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30화 (528/925)

75. 바꿀 수 없는 것 (4)

수업을 마친 후, 부 활동 시간.

신문부는 4/4분기 학생 대표 회의에서 발표된 내용을 바탕으로 취재 계획을 세웠다.

가장 큰 안건은 단연 은광고 축제 취재였다.

“축제 취재 일정은 자치 기구에서 배치도를 공개하면 그때 다시 잡을 예정이야. 동선 제대로 못 잡으면 우리 머릿수로 다 취재하는 게 불가능하거든. 너희들 학급별 일정도 있을 거고.”

신문부 부장은 축제 전에 다른 취재를 끝내 둘 생각인 것 같았다.

“그래서 말인데, 먼저 신규 홍보 대사 인터뷰를 해 둘까 해. 아직 정식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학생 쪽은 거의 확정인 거 같으니까.”

그러자 시선이 내 쪽으로 꽂혔다.

신문부 부장은 1학년들을 둘러보다 둘을 지정하며 말했다.

“유력한 후보들하고 미리 인터뷰를 했으면 하는데. 새론아, 지호야, 부탁할게.”

“넵!”

“하하하하!”

말을 안 해도 그 유력한 후보들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 건 알 수 있었다.

……정말 홍보 대사 쪽은 확정된 건가?

주수혁과 안다인, 독고미로 인터뷰는 당연히 해야겠지만, 정말 나까지 해야 할까?

점심때부터 몹시 기분이 좋아 보이던 노친네가 신나게 처웃는 소릴 들으니 매우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두고 신문부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다.

다음은 은광고 실기 시험 현장 취재 건이었다.

“작년에는 안전 이슈도 있었으니까, 단순한 현장 스케치에 그치지 않고 학교 보안 상태를 점검하는 기획을 할 예정이야.”

또 시선이 내 쪽으로 꽂혔다.

13조가 겪은 웅족의 습격 사건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었다.

작년에 있던 습격 사건으로 은광고의 보안 상태가 이슈가 되었다.

신문부는 순찰 겸 당일 취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이미 안내역으로 지원해서 취재에 참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작년 사건에서 부상자가 나왔지만 사망자가 0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은광고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아. 조심하는 게 좋겠지.’

웅족의 습격이 없더라도 아직 이능 조절이 미숙한 중학생 플레이어들이 다수 모이는 자리이니 안전에 유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때, 디바이스를 보던 문새론이 회의실 중앙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실기 시험 안내역 배치도 나왔음요!”

안내역을 지원받은 게 어제인데, 그 짧은 시간에 배치도를 짜다니.

학생회장이 우수하고 성실한 내 제자이자 선배라서 그런지 일 처리 속도가 몹시 빠르다.

안내역 배치도에는 대략적인 순찰 루트와 시간대와 명단이 나와 있었다.

정확한 순찰 루트는 고사장이 확정된 후에 발표될 예정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실기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 수가 확정된 후에 고사장을 정하고, 그 뒤에 루트가 확정되겠지…… 어?’

명단을 훑어보는 중 눈에 띄는 이름을 발견했다.

오늘 하루 종일 내 머리 한구석에 남아 있던 이름이었다.

용제건.

교사인 그의 이름이 여기에 있어도 이상한 건 아니지만,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기본 2인 1조 아닌가? 용제건은 짝이 없네. 순찰 루트도 정해져 있지 않고…….’

나만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긴 게 아닌지, 문새론이 이를 지적했다.

“왜 용쌤은 여기 따로 적힌 거임요?”

“그러게…….”

“그러고 보니 용제건 선생님이 안내역에 참가하신 건 처음 보네. 작년에도 있었나?”

“없었음.”

“졸업한 선배가 용쌤 취재하려다가 실패해서…….”

선배가 취재에 실패했다는 말을 들은 문새론이 의욕에 찬 얼굴을 했다.

보나 마나 무모한 취재 계획을 세우는 듯했다.

이때, 황지호가 입을 열었다.

“용제건은 특별한 교원 계약을 맺은 걸 아나?”

“아, 그건 들은 적 있음요. 통찰계 스킬로 보면 교내에서 용쌤의 능력치가 다 랭크 다운 되어 있다던데.”

“그래, 교원 계약은 교내에서 용제건의 힘에 제약을 걸지. 그가 가진 능력을 상대하는 건 꽤 골치 아프니 학교장으로선 당연한 선택이다.”

예전부터 황지호가 죽이 잘 맞는 문새론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더니, 저런 이야기도 해 줄 줄이야.

신문부 사람들이 하나같이 눈을 빛내며 황지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보아하니 그동안 용제건의 이야기가 궁금해도 용제건이 입을 열지 않아 취재가 안 된 것 같다.

그런데 황지호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얘기를 해도 되는 건가?

‘이제는 신문부를 상대로도 감출 생각이 없나.’

황지호는 우리 반에 이어 신문부 사람들한테도 제 정체를 숨길 마음이 없는 걸까.

신문부 사람들은 이사장 친척인 황지호가 그저 사정을 잘 알고 있나 보다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저런 얘기를 하면 정체가 발각될 위험이 클 텐데.

신문부원들이 얼마나 소식에 밝고 눈치가 빠른지 잘 알면서 왜 저러나 싶다.

“용제건은 교내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달이 바뀔 때를 기준으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힘에 가해지는 제약이 더 커지지.”

“아…… 그러고 보니 용쌤은 시간 외 근무를 거의 안 하셨지.”

“학생회장 하교 시간에 맞춰서 칼퇴하는 데 이유가 있었나 보네.”

“그건 그냥 준열이 때문일걸.”

용제건이 학교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교원 계약으로 정해져 있었나 보다.

신문부 사람들은 용제건의 교원 계약을 두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면 제약이 너무 크지 않아?”

“강력한 진족이다 보니 어쩔 수 없나 봐.”

“용족이나 붉은 사자에서 학교를 세우지 않는 한, 용쌤을 교사로 채용할 만한 곳은 은광고밖에 없으니까…….”

용제건은 그런 제약을 감수하면서 교사로 지냈던 걸까.

교원 계약의 존재는 알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제약이 컸다.

“그래서 용제건은 수업 시간이 길어질 때, 비상시를 대비해 볼일이 없는 한 은광고에 잘 머물지 않는다. 이번이 예외지.”

“……능력이 더 떨어질 걸 감수하고 오신 거임?”

“아니, 사전에 이사장에게 허락을 받았다. 작년 일도 있으니.”

용제건이 작년 일을 의식해서 황지호에게 허락을 받은 것 같았다.

요새 1학년 1반 애들 놀려 먹는 걸 봐서 그런 건지 교사다움을 잃은 줄 알았는데, 뒤에서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을 줄이야.

유희계 용의 본능인지 10대 청소년, 베테랑 교사 가릴 것 없이 잘 놀려 먹긴 하지만, 용제건은 객관적으로 좋은 교사다.

“용제건은 교내를 비행하며 혼자 순찰할 예정이다. 고사장이 정해지는 대로 알아서 루트가 정해질 거다.”

“혼자서? 뭐, 용쌤이라면 학생 둘보다 훨씬 전력이 크긴 하지만…….”

“용제건은 하늘에서 순찰하는 학생들을 살피며 따라다닐 예정이라더군. 혼자서 움직이긴 해도 학생들과 함께 행동하는 셈이지.”

그 말을 끝으로 황지호는 용제건에 관한 언급을 마쳤다.

……그런데 황지호가 아무렇지 않게 용제건에게 경칭을 생략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지적하지 않지?

이사장 경유로 용제건과 교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냥 황지호의 돌아이스러움에 다들 익숙해진 것 같긴 하다.

신문부 활동을 마친 후, 나와 황지호는 호랑이 저택으로 향했다.

호랑이 저택 안에 들어서니 바로 용제건과 마주쳤다.

용제건은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다.

“늦었네. 신문부 활동이 길었나 봐. 학생회보다 늦었네.”

그야 신문부는 오늘 학생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바탕으로 취재 계획을 세우다 해산했으니까.

용제건은 그사이에 착실히 염준열을 바래다주고 온 듯했다.

“별채로 향하지. 저녁은 먹었나?”

“아니. 본채로 향하지 않는 걸 보니 지금 하는 건 은호 씨의 후예들도 모르는 건가 보구나.”

“저녁을 먹고 시작하지.”

은호의 후예들은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괜히 가서 방해할 수 없었다.

리플레이를 보여 줄 수 없다는 것도 있으니 용제건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용제건은 계속 황지호를 말로 떠보려고 했으나 황지호는 철저히 무시했다.

하지만 용제건은 그 짧은 대화에서도 단서를 잡으려 했다.

‘여기는 처음 와 보는 별채네.’

황지호의 안내로 도착한 별채는 아르누보 풍의 아담한 2층 건물이었다.

향록을 보러 자주 오던 한식 건물도, 은호가 머무는 현대식 건물도 아니었다.

위치를 보니 은호가 머무는 별채와 가장 떨어진 곳을 선정한 것 같았다.

“저녁을 먼저 먹는 걸 보니 금방 끝나는 게 아닌가 보네. 나는 안 먹어도 괜찮긴 한데, 의신이를 굶길 수는 없지.”

황지호의 계속된 무시에도 용제건은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황지호가 차린 저녁은 메밀상추쌈과 허브송어찜이었는데, 애석하게도 맛이나 플레이팅 무엇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조의신이 잠을 못 잔 것 같아서 수면이 도움이 될 만한 요리를 준비했다. 뭐, 용제건에게도 필요하겠군.”

“오늘 할 일이 잠하고 관련된 건가 보네. 고마워, 잘 먹을게.”

메인 요리부터 디저트와 차 전부 불면증에 좋다는 것들뿐이었다.

어제 잠을 설치긴 했는데, 저 눈치빠른 노친네가 알아챘나 보다.

잠을 못 잤다는 말에 조용히 있던 백호군이 내 쪽을 쳐다보다 말했다.

“잠은 제때 잘 자도록.”

내 주력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이렇게 나를 걱정해 주다니!

백호군은 비록 말수는 적지만 가끔 입을 열 때마다 사려 깊은 말을 하여 늘 나를 감동시켰다.

올무와 함께 이 감동의 순간을 나누고 싶은데, 오늘은 미로 정원에서 홀로 산령을 사냥…… 아니, 산령과 훈련 중이라 하니 아쉬웠다.

“향로가 있네? 저기 안에 들어 있는 건 수면 향 같은데.”

“그만 말하고 앉도록.”

별채 내 응접실.

염색된 실로 표현된 호랑이가 새겨진 태피스트리 아래, 곡선 형태의 안락의자와 화려한 빛깔의 직물로 덮인 패브릭 소파가 있었다.

용제건은 웃으며 황지호가 가리킨 안락의자에 앉았고, 백호군과 황지호는 그 주변에 위치한 소파를 차지했다.

나는 오늘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자리에 없는 이를 언급했다.

“김신록 선생님은 안 오셔?”

“말은 해 뒀는데 안 오더군.”

황지호가 용제건을 쳐다봤다.

용제건은 서운한 기색 없이 밝게 말했다.

“아, 사실 신록이랑 좀 싸웠어. 내가 1반 애들을 부추긴 걸 들켰거든.”

역시 일부러 부추기는 거였구나.

그때 안다인한테 말할 때부터 느꼈긴 했지만, 용제건은 알면서도 1반 애들을 긁었나 보다.

아무래도 오늘 김신록이 여기에 오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적호는 임무 때문에 자리를 비운 걸까?

김신록이 안 와서 그냥 안 온 걸지도 모르겠다.

“조의신, 준비가 되면 말하도록.”

한 손에 수면 향로를 든 황지호가 말했다.

나는 눈앞에 리플레이 목록을 바라봤다.

세 자리의 숫자가 적힌 용제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쓰는 건 처음이구나.’

아주 느리게 손을 움직였다.

내가 느리게 손을 움직이는 걸 보고 용제건이 웃은 것 같기도 했다.

목록에서 용제건을 선택하자, 숫자를 입력하는 창이 떴다.

몇 번째의 리플레이를 택할지 묻는 거다.

‘……처음으로 용제건을 은광고의 결계 주변까지 데려갔을 때를 고를까.’

입력을 모두 마치자 시스템 음이 들렸다.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지호가 황금 향로를 들어 올려 수면 향을 흘렸다.

수면 향이 짙어지자 용제건이 눈을 감았다.

휘이이······!

김신록, 적호 때에 그랬던 것처럼 일순 검은 안개가 용제건을 삼켰다.

그렇게 용제건은 악몽 속으로 향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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