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61화 (657/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61)

87. 별이 없는 세계 (3)

1학년 1반 학생들이 모인 쪽.

부반장인 유상훈이 귀가하였으나 1반 학생들은 대부분 남아 있었다.

1반 학생들의 분위기는 주변과 다소 달랐다.

무사히 사건이 종결하여 다들 기쁨을 나누는 와중에 1반 학생들은 어딘가 날이 서 있었다.

이 분위기는 마치 지난 은광고 축제 중 용제건과 대결을 펼치기 직전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김신록 선생님은 못 오실 것 같대. 바쁘신가 봐.”

반장으로서 대표로 연락을 한 안다인의 말에 아이들이 풀 죽었다.

안다인은 반 아이들을 달래며 말했다.

“우리가 계속 남아 있으면 김신록 선생님이 걱정하실 거야.”

“그렇겠지. 이번 사건 수습하느라 바쁘실 텐데, 우리까지 신경 쓰게 하면 안 되지…….”

“좀 쉬셨으면 좋겠지만 안 되겠지?”

“벌써 시비 거는 기자들도 있더라.”

김신록을 걱정하는 말이 산발적으로 흘러나왔다.

안다인은 반 아이들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말했다.

“내가 제안한 건 올해가 지나기 전에 답변해 줘.”

안다인의 ‘제안’이라는 말에 다시 1반 사이에서 날 선 분위기가 감돌았다.

김신록의 정체와 그를 위협하는 존재들에 관해 알게 된 후, 안다인은 1반 아이들에게 이런 제안을 했었다.

―얘들아, 할 말이 있어.

1반 아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안다인이 말을 신중하게 골랐다.

김신록의 비밀을 밝힐 수는 없었지만, 스승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결의한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험한 적이 김신록 선생님을 노리고 있어.

―0반 부담임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위험한 적’이라고 하자 곧바로 용제건이 언급되었다.

그야 용제건은 위험하기도 하고 툭하면 김신록에게 장난질을 치기 위해 틈을 노리고 있긴 하다.

하지만 용제건은 적이 아니었다.

안다인은 피를 토하면서도 공간술을 전개하던 용제건과, 그런 용제건을 지키기 위해 앞을 가로막았던 김신록을 보았다.

그리고 상위 존재로 승천할지도 모르겠다며 눈가리개로 눈을 가린 용제건을 보는 김신록의 표정도.

‘김신록 선생님의 진정한 적은 따로 있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선생님의 걱정거리만 늘렸어!’

안다인은 괴로움을 삼키며 아이들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위험한 적이 용제건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말에 1반 아이들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눈치 빠른 학생이 대표로 물었다.

―혹시 그 위험한 적이라는 거, 지금 우리 학교에 일어난 일이랑 관계가 있어?

―…….

안다인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말에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은광고에 발생한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위험한 적에 김신록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에 이른 학생들이 말을 잇지 못했다.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안다인이 제안했다.

―그 적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겨울 방학 동안 훈련을 할 거야. 위험한 적에 대응하기 위한 일이니까 훈련에 따라올 자신이 있는 사람만 신청해 줘.

안다인은 그 제안에 이어 훈련에서 요구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낙오시키겠다며 차갑게 덧붙였다.

고민하지 않고 훈련에 참가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학생도 있었으나 전투 이능에 영 자신이 없어 망설이는 학생도 있었다.

머뭇거리는 아이들을 보고도 안다인은 계속 냉정하게 굴기로 했다.

그 위험한 적은 다름 아닌 웅족이니 기준을 높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어설픈 이능과 각오를 품은 이들은 두고 가야 했다.

안다인은 일주일 정도 생각해 보라는 말과 함께 작별 인사를 했다.

“2학년 0반 선배님들이 자치 기구와 협상할 일이 있다고 해서 나는 남아야 해. 그러면 다들 조심해서 돌아가.”

1반 학생들이 저마다 고민에 잠긴 채로 귀갓길에 오르는 것을 지켜본 후에야 안다인이 등을 돌렸다.

안다인이 학생회관의 회의실로 향하려 할 때였다.

귀가하는 학생들이 늘어나 다소 한산해진 복도에서 누군가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아…….”

“어…….”

안다인과 그 마주친 상대가 동시에 작은 탄식을 뱉었다.

그 상대는 기나긴 오늘 중에서 계속 엇갈려 만날 수 없던 상대, 주수혁이었다.

안다인과 주수혁은 서로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연이은 전투 속에서도 저도 모르게 가끔 떠올리고 걱정하고 그리워하던 이가 눈앞에 있으니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세상에 둘밖에 없는 것처럼 마주 보고 있던 두 사람이 겨우 입을 열어 인사했다.

“……다인아, 무사해서 다행이다. 다친 곳은 없어?”

“……응, 걱정해 줘서 고마워. 너는 괜찮아? 정찰조에 갔다는 얘기 들었어. 고생 많았어.”

안부를 묻는 인사말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다시 금방 말문이 막혔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 데에 이어 두 사람이 나란히 산타 옷을 입고 있다는 걸 깨달으니 묘하게 부끄러워졌다.

안다인의 붉은 케이프 의상과 주수혁의 붉은 퍼 코트는 언뜻 보기에 커플 의상 같기도 했다.

주수혁과 안다인은 부끄러움을 불식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입고 있는 산타 옷.”

“그 산타 의상.”

그러나 대화는 금방 중단되었다.

동시에 서로의 의상을 칭찬하려다가 말이 겹치고 만 것이다.

볼을 붉히고 어색하게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 감미로운 곡조가 두 사람 사이에 울려 퍼졌다.

둘은 그 연주가 지금 자기 귀에 들리는 건지, 머릿속에서 멋대로 울려 퍼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연주가 끝날 때까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짝짝짝짝!

연주가 끝난 순간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 두 사람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니 문이 열린 학생회관 홀 안에서 푸른 바이올린을 든 권제인과 옆에서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보였다.

권제인이 무슨 변덕을 일으켰는지 갑자기 즉흥곡을 연주한 것 같았다.

푸른색의 이능 바이올린을 카드화시킨 권제인이 재러드 리에게 물었다.

“기록기기에 남겼어?”

“물론이지, 제인아! 정말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연주지만 훌륭했어!”

현재 권제인을 비롯한 영원의 호수 팀은 권레나에게 달려가고 싶은 걸 참고 대기하는 중이었다.

모두의 주목을 받는 자리에서 권제인이 대놓고 권레나에게 달려가면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르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먼발치에서 권레나를 지켜보며 0반 학생들이 해산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권제인의 눈에 복도에서 꼼짝도 못 하는 주수혁과 안다인이 눈에 들어왔고, 그 모습이 그녀의 영감을 자극했다.

“산타 차림을 한 저 두 사람을 보니 곡조가 떠올랐어. 크리스마스가 지나기 전에 공식 계정에 업로드 해 줘.”

“당장 업로드 할게.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 고맙다, 제인아……!”

재러드 리의 감격 어린 말이 크게 울려 퍼졌다.

안다인은 두 사람을 테마로 한 곡이라는 말에 낯이 뜨거워진 상태로 어느 단어를 머릿속에 되뇌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안다인은 자신의 사물함에 놓인 잘 포장된 책 한 권을 떠올렸다.

주수혁에게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안다인의 마음은 ‘준다’ 쪽으로 점점 기울고 있었다.

주수혁도 안다인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모른 채로.

*    *    *

호족의 죽림.

이곳에는 오늘따라 유독 손님이 많았다.

손님 중 초대받지 않은 자들은 대나뭇잎으로 눈, 입, 귀를 봉인 당한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이들은 본래 호족의 가든이나 은영관 깊은 곳에서 심문받아야 하나 특별히 참관을 원하는 이가 있어 장소를 바꿨다.

대나뭇잎을 손끝에 올린 죽호가 말했다.

“옷깃이 곧 사라지겠군요.”

모든 불청객이 대나뭇잎으로 감각이 봉해진 건 아니었다.

오색 옷깃에 감긴 자들도 있었다.

오색 옷깃은 지금 여기에 없는 자가 남긴 이능파로 유지되고 있었으나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흐릿했다.

휘이이!

죽호가 손을 놀려 오색 옷깃 위에 대나뭇잎을 얹었다.

대나뭇잎이 더해지자 오색 옷깃이 제 역할을 다했다는 것처럼 허공에 녹아 흩어졌다.

황금의 돼지, 굴린부르스티가 그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굴린부르스티는 은광고를 습격한 돈족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굴린부르스티가 돈족에게 저항해 싸우고 이능독에 중독된 광경을 황호의 분신이 목격하였다.

그 결과, 굴린부르스티는 저강렵에게 상세한 사항을 듣지 못하고 휘말린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호족과 연이 없는 굴린부르스티는 경계할 법했으나 그는 이능독에 중독되어 있었고 호족 측에서 해독제를 주지 않은 상태다.

현재 굴린부르스티는 이능을 제대로 다룰 수 없기에 위협이 되지 않아 참관을 허락받았다.

미미한 수준의 이능파를 두른 굴린부르스티를 향해 죽호가 말했다.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황호 님께서 기분이 몹시 별로인 것 같아요.”

“네, 알았어요.”

굴린부르스티에 이어 또 다른 손님이 답했다.

“알았다.”

또 다른 손님은 바로 제천대성이었다.

굴린부르스티 못지않게 제천대성의 상태도 그리 좋지 못했다.

거대한 기적을 몸에 받아들였던 탓에 이능파가 바닥을 쳤고, 몸에 걸치고 있는 것 중 성한 거라곤 긴고아밖에 없었다.

제천대성은 눈가리개가 전부 타 버린 탓에 복잡한 심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제천대성은 눈을 굳게 감고 있었으나 그 얼굴은 기절해 있는 저강렵을 향해 있었다.

저강렵은 제천대성에게 흠씬 얻어맞은 후 줄곧 기절한 상태였다.

죽호는 말없이 대나뭇잎으로 엮은 임시 눈가리개를 건넸다.

“고맙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비 눈가리개를 가져올 것을.”

제천대성이 눈을 가렸을 때, 죽림 너머에서 누군가가 걸어왔다.

재가동한 결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은광고의 경계를 한 바퀴 돌고 온 황호였다.

막 나타난 황호는 20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황호의 눈이 제천대성과 굴린부르스티를 한 번씩 훑다가 지나쳐갔다.

황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죽림 바닥에 놓인 배신자들의 무참한 모습이었다.

저벅, 저벅.

황호는 제일 먼저 저강렵 앞에 멈춰 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질을 당했으나 저강렵의 배만은 깨끗했다.

제천대성이 황호와의 약조를 철저히 지킨 듯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걸 두고 인사 한마디 했겠지만, 지금 황호는 그럴 여유가 없을 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황호는 저강렵의 감각을 막고 있는 대나뭇잎을 가리켰다.

휙!

죽호가 황호의 뜻을 알아듣고 대나뭇잎을 떼어 냈다.

대나뭇잎이 사라지자 황호가 황금빛의 이능파를 발산했다.

파아앗!

이능파는 응축되어 마력으로, 그 마력은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처럼 변했다.

황호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칼날의 수가 늘어났다.

황호의 특기와 힘을 고려해 보면 비효율적인 짓이었으나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마침내 수십 개의 칼날을 완성한 황호가 손짓했다.

칼날은 저강렵의 배를 향해 쏟아졌다.

쉬이이익!

“끄아아악!”

기절한 저강렵이 격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차렸다.

부릅뜬 저강렵의 시야에는 대나무숲으로 빼곡히 가려진 하늘이 보였다.

섬뜩한 분노를 품은 황호의 목소리가 저강렵의 고통을 공포로 바꾸었다.

“적호의 속을 아홉 갈래로 찢은 돼지 새끼의 속을 그 이상으로 찢겠다고 맹세했지.”

이미 저강렵의 속은 아홉 갈래 이상으로 찢어져 있었다.

그러나 황호의 손끝에 황금의 칼날이 다시금 모이고 있었다.

“죽이지는 않는다. 네 놈에게는 묻고 싶은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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