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915화 (91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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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합숙 (4)

‘상하의 다 구교복 차림이네.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준비를 마치고 있던 건가?’

등교 거부자는 흰색의 구교복을 입은 것을 제외하면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깨선을 넘는 머리카락은 빗질이 잘 되어 있었고, 교복 치마 길이도 적절했으며 관종들이 할 법한 눈에 띄는 장식도 없었다.

교문 앞에서 등교 지도를 하는 선도부들이 아주 기뻐할 만한 모범적인 차림새였다.

심지어 일부 학생들이 귀찮아서 잘하고 다니지 않는 명찰도 착용하고 있어서 과연 0반이 맞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교복 명찰에는 ‘인선오’라고 적혀 있었다.

‘플마고에서 본 적이 없는 이름이야. 끝까지 등교하지 않았나 보네. 그런데…….’

인선오는 나를 관찰하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평정을 가장한 눈에서 경계심이 엿보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경계하는 건 이상하진 않은 일이지만, 은광고 교복을 입은 동급생을 상대로 이렇게 경계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나 싶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으나 갑자기 공격성을 드러내는 0반 선배놈들을 여러 차례 경험해 본 덕에 방어할 준비는 해 두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인선오는 눈에서 경계심을 완전히 감추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안녕, 네가 우리 반 부반장 조의신이구나. 두 사람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

인선오의 시선이 내 명찰에 닿았다.

이름을 보고 경계를 푼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좀 있었다.

인선오는 여전히 나선형 계단 너머, 복도의 난간 뒤에 서 있었다.

정말로 경계를 풀었다면 1층으로 내려오지 않았을까?

여전히 거리를 둔 채로 서로 간단히 인사와 자기 소개를 마친 후, 인선오가 물었다.

“아까 그 이능파, 네가 흘린 거야?”

“응, 자고 있는 것 같아서 깨우려고. 혹시 내가 놀라게 했어? 미안해.”

“아냐, 덕분에 늦지 않게 일어났어. 모처럼 은광고에 왔으니까 제때 졸업하고 싶거든. 양족의 영역을 침입하려던 후유증으로 잠이 깊어진 상태라…….”

대화 내용과 반응은 이상할 정도로 정상적이었다.

처음 만난 우리 반 아이를 상대로 이렇게 정상적으로 대화를 주고받은 게 대체 얼마 만인가.

진정묵, 옹길동, 구슬비, 목우람…… 우리 반의 0반스러움을 담당하는 아이들의 얼굴과 첫 만남이 스쳐 지나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거리를 둔 것을 제외하면 아주 정상적인 인사를 나눈 셈이었으나 계속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티는 잘 안 나지만, 표정을 감추고 있어.’

체스 기사의 감이 고하고 있었다.

인선오는 마치 반상을 앞에 둔 체스 기사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무릇 기사는 속내를 숨길 줄 알아야 한다.

황지호는 평소에 내 얼굴을 보고 생각을 추측하곤 하지만, 내가 체스를 둘 때에는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진 못할 거다.

지금 나와 인선오가 서로 속을 가늠하지 못한 채로 잡담을 주고받는 것처럼 말이다.

쾅!

“짠! 우리 등장!”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하나 이 정도의 화려함을 연출하기 위해선 기다림이 필요한 법이다!”

구슬비와 옹길동이 살얼음 같던 공기를 박살 내며 뛰쳐나왔다.

각자 방에 따로 들어갔는데, 둘은 짠 것처럼 같은 시간에 나왔다.

디바이스로 나올 시간을 정할 수도 있겠지만, 저 관종들은 그냥 감으로 타이밍을 맞춘 것 같았다.

“어때? 이 하복은 처음 입는 건데!”

“우리의 대단한 개성이 녹아 있는 하복을 완벽하게 소화하다니. 내 파트너는 과연 훌륭하군!”

관종들은 구교복을 개조한 하복을 입고 있었다.

흰 구교복의 대부분은 오로라색으로 덮여 있었기에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아니면 은광고 교복이라는 걸 바로 알아보기 힘들 수준으로 변해 있었다.

근처 방문 앞에 서 있는 인선오와 비교해 봤을 때, 저게 교복인가 싶나 하는 감상이 솟았다.

둘의 차림을 보고 머리 아파하는 선도부와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훗, 멋진 우리의 모습에 놀랐나 보군.”

“쟤 신교복이 좀 잘 어울리긴 하지만, 가끔 밝은색도 입고 싶어 하지 않을까?”

“같은 괴도 동지로서 네 몫도 준비했다! 네 방에 있으니 갈아입고 와도 된다.”

“사이즈는 딱 맞을 거야. 쟤가 저런 거 잘하거든.”

‘그 단어’의 방에 내 전용으로 만든 오로라 교복이 있다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조합이었다.

두 사람이 나를 동료로 여기고 방에 이어 교복까지 만든 건 참 고마운 일이었지만, 받아들일 용기는 없었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내 몫의 교복을 준비해 줘서 고마워. 그래도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 오로라색은 너랑 구슬비한테 제일 잘 어울려. 둘만의 개성으로 남겨 두는 게 좋겠어.”

오로라 교복을 입기 싫다는 말을 완곡하게 전했을 뿐인데, 관종들은 크게 감동 받았다.

‘이렇게 큰 양보를 하다니!’, ‘우리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준 거야?’라며 그렁그렁한 눈을 했다.

감격에 겨운 관종들이 내게 오로라 교복을 입히려는 시도를 하기 전에 화제를 아침 식사로 바꾸기로 했다.

“준비 끝났으면 와서 앉아.”

“응, 지금 갈게!”

“알았다. 네가 준비해 준 귀중한 식사를 먹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

자리에 가만히 서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인선오에게도 말을 걸었다.

“셋이 같이 다닌다는 말을 들었어. 오늘 셋이 있을 경우도 생각해서 넉넉하게 사 왔으니까 같이 먹자. 아침을 안 먹으면 음료만 마실래?”

“……잘 먹을게, 고마워.”

인선오는 짧은 침묵 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계단을 내려왔다.

걸음이 빠르고, 계단과 가까운 위치에 서 있던 인선오는 관종들보다 앞장서서 1층으로 내려왔다.

“맛있네. 같은 괴도가 직접 만든 것은 다르군!”

“아침부터 요리한 거야? 힘들었겠다.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 주다니! 우린 보통 뭘 하든 완벽하지만 요리는 잘 못하거든.”

낙제 여부가 걸린 시험을 앞뒀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기분이 좋아 보이는 두 관종에게 사실을 밝혔다.

“산 거야.”

“아…….”

관종들이 탄식했다.

직접 만든 요리가 먹고 싶다면야 해 주겠지만, 내가 만든 것보다 산 게 훨씬 맛있을 텐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둘은 말을 바꾸어 ‘괴도 답게 좋은 메뉴 선택을 했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곳에서 잘 사 왔다’라고 떠들며 아침을 먹었다.

인선오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적절한 시기에 맞장구를 쳐주며 그 안에 섞여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선오로부터 수를 두는 중인 체스 기사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딩동.

[염준열] 의신아, 안녕.

[염준열] 오늘은 무녀님들이 예고하신 대로 비가 내릴 예정이야. 그래서 등하교하는 동안 계속 용제건 선생님이 곁에 계실 것 같아.

[염준열] 우산 잘 챙기고, 빗길 조심해.

[염준열] (스탬프)

염준열이 후배 앞, 스승 앞으로 보내는 아침 인사와 함께 우산을 쓴 홍룡 스탬프를 보냈다.

염준열의 메시지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방울씩 비가 떨어졌다.

괴도의 아지트를 나서서 학교로 향할 때는 어느덧 빗줄기가 굵어져 있었다.

“우산으로 가리면 우리의 화려함이 덜 돋보일 텐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우리만을 위한 우산과 장화를 준비해 뒀다!”

단순한 비가 아니라 태풍이 온다 해도 수백 미터 밖에서도 보일 법한 오로라 우산과 장화를 본 구슬비가 감격에 겨워 입을 틀어막았다.

나와 인선오는 말없이 은광고 로고가 박힌 학교에서 지급한 우산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물었다.

“가자, 빠뜨린 물건은 없지?”

“응, 없어.”

나를 곧게 보며 답하는 인선오의 말을 끝으로 학교로 향했다.

학교로 가는 내내 인선오는 나와 관종들 사이에서 걸었다.

* * *

재시험이 치러지는 짧은 기간 동안, 관종들과 인선오는 꼬박꼬박 학교에 나왔다.

셋은 김유리의 주선으로 재시험을 치르러 가기 전에 교실에 들르기도 했다.

열다섯 번째 등교자를 본 반 아이들은 크게 기뻐하며 인선오를 환영했다.

착한 반 아이들은 인선오를 데려온 거나 다름없는 관종들에게 큰 관심을 주었으며, 교복이 특이해서 교복 같지가 않다고 칭찬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을 퍼부었다.

관종들이 만족한 후에 관심은 인선오로 흘러갔다.

“처음 듣는 성인데, 혹시 세음이의 성 ‘사월’처럼 이계 충돌 후에 만들어진 성씨야?”

“인서노? 인선오? 특이한 이름인데 혹시 순한글 이름인가요?”

질문이 산발적으로 쏟아졌는데도 인선오는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친근한 태도로 답했다.

“성도 이름도 특이한 편이지만, 인씨는 이계 충돌 전부터 있었어. 같은 성씨를 가진 분은 한국에 2만 명 정도 있을 거야.”

“생각보다 많군요. 목씨는 만 명이 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이름은 한자로 만들었어. 성까지 겹치진 않지만, 동명이인도 있을걸? 발음이 아니라 뜻까지 따지면 겹치는 사람은 더 많을 거야.”

인선오는 자신의 이름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도장 인(印), 먼저 선(先), 잠깰 오(寤).

풀어서 해석하면 ‘먼저 깨닫는다’는 뜻으로, 인선오가 말한 대로 비슷한 의미를 가진 이름은 많을 거다.

“여름방학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자주 얼굴 보고 싶다! 등교 언제까지 할 거야?”

김유리가 붙임성 있게 물었다.

교실 안에 긴장감이 흘렀다.

출석률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도 있지만, 함근형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을 생각해서 전원 등교를 기대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찾고 있는 게 있어서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아…… 그렇구나.”

“하지만 당분간 등교하려고.”

김유리를 필두로 반 아이들이 화색을 띄었다.

“사실 양족의 영역에 단서가 있다고 해서 가 보려다가 실패했거든. 당분간 대책을 세울 겸, 쉴 겸 학교에 나올까 생각 중이야. 방학에는 한중일 교류전 구경을 하고 싶어.”

“쉴 겸 학교에……? 아, 어쨌든 계속 얼굴 볼 수 있겠다! 우리도 교류전 구경 갈 거거든.”

쉬려고 학교에 나온다는 말에 일부 반 아이들이 잠시 이상하게 여겼지만, 어쨌든 인선오가 0반이다 보니 캐묻는 아이가 없었다.

속사정을 살피면 12지 동맹의 일각인 양족의 영역을 파고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쉬고자 하는 건 당연했다.

또, 최초로 열리는 한중일 교류전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상하게 볼 일이 아니다.

하지만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구슬비와 옹길동은 인선오가 당분간 등교하려고 했다는 걸 처음 듣는 것 같았어.’

인선오의 말에 기뻐하던 아이들 중에는 구슬비와 옹길동, 두 사람도 있었다.

인선오는 어쩌면 아주 최근에 임시 등교를 마음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임시 등교를 결심한 계기가 양족의 영역에서 당한 것 때문은 아닐 것 같았다.

“조의신, 비가 와서 기분이 별로인가?”

“아닌데.”

“……그렇군.”

황지호가 완전히 잘못 짚었다.

지금 나는 마치 체스를 둘 때처럼 표정을 감추고 있나 보다.

황지호가 내게 뭐라고 더 말을 걸려고 할 때였다.

“그럼 우리 이제 전원 등교까지 한 명 남은 거야?”

“쟤는 임시 등교지만…… 얼굴 안 본 애는 이제 한 명이네.”

권레나와 독고미로의 말대로였다.

그리고 남은 등교생에 관해 아는 건 우리 반에서 세 명이었다.

하나는 남은 등교생과 알고 지낸다는 황지호.

다른 둘은 출석부를 훔친 관종들이었다.

‘인선오가 임시 등교를 하는 동안 다른 등교생을 찾으러 가려나.’

이야기를 듣던 관종들은 목소리를 낮추고 둘이서 상담하기 시작했다.

짧은 작당질을 하는 동안 둘은 이쪽을 쳐다봤다.

나와 황지호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보였다.

“……걔는 좀 힘들 것 같은데.”

“……크윽, 여전히 빈틈이 없어 보인다만.”

관종들이 대체 뭔 생각을 한 건지 원망스러워하는 얼굴을 하다가 입을 모아 선언했다.

“우리도 당분간 대책을 세울 겸, 쉴 겸 학교에 나올 거야!”

학교는 쉬러 나오는 곳이 아닌데, 인선오와 관종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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