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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455화 (453/925)

66. 또 다른 후보 (7)

빈틈없이 정장을 차려입은 늙은 호랑이를 보니 의문이 솟았다.

‘여기에서 뭐 하는 거야?’

그야 싸움 구경 하러 왔겠지만, 왜 황명호 이사장의 모습으로 이 자리에 온 건지 모르겠다.

일개 학생의 싸움 구경을 하려고 은광고 이사장이 행차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영 이치에 맞지 않다.

한쪽이 지익회장이긴 하지만, 은광고에선 자치기구의 대표가 문제아를 처리하는 게 흔한 일 아닌가.

‘혹시 지나치게 관객이 몰리지 않게 배려해 준 건가?’

하지만 그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련 기록을 보고 싶다며 아쉬워하는 용제건이 여기에 있으니까.

‘어차피 용제건이 저렇게 웃고 있으면 다들 알아서 자리를 뜰 텐데.’

착한 우리 반 아이들조차 부담임 용제건과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지 않은가.

황지호가 저 꼴로 오긴 했지만, 아직 상식이 남아 있는 건지 나한테 바로 말을 걸지는 않았다.

먼저 인사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사이, 황지호가 조용히 자리를 떴다.

뭐, 더 있어 봤자 의심밖에 더 사겠나.

황명호 이사장에게 인사를 한 후, 성시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성시완의 손에는 회복 아이템 카드가 들려 있었다.

“의신아, 고생했어. 이담이는?”

“안에 있어요.”

계이담은 내가 등을 돌리자 곧바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계이담이 뻗긴 했지만 숨이 붙어 있고 이능파가 멀쩡히 흘러가는 걸 확인했으니 별문제 없을 거다.

고작 그 정도의 얼차려에 저렇게 뻗다니 참 근성도 없는 놈이다.

성시완은 내가 다친 곳은 없는지 살핀 후, 걱정스럽게 특별 체육실 안쪽을 봤다.

아쉽게도 문밖에선 계이담의 처참한 모습이 바로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 봐도 될까?”

“네.”

성시완은 방금까지 얼차려가 진행되던 특별 체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안에 들어간 건 성시완뿐만이 아니었다.

염준열에 이어 용제건까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염준열과 계이담은 동급생이니 걱정됐던 걸까?

내 착한 제자가 저런 ‘계’새끼에게 물들 리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거리는 두고 지내는 게 좋을 텐데 걱정이 되었다.

“이담아! 괜찮아? ……회복 아이템만으론 안 되겠다. 일단 회복 아이템으로는 응급 처치만 할게. 수습이 되면 이송 기기를 타고 양호실로 가자.”

문 안쪽에서 성시완이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계이담이 안 궁금한 과거 얘기를 하면서 툭하면 성시완의 이름을 꺼내던데, 성시완은 저 답 없는 쓰레기를 염려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것 같았다.

염준열도 계이담을 걱정하는 소리를 할 줄 알았는데, 들려온 말의 내용은 예상외였다.

“이담아, 실망이다.”

다정다감한 염준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디찬 목소리였다.

바로 홍룡을 불러내 계이담을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성시완이 중간에 끼어들어 염준열을 제재하는 듯했다.

“준열아, 혹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어?”

“아뇨,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몰라요.”

“응?”

“의신이가 이렇게까지 한 데에는 이유가 있겠죠. 아마 이담이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잘못을 했을 거예요.”

내 제자가 나를 이렇게나 믿어 주다니!

잠시나마 염준열이 계이담과 어울리는 걸 걱정한 내가 바보 같았다.

염준열은 계이담 같은 쓰레기에게 선을 그을 줄 아는 올곧고 사리 분별을 잘하는 훌륭한 용이었다.

내 제자는 스승을 깊게 신뢰하는데 스승인 내가 제자를 믿지 못하다니, 나는 못난 스승이었다.

“……그렇구나.”

내가 반성하는 사이 성시완이 복잡한 심경을 짧게 표현했다.

성시완은 계이담과 친한 사이이니 ‘계’새끼를 곤죽으로 만든 나한테 한마디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나한테는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내가 대련 이유에 관해 밝힐 의사가 없어 보이자 나와 계이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묻지 않았다.

성시완은 오히려 내 걱정을 했다.

“오늘 약속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어디 아픈 데가 있으면 바로 양호실로 와.”

계이담은 이송 기기에 실려 성시완과 함께 양호실로 갔다.

그 뒤를 이어 기분이 몹시 저조해 보이는 염준열과 그와 대조적으로 기분이 하늘을 찌를 듯한 용제건이 등장했다.

염준열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으나 착한 제자이자 멋진 선배답게 나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인사할 때는 평소처럼 완벽한 학생회장다운 얼굴을 했다.

“의신아, 그럼 내일 보자.”

염준열과 용제건이 퇴장한 이후.

이 주변엔 우리 반 아이들과 황명호 이사장만이 남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계이담이 다친 걸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가 주변이 조용해진 이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옷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크게 다친 것 같았습니다. 지익회장은 강하다고 들었는데 부반장은 더 강한가 보군요.”

“저 정도면 며칠은 뻗어 있겠네. ……부작용 각오하고 회복 아이템 쓰면 몰라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목우람과 맹효돈이 한 말에 분위기는 더더욱 싸해졌다.

방금까지 선배를 두들겨 패고 돌아온 부반장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걸까.

‘와 줘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이만 돌아가는 게 낫겠다. 내일 반 아이들이 먹을 간식도 사고…….’

내가 작별 인사를 하려고 하기 전.

권레나를 비롯한 반 아이들이 내 변호를 하기 시작했다.

“의신이가 계이담 선배님한테 대련을 청한 건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걸 거야. 의신이는 함부로 남을 다치게 할 사람이 아니잖아.”

“전 레나 의견에 동의합니다.”

“부반장이 함부로 사람 팰 놈은 아닌데.”

“맞아요! 의신이가 잘못한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계이담 선배가 잘못한 거겠죠.”

“……의신이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네.”

중립을 유지하는 건 한이뿐인 것 같다.

반 아이들의 절대적인 신뢰에 감사해야 할지, 객관성을 잃은 의견에 우려를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실제로 모든 건 ‘계’새끼의 잘못이니 우리 반 아이들의 판단이 옳긴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 자리에 있던 우리 반 아이는 기숙사생뿐만이 아니었던 듯했다.

“사실 등하교 하는 애들도 기다렸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함근형 선생님이 애들을 해산시켜서 우리만 남았어.”

통학생뿐만 아니라 함근형 선생님도 오셨다 가신 건가?

바쁘실 텐데 계이담 따위 때문에 오고 가게 해서 죄송스러울 따름이었다.

“함근형 선생님은 바쁘신 건지 용제건 선생님께 뒤를 맡기고 가셨지만요. 주스 한 잔 더 드실래요?”

“저녁은 먹고 싸웠냐? 과자도 더 먹어라.”

반 아이들이 건네는 간식과 음료수를 건네받으며 우리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반 아이들은 어쩌다가 계이담하고 대련하게 된 건지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라고 얼버무리자 더는 묻지 않았다.

짧은 다과회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 사월세음이 불길한 이야기를 했다.

“0반 선배님들께 들으니까 원래 지익회하고 역대 0반하고는 사이가 안 좋았대요! 아, 금찬왕찬 선배들이 동맹을 맺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하시던데…….”

사월세음은 아직도 금찬솔과 왕찬솔하고 연락하는 건가!

‘계’새끼가 지익회장으로 있는 한, 지익회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긴 한데 금찬왕찬의 힘을 빌리는 건 좀 그렇다.

2학년 0반의 힘을 빌리면 지익회 전체가 힘들어질 것 같았다.

계이담의 인생이 더더욱 힘들어진다면 환영하겠지만, 덤으로 박승현을 비롯한 다른 지익회 멤버들이 고생하는 건 좀 그랬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계’새끼를 조지는 건 내 힘으로 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고 있을 때였다.

위이잉…….

내 바로 옆에 정차한 에어 리무진의 창문이 열렸다.

열린 창문 사이로 은광고 이사장의 얼굴이 보였다.

“의신 학생, 어디 가는 길이지? 마침 나가는 길이니 동행하지.”

황명호 이사장 모습을 한 황지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했다.

저 노친네가 얌전히 돌아갈 것 같진 않았으니, 나한테 연락을 하든 잠복을 하든 할 것 같긴 했다.

어차피 호랑이 저택으로 향하는 길이었으니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에어 리무진에 올라타자 곧장 황지호가 말투를 바꿨다.

황명호 얼굴로 평소 하는 말투를 쓰니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그렇게까진 신경 쓰이진 않았다.

“조의신, 그렇게 오래 대련을 하고 또 외출하다니. 이 시간에 어디 가는 중이지?”

“너희 집.”

황지호는 내가 순순히 올라타 호랑이 저택에 가겠다 말할 거라곤 생각도 못 한 듯했다.

잠시 놀란 얼굴을 하다가 한 박자 늦게 말했다.

“……할 말이 있나 보군. 알았다.”

정확히는 백호군에게 할 말이 있는 건데.

“아까 거기에서 뭐 했어?”

“네 대련을 보러 왔다. 너는 은광고 학생에게 무르지 않나. 봐주다가 만약의 일이 생길 수도 있는 법이지.”

내가 계이담을 봐줄 리가 없고, 그놈에게 당할 리도 없는데.

황지호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긴 했지만 걱정해서 온 걸 뭐라 하긴 그래서 궁금한 걸 묻기로 했다.

“왜 이사장의 모습으로 온 거야?”

“황지호는 외부 활동 중이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방법도 있었지만, 함근형이 통학생을 해산시켰으니 이 몸으로 오는 게 낫겠다 판단했지.”

17세 고등학생 모습, 그것도 은광고의 유명한 돌아이의 모습으로 할 외부 활동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전에 황지호를 황명 그룹 후계자로 내세운다고 행사에 내보내던데, 아마 그런 류의 외부 활동일 거다.

황지호의 모습으로 어떤 자리에 나갔는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았기에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말할 게 있는데.”

“말해 보도록.”

나는 서돌에게 들었던 목우람 암살 미수 건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노친네가 나름 1학년 0반에 정을 붙이고 있고, 이 암살 건수를 두고 ‘세 기사의 맹세’가 은광고에 무슨 작당질을 할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렇군…….”

호랑이 저택은 은광고와 가까운 탓에 이야기를 하던 도중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지 오래였다.

그러나 황지호는 석연치 않아 보이는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치 내가 더 말을 하는 걸 기다리는 눈치였다.

“왜 그래?”

“계이담과 대련한 건에 관해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그건 내 개인적인 문제인데.

‘계’새끼 건은 몹시 짜증 나고 열받는 일이지만 호족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일이었다.

만약 ‘계’새끼를 조지는 데에 내 힘이 부족했다면, 빚을 지고서라도 호족의 힘을 빌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계이담 하나 정도는 내 힘으로 갈굴 수 있다.

“또 할 말은 없나?”

황지호가 그렇게 물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계이담도 나와 같은 세계에서 온 존재라는 걸 알릴까도 잠깐 고민했지만, 어차피 저 ‘계’새끼는 아는 것도 없고 별다른 힘도 없지 않은가.

이용할 가치가 없으니 호족과 엮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그 계이담에게 문제가 있는 듯하니 알아봐야겠군.”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도 황지호는 계이담에게 문제가 있다고 단정 지었다.

계이담에 관해 캐 봐야 별다른 게 나오지 않겠지만,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야기를 마쳤으니 돌아갈 건가? 차 한잔도 하지 않고 돌아가면 은호와 신수가 서운해할 거다.”

“저택에 들렀다 갈 거야.”

“……무슨 바람이 분 거지? 환영한다, 조의신. 앞으로도 그렇게 행동해 다오.”

황지호가 정말로 환영하는 건지 아닌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소리를 했다.

냉큼 에어 리무진에서 내려 저택 문을 여는 걸 보니 전자인 것 같긴 했다.

황지호를 따라 은호가 머무는 별채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밖에 나와 있던 백호군과 마주쳤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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