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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532화 (530/925)

75. 바꿀 수 없는 것 (6)

은광고 연구동 구역, 광림연구4관 은영관 지하.

그곳에 위치한 김신록 전용 연구실.

딱히 연구실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는 없었으나 김신록은 그 자리에 있었다.

적호가 내준 연구실은 김신록이 애용하는 브랜드의 문구류로 가득해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안정되었다.

‘그 용이 뒤에서 우리 반 아이들을 그리 괴롭히고 있었다고? 한심한 용 같으니.’

오늘 김신록은 용제건이 한참 어린 제자들을 진심으로 놀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용제건이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인다 했더니 뒤에서 1반 아이들에게 장난질을 하고 있었다.

분해하는 아이들을 보고 웃는 용제건을 보니 반 아이들 앞인 것을 잊고 저도 모르게 압정을 날릴 뻔했다.

김신록은 애써 용제건의 동료 교사다운 태도를 취했다.

―선생님, 1반 아이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신 건가요?

1반 반장 안다인이 그림으로 그린 듯한 모범생이라서 그런지 반 아이들은 모두 착하고 성실하며 순했다.

그런 1반 아이들이 용제건 앞에서 씩씩거리며 분해하고 있었다.

용제건과 악우로 지내 오면서 쌓은 경험과 객관적인 상황 분석을 종합해 본 결과, 김신록은 모든 게 용제건 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평소라면 용제건이 순순히 제가 장난질을 친 걸 인정했을 텐데, 용제건은 고개를 저었다.

―김신록 선생님 반 아이들이 질문을 했는데, 내가 답하기 어려워서 그래.

용제건의 뻔뻔한 태도에 김신록은 더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반 아이들만 없었더라면 일단 압핀이든, 커터 칼날이든 뭐든 날리고 생각했을 거다.

……저 용이 순순히 맞아 줄 리는 없겠지만.

―아이들이 묻는 건데 교사로서 질문에 답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신록 선생님 반 아이들이 질문한 건 학생으로서 한 질문이 아닌걸.

김신록은 용제건 대신 반 아이들 쪽을 바라봤다.

용제건의 말이 틀린 게 아닌지 반 아이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김신록은 웃고 있는 용제건을 무시하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무슨 질문을 한 거니? 아는 거면 내가 답변해 줄게.

그러자 반 아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 아이가 기다린 것처럼 적극적으로 물었다.

―선생님! 그러니까 그……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용제건이 반 아이들을 그리 놀린 걸까.

답변해 주는 건 쉬웠지만 김신록은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짓말로 아무 음식이나 대기에는 도통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솔직히 말하는 건 꺼려졌다.

하지만 김신록의 정체와 이어지는 단서를 남길 수는 없었다.

김신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곶감.

혹시 다음 신분을 사용할 때 곶감을 먹는 모습을 보이면 누군가가 의심할지도 모른다.

김신록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딱히 좋아하는 음식은 없는데…….

―아…….

반 아이들이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으로 탄식했다.

영민한 아이들이니 김신록에게 기호 식품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착한 반 아이들은 서운해하면서도 김신록을 추궁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신록에게 그런 거짓말을 하게 한 용제건을 원망하는 듯했다.

김신록도 원인 제공한 용제건을 탓하기로 했다.

저런 질문이 오면 그냥 모른다고 둘러대면 될 텐데, 용제건은 알려 줄 듯 말 듯 하며 아이들을 약 올린 게 무척 괘씸했다.

그런데 오늘, 황호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당분간 꼴도 보기 싫은데 리플레이라니…….’

황호는 용제건을 저택의 별채로 초대해 리플레이를 실행할 계획인 듯했다.

만약 오늘 반 아이들과의 일이 없었다면 김신록은 그 자리에 갔겠지만, 지금은 용제건의 얼굴을 볼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교직원 사택에 들어가도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 용은 리플레이에 관해 설명은 듣고 가는 건가? 그게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는 걸까…….’

리플레이의 끝은 죽음이다.

그 악몽 속에서 죽음을 맞지 않는 한 리플레이는 계속된다.

용제건의 최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오늘 용제건이 죽음을 경험하리라는 건 확실했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안했다.

그렇다고 해서 용제건을 보러 가고 싶진 않았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연구실에 오게 되었다.

김신록이 홀로 불안해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올 이는 한 명밖에 없었다.

김신록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가로 다가갔다.

“적호 님, 들어오세요.”

“그래, 여기에 있었구나.”

문을 열자 앞에 적호가 서 있었다.

이 건물은 적호의 관리하에 있었기에 어느 곳이든 출입이 자유로울 텐데, 적호는 김신록의 방을 들어올 때마다 반드시 허락을 구했다.

“여기는 적호 님의 공간입니다. 편하게 오고 가셔도 괜찮습니다.”

“여기는 내가 네게 준 곳이다. 그러니 오고 갈 때 네 허락을 받는 게 당연하지.”

적호의 자상한 말에 김신록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가 김신록의 자리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여전히 믿기 어렵지만 적호는 김신록을 아들로 대우하고 아끼는 것 같았다.

김신록이 적호를 대접할 차를 준비하는 사이, 적호가 운을 뗐다.

“일이 많이 바쁘면 내가 대신하겠다. 오늘은 저택에 가 보는 게 어떻겠느냐. 네 친구가 와 있지 않느냐.”

‘네 친구’라는 말에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적호가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으나, 그는 용제건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비록 용제건이 못난 유희계 용이라고는 하나, 하나밖에 없는 친우가 아버지와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런데 적호가 리플레이를 한 이후로 용제건과 술자리를 갖는 등 급격히 친해진 모습을 보였다.

그 사실에 조금은 안도하긴 했지만, 지금은 용제건이 꼴도 보기 싫은 상태라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구나. 그 용이 또 장난질을 친 건가…….”

“…….”

김신록은 적호의 혜안에 감탄했다.

적호가 용제건을 다소 인정하긴 했으나 바로 장난질 운운하는 걸 보니 그 유희계 용의 성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적호는 김신록이 저택에 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김신록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적호 님의 명령이라면 가겠습니다.”

“이건 명령이 아니다, 아들아. 어찌 네 교우 관계를 두고 명령할 수 있겠느냐.”

적호의 부드러운 말에 김신록이 수치심을 느꼈다.

아버지의 뜻을 곡해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네 친우는 네가 없는 미래를 보고 올 거다. 곁에 있어 주면 안도하고 기뻐하겠지.”

……정말 그 용이 그럴까?

김신록은 용제건이 자신의 죽음을 애도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용제건은 자신과 쉽게 친우가 된 것처럼 자신이 없어도 다른 유희를 찾아 금방 떠날 것 같았다.

꿈속에서 죽었던 자신이 앞에 있으면 놀라긴 해도 딱히 적호처럼 크게 감격을 표할 것 같지는 않았다.

“눈을 떴을 때 네가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여겼는지 모른다.”

적호는 남은 차를 마시는 동안 용제건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김신록은 내내 고민에 빠졌다.

*    *    *

용제건의 유일한 친우가 죽었다.

기나긴 삶 속에서 만난 첫 친우이자 단 하나밖에 없었던 벗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갔다.

용제건은 상주로서 장례를 치르면서도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동안 용제건이 몇 번이나 김신록의 가짜 신분의 장례식을 치른 탓일까.

아니면 지금 애도를 표하는 대상이 제호(緹虎)가 아닌 김신록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김신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일까.

“신록아.”

용제건은 틈만 나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여의보주를 구현하여 그를 다시 부활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신록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부활을 원치 않는 거다.

그걸 알면서도 용제건은 포기하지 못했다.

‘다른 이름을 부르면 응해 줄까?’

여의보주를 구현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혼과 이능파가 급격히 닳아 갔다.

그럼에도 용제건은 그동안 자신이 붙였던 친우의 가짜 이름을 하나씩 대 가며 그를 불러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었다.

용제건은 자신이 처음 들었던 친우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제호야…….”

그러나 여의보주가 내뿜는 빛이 흐릿해지기만 할 뿐, 용제건의 친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용제건은 악몽을 꾸는 게 아닐까.

바싹바싹 마르는 목과 희미해져 가는 이능파가 친우의 죽음이 현실임을 고하고 있었다.

“…….”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는 용제건은 문득 청량한 기운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청룡을 필두로 하여 용족들이 조문 와 있었다.

청룡은 용제건의 친우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용제건이 걱정되는지 그에게 몇 번이고 음식을 권하려 했다.

그러나 용제건은 물 한 방울 삼킬 수 없었다.

‘……힘이 없으면 너를 부르지도 못할 텐데. 이렇게 약해지면 안 되는데.’

여전히 용제건은 평범한 플레이어에 비해서는 월등히 강했다.

그러나 소원을 비는 걸 거듭할수록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소원을 비는 걸 그만두고 다른 걸 해야 할까?’

친우의 죽음을 두고 이 땅의 많은 이들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의 죽음은 모두 용제건의 친우 탓이 되어 있었다.

그가 담당했던 학생들을 필두로 해명에 나섰으나 용제건은 움직이지 않았다.

또, 적호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는데, 용제건은 이를 돕지 않았다.

그걸 다 알고도 용제건은 그저 친우를 되살리기 위해 애썼다.

그가 부활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부질없는 짓을 반복했다.

‘아니야, 그 아이가 살아 있는 게 더 재밌을 거야. 복수나 해명보다 훨씬 더…….’

용제건은 유희계 용으로서 본능에 충실하기로 했다.

은광고 개학을 앞두었을 때, 꿈에서 용왕신이 계시를 내렸다.

[용제건, 내 목소리를 들어라. 네가 지금 얼마나 쇠약해져 있는지 알고 여의보주를 다루는 거냐!]

용왕신은 약해진 용제건을 두고 노발대발했다.

가장 아끼던 여의보주, 용왕신의 총아가 망가지고 있으니 두고 볼 수 없는 듯했다.

용왕신은 위엄 있는 음성으로 명했다.

[즉각 용궁으로 복귀해 네 몸을 다스려라. 이대로 가다간 네 혼이 버티지 못한다!]

“제가 용궁으로 돌아가 힘을 되찾으면 그 아이를 다시 살릴 수 있습니까?”

[…….]

용왕신은 답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방법이 없거나, 방법이 있더라도 용왕신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듯했다.

용제건은 용왕신에게 고했다.

“용왕신께서는 제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네게 자유를 주며 경고했다. 네 힘으로도 이룰 수 없는 소원이 있다고.]

그 말은 물론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경고일 뿐, 용제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었다.

용왕신은 용제건을 설득하는 걸 포기하고 물러났다.

[이 땅에 머무를 생각이라면 적어도 내 무녀들의 치료를 받도록!]

용왕신의 계시를 받은 꿈에서 깨어난 용제건이 여의보주를 불렀다.

흐릿해지는 여의보주가 용제건 앞에 떠올랐다.

여의보주가 머금은 옥빛은 장례식 때보다 더 희미해져 있었다.

무의미한 소원을 비는 것을 반복하던 어느 날, 비탄의 웅녀가 용제건을 찾아왔다.

비탄의 웅녀는 붉은 비단으로 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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