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91)
99. 새로운 1학년 0반 (2)
좋은 소식이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등교할 것이다가 아니라 귀국을 택했다고 했어. 아직 등교가 확정된 건 아닌가 보네.’
등교 거부자를 낚기 위해 던진 미끼는 양족의 수장이 한 말이다.
그 내용은 바로 ‘악몽은 한반도에 있다’는 것.
저 말만으로는 귀국을 결심해도 등교까진 이르지 못할 것이다.
[옹길동] 한반도에 온 후에는 양족의 수장과 접촉할 방법을 찾는다더군.
[구슬비] 우리도 동행할 예정이야. 양족의 수장은 최근 신역에 틀어박혀서 접촉하기 무지 까다롭다고 들었거든. 우리의 도움 없이는 안 되겠지?
솔직히 말해서 관종 둘이 일행에 추가된다고 해서 양족의 수장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12지 동맹 회담에서 양족의 수장은 다른 수장이 짜증을 내건 말건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저 둘의 행보에 둘 수 있는 수가 늘어난 건 사실이다.
앞으로 양족의 수장을 통해 악몽의 정보를 얻을 여지가 생겼고, 등교 거부자를 등교시킬 수를 생각해 내기도 쉬워질 거다.
‘그럼 남은 등교 거부자 두 명은 다 한반도에 있는 거구나.’
다른 한쪽은 악몽을 쫓는다는 애보다 등교시키기 더 어려울 것 같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쪽에 관해 물으면 ‘그 단어’를 써 대며 내가 방해할지도 모른다며 입을 다물어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 단어’ 소리를 듣는 건 괴로운 일이었기에 나도 더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다른 걸 부탁했다.
[나] 바쁘더라도 개학하는 날에는 등교해. 선생님이랑 애들이 기다릴 거야.
적어도 첫날에는 얼굴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둘에게 등교를 부탁하자 우쭐거리는 태도로 답변을 보냈다.
[구슬비] 위대한 드루이디스의 등교를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 어쩔 수 없네. 그날 등교해서 내 위대함을 보여 줄게.
[옹길동] 이 몸의 등장을 그리 기다리고 있었다니! 괴도의 화려한 학교생활의 시작에 걸맞은 등교를 해야겠군. 기다리도록.
관종 같은 짓을 하라고 부른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사고를 치든 말든 쟤들이 등교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우리 반 사람들을 떠올리며 말을 삼켰다.
* * *
입학식, 개학이 다가와 나는 오래 머물던 호랑이 저택을 떠났다.
호랑이들은 이대로 내가 기숙사를 나와 저택에서 등하교를 하도록 할 생각이었는지, 이상한 소리를 많이 했다.
“아침에 같이 등교하면 후예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더욱 쉬워질 거다.”
황지호가 같이 등교하는데 내가 있든 없든 상관없지 않나?
설마 그 짧은 거리를 태만하게 등교하고 싶어서 나를 끼워 넣는 건 아니겠지.
황지호의 헛소리에는 대꾸도 안 했지만, 후예들의 말에 마음이 흔들릴 뻔했다.
“저택에서 계속 지내시면 신수와 매일 산책 갈 수 있어요!”
“신수의 목욕도 도와줄 수 있어요!”
“백호 님이 매번 혼자 하기 힘드셨을 텐데…….”
천사와 지내는 나날들이 개학 후에도 이어진다고?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천사와 지내는 게 내 최후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돕는 일이 된다니, 더더욱 마음이 동했다.
조금 생각해 보면 신화계 호족이 솜털 같은 천사를 산책시키고 목욕시키는 게 힘들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힘들 수도 있으니 돕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이대로 호랑이 저택에서 지내면 익숙해질까 봐 걱정된다.
또 호랑이 저택에서 머물면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의신이 형과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게 기대돼요. 앞으로 더 자주 뵐 수 있겠죠.”
마음이 오락가락하던 중, 현대식 별채에 들렀다가 은호의 말을 듣고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은호가 이제 기숙사생이 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입학식을 마치면 곧바로 기숙사에 입소하게 될 것이다.
은호가 기숙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선배로서 도와야겠다.
은호가 그리 말하자 황유호의 모습을 한 황지호가 불쑥 끼어들었다.
“은호, 너는 1학년 건물에 들어가고 조의신은 2학년 건물에 간다. 같은 기숙사라 해도 다르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자주 뵙고 도움을 청하기도 쉽겠죠. 모르는 게 많으니 의신이 형이 많이 알려 주셨으면 해요. 동하 형은 앞으로도 통학을 하실 예정이니까요.”
“은호…….”
황유호가 불만을 표하자 안쓰러운 마음이 솟아올랐다.
맛있는 걸 줘서 달래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다과는 김신록이 여행 선물로 사 온 곶감 정과인데, 어린 황유호의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
뭘 줘야 할까 망설이는 사이에 다행히도 은호가 황유호를 달랬다.
“졸업 후에 모셔도 늦지 않아요. 대신 자주 저택에 초대하는 게 좋겠죠.”
뭘 모시겠다는 건지는 둘째치고, 황유호가 기분을 풀어서 덩달아 안심했다.
* * *
호랑이 저택에서의 체류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신입생이 들어올 1학년 건물을 비워야 하기 때문에 입학식에 앞서 예비 2, 3학년들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방학 동안 자리를 비웠던 우리 반 기숙사생들이 돌아와 다 같이 얼굴을 봤다.
“오늘부터 다시 급식을 먹을 수 있게 돼서 기뻐요!”
돌아온 아이들 중, 사월세음이 가장 크게 감격했다.
사월세음은 방학 내내 집에서 한식을 먹어야 했다고 한다.
가끔 오혜정이 양식 요리를 해 줬지만, 성에 차는 만큼은 먹지 못한 듯했다.
‘가끔 만날 때마다 많이 먹이긴 했는데, 전보다 마른 것 같아.’
권레나, 독고미로의 생일 등에서 잘 챙겨 먹게 이것저것 권했는데 역시나 부족한 듯하다.
처음 만났을 때 비쩍 골은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잘 먹고 건강을 되찾은 맹효돈 정도로 살이 올랐으면 좋겠다.
‘저번에 맹효돈이 신체검사를 받았을 때 신체 기능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지. 회복 아이템 남용 문제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고 했지만…….’
맹효돈을 담당한 주치의의 말로는 가능한 성장기가 끝날 때까지 회복 아이템 사용을 금했으면 한다고 한다.
많이 나아진 상태라 회복 아이템을 쓴다고 해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맹효돈의 신체 능력이 깎일 가능성이 있다.
맹효돈이 강해지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달리는 중이니 그 길에 장애물이 없었으면 한다.
“오, 다들 왔냐. 나는 짐 다 날랐으니까 도와준다.”
“저도 돕겠습니다.”
“나도.”
방학 동안 기숙사를 지켰던 맹효돈, 목우람, 한이는 미리 짐을 다 옮겼는지 우리를 도왔다.
셋은 계속 기숙사에 있었지만, 마치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서로 반가워했다.
‘한이는 방학 동안 태호권 수련에 매진했다고 했지.’
한이는 방학 내내 보육원에 있을 줄 알았는데, 명절 같은 날을 제외하면 기숙사에 와 있었다고 한다.
기숙사에 와 있었다고는 하지만, 태호권 수련으로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아 맹효돈과 목우람과는 별로 마주치지 않은 듯했다.
‘기숙사에 오래 머물러도 맹효돈과 목우람도 바빴으니 자주 못 봤겠지.’
맹효돈은 탁거산 도인과 방윤섭과 수련을 하고, 목우람은 공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얼마나 성과를 얻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으나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방학을 보낸 건 확실하다.
이는 계속 영원의 호수 팀 빌딩에 머물렀던 권레나도 마찬가지일 거다.
“레나, 이건 제가 들겠습니다.”
“이 상자는 종이 악보가 많이 들어 있어서 무거울 텐데…….”
“그러니까 제가 들어야 합니다. 연주하는 손이 다치면 안 됩니다.”
장인의 손도 연주하는 손 못지않게 중요하지 않나?
하지만 목우람은 자신의 손에 관한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
힘으로 따지면 목우람이 훨씬 위였기 때문에 결국 대부분의 짐은 목우람이 옮기게 되었다.
이삿짐을 나르는 동안 둘이 대화할 때가 많았는데, 목우람은 이야기 도중 가끔 안주머니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저 안주머니에 이능 바이올린 카드가 들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당장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야. 일단 지켜봐야겠어. 이능 바이올린이 없어도 연주를 할 수 있으니까…….’
이사를 시작한 건 오전인데, 이삿짐을 모두 옮기고 정리를 마치고 나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다들 고생했으니까 밖에 나가서 맛있는 걸 먹이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오랜만에 다 같이 기숙사 식당에서 급식을 먹고 싶다고 청해 기숙사로 향했다.
오늘 이사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메인 메뉴는 중화요리였다.
한식과 중식 중에 선택할 수 있었는데, 식당에 있는 기숙사생들은 거의 다 중식을 택한 것 같았다.
“양식을 먹고 싶었긴 한데, 중식도 좋네요!”
사월세음이 유린기에서 튀긴 닭고기만을 골라 먹으며 말했다.
오늘은 쟁반짜장면이 맛있다며 권하는 미식가 맹효돈 선생의 제안을 뿌리치고 사월세음은 그나마 양식에 가까운 형태의 요리만을 먹었다.
후식으로는 꼭 양식 디저트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식사를 마쳤다.
* * *
다음 날, 아침.
오랜만에 기숙사에서 일어난 기분이 들었다.
건물은 옮겼지만, 방 구조는 똑같아서 익숙한 광경이어야 하는데 학년이 올라서일까?
좀 넓어 보이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뭔가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계속 지낼 거니까 여기를 집처럼 생각해야 해. 호랑이 저택에 너무 오래 있었어.’
집 하니까 윤회의 굴레에서 파수꾼이 열어 주었던 공간이 떠올랐다.
처음엔 기숙사가 아니라 호랑이 저택을 비춘 것도 생각났다.
쓸데없는 생각이 계속 나서 생각을 바꿨다.
내일 입학식을 맞이하기 전에 오늘 만나야 할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은 내일을 앞두고 몹시 바쁘겠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 만나야 했다.
[천동하] 의신아, 선도부회관을 비워 뒀어.
[천동하] 후문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오늘 만나야 할 인물은 천동하였다.
“의신아, 어서 와.”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무렵, 약속한 시간에 선도부회관에서 만났다.
천동하는 오늘 약속을 잡기 위해 업무는 어제 전부 마쳤다고 한다.
“갑자기 무리한 부탁을 해서 죄송해요.”
“아니야, 마침 입학식을 앞두고 하루 정도는 쉴 필요가 있었어.”
만약을 대비해 선도부회관을 확인했다.
천동하의 말대로 아무도 없었다.
“간만에 체스를 같이 두고 싶은데, 오늘은 다른 용무로 부른 거겠지?”
“네.”
확인을 마친 후, 나는 용건을 바로 말했다.
“학생회관과 선도부회관 사이에 있는 비밀 통로에 관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천동하는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움을 표했다.
내가 비밀 결사에 관해 알고 있고, 그것에 관해 말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한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천동하에게 말해 두는 게 좋겠지.’
선도부회관과 학생회관 사이의 비밀 통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출입증이 필요했기에 해당 자치 기구에 소속한 인물의 조력이 필요했다.
천동하는 비밀 통로의 존재에 관해 이미 알고 있고, 그간 몇 번 협력한 적이 있어 이쪽 사정을 알 테니 이야기하기 쉬웠다.
천동하의 협력을 구하면 선도부회관에 들어가기 위해 ‘계’새끼를 불러낼 일도 없으니 최고였다.
그리고 천동하에게 소개할 자가 있었다.
“가서 보는 게 빠를 거예요. 안내할게요. 그곳에서 소개하고 싶은 분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