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32화 (628/925)

84. 긴 꼬리 (11)

작전 회의 중 해외 출장에 보낼 교사를 정하던 중.

―황보윤 교장을 보내고, 제갈재걸을 남기는 건 확정되었군. 다른 부장 교사들을 어디에 배치할지 정해야겠다.

황지호가 교직원 명단에 실린 사진들을 홀로그램으로 띄워 각각의 자리에 배치했다.

은광고 안에는 제갈재걸의 사진이, 밖에는 황보윤의 사진이 놓였다.

황지호가 임연화와 함근형 선생님의 사진을 허공으로 띄우며 말했다.

―국제 플레이어 교육자 포럼에서는 별일 없을 것 같다만, 청소년 교류전 관계자끼리 갖는 회합은 안전할지 모르겠군.

그 점은 나도 동의했다.

플마고 속에서 크리스마스 이벤트 즈음에 출장을 간 부장 교사는 임연화, 함근형 선생님 그리고 최편득 셋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확실한 선역이자 강자인 교사가 둘이나 있었으니 문제가 있어도 웬만해선 그냥 해결됐을 거다.

그들은 별다른 일 없이 무사히 귀환하였으나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만약을 대비해 황보윤을 혼자 보낸다는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함근형을 보내고 임연화를 남기고 싶다.

―어째서입니까? 함근형은 황호의 담임 교사 아닙니까. 그자를 남겨 두는 게 1학년 0반 학생들의 마음이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반 아이들이 함근형을 얼마나 잘 따르는지 잘 알고 있다. 그저 임연화 쪽이 이번 작전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적호가 묻자 황지호가 답했다.

―함근형과 임연화, 둘 다 강한 플레이어다. 하지만 임연화는 이능독에 강한 면모를 보이지 않았나. 여차하면 임연화를 동결형 이계 공략에 투입할 수 있으니 전황을 고려해 더 적절한 선택이라고 판단했을 따름이다.

그건 황지호의 말이 맞긴 하다.

강한 담임 임연화는 이능독을 그리 대단치 않게 취급했다.

임연화와 3학년 0반 선배놈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보내는 마지막 여름방학 때 졸업과 수험 준비, 추억 만들기 등을 하는 대신 지옥의 무인도 부트 캠프를 다녀왔다.

그들은 부트 캠프 중, 태풍과 맞닥뜨려 식량 저장고가 파괴되는 대참사를 맞이하여 비참한 자급자족 무인도 생활을 하였다 한다.

엉망진창 무인도 일대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3학년 0반 일당은 수중 훈련 중, 얼어 있는 이계의 입구를 발견하여 동결형 이계 공략에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3학년 0반 선배놈들은 공략에 참가하는 대신, 거지 꼴로 주오 아일랜드로 기어들어 와 방윤섭의 빵을 훔쳐 먹고 이렇게 말했다.

―수중 훈련 중에 얼어 있는 이계의 입구를 발견했는데…… 입구를 부쉈더니 갑자기 독 같은 게 나와서…….

―거치적거린다고 우린 꺼지라고…… 그리고 혼자 그 이계를 공략해 버렸습니다…….

―그 강한 담임은 독도 안 통하고, 끄흑…… 어떻게 이길 수 있는 거야. 에이씨…… 그거 때문에 싸우고 우린 탈출함요……. 그런데 너무 배가 고파서…… 흐어엉!

3학년 0반 원시인의 우두머리, 우기환은 강한 담임의 활약상을 그렇게 전달했다.

그놈들보다 한발 늦게,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주오 아일랜드에 나타난 임연화는 동결형 이계 공략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이계 공략하고 나니까 묘하게 몸이 무거워서 힘이 잘 안 나더라고. 좀 쉬니까 나았지만!

임연화는 동결형 이계를 공략하고 나니 몸에 힘이 안 나서 도망치는 우기환 일당을 놓쳤다며 투덜거렸다.

강한 담임 임연화는 이능독에 영향을 받긴 했으나, 조금 힘이 안 나는 것 외에는 정말 큰 문제가 없던 것 같았다.

재생, 정화나 치유 이능으로 이능독 중독 상태를 해제할 수는 있다고는 들었으나 임연화는 그저 튼튼한 몸으로 모든 걸 극복한 것 같았다.

황지호는 임연화가 동결형 이계를 공략했던 때를 상기시킨 후,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함근형은 근접전에 취약하다. 함근형을 상대로 세 발자국 안으로 들어가면 그가 자랑하는 활 솜씨가 제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함근형은 활의 몸체를 둔기로 활용해 싸우기도 하지만, 근접전으로 임연화와 겨룬다면 필패하겠지.

그야 물론 함근형 선생님과 임연화가 근접전으로 싸운다면 당연히 임연화가 승리할 것이다.

진족 중에서도 강한 담임 임연화와 근접전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능독과 근접전의 가능성.

이 둘을 고려하면 황지호의 말대로 임연화 선생님 쪽을 택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처음부터 함근형 선생님이 은광고에 남아 주셨으면 했다.

‘흑막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임연화가 남는 것보다 함근형 선생님이 남는 게 더 골치 아플 거야.’

흑막이 두는 수, 은광고로 보내는 진족들은 모두 강한 이들밖에 없었다.

학생들의 힘만으로는 당해 내기 어려운 자들뿐이었다.

그러나 교사진이 합류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언령을 사용하는 제갈재걸과 공청훤.

그리고 우족을 쓰러뜨릴 수를 지닌 함근형 선생님.

나는 저 셋을 반드시 은광고에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황지호의 말이 끝난 후에 틈을 노려 발언했다.

―출장에는 임연화 선생님을 보내고, 함근형 선생님은 비밀리에 학교에 남겨 두고 싶어.

황지호의 말에 반대했는데도 노친네는 불쾌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나를 봤다.

황지호는 당장이라도 ‘왜 함근형을 남기고 싶어 하는 거지?’라며 물어볼 기세였다.

―함근형이 1학년 0반의 담임이라는 이유로 택하지는 않았을 텐데. 잠깐, 기다려 봐라. 바로 말하지 않아도 좋다. 내가 맞혀 보마.

내가 대답하기 전에 황지호가 내 말을 막아 버렸다.

황지호는 자신이 맞혀 보겠다며 눈을 반짝이곤 여러 가능성을 제시했다.

황지호의 추측은 함근형 선생님의 저격 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학교 이사장이라 해도 함근형 선생님의 광림을 낱낱이 아는 건 아니니까 정답을 맞히기 어렵겠지.’

함근형 선생님의 광림, ‘명사수의 시선과 광궁(光弓)’은 네 명의 상위 존재와 힘이 이어져 있다.

그 광림을 통해 함근형 선생님은 신들의 명궁, 신궁과 시선을 빌릴 수 있다.

이 점은 창천명궁(蒼天名弓)의 주요 프로필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상위 존재가 누구누구인지 낱낱이 공개된 것은 아니다.

함근형 선생님은 말을 아끼는 편이고, 광림을 난발하는 편도 아니다.

딱히 상위 존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함근형 선생님은 명궁이었기에 보통은 본인의 활 솜씨로 에너미 토벌과 이계 공략을 끝마친다.

그래서 함근형 선생님과 이어진 상위 존재 넷의 이름을 전부 아는 존재는 드물다.

물론, 나는 예외다.

―창천명궁의 광림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네요. 그자는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였어요. 의신이 형은 캐릭터 조작을 통해 능력을 모두 확인했을 거예요.

황지호의 추측에 귀를 기울이던 은호가 말했다.

말하는 것을 들으니 은호는 모든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능력을 확인한 게 아니라 함근형 선생님의 이능을 정확히는 모르는 듯했다.

그래도 은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는 듯했다.

은호로부터 힌트를 받은 황지호가 답을 알았는지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함근형에게는 네 명의 상위 존재가 힘을 빌려주고 있지. 그중 하나가 이예(夷羿)였나? 오, 그랬군.

내 표정을 보고 멋대로 정답이라 단정 지은 황지호가 말을 이었다.

―이예는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맞힌 후,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지. 그자는 반려였던 항아가 월궁으로 떠난 후 인간으로 죽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죽은 인간이 후대에서 생긴 신앙으로 인해 상위 존재로 승격되는 일도 존재한다. 그 경우인가 보군.

황지호의 말대로였다.

옥황상제는 이예와 그의 반려 항아를 지상으로 내쳤다.

항아는 서왕모가 건넨 선단을 두 알 먹고 월궁으로 돌아가 버렸고, 이예는 인간으로 살다가 제자에게 배신당해 죽었다.

그러나 이예가 남긴 업적은 신화에 기록되어 있었고 후대에서는 이예를 궁신(弓神)이라 칭했다.

지상으로 내쳐져 인간으로 죽었다는 설화 때문에 신격이 낮아지는 한이 있어도 그는 여전히 상위 존재였다.

‘이예가 상위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황지호가 바로 떠올리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지.’

함근형 선생님에게 힘을 빌려주는 상위 존재 중에 이예가 있다는 걸 알자 황지호는 두말없이 내 말에 찬성했다.

―조의신의 제안대로 하겠다. 아피스의 화신을 상대한다면, 함근형만 한 인재가 없겠군.

이예는 신화 속에서 적궁백시로 땅을 불태우는 태양과 괴수들을 쏘아 죽였는데 그중에는 알유라는 요괴가 있었다.

알유의 머리는 용이나 사람의 형태를, 몸은 소나 뱀의 형태를 한다고 한다.

그러니 알유를 쓰러뜨린 신화 속의 신궁, 적궁백시는 우족을 쓰러뜨리기에 적합했다.

‘하지만 반드시 몸통을 맞혀야 해.’

소의 형태를 한 건 알유의 몸통뿐.

즉, 다른 부위를 맞혀 봤자 별 타격을 입힐 수 없다.

함근형 선생님의 궁술이라면 어지간한 상대로 빗맞힐 일이 없겠지만, 아피스의 화신을 상대로는 만전을 기해야 했다.

그래서 도망갈 길이 없는 구름다리로, 방패로 삼거나 인질로 삼을 학생이 없도록 저자 홀로 이 장소로 유도해 낸 것이다.

덤으로 아피스의 화신이 피하기 어렵도록 움직임을 늦추는 디버프를 넣을 수 있는 3학년 0반 부반장의 연주도 넣었다.

쐐애애액!

화살을 본 순간, 아피스의 화신으로서의 감이 살아난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본능적으로 급소를 막기 위해 몸을 날린 걸까.

아피스의 화신은 이능파로 감싼 팔로 적극적으로 몸통을 보호했다.

이윽고 화살 비가 아피스의 화신을 삼키자 우비가 찢겨 나가고 아피스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화살이 스친 팔이나 다리 쪽은 벌써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는데 몸통 쪽은 달랐다.

뚝, 뚜둑.

찢겨 나간 우비와 옷 사이로 피가 흥건히 배어 나오다 바닥에 몇 방울 떨어졌다.

치명상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저 화살이 소의 몸통을 꿰뚫는 최고의 무기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까짓 화살, 전부 아피스의 권능으로 불살라 주겠다!”

화살 비가 한 차례 지나가자 아피스의 화신이 팔을 들어 손을 뿔에 가져갔다.

아피스의 화신이 화살이 빽빽하게 박힌 팔을 들어 손을 뿔에 가져갔다.

그 뿔에는 태양 원반이 얹어져 있었다.

그 뿔에서 발하는 태양의 빛이, 보는 이들의 눈을 멀게 하고 모든 것을 불태울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아무리 아피스의 화신이라 해도 이 정도의 출력은 오래 유지하지 못할 텐데!’

한겨울이라 추워야 할 텐데, 구름다리 주변은 여름이 온 것처럼 열기가 휘몰아쳤다.

연주를 거듭하는 3학년 0반 부반장의 손에도 땀방울이 맺혀 흐를 정도였다.

아피스의 화신이 한 말 대로 어지간한 화살은 그에게 닿기도 전에 전부 녹아 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그 강렬한 태양빛을 보면 볼수록 나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 국면에서 태양의 힘을 사용하다니, 아피스의 화신은 조금도 자신의 앞을 보지 못하는구나.’

다음 화살이 날아오기 전, 내가 한마디 했다.

“정말 당신의 예언이 힘을 잃은 건 사실인가 보네요. 예언을 잃어서 그자에게 협력한 건가요?”

“아직도 여유를 부리는군. 연주가 끝나고 화살이 불타면 다음은 네 차례다.”

딱히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라 나는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다.

나는 그자가 쓰러지기 전에 한마디만 더 하기로 했다.

“이예의 화살, 적궁백시는 태양을 아홉 개나 쏘아 떨어뜨렸습니다. 그 앞에서 태양의 힘을 사용하다니요. 당신이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는 걸 똑똑히 알겠습니다.”

쐐애애애액!

내 말이 끝날 무렵,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화살 비 대신 단 하나의 화살이 날아왔다.

하얀 화살은 정확하게 태양의 빛을 머금은 뿔과 태양 원반을 꿰뚫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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