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62화 (65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62)

87. 별이 없는 세계 (4)

1학년 0반 학생들이 재회한 학생회관 로비 한구석.

아침에 등교하지 않은 반 아이들이 등장했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안심한 1학년 0반 아이들은 곧 모르는 얼굴이 섞여 있는 걸 알아챘다.

아니, 알 수밖에 없었다.

구슬비와 옹길동이 걸어 다니는 트리를 콘셉트로 한 화려한 의상으로 눈길을 끌고 있었지만, 그 모르는 사람도 아주 튀는 복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입은 옷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색이 온통 검은색이라 그림으로 그리면 색감이 안 살아나겠다.’

‘슬비랑 루이스의 친구분이겠죠? 저분도 관심이 필요하신가 봐요.’

‘위험할 것 같진 않지만 만약을 대비해 레나 앞에 서야지.’

‘쟤는 또 뭐야. 한이 뒤에 따라오길래 혹시나 했는데 진짜 우리 반 쪽으로 오는 거였어?’

‘음, 역시 우리 반 애였구나!’

‘……우리 반은 0반이었지.’

‘길동이랑 크리스마스 의상을 같이 디자인했는데…… 호, 혹시 커플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이 몸과 슬비가 가장 눈에 띄는군! 다 이쪽을 보고 있어! 내 뒤쪽을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기분 탓일 거다.’

반 아이들이 속으로 다양한 감상을 떠올리는 사이,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1반 학생들을 훑어보며 우뚝 멈춰섰다.

검게 물들인 죽립.

동양의 사극에 나올 법한 무복에 피풍의.

카드화시키지 않고 허리띠처럼 두른 연검.

뭐 하나 평범해 보이는 게 없었다.

낯선 이가 저런 차림을 하고 다가온다면 보통 경계할 것이다.

그러나 관종 둘과 함께 행동하고 있는 바람에 그냥 세 번째 관종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는…….”

함근형이 무협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할 법한 무림인 행색을 한 인물을 유심히 관찰했다.

함근형은 저 인물이 혹시 아는 상대인가 해서 살펴보았으나 답을 쉽게 내지 못했다.

검은 죽립을 깊게 눌러 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누구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듯했다.

그사이 검은 죽립의 인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몸은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

자칭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이 말한 순간 이능에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멈춰 서서 그를 돌아봤다.

1학년 0반 학생들은 물론이고 주변을 지나가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헐…….”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저 단어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니.

어쩌다 보니 그 단어를 몇 번 입에 담았던 김유리가 대리로 수치심을 느끼는지 뺨이 조금 붉어졌다.

모두가 할 말을 잊은 가운데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은 계속 말을 이었다.

“수많은 죽음의 데스의 위기를 넘기며 거듭한 수행을 위해 부재중이었다고 하나 이 몸은 은광고 1학년 0반 소속이오.”

무슨 위기를 넘기는 수행을 했다고?

누군가 지적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대사였으나 ‘1학년 0반 소속’이라는 말의 임팩트가 더 컸다.

‘어둠의 다크니스’라는 말에 모두가 어렴풋이 눈치챘을 텐데, 자신도 모르게 부정했을지도 모른다.

저 무림인이 바로 관종들이 끌고 오려던 등교 거부자 중 하나였다는 것을.

“저분은 무협지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말씀하시는데, 왜 ‘다크니스’와 ‘데스’를 섞어 말씀하시는 겁니까?”

“무협지에도 서양 문물이 등장해요. ‘색목인(色目人)’이라고 해서 서양인이 주요 캐릭터가 될 때도 있어요.”

“이해했습니다. 그런 설정이군요.”

목우람과 사월세음이 조용히 의견을 주고받는 가운데, 잠시 반응을 못 하고 있던 김유리가 뒤늦게 말을 걸었다.

“……와, 우리 반 애였구나! 슬비랑 루이스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김유리는 잠깐 떨렸던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붙임성 있게 웃고는 말을 걸었다.

함근형은 처음에는 걱정스럽게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을 지켜보았으나 김유리가 차례차례 반 아이들을 소개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반 아이들의 소개에 이어 김유리가 검객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못 들었네. 뭐라고 부르면 될까? 해외 생활이 길었다고 들었는데, 다른 나라에서 쓰는 이름으로 부를까?”

“이름이라.”

옹길동이 루이스 페레나로 불리기를 희망했던 것처럼, 저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에게도 감추고 싶은 이름과 쓰고 싶은 이름이 있을지도 모른다.

김유리는 그 점을 배려해 질문을 던진 거다.

함근형은 예전에 옹길동이 본명을 불리자 크게 충격을 받았던 것을 떠올려 입을 굳게 다물고 지켜보기만 했다.

1학년 0반 아이들은 아마 저 검객이 무림인스러운 이름을 대리라 예측했다.

하지만 검객은 죽립을 다시 한번 꾹 눌러쓰며 답했다.

“아직 수행이 부족한 몸. 아직 강호에 내 이름을 올리기에는 부끄럽소. 그냥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이라고 불러 주시오.”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이라고 불리는 건 안 부끄러운 걸까?

반 아이들의 의문을 품었으나 저 검객은 진지했다.

검객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소.”

“응? 벌써?”

“저들과 자웅을 겨루는 사이라고 하나, 학우의 위기에 달려가는 마음을 모르는 척할 수 없었소. 가세하러 잠시 들렀을 뿐.”

검객이 관종들을 쳐다보자 옹길동이 덧붙여 말했다.

“삼세판 승부는 현재 1대1로 마지막 승부를 앞두고 있어. 마지막 승부는 그에 걸맞은 무대가 필요한 법. 크리스마스이브에 승부를 내려 했는데, 긴급 속보를 듣고 한국행을 결심한 거다.”

“여기 상황은 다 정리된 거 같은데. 어떡할 거야?”

“한국에서 승부를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만.”

“이 몸은 승부의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좋을 대로.”

검객 한 명과 관종 둘은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함근형은 저 셋이 허튼짓을 하지 않게 감시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승부의 심판을 떠맡게 되었다.

1학년 0반 학생들은 그 셋이 승부 운운하는 것을 보다가 말했다.

“그럼 슬비랑 루이스가 이기면 쟤네들 등교하는 거야? 응원해야겠다.”

“이제 진짜 몇 명 안 남았네.”

“다른 애들도 보고 싶다…… 오늘 못 본 애들 다 무사하겠지?”

1학년 0반 총원은 16명.

그중 등교 중인 학생들은 11명.

김유리, 독고미로, 맹효돈, 목우람, 민그린, 사월세음, 송대석, 권레나, 조의신, 한이, 황지호.

등교 안 하는 학생들을 찾겠다고 헤매는 중인 관종은 2명.

구슬비, 옹길동.

승부에 따라서 등교 여부가 결정되는 1명.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

즉, 남은 등교 거부자는 2명이었다.

“그 두 명은 집에 있었겠지?”

“관종들이 몰래 학교 나왔던 것처럼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명은 해외에 있을걸? 슬비랑 루이스한테 들었어.”

남은 등교 거부자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화제는 곧 현재 등교 중인 학생들 쪽으로 옮겨 갔다.

“뉴스 보니까 협회 쪽에서도 뭐 일이 많던데…… 대석이는 괜찮아?”

“응, 대석이한테 방금 연락 왔어. 계속 걱정했나 봐.”

민그린은 송대석에게 들었던 사건을 반 아이들에게 전했다.

송대석은 학교에 없었지만, 자신이 싸울 수 있는 방법으로 싸웠다고 한다.

협회 위성 정보 수신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을 상기하면 송대석도 분투했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송대석 이야기를 한 후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 없는 등교자 쪽으로 흘러갔다.

황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김유리가 눈치 빠르게 화제를 바꿨다.

“지호는 많이 바쁜 것 같더라!”

“지호한테서 연락이 왔나요?”

연락을 받은 건 아니고 직접 얼굴까지 봤지만, 그걸 말하기는 좀 그랬다.

김유리는 모호한 표정으로 웃어넘겼다.

오늘 황호와 마주쳤던 인물 중 하나인 맹효돈은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그 새끼도 싸웠는데.’

매일 실없이 처웃고 장난질을 해 대는 돌아이 황호가 남다른 실력을 지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조의신과 수상한 짓을 꾸미고 다닌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채기도 했다.

그 둘이 1년 동안 보였던 행적을 떠올리면 맹효돈 외에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말하면 안 될 거다. 아마도.’

맹효돈은 많은 것을 봤지만, 그것을 다 말하고 다니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황호가 오늘 등교하지 않고 따로 움직이다가 싸운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이유를 물을 기회가 없었다.

―명계의 문이 열리면 이 땅이 휘말릴 거야. 결계를 펼쳐서 보호해 줘.

조의신이 사라지기 직전, 갑자기 바닥이 갈라지고 심상치 않은 기운이 주변을 덮쳤을 때.

조의신은 명계의 문이 열릴 거라고 말했다.

맹효돈은 처음엔 명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으나 황호가 죽음의 신 운운하는 바람에 뒤늦게 알아들었다.

조의신은 죽은 사람이 가는 세계로 가 버린 것이다.

황호는 조의신의 부탁대로 이 땅에 죽음의 기운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결계를 치느라 그를 붙잡지 못했다.

죽음의 기운이 가라앉고 땅의 균열이 사라진 후 황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내가 잘 싸웠으면 달라지는 게 있었나? 부반장 그 새끼가 위험한 짓을 안 하지 않았을까? 그 꼬리로 손을 뻗을 때 뭔가 감이 오는 게 있었는데…….’

맹효돈은 이번에도 파생 스킬, 필살기를 발현하는 데에 실패했다.

어찌저찌 기습을 가하긴 했지만, 유상훈이 광림 ‘복수하는 바람’을 발동시키지 않았으면 죽었을 것이다.

황호와 조의신이 우마왕을 쓰러뜨리지 않았다면 유상훈도 죽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붙잡았어야 했나? 아니, 부반장 새끼가 가야 한다고 했는데 방해하면 그건 또…….’

맹효돈은 돌머리를 굴리며 계속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답을 찾지 못하자 할 수 있는 건 자책밖에 없었다.

맹효돈은 목우람이 줬던 에너지 바를 한 입도 못 먹고 멍청한 얼굴로 서 있었다.

“효돈아.”

파직!

갑자기 귓가에 들린 목소리에 맹효돈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에너지 바가 포장지 안에서 가루가 되어 산산조각 났다.

소리가 들린 곳을 따라 고개를 올려 보니 김유리가 있었다.

키 차이 때문에 김유리가 조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기 전에 의신이랑 지호랑 같이 있었지? 의신이 걱정하고 있는 거야?”

김유리가 다정하게 묻자 텅텅 비었던 머릿속에 다시 생각이 돌아왔다.

맹효돈은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반장 그 새끼는…….”

“지호한테 의신이가 먼 곳에 갔다는 말은 들었어.”

맹효돈이 명계로 갔다는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자니 김유리가 먼저 말했다.

김유리는 황호와 만나서 조의신의 부재에 관해 어떻게 설명할지 미리 말을 맞추고 온 듯했다.

조의신은 사건의 뒷수습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으로 처리될 듯했다.

‘나중에 정신 차리고 반장한테 말한 건가? 돌아이 새끼 눈에 보이는 게 없더만.’

갑자기 튀어나와 조의신의 손을 잡았던 자가 있었다.

황호는 그자에게 손을 놓지 말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나 그자는 결국 그 손을 놓쳐 조의신은 떨어졌다.

‘돌아이 그 새끼는 일부러 놨다고 생각했나 본데. 그렇게 위험한 곳에 달려가서 조의신 손을 잡았는데 일부러 놓을 리가…….’

황호는 그자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몰아붙였고, 그 바람에 주수혁이 말려야 할 정도였다.

맹효돈도 황호에게 말을 걸며 말리긴 했으나 듣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만큼 동요했는데도 나중에 머리가 식은 후, 김유리에게 뒷수습을 부탁했나 보다.

반 아이들을 걱정한 건지, 그런 반 아이들을 신경 쓸 조의신을 위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김유리는 다소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황호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호는 의신이가 곧 돌아올 거라고 믿는 것 같더라.”

김유리의 말에 황호와 조의신을 향한 신뢰가 묻어났다.

그 말을 듣고 맹효돈은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조의신을 믿고 기다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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