이담이 괴담에 맞는 자료를 찾느라 홀로그램을 띄워 뒀는데, 성시완이 그걸 보고 물었다.

계이담은 괴담이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이유를 대답하는 게 귀찮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에도 지익회에 관련한 괴담 조사를 할 때마다 성시완이 나타나 말을 걸곤 했다.

괴담과 관련 없는 내용을 멋대로 떠들기도 했다.

“사실 올해 최편득 선생님이 지익회 고문이 될 뻔했어.”

성시완의 말에 의하면, 작년까지 지익회 고문이었던 교사가 정년 퇴임하며 새 고문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지익회 고문을 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교사가 최편득뿐이었다고 한다.

최편득이 차기 지익회 고문이 되겠다며 미리 여기저기 말을 퍼뜨린 바람에 다른 교사들이 최편득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지익회 고문 자리를 고사했던 것이다.

“그래서 최편득 선생님의 영향을 받지 않을 법한 분들께 말을 걸어 봤어. 그러던 중에 용제건 선생님이 조언해 주시더라.”

최편득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교사로 용제건도 꼽혔다.

다행스럽게도, 아니, 아쉽게도 용제건은 체스 소모임의 고문을 맡고 있어 지익회 고문을 맡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신 용제건은 지익회 학생들에게 아주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줬다.

―김신록 선생님한테 물어봤어? 초대 지익회 고문인데.

그 말을 들은 지익회 학생들은 전원 김신록을 찾아가 머리를 숙였다.

김신록은 자신이 초대 지익회 고문이긴 했으나, 1년밖에 맡지 않아 지익회 일은 잘 모른다며 난색을 보였다.

그러나 지익회 학생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최편득이 지익회를 안 먹어서 다행이네. 그런데…….’

계이담은 조금도 다행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김신록이 그리 나쁘지 않은 교사라는 건 아는데, 묘하게 마음이 불안했다.

한편,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계이담이 걱정된 건지 성시완의 오지랖은 계속되었다.

성시완과는 천익산에서 자주 마주쳤는데, 그 넓은 천익산에서 어떻게 이렇게 만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괜찮아?”

성시완이 계이담을 공격하려던 멧돼지를 대신 처리하곤 그렇게 말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티가 나서 더 계이담의 짜증을 부추겼다.

그 짜증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게 계이담을 더 미치게 만들었다.

“제가 잡을 수 있었는데요.”

“하하하, 그건 잘 알아.”

계이담은 따지듯이 물었다.

“……대체 왜 그러세요?”

이 질문은 단순히 멧돼지 건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계이담의 말에 성시완은 멋쩍은지 눈썹을 살짝 내렸다.

성시완 본인도 자신이 후배를 귀찮게 한다는 자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에 천익산에서 너랑 기환이를 본 게 마음에 걸려서.”

그러면 우기환이나 쫓아다닐 것이지 왜 자신을 귀찮게 하는가.

선도부원인 자신과 0반 소속인 우기환 중, 위험인물을 꼽자면 당연히 우기환 쪽 아닌가.

“기환이는 정신적으로 방황은 해도 늘 임연화 선생님이나 원우와의 대결을 준비하고 있어. 그래서 걱정이 안 되는데 너는…… 그냥 다음 일을 생각 안 하는 것 같아서.”

계이담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감당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니 다음 일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성시완이 그런 계이담의 사정을 어떻게 꿰뚫어 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성시완이 귀찮게 여겨지는 건 변함이 없었다.

‘우기환은 나 정도로 귀찮게 굴지 않는데…… 그렇다면…….’

해결책을 모색하던 계이담이 좋은 방법을 떠올랐다.

우기환식 해결책을 쓰면 되지 않는가!

계이담은 담임 임연화에게 승부 운운하며 떠들어 대는 우기환을 떠올리다가 말했다.

“대련하죠.”

“응? 갑자기 대련?”

“제가 이기면 다신 귀찮게 굴지 마세요.”

성시완은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곧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계이담은 자신만만했다.

계이담의 능력은 플레이어와의 전투에 최적화되어 있으니까.

실실거리는 사람 좋은 선배 따윈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제 귀찮은 선배가 안 따라붙겠네.’

그러나 대련 결과는 계이담의 참패로 끝났다.

광림, 스킬 모든 면에서 계이담은 졌다.

상대의 이능파를 저해시키는 계이담의 광림, ‘밤정적의 안개’를 풀가동시켜도 성시완을 저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성시완은 스틸레토로 이능총을 분쇄하고 권법으로 계이담을 제압했다.

“내가 이겼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귀찮게 굴게.”

계이담은 분했지만 승패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성시완은 예고한 대로 계속 귀찮게 굴었다.

계이담은 성시완과 함께 은광고 괴담 탐색을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성시완에게 감화되고 말았다.

지익회장으로 선출된 성시완을 돕기 위해 지익회에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학생 대표 총선거가 끝나 새로운 대표가 정해지고 며칠 후, 계이담은 선도부에 퇴부서를 제출했다.

“……정말 선도부를 그만두고 지익회로 갈 거야?”

선도부장이 된 오혜지가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붙잡지는 않았다.

성시완 덕에 계이담이 눈에 띄게 밝아지고 안정되었으니까.

“선도부에는 유능한 애들이 많잖아요.”

계이담은 천동하를 보며 변명하듯 말했다.

“그래, 선도부는 나한테 맡겨 둬라!”

마진승한테 말한 게 아닌데, 마진승이 힘차게 답했다.

예전 같았으면 속으로 한소리 했겠지만,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뭐, 저놈은 머저리지만 나쁜 놈은 아니니 천동하를 잘 도와주겠지.’

선도부를 나설 때, 오혜지가 말했다.

“퇴부 처리는 하지 않을게. 선도부에는 언제든지 놀러 와.”

선도부에는 좋은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게 아주 마음에 안 들고 거슬리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오지랖 넓고, 사람과 호의를 주고받는 게 익숙한 성시완을 보다 보니 자신의 생각이 바뀐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은광고 입시 실기 시험을 치르는 날이 되었다.

계이담은 길 잃은 수험생을 시험장으로 수행하는 안내역을 수행하게 되었다.

자치기구 소속 학생들이 모두 차출되어 은광고 곳곳에 배치되었는데, 학교가 넓다 보니 학생들을 아무리 배치해도 학교 부지 전체를 커버할 수 없었다.

‘내가 수험생이었던 시절은 어땠더라.’

당연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잘 기억이 나지 않아야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머릿속이 맑게 갠 것처럼 모든 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밀려드는 막대한 정보의 홍수에 계이담은 여태껏 자신이 품어 온 의문의 답을 찾았다.

‘플마고……!’

계이담은 자신의 이름이 원래 계이담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또, 플마고에 관한 모든 것을 떠올렸다.

‘잠깐, 그렇다는 건…… 지금 13조가!’

그때, 교내 방송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정신에 문제가 있는 자가 지껄이는 듯한 내용이었다.

―제군들 중 몇 명을 골라 죽이려 한다. 구조하고 싶으면 힘내서 찾아봐. 이상!

멀리서 다른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족의 습격이다!”

“전원 수험장을 확인해!”

“연락 안 되는 감독관을 찾아!”

“……수가 많다 보니 집계가 안 돼! 시험 중이라 연락하기 어려운 분도 있어!”

계이담은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자신은 딱 한 번 하고 넘어간 그 튜토리얼, 그 이야기가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어차피 쟤들은 죽을 거니까 대충 하고 넘어갔는데……!’

플레이할 당시, 계이담은 빨리 안다인이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계이담은 그 튜토리얼의 대상이 13조였다는 걸 떠올리는 데에도 한참 걸렸다.

계이담은 홀로그램을 켜 13조의 수험장 위치와 감독 이름을 확인하며 달렸다.

‘13조 감독관은…… 김신록!’

성시완이 웃으며 김신록에 관해 이야기했던 게 떠올랐다.

김신록이 함근형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며 앞으로 지익회에서 잘해 보자고 계이담에게 인사를 건넸던 것도 생각났다.

어딘가 벽을 치는 것 같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다정하고, 학생을 공평하게 대해 주는 좋은 교사였다.

‘미친, 내가 왜 여기에……! 아니,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예전 세계의 정보와 이 세계에서 겪은 일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웠지만, 계이담은 전력 질주 했다.

마침내 13조가 있는 체육관이 보인 순간.

콰앙!

13조의 시험이 진행되는 체육관 앞, 새하얀 범이 대검을 휘둘렀다.

계이담은 그 새하얀 범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플마고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하나, ‘백호군’이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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