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113화
12층 - Lv. 355 낙오클랜들(4)
난쟁이 무기상은 세상의 모든 것을 직업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자였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돈, 그리고 무기.
근본적으론 돈이다. 더 강력한 무기는 더 큰 돈이 되니까.
그런 점에서 유배자란 그 무엇보다 뛰어난 무기였다.
당장 저들을 사로잡아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이득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정신을 세뇌하는 종류의 기술은 흔하지는 않지만 없지는 않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감금해 두면 된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우연히 자신의 저택에 포션이 샘솟는 샘물이 나타난 것까지도 상황이 아주 좋았다.
몇 명은 죽여 버리더라도 하나만 살려둔다면 이제 물장사도 할 수 있다.
그래도 가능하면 모두 사로잡을 생각이었다.
샘물을 보존하는 포션병은 살아 있는 유배자 1인당 1병만 사용할 수 있다.
대체할 수단도 없는 물건이다.
여기에 담아야 샘물을 멀리까지 운송할 수 있다.
그 어떤 병도 치유해 버리는 기적의 만병통치약.
이미 이런 식으로 유배자를 붙잡아 돈을 갈퀴로 긁어대고 있는 요정 마피아들 덕에 얼마나 배가 아팠는지 모른다.
그쪽 회복의 샘은 도대체 어디에 나타났는지 존재조차 알 수 없다.
[모루] 역시 마찬가지다. 바위난쟁이인 그가 이 행성에 있는 이상 유배자가 나타나면 [모루]도 나타난다.
유배자만의 사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명할 것이 많으나 놀라운 도구임은 틀림없다.
다행스럽게도 이 자그마한 행성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은 그의 귀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와 같은 힘을 지닌 자가 또 있었다.
영원히 밤인 이 행성에 터를 잡은 뱀파이어, 아주 귀찮은 녀석들이지만 동시에 살고자 필사적인 것들이다.
인간이 별로 없는 이 행성에 마땅한 혈액을 수급하려면 돈을 주고 사 오는 수밖에 없겠지.
이해관계는 쉽게 맞아떨어졌다.
요정 마피아가 돈을 갈퀴로 긁는 모습에 배 아픈 것은 뱀파이어들 역시 마찬가지다.
난쟁이 무기상은 준비된 기습을 점검하라고 손 모양으로 명했다.
이 저택은 당연하지만 일종의 요새다.
하루 집을 비워야 했으니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은 필요하리라.
무기상은 자신만만했다.
유배자들은 분명 위협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위협적인 유배자에 대한 연구도 있어 왔다.
이번에 보게 된 유배자 파티는 척 보기에도 별 볼 일 있어 보이는 차림은 아니다.
강력한 유배자의 장비는 몇백 년 전에도 보물로 여겨졌을 만큼 훌륭한 것들이었다.
빛이 나는 갑옷과 번쩍번쩍한 무기들.
하지만 지금처럼 평범하게 마법이 좀 깃들어 있는 걸로는 골동품에 지나지 않는다.
종족도 아직 인간이 많다. 인간은 약해빠졌다.
적당히 약해빠진 것들로 보인다.
뱀파이어들도 그렇게 판단했고, 꾀어오는 데도 성공했다.
이제 멍청한 오크 갱단이 눈치를 채고 끼어들기 전에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할 생각이다.
클랜 마스터도 근처에서 대기 중이다. 유배자를 확실히 사로잡으려면 그 정도 강자는 나서는 편이 좋다.
"식사는 오래 걸리지 않아 준비될 걸세. 나와 사업 이야기 좀 하겠나?"
난쟁이 무기상은 빙글빙글 웃으며 유배자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리더인 멀끔하게 생긴 뱀파이어가 마주 웃어주더니 앉았다.
이 파티는 구성원이 조금 이상하긴 하다. 뱀파이어와 오크가 같이 있다니.
하나 천사나 악마 같은 신화적 존재들이 있는 것도 아니니.
"무슨 사업 말이신지? [모루]라면 작동을 도울 수는 있습니다. 그보다는 계단의 위치를 좀 알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지. 그러면 언제 다음 층으로으로 가버릴지 모르지 않나? 나는 유배자를 존중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떠돌이라는 점을 모르지는 않는다네."
"서로 간의 신뢰가 부족하긴 하군요."
"그렇지. 지금부터 쌓아갈 시간은 없으니 지킬 것은 지키며 이야기하도록 하지. 아참, 뭐 만들고 싶은 건 있나? [모루]는 유배자에게도 중요한 물건이라 들었는데."
* * *
뭔가 속셈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하는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뒤통수를 치려고 해도 신중하게 치는 편인 모양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눈치다.
대충 함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걸어 들어왔다.
필요한 순간 누가 먼저 뒤통수를 치느냐의 싸움이다.
상대는 자신의 홈그라운드이니만큼 방심 중일 테고, 나는 그 사실까지 알고 있다.
박쥐를 날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뱀파이어들이 지키고 있으니 몰래 날릴 수도 없으리라.
차가 나왔다.
뱀파이어인 나와 꼬맹이에겐 피다.
꼬맹이가 소녀에게는 달달한 밀크티가 나간 것을 보더니 부럽게 바라보았다.
사냥꾼이 하인에게 바꿔 달라고 했다. 난쟁이 무기상이 고개를 끄덕인다.
소녀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살짝 마시더니 미소 지으며 내려놓았다.
삼키지 않고 눈짓한다.
이야. 이미 준비는 다 해놓고 부른 건가? 시간을 끌려 하기에 숙소에서 시작할 줄 알았는데. 수작을 더 빨리 부려온 건가.
나는 차를 입에 대지 않았다.
다른 파티원들도 그랬다.
난쟁이 무기상은 계속해서 모루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 VIP들 중에서는 유배자에 아주 큰 관심이 있는 분도 계시지. 유배자 특유의 신화적인 생물들을 재료로 한 장비에 관심이 많더군."
"소재 구하는 것부터 일 아닙니까?"
"그래서 말인데 자네들이 가진 게 있다면 내 아주 비싸게 사지. 음, 돈이 아니라면 무기라도 좋지. 총기 좋아하지 않나?"
10층 보스전이 무시무시한 태생으로 밀어붙이는 괴물이 아니었기에 장비의 재료는 없었다.
그 점을 무기상은 아쉬워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무기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말은 저렇게 해도 순순히 넘겨줄 생각은 없겠지.
일이 언제 시작되려나 보고 있자니 이 녀석들 입장에서도 지금부터 준비하는 느낌이 강하다.
지나다니는 하인 몇몇의 표정이 미세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거나, 바깥에서 이따금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고 있다.
파티원들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누구도 말하지는 않고 있으나 별로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다들 직감하고 있다.
난쟁이 무기상은 그러거나 말거나 넉살 좋게 앞에 앉아 있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우리가 너무 별거 없어 보여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뭔가?"
"뭔지는 좀 있다가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지요."
"음?"
마투사가 여파가 아니라 직접 마법을 구현할 수 있는 거리는 기껏해야 2미터 남짓이다.
하지만 무기상은 그 거리 내에 있었다.
딱딱 하고 불꽃이 튀었다.
무기상의 눈이 커졌다.
"지금 무슨!"
그 뒷말은 고통에 찬 비명으로 대체되었다.
팔다리를 모두 못 쓰게 만들었다. 불로 지져 지혈해 두자. 어차피 바로 옆에 샘이 있다.
살리기는 어렵지 않다.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듣겠습니다. 서로 좋은 거래가 되면 좋겠군요."
비명을 숨길 생각도 없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며 적들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쇳소리부터 해서 이것저것 중무장한 것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소녀가 날아올랐다. 천장을 발로 차서 뚫어버린 다음에 날아올랐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 * *
이미 모두 이야기된 일이었다.
리더는 뱀파이어가 된 이후로는 이런 식으로 대인전을 벌일 일이 있다면 따로 행동하기로 했다.
클랜 마스터는 본디 비대칭 전력이다.
소녀 역시 마찬가지다. 이 둘은 서로 알아서 주변을 교란하고 중요 인물을 제거할 것이다.
다른 파티원들은 정석적으로 운용한다.
남겨진 파티의 리더는 사냥꾼이다.
"무기고부터 찾아봅시다!"
사건이 벌어진 곳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다. 스스로 포위당하겠다는 뜻이다.
꿈틀거리는 난쟁이 무기상을 꼬맹이가 다가가서 업었다.
꼬맹이는 이런저런 마법을 배우고 있긴 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전투에 뛰어들 정도는 아니다.
리더는 오히려 마법연구자에 가까운 느낌으로 흥미를 보이고 있다며 웃었다.
열 살 남짓한 외형이지만 뱀파이어의 근력은 인간보다 높다.
난쟁이 역시 꼬맹이와 큰 차이 없는 체구다. 거기에 팔다리가 날아갔으니 훨씬 가볍다.
막내는 불안하게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래도 좁은 실내에선 벽과도 같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저절로 잠기는 잠금장치가 있는 모양이었다.
영감님이 나섰다. 번개를 두른 망치 단 한 방에 두꺼운 철문이 찌그러지며 터져나갔다.
하지만 밖에는 총기를 들고 겨누고 있는 다른 난쟁이들이 있었다. 일곱 명 정도.
막내가 방패를 들었다. 불꽃이 튄다. [방벽]이 펼쳐졌다.
뜨겁게 달궈진 플라즈마의 안개가 방패를 마구 두드린다.
꼬마 마법사는 그때까지 빠르게 짜올린 [라이트닝]을 해방했다.
그녀 역시 그동안 충분히 레벨업을 해왔고, 조언대로 전격 마법은 대체로 직접 구사하지 않는 방향으로 성장해왔다.
그리고 [스킬]로서 습득한 마법은 발동도 아주 빠르다.
눈 부신 번개가 복도를 수놓는다.
난쟁이 셋이 벌러덩 넘어갔다. 다른 녀석들도 재빨리 복도 끝에 엄폐한다.
"마법? 제기랄 마법사가 있다!"
이쪽도 총기는 있다. 동맹군 제식 플라즈마 라이플이 창백한 푸른빛을 내뿜었다.
방패를 앞세운 채 전진한다. 뒤편에서도 문이 열리고 있었다.
모두 달리기 시작했다.
* * *
총격전이란 건 꽤나 귀찮고 피곤한 것이다.
옛날 같으면 충분히 안전했을 거리도 치명적인 공격이 날아드는 곳으로 변한다.
하지만 광역 공격은 이전보다 줄어든 경향이 있다.
이 시대의 기술 대부분이 근간은 ‘마도’공학이지만 그럼에도 과학의 향기가 짙게 풍김은 부정할 수 없다.
발전된 기술로 만들어진 무기 대부분은 ‘물리 공격’에 해당한다.
소녀가 뚫어버린 저택의 지붕까지 통하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정말 빠르군, 예전에도 빨랐지만 최근엔 더 빠르다. 스탯이 올라간 것도 있겠으나 [단검 마스터리] 스택이라거나 자잘한 스펙업이 꽤 많았다.
정말로 어지간한 히어로 유닛과는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다.
지붕에서 나는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온 사방이 붉은 피 안개로 뒤덮인다.
빔 병기가 몇 발인가 나를 노린다. 화기가 지나간 자리의 안개가 무사하지 못하다.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크냐면 그렇지는 않다.
안개는 서서히 가라앉는다.
뱀파이어의 공포를 아는 행성이다.
사수들이 일제히 수류탄을 꺼내 든다.
현대의 세열 수류탄이 아니다.
공간 자체를 열로 지져버리려는 목적의 플라즈마 수류탄이다.
안개 속에서 박쥐와 늑대들이 달려 나온다.
던져진 수류탄을 박쥐와 늑대들이 물고 되던진다.
난쟁이들이 당황했다. 이딴 활용은 처음 볼 거다.
달려든 짐승들을 사격하지만 금세 다시 안개가 되어 흩어진다.
안개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천천히 요리를…….
이상한 것이 하나 눈에 보였다.
로켓? 로켓 자체야 이 시대에도 안 쓰이는 무기는 아니다. 하전입자고 플라즈마고 물리적 실체가 폭발하는 것보다 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실탄 병기는 완전히 대체하기 힘들다. 빔 병기나 플라즈마 병기가 아주 편리할 뿐이지.
그런데 저 로켓은 속이 비어 있고…….
이런 미친, 샘물을 채우고 있잖아?
그 외에도 몇 명이 서둘러 정원에 물주는 용도로 보이는 고압 분무기를 치유의 샘에 연결했다.
나는 서둘러 안개를 다시 뭉쳤다. 육체를 구성하고 지붕 위에 착지해서 달렸다.
로켓이 날아온다. 안에 힐링 포션을 가득 담고.
지붕을 달리는 뒤로 폭발이 일어난다. 거센 물보라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것을 마주 폭발을 일으켜 밀어내고 내 몸을 전진시키는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최대한 멀어진다.
고압으로 발사되는 물줄기들도 사방으로 날아들었다. 몇 줄기가 옆을 스친다.
팔에 한두 방울이 튀었는데 끔찍한 고통이 찾아온다.
"야 이 새끼들아! 이건 너무 하잖아! 이 비겁한 녀석들아!"
* * *
소녀는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천사와의 싸움에서 활용했던 [대시]를 통한 비행이다.
대기권을 돌파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렇게까지는 아무리 소녀여도 갈 수도 없다.
대충 저택 전역이 시야 가득히 보일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왔다.
이것보다는 좀 더 올라가자.
잠시 후, 저택이 두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높이까지 올라왔다.
[히어로 랜딩]
낙하하는 높이에 비례해 위력과 범위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