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긴 꼬리 (10)
나는 구름다리 한가운데에 서서 우족을 바라봤다.
우족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달리다가 갑자기 멈춰 서니 저쪽에서 경계했다.
이 주변에 3학년 0반이 깔아 둔 함정이 또 없는지, 다시 그 음침한 안개가 피어오르지는 않는지 살피는 듯했다.
‘이미 부하 여섯이 당했으니 경계할 수밖에 없겠지.’
나는 그 우족이 실컷 경계하게 내버려 두고 그자를 관찰했다.
우족은 처음부터 별동대로 움직일 계획이었는지 은광고에 침입한 다른 진족들과 달리 우산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얼굴을 가릴 정도로 후드가 길게 내려온 우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비로 눈을 막고, 얼굴을 숨길 생각이었나 보다.
‘정말 철저하게 정체를 감추고 있었구나.’
우족이 들고 있는 무기도 흔히 구할 수 있는 낮은 희귀도의 양산형 아이템이었다.
저 무기에 당한 시신을 조사해 무기의 정체를 알아낸다 해도 그 주인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능과 무기의 흔적으로 뒤를 잡지 못하게 막겠다는 의지가 확연히 느껴졌다.
그자를 관찰하고 나니 플마고 속 지익회의 최후가 어땠는지 보였다.
‘지익회의 전멸 이유와 과정을 알 것 같아. 그들의 사인(死因)이 플마고에 나오지 않은 이유도.’
지익회는 눈이 내리는 와중, 지익회관에서 방어전을 하다가 정체불명의 한기와 마주쳤을 것이다.
성시완은 그 한기의 원인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학교가 다 얼어붙고, 학생들도 얼어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 그랬던 것처럼 지익회에서 싸울 만한 학생들을 추려 내어 천익산으로 향했을 것이다.
‘성시완 정도 되는 플레이어라면 천익산에 삿된 눈이 내리더라도 한기의 근원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겠지.’
성시완은 한기가 모이는 대나무 숲의 경계에 도달했을 거다.
그 자리에 왔다면 지익회 사람들은 우비를 입은 우족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 세계에서 일어난 인과를 따져 봤을 때, 플마고의 천익산에서는 지력이 말라 산령도 등장하지 않았을 거고 3학년 0반이 우주의 기운에 낚일 일도 없다.
3학년 0반이 지금처럼 철저하게 단련되고, 함정과 은신처를 준비한 채로 천익산에서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다.
성시완은 무방비한 상태로 우족들과 마주했을 것이다.
우족들이 한기의 근원이 대나무 숲과 연관되었다는 걸 본 학생들을 살려 둘 것 같지 않았다.
‘죽기 전에 성시완이 지익회관에 대기 중인 이들에게 대피하라고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도 있어.’
성시완은 한 명을 살려서 전령을 맡기든, 아이템을 사용하든 하여 지익회관 쪽에 이 상황을 알리려 할 것 같다.
성시완이 돌아오지 않아 찾으러 가다가 또 다른 피해자가 늘 수도 있으니까.
우족들은 성시완이 살린 전령의 뒤를 밟거나 전서구 아이템의 착신 위치를 찾아 입막음을 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
이 모든 게 플마고 속에서 벌어졌다면 퍼스트 크리스마스 시나리오가 끝나고 후일 조사에 착수해도 흉수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저 ‘지익회는 전멸했어.’라고 학생들이 언급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은 흑막의 수에 묻히게 되었던 거다.
그리고 플마고의 지익회를 전멸시킨 우족을 지휘한 건 바로 저자인 게 틀림없다.
‘보통 진족이 아니야. 우족의 수장이 부재한 사이에 부하들을 통솔하고, 명령을 내릴 법하네.’
우비로 얼굴과 몸을 숨기고 있어도 알 수 있었다.
함정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우족의 2인자의 움직임은 빠르고 냉정했다.
내가 한 도발에 분노하고, 부하가 이 자리에 따라오지 못한 것에 당황스러워할 법한데 우족의 2인자로부터 조금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에 위험이 없다는 걸 확인한 우족의 2인자는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러나 완전히 경계심을 거두지 않은 건지, 그는 구름다리를 넘어오지 않고 멈춰 섰다.
대체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재 보는 듯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도발이나 하기로 했다.
“당신이 우족의 2인자겠군요. 수장이 많이 바쁜가 봐요. 부하가 여섯이나 10대 청소년에게 당해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요.”
우족으로서는 아주 뼈 아플 사실을 실컷 늘어놓았지만 저쪽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 대신 우족의 2인자는 이능파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우족의 2인자는 자신의 이능파 상태를 점검하듯이 전신에 힘을 순환시켰다.
방금 전까지 밤정적의 안개의 영향력에 놓여 이능파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 탓에 제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밤정적의 안개는 그리 대단치 않은 광림이었기에 우족의 2인자는 현시점에선 이능파를 원하는 만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어쨌든, 지금 저자가 저런 짓을 하는 원인은 하나였다.
‘나와 싸울 생각인 거겠지.’
지금 눈앞엔 저자가 우족임을 확신하는 내가 있고, 부하들은 학생들 손에 잡혔다.
그 부하들이 호족들에게 넘어갈 것은 뻔했다.
정체는 이미 드러난 거나 마찬가지이므로 이자가 이제 취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
임무에 방해되는 나와 지익회 사람들, 3학년 0반 선배놈들을 제거한 후, 임무를 속행하고 부하들을 구해 귀환하는 것.
아무것도 못 하고 정체가 드러나는 것과 임무를 완수하고 흔적을 남기는 것에는 거대한 차이가 있다.
저자는 차선의 선택을 하려는 셈이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그 힘을 쓰는 건가요?”
“이제 그만 나를 부추겨도 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정체를 감추지 않고 싸워 줄 테니까.”
콰아아아아!
그자의 주변에서 이능파가 휘몰아쳤다.
그 이능파의 파장에 우족의 2인자가 쓴 우비의 후드가 벗겨져 날아갔다.
후드 밑에 드러난 얼굴을 보자 그가 말한 정체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의 피부는 검고, 이마에는 순백의 역삼각형 무늬가 새겨져 있었으니까.
“당신은 아피스의 화신이군요.”
이집트 멤피스에서 황소를 숭배하던 때가 있었다.
그들이 모든 황소를 숭배하던 것은 아니고, 검은 피부를 갖고 몸에 특정한 무늬가 있는 소를 숭배하였다.
이마에는 하얀 역삼각형의 무늬.
혀에는 풍뎅이의 무늬.
어깨에는 독수리, 엉덩이에는 매의 무늬.
그들은 이와 같은 무늬를 타고난 황소를 아피스의 화신으로 모셨다.
그 황소가 죽으면 같은 무늬를 가진 송아지를 찾아내어 부활한 아피스의 화신으로서 숭배를 이어 갔다.
신의 화신이라 불리지만,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황소로서 이 땅에 머무는 게 아피스의 화신이었다.
“잘 아는군. 그걸 알게 된 이상, 네가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일은 없다. 나는 죽지 않는 몸이고, 신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아피스의 화신이 하는 말대로였다.
그는 메피스의 주신 프타의 살아 있는 화신으로 취급받고, 그의 혼은 오시리스와 이어져 죽음과 삶을 극복했다고 하니까.
하지만 나는 우족 중에 아피스의 화신이 존재하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것도 별동대를 이끌 2인자일 가능성도 상정하고 있었다.
‘황지호가 우족의 수장은 아피스의 화신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2인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그 2인자가 만약 아피스의 화신이라면 꼭 확인하고 싶던 게 있었다.
나는 도발하듯이 말을 이었다.
“마치 예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아피스 사제들은 먼 옛날부터 당신을 통해 미래를 읽고 예언했죠.”
내가 궁금한 건 바로 예언의 존재였다.
은호의 딸, 은빛의 영웅은 예언을 타고났다.
은호와 무녀는 그 예언을 두고 갈등했고,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런 비극을 다시금 막기 위해서라도 예언에 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고 싶었다.
“아피스의 화신이라 해도 이런 상황은 예언하지 못했나 봐요?”
“…….”
아피스는 바로 답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음 수를 두는 대국자를 관찰하듯 그를 집요하게 바라봤다.
체스는 침묵의 스포츠지만, 대국 중에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를 도발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속을 읽어 낼 방법도 여러 가지다.
아피스의 화신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나는 그로부터 아주 희미한 동요를 읽어 냈다.
“예언이 없어도 너 하나쯤은 죽일 수 있다.”
예언이 없다.
동요한 아피스의 화신이 한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말을 마친 것과 동시에 아피스의 화신의 손끝에 이능파가 응집하기 시작했다.
아피스의 화신이 손끝을 머리에 가져가자, 머리카락 사이로 숨겨진 뿔이 드러나며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을 본 순간 곧바로 눈을 가려야 했다.
‘저 빛은 태양을 상징하니까, 마주 보면 눈이 멀 수도 있어!’
먼 옛날 파라오들은 아피스의 화신으로부터 풍요와 힘을 건네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피스의 화신은 파라오들을 태양신에게로 인도하였다고 하여 뿔에 태양 원반을 얹었다.
시야가 봉인된 사이, 아피스의 화신이 내게 달려들었다.
아직 사인(死因)을 감출 의사가 있는 건지, 손에는 희귀도가 낮은 평범한 무기가 들려 있었다.
아피스의 화신이 구름다리로 뛰어들어 내게 달려온 순간, 해금 소리가 협곡 사이에 울려 퍼졌다.
우우우웅!
구슬픈 해금 소리가 협곡 사이에서 긴 울림을 남겼다.
그 소리를 듣자 아피스의 화신이 순간 멈칫했다.
“……또 무슨 잔재주를 부린 거냐.”
“아피스의 화신을 맨몸으로 맞이할 리가 없잖아요.”
우우우우웅!
상대를 바보 취급 하듯이 한 말에 이어 다시 해금 소리가 울려 퍼졌다.
3학년 0반 부반장, 국악부에 소속한 선배놈은 단순한 연주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건 그 부반장의 광림이었다.
3학년 0반은 강한 담임을 상대로 계이담을 불러 안개 함정을 깔 수 없으니, 대신 부반장의 광림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의 광림에는 강렬한 디버프 효과가 있었다.
바로 지정한 상대를 느리게 만드는 것.
계이담의 피아를 가리지 못하는 한심한 광림과 달리, 그는 타깃을 정해 연주를 할 수 있었다.
아피스의 화신의 움직임이 연주에 맞춰 느려졌지만, 여전히 보통 플레이어에 비해 훨씬 빨랐다.
나는 그 움직임에 맞춰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내가 구름다리의 끝쪽에 다다랐을 때, 한마디 말했다.
“당신의 말을 믿을게요.”
“무슨 소리냐.”
“예언이 없다는 말요.”
3학년 0반의 개입은 나도 몰랐던 사실이지만, 그 외에는 전부 작전하에 진행된 일이었다.
미래를 보는 힘이 있었다면 아피스의 화신은 절대로 구름다리로 오지 않았을 테니까.
아피스의 화신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사이, 구름다리 끝에서 연주하던 3학년 0반 부반장이 말을 걸었다.
“후배야! 여기에 담임이 있는 거 맞지?”
“네.”
“그런데 우리 담임은 해외 출장 가지 않았나?”
“네. 가셨죠.”
부반장은 임연화가 해외 출장 갔다는 말에 멍한 얼굴을 했다.
그사이에도 연주에 손을 늦추지 않은 게 과연 진족이 이능 악기를 선물할 만큼 우수한 연주자다웠다.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저희 반 담임 선생님은 여기 계세요.”
“뭐?”
난 한 번도 여기에 있는 담임 선생님이 3학년 0반 담임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쐐애애액!
차가운 공기를 찢으며 화살 비가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1학년 0반의 담임, 함근형 선생님이 쏜 화살들의 비였다.
저 화살의 정체는 적궁백시(赤弓白矢).
소의 몸을 한 알유(猰貐)를 꿰뚫은 화살이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