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916화 (916/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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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합숙 (5)

인선오와 관종들은 예고한 대로 꼬박꼬박 학교에 나왔다.

여전히 늦잠 후유증에 시달리는 바람에 지각 위기가 몇 번 있었으나 인근 주민인 김유리와 협력하여 무사히 등교시켰다.

등교생이 한 번에 셋이나 늘어난 덕에 함근형 선생님은 아주 기뻐하셨다.

관대하게도 이런 말씀을 하실 정도였다.

“지각해도 되니 학교는 나오도록.”

작년 우리 반 교훈은 ‘정시 등교’ 였지만, 올해는 ‘출석률 100%’다.

지각도 출석을 해야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교훈에 따르면 결석하느니 차라리 지각하는 게 나은 셈이다.

지각 후보생들은 함근형 선생님의 관용적인 모습에 감격한 건지 일찍 일어나려고 애썼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좋게 보였던 걸까, 그냥 우리 반 아이들이 착한 덕일까.

2학년 1학기가 끝날 즈음에 나타난 인선오는 위화감 없이 우리 반에 섞였다.

‘사교적이지만, 부담스러운 성격은 아니야. 김유리처럼 반을 이끄는 타입은 아니어도 반 아이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며 호감을 사는 타입으로 보여.’

나는 인선오를 잘 관찰해 보았다.

인선오는 화술이 특출나게 뛰어난 건 아니지만, 반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관심을 기울이고 거리감을 조절하는 게 능숙했다.

예를 들자면 관심에 목마른 관종들에게는 아낌없이 관심을 쏟아부어 환심과 신뢰를 샀다.

괴도나 파트너로 인정받은 것도 아닌데, 아직도 손님으로서 괴도의 아지트에서 같이 지낼 정도로 말이다.

“오늘도 깨우러 와 줘서 고마워. 아침으로 가져온 로즈마리 마늘빵은 직접 만든 거야? 맛있더라.”

“응, 로즈마리도 직접 내가 키웠어.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지금 루이스의 집…… 아니, 아지트에서 셋이 같이 지내는 거야?”

“아지트의 주인이 호의를 베풀어 준 덕에 게스트로서 머물고 있어. 하지만 슬비처럼 화려하고 눈에 띄는 파트너가 된 건 아니야.”

“응, 파트너는 나야!”

김유리의 질문에 인선오가 답했고, 구슬비도 싫은 기색 전혀 없이 한마디 거들었다.

엄밀히 따지면 인선오가 관종들만의 생활을 방해하고 있는 셈인데, 저렇게 둘을 띄워 주니 전혀 싫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재시험이 끝났는데도 인선오는 아직도 관종들과 지내는 걸까?

구슬비는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집을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고, 스승인 멀린은 호수의 여인 니뮤에에 의해 바위 아래에 봉인되어 꿈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인선오도 비슷한 환경에 처한 건가해서 신경 쓰이던 와중, 송대석이 무신경하게 물었다.

“재시험 때문에 합숙 비슷한 거 아니었어? 집에 안 가냐?”

모두가 궁금해하던 사실이었으나 혹시 민감한 사정이 있을까 봐 차마 묻지 못하던 것이었다.

말이나 의도에는 악의가 없었으나 상황에 따라선 심한 질문이 될 수 있으므로 민그린은 송대석을 한 대 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민그린은 송대석의 정강이를 평소보단 약하게 걷어차고, ‘악!’하고 뒤늦게 송대석의 비명이 들렸다.

“슬비랑 루이스에게 도움을 받고 싶은 일도 있어서 당분간 신세 지려고 해. 은광구는 아니지만, 돌아갈 집은 있어. 아직 할 일이 남아서 가긴 어려운 상태긴 해.”

“그렇구나, 미안. 대석이가 무신경한 소리를…….”

“아니야, 나도 설명하고 싶었어. 질문이 없어서 먼저 말하기가 좀 그랬거든. 잘 됐어. 그린이랑 대석이는 많이 친해 보이는데 소꿉친구야?”

친해 보인다는 말에 둘은 매우 쑥스러워했지만, 소꿉친구인 건 사실이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그린은 몰라도 송대석과 대화를 나누는 건 쉽지 않을 텐데도 둘의 관계성을 참고해 대화를 이끌었다.

인선오는 두 사람에게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고, 그중에는 등교하게 된 계기와 근황이 섞여 있었다.

“그럼 그린이의 안경은 선물받은 거구나. 대석이는 지금 플레이어 협회의 객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고.”

“응, 쟤가 선물해 줬어.”

“뭐…… 그렇지.”

민그린의 AR 글래스는 내가 선물해 준 거고, 송대석이 협회 인턴에 지원한 건 내 소개가 계기였다.

인선오는 반 아이들과 대화하며 내 이름을 직접적으로 꺼내지는 않았는데, 어째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와 관련된 화제로 이어졌다.

내가 반 아이들의 사정에 많이 엮여 있는 건 사실이긴 하나 뭔가 마음에 걸렸다.

“선오는 의신이가 얼마나 굉장한지 잘 알아줄 것 같아요! 우리 반에 관심을 가졌다면 당연한 일이지만요.”

“직접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무명의 초신성이 보인 활약상에 관해선 알고 있었어. 실제론 더 굉장한가 봐.”

“네! 제가 알려 드릴 수 있는 범위에서 다 말씀드릴게요.”

어느덧 화제의 중심은 내가 되었다.

사월세음은 다소 신나 보이기까지 했다.

황지호는 뜻 모를 소리를 해 댔다.

“흠, 네 반응이 재미있으니 일단 지켜보마.”

“뭐래.”

시험도 전부 끝났겠다, 반 아이들은 교류전을 비롯한 여름방학 일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교류전에 관해 언급될 때마다 관종들은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을 기회를 놓친 걸 두고 가슴 아파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응원전에서 주목받겠다고 선언했다.

반 아이들과 새 등교생들은 자연스럽게 여름방학 일정을 같이하게 되었다.

“의신이 말고도 우리 반에서 교류전에 나가는 애들 많아. 효돈이랑 미로도 가는데, 다 같이 교류전 구경 가자!”

“아, 그 전에 그린이가 추천한 미술전이랑, 주오 드래곤즈의 야구 경기랑, 음, 시간이 나면 TC 나이츠 것도…… 아니, 이건 잊어 주세요. 또 플젯 오프라인 이벤트도 가야 해요. 시간 괜찮으세요?”

“쟤들 합숙 시작하기 전에 놀러 갈 거라 일정이 좀 빡빡하긴 해. 그래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

우리 반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놀 계획을 세우는 김유리, 사월세음, 권레나가 인선오에게 제안했다.

인선오는 많은 일정에 놀라면서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다 같이 가는 거야? 시간은 괜찮아. 꼭 갈게.”

아무도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이를 지켜보고 있던 황지호도 말했다.

“우리 반의 총의가 그러하니 이 몸도 시간을 내야겠군.”

황지호가 저 말을 하자 홀로그램을 켜고 응원전 구상을 하던 관종들이 휙 고개를 돌렸다.

구슬비와 옹길동은 들으란 듯이 조금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두 관종은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뜻하는 ‘총의’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우리 반의 총의……!”

“한 명은 없는데……!”

“하하하하!”

관종들이 응원전에 집중한다고는 해도 교류전 출전을 놓친 게 많이 아쉬웠나?

평소에도 이상했지만, 유독 황지호 관련해서 더 이상해진 것 같다.

그에 반해 황지호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고, 늘 그랬듯이 나한테 시답잖은 헛소리를 해 댔다.

반 아이들 사이에 섞여 있는 인선오가 이 광경을 쳐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시선이 마주친 것도 아닌데, 인선오와 거리를 둔 채로 수를 주고받는 기분이 들었다.

* * *

재시험 일정이 완전히 끝나 성적이 확정되었다.

약간의 변수가 있긴 했으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1학년의 수석은 은호, 차석은 차석원이었고 그 뒤로 은이호와 은서호가 있었다.

은서호와 은이호는 아쉬워했지만, 수석과 차석이 지나치게 잘하긴 했다.

‘차석원은 거의 만점을 받았다고 했지. 실기 도중 쓸데없는 실험만 안 했으면 감점이 없어서 공동 수석을 노려볼 수도 있었을 텐데.’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지 않으면 1등을 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은서호와 은이호가 고생할 것 같다.

1학년과 마찬가지로 2학년과 3학년의 최상위권 순위에 변동이 없었다.

결과가 나오자 내가 실기시험을 치를 때 장난질을 쳤던 용제건이 이런 말을 했다.

“의신이 등수에 변함이 없으니 이제 신록이가 나한테 화 못 내겠다. 약 올리러 가야겠어.”

김신록은 용제건과 달리 성실한 교사다 보니 장난질이 용납이 안 갔나 보다.

등수가 변함이 없더라도 화를 낼 것 같긴 한데, 화를 내든 안 내든 용제건이 김신록을 약 올릴 게 분명했다.

한편, 내 디바이스에 여름을 실감하게 하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옥토연] 은인아…… 요새 야구 보고 있어?ㅠㅠ

[옥토연] TC 나이츠가 또 졌어 ㅠㅠㅠㅠㅠㅠㅠ

[옥토연] 은인아, 같이 응원해 줘…….

내려갈 팀이 내려가고 있다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저번 달까지만 해도 페넌트레이스 우승까지 넘보던 기적의 망팀 TC 나이츠가 망해 가고 있었다.

야구 망팀은 시즌 초반에 잘 나가더라도 더울 때가 되면 마치 약속한 것처럼 점점 순위가 곤두박질치곤 한다.

더위 때문인지 몰라도 선발은 퍼지고, 불펜에는 불이 나고, 흐름을 끊는 에러가 빈발하고 경기는 진다.

야구에 흥미를 보이는 아이들에게 주오 드래곤즈를 소개시켜 줘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옥토연과 함께 울고 있어야 할 거다.

‘만년 2등이지만, 적어도 가을 야구 시작 전까지는 행복하겠지. 장남욱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다.’

주오 드래곤즈를 영업해 반 아이들이 망팀의 희생자가 되는 걸 막은 장남욱한테 감사 인사를 하기로 했다.

일단 오늘 같이 PlayerZ에서 레이드를 뛸 예정인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창술사 장남욱에게 버프를 몰아줘야겠다.

레이드를 처음 뛰는 생초보 장남욱이 유상훈에게서 최대 공헌자를 빼앗으면 반응이 볼만할 것 같았다.

마침 생각난 김에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유상훈의 채널 관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의신아, 여기다.”

오늘 저녁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상대, 성국언의 목소리였다.

디바이스 홀로그램을 끄고 돌아보다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성국언은 오늘 정장 대신 폴로 셔츠를 착용하고 있었다.

성국언이 입으니 단정한 인상을 주었지만, 국회의원이 공식 석상에서는 입기 어려운 옷차림이었다.

저 옷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다행히 오늘은 정장을 입을 만한 스케줄이 없었나 보다.

‘플마고에서도 정장 외의 다른 옷을 입은 걸 못 봤는데.’

낯설긴 했지만, 날이 더운 것도 있고 성국언의 체격이 좋다 보니 딱 맞는 폴로 셔츠가 잘 어울렸다.

반팔인 탓에 팔에 보이는 상처가 눈에 띄었으나 보기 흉할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플마고에서 성국언의 폴로 셔츠 스킨이나 아바타가 나왔다면 망설임 없이 구매했을 거다.

“하하하! 정장이 아닌 게 의외였나? 오늘은 후배와 만나는 개인적인 식사 자리 아니냐. 자, 밥 먹으러 가자.”

성국언이 등을 ‘팡!’하고 쳤는데, 예전보다 아프지 않았다.

내 눈을 신경 써서 힘 조절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보다 본인의 안대를 더 신경 썼으면 했다.

‘여전히 안대를 쓰고 있어. 덥지 않을까? 이제 곧 나을 테니 빨리 벗어도 되는데.’

그 뜻을 담아 성국언에게 말을 전했으나 전혀 먹히지 않았다.

“조금도 불편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네가 나으면 안대를 풀 건데, 뭘 걱정하나.”

성국언은 웃고 있었고 말하는 어조도 부드럽고 친근했지만, 반박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성국언의 안대를 벗기는 데에 실패한 채로 식사 자리로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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