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23화 (619/925)

84. 긴 꼬리 (2)

중앙 구역, 학생회관.

도원우가 시계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결계가 이변을 일으킨 지 몇 시간이 지나 있었는데, 여전히 외부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통찰계 스킬로 정보를 수집하는 학생들은 학교 내부, 외부로 오가는 사람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바깥에선 아직 1시간도 지나지 않았겠지만, 소식이 퍼지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협회나 프로 플레이어 팀이 움직이지 않았더라도 이쯤 되면 학생들의 가족이나 경호팀이 움직였을 텐데.’

도원우는 유력한 프로 플레이어 팀과 연이 있는 학생들의 명단을 떠올렸다.

그 명단 중에서 현재 등교한 학생들을 추려 냈다.

붉은 사자 팀 마스터의 아들 염준열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프로 플레이어와 연이 있는 학생이 많았다.

그 프로 플레이어 팀들의 수준을 고려해 봤을 때, 내부로 진입하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됐다.

‘단순히 결계에만 문제가 생긴 게 아닌 것 같군.’

도원우는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의 예상대로 결계 밖에서는 동결형 이계와 돈족, 천계의 수군들과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생회실에서 통찰계 스킬을 사용 중인 학생들은 지원이 안 오는 걸 이상하게 여기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도원우는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에 관해 학생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심했다.

그때, 지명수가 말했다.

“슬슬 시완이가 이계 공략을 마쳤을 것 같은데.”

지명수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생각인 건지 나름 밝은 화제를 골랐다.

그 말을 시작으로 학생들이 성시완의 이계 공략 전적에 관해 대화했다.

지명수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성시완을 팔기로 한 듯했다.

“시완이는 사촌 형을 본받아서 이계 공략을 자주 가. 아마 혼자서 공격대를 맡아도 깰걸?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와…… SSR급 이계도요? 성시완 선배님의 사촌 형은 프로 플레이어예요?”

“플레이어이긴 한데, 팀에 소속한 분은 아니야. 국회의원이거든.”

“혹시 성국언 국회의원 말씀하는 거예요?”

“국회의원 중에 플레이어는 한 명이니까 맞을 듯.”

학생회실에 감돌던 긴장과 불안이 다소 사라졌을 때, 학생회실에서 도원우가 줄곧 기다리던 소식이 들렸다.

외부에서 지원이 왔다는 것만큼 희소식은 아니었으나, 충분히 사기를 올릴 만한 내용이었다.

“잠깐, 2번 출구 쪽으로 누가 오고 있는데…… 2학년이다!”

“꽤 수가 많아. 다 같이 이동했나 봐.”

계속 소식이 없었던 2학년들의 도착 소식에 학생회실에 활기가 넘쳤다.

도원우는 상세한 내용을 물었다.

몇 명이나 있는지, 부상자는 없는지 등을 확인했는데 경상을 입은 학생들이 몇 명 있긴 했지만 심각한 것 같지는 않았다.

도원우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0반은?”

“있어요, 제갈재걸 선생님도 계세요! 인형 옷을 입고 있긴 한데…… 0반 애들이 입힌 걸까요?”

“…….”

제갈재걸은 머리 쪽 인형 탈은 벗고 있었지만 몸통은 벗지 못한 듯했다.

2학년 0반이라면 이 비상시에도 제갈재걸에게 인형 옷을 입힐 법했다.

지명수가 인형 옷이라는 단어는 무시하고 말했다.

“언령을 사용하는 선생님이 한 분 더 오셨네. 이제 마족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마신 인비디우스의 사제라 밝힌 자가 언령에 약하다는 보고는 널리 퍼진 상태였다.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언령 스킬로 인비디우스의 사제를 공격한 순간, 그는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력화되었다고 한다.

사로잡은 마족은 현재 로브가 벗겨지고, 온갖 결박용 아이템과 도원우의 철쇄연쇄로 묶인 상태로 학생회 창고에 갇혀 있다.

‘그 마족이 탈출을 시도했을 때에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마족의 집념이 그 정도일 줄이야.’

마족은 붙잡히고 난 후 한 시간 정도 흘렀을 때, 탈출을 시도했다.

붙잡힌 시점에서 마족은 공청훤에 의해 양발이 으스러져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고, 이능파 잔량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사이에 다소 회복을 한 건지 조용히 결박 아이템을 하나씩, 하나씩 해제하기 시작했다.

감시를 맡은 학생회 임원이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도원우에게 보고하였다.

보고받은 즉시 도원우는 사람을 모아 현장으로 향했는데, 그가 도착했을 때에는 마족을 속박하는 건 철쇄연쇄로 불러낸 사슬뿐이었다.

―마침 사슬의 주인이 왔군……!

인비디우스의 사제는 증오를 숨기지 않으며 도원우를 노려봤다.

빽빽하게 마족을 속박한 사슬 틈 사이로 이능파가 번뜩이는 게 보였다.

마신이 남긴 성흔, 스티그마타의 힘이 폭주하려는 징조였다.

가장 앞에 선 도원우와 지명수를 제외한 학생들이 겁을 먹을 정도로 매서운 힘이었다.

도원우가 광림을 사용해 벽을 만들고 전투에 임할 준비를 했을 때.

누군가가 급히 뛰어들어 와 도원우의 앞을 막았다.

[멈추세요.]

공청훤의 언령이 들렸다.

선량한 목소리가 짧게 들리자 마족의 스티그마타는 거짓말처럼 힘을 잃었다.

인비디우스의 사제가 그 언령에 불복하려는 듯 이능파를 끌어올리려고 애를 써 봤지만, 공청훤이 거듭하여 멈추라는 말을 하자 손가락 하나 꿈쩍할 수 없는지 뻣뻣하게 굳었다.

공청훤은 얌전해진 마족을 등지고 미안해하며 말했다.

―잠시 순찰을 나간 사이에 이렇게 날뛸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계속 지켜볼 걸 그랬네요. 미안해요.

―아닙니다, 외부 순찰을 부탁드린 건 접니다.

공청훤은 자신이 순찰을 먼저 가겠다고 요청했으니 도원우의 잘못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공청훤은, 아직 언령의 여파가 남았는지 공청훤이나 학생들을 노려보지도 못하고 돌처럼 굳은 마족을 보며 말했다.

공청훤의 시선이 마족의 피부 위에 새겨진 스티그마타로 향했다.

―만일을 위해서 피부에 언령을 새겨 두는 게 좋겠네요. 잠시 사슬을 풀어 주시겠어요?

―공청훤 선생님의 언령은 주로 말로 발현된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전 교무부장 선생님만큼 글을 다루지 못해요. 말 쪽이 특기죠.

공청훤은 사슬 틈 사이로 보이는, 마족의 피부 위로 빼곡하게 새겨진 스티그마타를 보며 말했다.

공청훤은 마신이 섬기는 인비디우스가 직접 내려 준 성흔을 언령으로 전부 덮어 버릴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언령술사라고는 하나 글이 특기가 아닌 공청훤이 그 작업을 전부 해낼 수 있을까.

도원우가 잠시 걱정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여러 번 공을 들여 새겨야겠지요.

마족은 그 무서운 말을 듣는 사이에도 언령 때문에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 과정을 거쳐 도원우는 언령이 마족에게 얼마나 유효하게 통하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마족이 한반도에서 행패를 부린 게 오래되었는데, 그렇게 유효한 수단을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심지어 마족에게 언령이 잘 먹힌다는 건 언령술사 본인도 잘 몰랐던 듯했다.

공청훤은 오늘 언령의 힘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마음에 걸리는군.’

도원우는 사슬을 끊기 위해 스티그마타에 힘을 모으던 마족을 떠올렸다.

언령의 힘 없이 정면으로 맞붙었다면 학생들이 얼마나 희생되었을지 알 수 없었다.

그 마족이 습격한 곳에, 마침 그 시각에 공청훤이 그리로 향한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공청훤 선생님이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오지 않았다면 피해가 커졌겠지. 이게 우연일까?’

공청훤은 오늘 학교에 올 예정이 아니었다고 했다.

도원우는 공청훤이 오늘은 보육원 자선 행사에 참가할 예정이라는 걸 들은 기억이 있었다.

‘어쩌면 행운이나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도원우는 얼마 전, 자신이 겪은 행운인지 우연일지 모를 순간을 떠올렸다.

TC 연구소 지하, 유상희가 연구원의 협박에 따라 자진하여 그들을 따르려 할 때의 일이었다.

무려 원족의 수장, 제천대성이 그들을 도와 진실을 밝혔다.

그때 제천대성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유상희는 끔찍한 실험에 동원되고, 수조에 갇힌 진족은 여전히 물속에 가라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일을 되짚어 보다가 도원우는 문득 유상훈과 함께 있었던 까마귀 가면이 떠올랐다.

‘왜 지금 그 까마귀 가면을 떠올린 거지?’

그날 제천대성 외에도 그들을 구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까마귀 가면이었다.

까마귀 가면을 쓴 자는 정체불명의 독을 해독시키고, 그들을 위협하는 마족을 쓰러뜨렸다.

그 순간 도원우는 벼락처럼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래, 그 까마귀 가면도 언령을 써서 마족을 제압했다!’

도원우가 두 사건의 공통점을 깨달았을 때였다.

“원우 형, 늦어서 죄송해요.”

그때, 염준열이 도원우에게 말을 걸었다.

염준열이 직접 2학년들이 겪은 건에 관해 보고하러 온 듯했다.

염준열의 곁에는 낡은 여행복 차림의 여성이 서 있었다.

‘예전에 소개받은 적이 있었지. 준열이의 스승인 촉룡이라고 했었나?’

도원우는 지금 2학년이 이동 중에 겪은 일들이 신경 쓰였으나, 그 외에도 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염준열은 TC 연구소 사건 때, 그 까마귀 가면을 자신이 ‘존경하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렇다는 건 염준열과 까마귀 가면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일 가능성이 컸다.

단순히 추측하면 까마귀 가면은 용족이거나 붉은 사자 소속 팀원이겠지만, 그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기로는 용족이나 붉은 사자에 소속한 이들 중에 언령을 사용하는 자는 없다. 귀한 능력이다 보니 이능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용족이나 붉은 사자 팀원이 검은 까마귀 가면을 쓸 것 같지는 않았다.

용족들은 자신들이 용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있었고, 붉은 사자 팀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용을 형상화하거나 붉은색을 모티브로 한 가면을 쓸 것이다.

도원우가 추리를 하는 사이, 염준열은 2학년들이 이동 중에 겪은 사건에 관해 설명했다.

염준열은 밝히기 어려운 사실이 있다 하여 자세한 과정은 일부 생략하고 설명을 이어 갔다.

결론만 말하면, 염준열은 마신 이라노우스의 사제로부터 이계 지배권을 빼앗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마족의 사제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눈으로 본 도원우 입장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도원우는 염준열이 거짓말을 할 성격이 아니란 걸 잘 알았다.

놀란 얼굴로 설명을 듣던 지명수도 같은 생각인지, 진위 여부는 확인하지 않고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준열아, 그래서 그 가든은 어떻게 됐어?”

“구형 이계 시뮬레이터로 공급되는 지력으로 구현화된 이계라서 그런지 전원을 끄니까 사라져 버렸어요.”

아쉬울 만도 한데 염준열은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들뜨고 흥분한 기색이 느껴졌다.

가든의 지배에 성공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이계 지배에 성공한 것치고는 이능파가 그리 많이 소모되지 않았군.’

이능파가 소모되긴커녕 오히려 염준열은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염준열이 밝힐 수 없다는 그 과정에 어떤 비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0반 애들이 그 가든 안에서 기념 촬영을 많이 했어요. 나중에 사진 자료로 보여 드릴게요.”

“아, 그러고 보니 걔들은 지금 뭐 해?”

“제갈재걸 선생님과 놀고 있어요.”

“나중에 찬솔이들이랑 제갈재걸 쌤한테도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그때, 도원우는 한기를 느꼈다.

갑자기 공기가 차가워진 것 같았다.

지명수도 같은 생각인지 염준열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조금 춥지 않냐? 홍룡 좀 불러 봐.”

“아, 네. 여긴 좁으니까 밖으로 가죠.”

학생회실 문을 연 순간, 비정상적으로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도원우는 급히 창밖을 봤다.

창밖 너머로 얼어붙는 결계가 보였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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