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40화 (740/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40)

94. 용반호거 (2)

나는 최근에 황지호와 함께 훈련을 하느라 저택에 머무는 중이라고 답했지만, 문새론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0반 돌아이님이 훈련 합숙소가 필요하면 건물을 샀을 듯. 집에 들이는 게 아니라.”

문새론의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나는 호족의 비밀과 안다인의 명예와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 언젠가 알려질 법한 사실만을 답했다.

“그런데 수상한 부반장님은 어떻게 그걸 다 알고 있는 거임?”

“안다인의 양부모님을 뵐 기회가 있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기는 어려워.”

나는 사실만을 말하되, 주수혁이 오해할 만한 사항은 전혀 없음을 어필하려 했다.

그러나 문새론과 대화하는 내내 주수혁 주변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주수혁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서 있었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중 같기도 하고,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수를 두려고 해도 주수혁이 반응하지 않아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주수혁이 내 말을 듣긴 했을까?’

이게 다 망할 노친네의 눈치 없는 소리 때문이다.

황지호가 일부러 주수혁의 멘탈 파괴를 노렸을 수도 있으므로 눈치 없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다 황지호 탓이었다.

“의신아, 인사 마치고 왔어. 이제 가면 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염준열이 내 쪽으로 왔다.

염준열의 말에 문새론이 의아해했다.

염준열네 가족이 생일 때마다 마지막으로 깜짝 파티를 여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깜짝 파티의 주인공인 염준열도 알면서 모르는 척해 줄 정도다.

오늘 같은 날에 염준열과 함께 돌아간다는 건, 그 가족 파티에 초대되었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님, 혹시 그 외출한다는 곳이 염준열좌네 집이었음?”

문새론이 확인하듯 물었다.

내가 뭐라고 답하기 전에 염준열이 말했다.

“응, 용제건 선생님…… 아니, 사직서를 냈으니까 제건이 형이라고 해야 하나. 제건이 형이 의신이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대. 그래서 같이 돌아가려고.”

“헐.”

비록 용제건은 은광고 학생들이 경계하는 교사라고 하나 용족의 입장에서 보면 용왕신의 총아다.

이런 날 저녁에 용족 사이에서 영향력이 있는 용의 초대를 받았다는 건 용족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문새론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경악한 얼굴로 말했다.

“황명 그룹 0반 돌아이님 가족에 이어 염준열좌의 가족이라고?”

“하하, 의신이가 우리 가족이 되면 좋겠다. 언제든지 환영할게. 아, 제건이 형 오셨다.”

문새론이 과장해서 말하자 염준열은 농담을 나누듯이 가볍게 받아 줬다.

용제건은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기에 그를 발견한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용제건은 안대를 쓴 얼굴을 주수혁 쪽에서 내 쪽으로 돌린 후, 싱긋 웃었다.

설마 용제건은 모든 상황을 지켜본 게 아닐까?

신격이 상승하면 눈을 가려도 시야가 넓어지고, 귀가 밝아진다는 말이 있다.

용제건이 염준열을 기다리는 사이 이 혼란한 광경을 관찰하며 황홀하게 웃는 모습이 곧바로 그려졌다.

“준열아, 의신아. 마중 왔어.”

용제건이 ‘의신아’라고 부를 때, 묘하게 힘을 실어 강조했다.

내가 용족의 초대를 받았다는 걸 주변에 널리 알리고 싶었나?

그 덕에 문새론이 ‘허얼’ 하고 다시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뱉었다.

결국 여러 오해가 쌓였으나 풀지 못한 채로 이동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본 주수혁의 모습은 여전히 일시 정지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굳어 있었다.

인사를 하니까 기계처럼 ‘안녕’이라고 말하긴 했다.

“의신아, 먼저 타.”

“……네.”

붉은 사자 팀 로고가 박힌 에어 리무진에 올라탄 후에도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 반해 나를 제외한 용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복잡한 심정을 감추고 염준열과 잡담을 나눴다.

‘내가 갈 자리는 아니지만, 좋은 날에 초대받았으니 분위기에 맞춰야지.’

염준열의 생일 파티는 세 번에 걸쳐 열리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파티에 초대받았다.

마지막에 열리는 깜짝 파티는 참가자들이 가족이거나 그에 준하는 이들뿐이었기에 고사하려 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용제건이 직접 세 번째 파티의 초대장을 건넸는데, 고사하자 진중하게 설득해 왔다.

―준열이는 스승이자 친한 후배인 네가 오는 걸 기대하고 있을 텐데, 없으면 많이 서운해할 거야. 깜짝 파티에도 꼭 와 줘.

―학교에서 여는 생일 파티에는 꼭 출석할게요.

염준열이 가족들끼리 단란하게 생일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다시 거절했다.

그러자 용제건은 아련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지상에서 준열이를 축하하는 건 마지막이 될 텐데, 나는 준열이의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하는 여의보주구나.

용제건이 그 말을 남기고 쓸쓸하게 돌아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붙잡고 말았다.

용제건이 나와 했던 약속이나 염준열의 생일을 앞두고 바로 승천할 리도 없는데, 어쩐지 그 순간엔 미련 없이 지상을 떠나 버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출석이 확정되어 있었다.

유희계 용족이 연륜을 발휘해 나를 갖고 논 건가 싶기도 했는데, 모든 게 늦어 있었다.

어느덧 붉은 사자 팀 빌딩 내 주차장에 도착했다.

“의신이가 우리 집에 오는 건 두 번째네. 저번엔 의신이 몸이 안 좋았으니까 오늘은 편히 놀다 갔으면 좋겠어.”

염준열의 말에 뼈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저번에는 이곳에 오기 전 사고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긴 했다.

“저번에도 치료해 주셔서 편하게 쉬다 갔어요.”

“그날 네 이능파의 흐름이 어땠는지 기억하고 있어. 편한 상태는 아니었어.”

“준열이 말이 맞아. 나도 기억하고 있어. 의신이가 다쳤을 때 얼마나 피를 쏟았는지도 잘 기억하고 있지.”

용제건은 기다렸다는 듯이 깐족거리며 끼어들었다.

용제건이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긴 하지만, 저 용에게 압정을 던지는 김신록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왜 이 좋은 날에 피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자꾸 저번 방문 때의 이야기가 나와서 두 용 사이에 끼어서 이동하는 내내 눈치가 보였다.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일단 파티회장에 도착하면 염준열의 가족들과 파티를 하느라 나에게 신경 쓸 여유가 사라질 것이다.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도달했다.

‘어둡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 순간, 눈을 누가 가린 것처럼 주변이 깜깜해졌다.

도착한 플로어 내부와 엘리베이터 내의 조명이 동시에 꺼져 버린 것이다.

비록 시야는 막혔지만, 도착한 홀이 어떤 구조를 하고 있는지, 실내에 몇 명이 있는지 정도는 대충 감이 잡혔다.

기척을 죽이고 있지만, 감각이 예민한 플레이어라면 충분히 파악이 가능할 정도였다.

너무 기척을 죽이면 적습이라고 생각해 이쪽이 경계하거나 공격할 가능성도 있으니 적절한 대처였다.

파아앗!

그때, 허공에서 푸른 불꽃을 휘감은 용이 등장했다.

푸른 불꽃의 용 아래에 청룡이 서 있었다.

용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그것은 홍룡이나 용족의 본체와 같은 실체가 없는 불꽃 덩어리였다.

그 정체는 청룡이 이능파로 다듬어 용의 형태로 만든 화염술의 결과물이었다.

‘불꽃을 이렇게 다듬을 수 있나.’

보통 화염술 스킬을 쓰면 점화나 불꽃을 뿜어내는 정도를 생각하는데.

내가 감탄하고 있는 동안 푸른 불꽃의 용이 홀을 넓게 돌고, 벽 위로 날아가 흩어졌다.

푸른 용이 폭죽의 잔상처럼 흩어지자 이번엔 바닥에서 홍염이 피어올라 넓은 벽을 덮었다.

시전자를 보지 않아도 그 힘의 주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염준열의 아버지, 홍염의 제왕 염방열의 힘이었다.

화르르륵!

홍염이 사각의 형태로 벽을 덮었다.

멀리서 보니 마치 붉은 스크린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스크린처럼 쓸 생각이었는지 그 위에 영상이 투영되었다.

영상의 내용물은 전부 염준열이었다.

염준열의 지난 1년을 담은 영상이었다.

‘단기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잠실야구장에서 시구하는 날, 교복 모델로 촬영할 때, 플레이리스트가 방영 중이던 시기, 학생회장 선거 운동 기간…….’

염준열이 보낸 1년을 보며 감탄이 나왔다.

염준열은 저 일정을 전부 소화하면서도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나.

저 와중에서도 가끔 ‘그 단어’인 나와 훈련을 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제자의 노력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몇 장면은 가족끼리의 행사에서 찍은 건지 모르는 광경도 섞여 있었다.

나중에 물어봐야겠다며 머릿속에 사진으로 찍어 두듯 기억하고 있을 때, ‘생일 축하해, 준열아!’라는 메시지와 함께 영상이 끝났다.

파앙! 팡!

폭죽 소리가 들리고, 조명이 들어왔다.

홍룡 모양의 모자를 쓴 용족과 붉은 사자 팀원들이 폭죽을 쏘고 있었다.

가장 앞에는 청룡과 염방열이 서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 내 아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이런 영상을 준비하셨어요? 깜짝 놀랐어요.”

염준열은 다정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여기에 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했기에 정말 놀랐을지는 의문이었으나, 염준열이 놀랐다는 말에 다들 애처럼 좋아했다.

이중에서는 나를 제외하면 염준열이 가장 어릴 텐데 가장 어른스러워 보였다.

‘벽지, 융단이 전부 홍룡의 색이야. 게다가 실내 장식이 전부 홍룡의 형태로 되어 있어.’

조명 기구는 물론, 창틀, 테이블, 의자, 식기까지 전부 홍룡 관련 제품으로 되어 있었다.

저번에 왔을 때에는 없던 장식들인 걸 생각하면 오로지 염준열의 생일을 위해 준비한 것 같았다.

너무 과한 깜짝 파티를 하면 염준열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간단한 영상 공개만을 하는 대신,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쓴 걸까.

염준열이 축하를 받는 사이, 구석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 전에 다른 용한테 붙잡혔다.

“용족의 은인이 왔구나!”

염준열의 외할머니이자 스승인 촉룡이 나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왔다.

방랑용으로 이름난 촉룡이라 크리스마스 건이 끝나면 바로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염준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남아 있었나 보다.

“안녕하세요.”

“용족의 은인은 여전히 예의가 바르구나. 자, 이건 네 몫이란다.”

촉룡이 내게 홍룡 모자를 내밀었다.

내심 내 몫은 없나 싶었는데 기쁘게 받아들였다.

홍룡 모자를 쓰자 조금 비뚤어졌는지 촉룡이 고쳐 주었다.

마치 손주를 대하는 할머니 같은 태도에 조금 쑥스러워졌다.

“모자 잘 쓸게요. 감사합니다.”

“아니다. 초대에 응해 우리 손주의 생일을 축하해 줘서 고맙지.”

촉룡은 다정하게 말했다.

염준열의 다정함의 일부는 촉룡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염준열을 축하하는 인파가 더욱 몰려왔을 때, 촉룡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용족의 은인이 용궁에 간다는 말을 들었단다.”

“네, 용궁에 방문할 예정이에요.”

혹시 촉룡도 용궁에 갈 예정인 걸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나는 청룡을 대신해 지상에 남기로 했다. 이곳을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잖니.”

청룡이 용궁으로 가니, 수장을 대리할 누군가가 남아야 한다.

플마고 속에서 용족이 국회로 진격했을 때, 선봉장을 맡은 게 청룡과 촉룡이었으니 촉룡이 수장을 대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촉룡은 미안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용궁으로 향하는 은인에게 부탁할 게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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