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88화 (68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88)

89. 선물 (7)

1학년 구역 제1운동장 옆, 체육관.

본래 관종들은 이번 승부를 위해 이 체육관을 대관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절흑풍림, 그것도 무려 흑림의 검성이 난입하는 바람에 화제가 될 것을 예상해 판을 키워 운동장을 빌리게 되었다.

그 결과 체육관은 현재 승부 전 대기 장소로 사용하게 되었다.

‘관종들은 시작하기 전까지 리허설을 한다고 했지.’

공연도 아니고 승부를 앞둔 시점에서 하는 연습을 보통 리허설이라 부르지 않지만, 관종들 입장에선 그런가 보다.

두 사람은 다목적 체육실에서 문을 잠그고 작당질 중인 듯했다.

지금 내가 볼일이 있는 곳은 대기실 쪽이니 체육실 쪽이 잠겨 있든 말든 상관없었다.

“조의신, 이쪽이다.”

황명호의 모습을 한 황지호가 나를 불렀다.

황지호는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좋은지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부탁이란 명목으로 부려 먹었는데 기분이 좋나?

윤회의 굴레에서 막 돌아왔을 때에는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였는데, 기분이 오락가락하나 보다.

황지호는 현재 사건의 뒷수습을 위해 분신을 동시에 여럿 굴리는 중이라 그 부작용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분이 좋은 게 이상하게 보이나? 하하하!”

알긴 아네.

황지호의 처웃는 소리가 체육관 복도를 울렸다.

“홀로 해결하려 들지 않고 바로 내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나. 은인이 바람직한 일을 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황지호에게 부탁하지 않으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거라 어쩔 수 없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흑림의 검성을 부르는 것과 앞으로의 일에 관해 이야기하긴 어려울 테니까.

“다 왔군.”

황지호가 어느 문 앞에 멈춰 섰다.

문 앞에 설치된 홀로그램 네임플레이트에는 무려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이라고 적혀 있었다.

직접 그 검객이 입력한 거겠지?

흑림의 검성 못지않게 그 제자도 철저하게 콘셉트에 충실한 것 같다.

“앞에 있나 보군. 들어오시오.”

노크를 하기 전,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흑림의 검성이 나와 황지호의 기척을 알아채고 먼저 허락의 말을 했다.

위잉.

자동문 개폐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리고 안에 있는 이들이 보였다.

대기실 안에는 총 네 명이 있었다.

넷 다 무림인 차림을 하고 있었다.

‘제일 어려 보이는 쪽이 우리 반 검객인가.’

그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은 한구석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있었다.

운기조식이라도 하나 보다.

괜히 건드렸다가 주화입마에 빠지게 할 수는 없으니 그쪽은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서 오시오. 내 제자는 승부를 앞두고 운기토납을 하는 중이니 대신 인사하겠소.”

서 있는 세 무림인 중, 중앙에 서 있는 흑림의 검성이 말했다.

무림인 흉내를 내고 있는 중에 스승이 제자를 대신해 인사를 올리다니, 정말 제자를 아끼나 보다.

‘굉장하네.’

실내에서도 검은 죽립을 눌러쓰고 꿋꿋하게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는 게 굉장했다.

굉장한 건 콘셉트뿐만이 아니었다.

무림인들 모두가 범상치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흑림의 검성이 지닌 풍모와 기운이 남달랐다.

흑림의 검성은 함근형 선생님처럼 험악한 얼굴을 하거나 염방열처럼 장대한 기골을 갖추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의 벌건 대낮에 검은 죽립과 피풍의를 당당하게 차려입었는데도 그 꼴이 우습게 보이지 않을 만큼 빈틈없는 이능파와 기백을 갖추고 있었다.

“동행인이 있다고 들었소만, 무명의 초신성이 올 줄은 몰랐군.”

“안녕하세요.”

“예의 바르군. 학관의 교육이 소홀하지 않았나 보오.”

흑림의 검성은 나에 관해 알고 있었나?

입학 전부터 이명을 받았으니 어쩌면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얼굴만 보고 바로 알아본 거라면 나에 관해 조사해 본 걸지도 모르겠다.

흑림의 검성이 검은 죽립 사이로 나를 보며 말했다.

“무명의 초신성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었소. 검은색의 기를 다루고, 모든 병기를 다룰 수 있다고.”

그야 내 이능파는 검은색이고, 만물사용으로 웬만한 무기는 전부 다룰 수 있다.

흑림의 검성은 그 점이 마음에 든 걸까?

“검을 다룬다면 우리 문파와 인연이 닿을 수 있겠군.”

흑림의 검성이 대뜸 죽간 하나를 건넸다.

대나무 조각에는 붓글씨로 휘갈겨 쓴 문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지나치게 글씨를 날려 쓰는 바람에 알아보긴 어렵지만, 디바이스 코드인 것 같았다.

‘설마 이능파 색과 검을 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락처를 건넨 건가? 4대 프로 플레이어 팀 마스터 중 하나가?’

흑림의 검성이 제정신인가 싶어서 가만히 살펴봤는데, 눈에는 호의와 열망이 넘실거렸다.

팀 컬러에 맞는 인재를 영입하겠다는 의지가 절절하게 느껴졌다.

흑림의 검성이 뭐라 더 권하기 전에 황지호가 끼어들었다.

“서서 대화하는 건 정이 없군. 다들 앉게나.”

황지호는 입가에 웃음기를 띄우고 말했으나, 말에서 묘한 압력이 느껴졌다.

그 말을 모르는 척하고 계속 서서 대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노친네가 제 나이에 걸맞은 모습을 해서 그런가 연륜이 느껴졌다.

황지호의 권유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파에 마주 앉게 되었다.

한쪽은 무림인 셋.

다른 한쪽은 황명호 모습을 한 황지호와 나였다.

무림인의 대표로 흑림의 검성이 말했다.

“제자가 이름을 두고 있는 학관의 주인이 불렀기에 부름에 응했소. 하나 제자의 비무를 앞두었으니 짧게 끝내 주시오.”

흑림의 검성이 말한 학관은 혹시 은광고를 가리키는 걸까.

플레이어 특목고를 무림 학관으로 취급하고 있나 보다.

황지호는 졸지에 학관 주인이 되었다.

‘그런데 황지호와 흑림의 검성은 상당히 서먹서먹해 보이는데.’

흑림의 검성이 함근형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와 황지호를 대하는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흑림의 검성은 아직 20대고 은광고 출신이다.

그 뜻은 흑림의 검성이 은광고를 다닐 시절은 황지호가 한창 태만할 때라는 뜻이다.

흑막의 입김에 닿은 최편득을 비롯한 비리 교사들이 기승을 부릴 때다.

태만한 황지호에게 아무 사감이 없는 쪽이 이상했다.

황지호도 그 사실을 대충 짐작했을 텐데도 모르는 척 말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질문할 게 있네. 동행한 두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가?”

“물론이오. 앞에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나올 거라 생각에 입이 무거운 이들을 데려왔소.”

“흑림의 검성이 믿는 자이니 분명 고명한 플레이어들이겠지. 이름을 들어도 되겠는가?”

황지호는 두 사람의 소개를 들으며 인사를 하고, 간단한 질문을 한두 개씩 했다.

이야기를 듣던 황지호가 손가락을 들어 관자놀이를 잠시 눌렀다가 뗐다.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행동이었으나 사전에 약속한 신호였다.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분신을 통한 신원 조사가 마무리됐구나. 이야기를 속행하는 걸 보니 딱히 문제는 없나 보네.’

흑림의 검성이 택한 동행인들의 말이 끝났을 때, 황지호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튕겼다.

황지호의 손끝에서 황금의 이능파가 흘러나와 주변을 감쌌다.

파앗!

철컥, 철컥!

황금빛 결계가 생성되는 것과 동시에 흑림의 검성과 동행인들이 즉각 무장했다.

갑자기 강렬한 이능파가 느껴져 반사적으로 경계했나 보다.

다른 무림인들은 검을 손에 가져간 데에 그쳤으나 흑림의 검성은 발검할 준비를 마치고 이능파까지 전부 끌어올린 후였다.

이능파의 정체가 단순한 방음 결계라는 걸 파악하자 흑림의 검성이 검을 갈무리했다.

“과연 이 땅에서 가장 이름난 학관의 주인답군. 실례했소.”

“괜찮네. 반응이 빠르군.”

“간악한 마교는 어디에서나 내 목숨을 노리고 있소. 어린아이의 모습에 속아 심장을 잃을 뻔한 게 10년 전의 일이오.”

7대 죄악의 마신과 광신도들에게 전면전을 선포한 플레이어다운 경계심이었다.

하긴 저 정도의 힘과 경계심이 없다면 흑림의 검성은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황지호는 흑림의 검성이 마음에 든 듯 씨익 웃었다.

“시간이 없다 하니 바로 본론부터 말하겠다. 이 몸은 현재 마족의 사제를 두 명 확보한 상태다.”

황지호의 말투나 어조, 분위기가 일변했다.

은광고 이사장이 아니라 호족의 수장으로서 흑림의 검성을 상대하기로 한 거다.

마족의 사제라는 말에 무림인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는 탐욕의 아바리티아를 섬기는 마족, 다른 하나는 질투의 인비디우스를 섬기는 자였다. 둘 다 감히 이 몸의 학교를 노리고 무엄한 짓을 벌이려 했다.”

“마교의 일당이 학관을 노렸단 말이오? 설마 그들을 생포하였소?”

구체적인 마신의 이름이 나오자 흑림의 검성이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절흑풍림과 한 배를 타기 위해서는 공동의 적이 있음을 어필해야 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호족이 확보한 마족의 사제에 관해 밝히는 것이었다.

즉, 황지호가 호족의 수장으로서 나설 필요가 있었다.

‘여태까지 마족의 사제를 생포한 적은 없던 걸까? 반응을 보니 첫수는 제대로 들어간 것 같네.’

마족의 사제가 둘이나 손안에 있는 한, 절흑풍림과 손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을 어떻게 등교시킬 건가였다.

“그렇다. 앞서 말한 둘은 생포했다. 분노의 이라노우스를 섬기는 사제는 놓쳤지만, 그자가 벌이려던 짓은 저지했다.”

분노의 이라노우스를 섬기는 마족에 관한 건은 이동 중에 들었다.

마족의 사제 셋을 손에 넣었다면 좀 더 협상이 수월해졌을 텐데.

이라노우스의 사제를 놓친 건 아깝게 됐지만, 염준열이 무사한 게 더 중요하긴 했다.

“자세히 들려줄 수 있겠소?”

“물론이다. 단, 조건이 있다.”

“말해 보시오.”

흑림의 검성은 더 이상 짧게 이야기를 끝내라며 독촉하지 않았다.

“다음 해에 7대 마신이 움직일 것이다. 아니, 이미 움직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군.”

“지금 7대 마신이 움직인다고 하였소?”

“그렇다. 절흑풍림 측에서도 이미 그 전조를 포착했을 텐데.”

흑림의 검성은 무거운 목소리로 긍정했다.

마신의 광신도 집단을 상대하면서 정보를 수집해 온 무림인들은 마족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나 보다.

“협력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돕겠소.”

“자네의 제자도 협력할 건가?”

“……제자의 의사를 확인해야 하오. 하나 만사를 제쳐 두고 마족과 싸우기 위해 힘을 기르는 아이니 협력할 것이오.”

흑림의 검성은 뜸을 들인 끝에 제자의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말하는 동안 죽립을 쓴 얼굴에 그늘이 져 표정이 조금 가려졌다.

분명 이대로 가면 저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은 최전선에서 싸우겠다고 할 거다.

흑림의 검성은 이를 기특하게 여기면서도 석연치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예상대로야. 제자가 10대 시절에 마족 사냥에 몸 바치는 걸 원하는 스승은 없지.’

나는 흑림의 검성이 제자가 학교생활을 하길 원한다고 생각했다.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은 은광고 소속이고, 흑림의 검성은 해외에 무림인을 파견하면서까지 기말고사를 치르게 했다.

제자가 그저 마족 사냥이나 하길 원했다면 그런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지호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 방자한 마족들은 힘을 과시하기 위해 한반도를 공격할 것이다. 공격의 대상 중 하나는 은광고가 되겠지.”

“제자에 관해서 물은 이유가 혹시…… 그 아이가 은광고에 있길 바라는 것이오?”

“그렇다면?”

황지호의 말에 흑림의 검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난 그 아이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소. 명령할 생각은 없소. 다른 조건을 대시오.”

철천지 원수인 마교의 정보가 걸렸는데도 저렇게 잘라 말하다니.

절흑풍림의 장문인께서는 제자에게 선택을 강요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뭐, 처음부터 정보를 대가로 억지로 검객을 등교시킬 생각은 없었다.

“이 몸은 그게 조건이라고 하지 않았다.”

황지호가 짓궂게 웃으며 내 쪽을 봤다.

“그 조건은 조의신에게 듣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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