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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504화 (475/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504화

왕국 - 빛을 죽일 준비(2)

“그 정도군요.”

“생각해 보면 1만 년 이상을 그렇게 노력하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법이겠죠.”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기만 하면 뭐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반만 맞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는 끊임없이 생각하며 열심히 해야 한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뇌를 빼두면 단순노동은 쉬이쉬이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어려운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면서도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열심히 할 때다.

찌그러지는 자존감을 넘어, 푸르딩딩하게 상해가는 자존심을 넘어, 자신이 그것을 못한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며 끝없이 높은 곳을 목표로 하는 것.

그건 엄청난 고난이다.

“순수하게 검술로 지지는 않아. 하지만 이길 수도 없어.”

“힘의 격차 때문인가요?”

“맞아.”

희우가 미간을 좁히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데 그거 이상하지 않아요?”

“왜?”

* * *

* * *

“미카엘은 그럼 만년 동안 검을 수련한 거잖아요. 왜 그거밖에 안 되죠?”

“이거 이거. 또 재능 있는 자의 발언이군.”

재능은 사실 출발선이 남보다 앞일뿐인 것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결국 언젠가 도달할 목표는 한계 지어져 있지 않다.

“이건 미카엘 감수성이 필요해. 그는 딱히 천재는 아니었단 말이야.”

“오빠도 그렇다고 하지 않았어요?”

“난 꼼수를 정말 많이 썼지.”

미카엘처럼 순수하게 중세마냥 검술을 수련한다? 그렇게는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재능이 없는 건 아니라고. 체력이 없지 운동신경이 없진 않으니까.”

그런 사람들 있지 않은가. 수행평가 오래달리기는 최하점을 받아도 기계체조는 곧잘 만점을 받는 말라깽이들.

그게 바로 나다.

“일단 스킬로 검사가 된 후에 그걸 재해석하면 100배는 더 빨라. 몸에 남으니까.”

“그건 뭔지 알 것 같긴 한데…….”

유배자는 그 자체로 치트를 가진 존재인 것이다.

미카엘에겐 그런 치트가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재능도 천재적이진 않았으리라.

심지어 검에만 몰두한 기간은 생각보다 짧을 게 분명했다.

마법도 제법 쓰고, 아마 그 마법 내에서의 세분화된 영역도 죄다 팠겠지.

무기도 검만 다루는 건 아닐거다. 결과적으로 검을 제일 괜찮게 썼을 뿐이지.

“다재무능이네요.”

“미카엘이 상처받겠다.”

희우는 심한 말을 한 뒤에 조금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저는 잘 모르긴 해요. 못했던 적이 없으니까요.”

옆에 앉아 있던 희우의 언니가 쓴웃음을 짓는다.

블랑쉐를 말한 것이 아니다.

친언니와 친오빠와 함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었다.

무술의 달인 정씨 일가가 필요한 국면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겸손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우리도 잘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군요.”

“그래서 부른 거니 괜찮습니다. 처형. 동서.”

희우가 그 호칭이 정말로 맘에 드는지 희미하게 웃는다.

다만 호칭의 주인공들은 굉장히 어색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기묘한 표정이다.

본인들의 의사로 특별히 우리와 연관지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이미 파티에 합류하기엔 늦었고, 각자 왕국에서의 직업도 있는 상태니까.

이렇게 따로 부르지 않는다면 사실 마주칠 일도 거의 없다.

희우가 종종 놀러가는 정도일 뿐이지.

“일단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으니 한번 보시죠.”

검을 들고 미카엘의 태세를 재현한다. 그의 검은 어딘지 알 것 같은 검이다.

빛나는 재능도 눈부신 재기도 없다.

그저 우직하게 세월만을 쌓아 올린 기본기 그 자체의 검술이다.

결함은 전혀 없으며, 공방 모두 완벽하다.

옆의 아서와 에길은 내 재현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철벽같은 형태로군. 우리가 일대일로 상대하는 건 어려울 만 해.”

“여신님이 고전했던 것도 알겠군. 창은 스펙으로 누르며 파고드는 인간형을 상대로 좋은 선택이 아니지.”

미카엘은 존재 자체가 인간형 우주전함 같은 괴물이니까 그렇게 되긴 하겠다.

루시는 툴툴거리며 부정했다.

“바알이랑 투닥거린 부상 탓이다. 그리고 악마다보니 말이야.”

“암, 그렇고말고. 좀 요란하게 번쩍이는 비둘기 따위에게 혼돈의 여신이 질 것 같은가!”

“넌 좀 닥쳐.”

“흥! 알겠다!”

드라간이 입을 다물고 희우의 가족들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이건 강제로 틈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것이군요.”

“완벽하게 내버려 두면 쓰러뜨릴 수 없을 테니까.”

“연계를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혼자라면 무리더라도 여럿이라면 말이죠.”

그게 이제 문제인데.

“클리포트가 그 위에 있을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악마의 자리 자체가 바알뿐이란 말이죠.”

그건 아서의 자리다.

“그리고 희우가 우리엘.”

나는 라파엘.

딱 셋이다.

세 명으로 상대해야 한다.

“왜 그렇게 되는 겁니까?”

나는 루시를 보았다.

루시가 떨떠름하게 설명한다.

“못 견딘다. 어디서 힘을 빌려오지 않고서는 그 충돌을 이겨낼 방도가 없다. PVP인데 레벨이 열배쯤 차이나는 기분이니까.”

“그건 확실히 기술이고 뭐고 아무소용 없겠군요…….”

희우의 언니가 정말로 심각하게 말했다.

“그거 클리어하라고 만든 게 맞나요?”

나는 입맛을 다신 후에 대답한다.

“아마 미카엘이 약화되는 루트가 존재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도리어 강화되어 버렸다.

대신 바알이 특별히 더 강해지지 않았으며 메타트론이 비교적 쩌리였고, 나헤마가 상황 파악을 덜한 상태였다.

“흔하고도 악질적인 형태 아닙니까…….”

“그래서 더 곤란하죠.”

심지어 이 뒤에 둘이 더 있을 수도 있다.

사탄과 YHWH말이다.

하지만 YHWH는 출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단은 [앙그라 마이뉴]를 잡지 않았다.

하도 꼬이고 꼬여서 그렇지 원래 같으면 [아후라 마즈다]와 그 녀석을 잡은 상태가 출현 조건이다.

이 부분은 그대로였던 것 같다.

“어쨌든 죽 이어서 이야기해 보자고요. 그리고 루시 천사 하지 않을래요?”

“이제 와서?”

“이제 와서라니. 처음부터 말했는데. 그거 스킬 세팅 좀 최적화가 아쉽다고.”

종족 세팅도 아쉽다.

루시는 단순히 스펙만을 보자면 유배자측 최강의 전력이다.

심연을 위해서라도 더 강화해 둘 필요가 있다.

“끄응. 3일 만에 되는 거냐?”

“안 되겠죠. 하지만 다음 메인 던전도 생각해야 하니까.”

“알았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 들어보지.”

“나도 동석할 것이다!”

드라간이 목소리만 쓸데없이 크다. 나와 루시 모두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거대한 트롤은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다.

미카엘을 뚫어내기 위한 달인들의 브레인스토밍이 계속 진행 중이었다.

트동트 영감님은 사실 이미 오크로서 나이가 많았다.

그럼에도 고향을 등지고 떠났던 여행은 뒤늦게 보면 제법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흥, 그래도 문제없다. 어차피 그곳에 있었어도 늙어 죽었겠지.”

“너무 고집 센 노인네가 된 거 같아요. 할아버지.”

미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트동트 영감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뭐 메인 던전 최종 보스급 천사를 상대로 마법 피해를 가할 수단을 찾는다고?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고집 센 노인네가 안 될 수가 있느냐.”

옆에서 듣고 있던 이플릭셔스도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의 눈으로 상황을 보고 있던 레베카는 한숨을 푹 내쉰다.

[아니, 내 제자는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지.]

“중요한 일이에요!”

마법사들끼리도 모여서 대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미아는 미카엘이 구사할 수 있는 마법적 수단에 대해 대체로 다 알고 있다.

“수준이 낮진 않은데…….”

“낮지 않다고 말하기도 뭣하지. 마탑주들도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니.”

“1만 년 이상을 투자한 결과라고하면 아쉬운 것 같기도 하고…….”

이젠 아케인의 지배자인 학장이 한숨을 푹 내쉰다.

그보다 훨씬 뛰어나다. 메인 던전 보스가 가진 가장 미약한 능력도 그러하다.

“여기 내가 있을 자리가 맞나?”

“다양한 의견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

지친 표정의 파라켈수스도 이 자리에 있다. 그가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면 좀 못난 마법의 신 클래스라고 해도 무방한데 말입니다.”

“겨우 이 정도로 마법의 신이 될 수 있어요?”

“얘야. 이 왕국은 아주 오래된 곳이란다. 메인 던전만큼은 아니어도 말이지.”

루시가 최초로 신좌에 앉은 이래로 유구한 세월이 흘렀다.

그 이전에도 이 왕국의 역사는 있었겠지만 확인된 역사만 해도 충분히 억겁의 세월이다.

오르골도 이 왕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신들의 수준이 아주 높다며 기뻐했었다.

그 당시에는 조금 의아했으나 이제는 알겠다.

신 클래스의 힘은 메인 던전에서는 기본에 불과하다.

그 정도는 되어야 공략 파티가 성립한다.

“시간이 아까우니 빨리 본론으로나 들어가죠.”

냉랭하게 말하는 것은 규율의 신이다.

지금은 몰락한 것이나 다름 없지만 한때 이 왕국의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던 신이다.

규율의 신은 몹시도 불만스러운 얼굴로 상황을 정리했다.

“메인 던전 최종 보스인데 천사다. 그리고 좀 애매한 마법의 신 정도의 마법 구사 능력에 기본적으로는 전사. 대응 수준은 하이랭커 PVP를 상회하는 수준.”

턱을 만지며 마지막 요소.

“거기에 그쪽 마법사 아가씨가 좋은 거 가르쳐서 더 난리가 났다. 이거 아닙니까.”

“맞아요!”

“활기차게 말하지 좀 마십쇼. 심각하니까.”

“네…….”

규율의 신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가르친 게 뭔지부터 설명해야겠군요. 권능을 뭘 어떻게 다루는 건지부터 차근차근 늘어놓아보시죠. 3일이 부족할지도 모르니.”

안타깝게도 시간을 멈춰놓고 토론하는 것 같은 꼼수는 먹히지 않는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만큼 저쪽에서도 시간이 흐를 것이다.

미아는 일단 에너지 드링크를 마셨다.

“힘이 넘치는구나!”

“그런 말투는 어디서 배웠니.”

“나헤마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미아는 차근차근 미카엘이 구사할 수 있게 된 방식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트동트 영감님과 학장은 신들 사이에 껴서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따라갈 수가 없다.

레미에게 연행된 바알은 시무룩해져서 객실에 머물고 있었다.

“싸움! 싸움! 더 많은 싸움! 더 큰 싸움!”

빠르게 연행한 가장 큰 이유는 저런 소리를 지껄여대어서다.

혹여 드라간의 귀에 들어가면 이상한 놈이 이상한 놈을 자극하게 되는 수가 있다.

전쟁의 신.

전직 전쟁의 신이자 현직 최상위 하이랭커.

여전히 사실상 신으로 대우받지 하이랭커 같은 분류로 엮이진 않는다.

소속 길드는 자신이 만든 1인 길드.

이전 같았으면 오들오들 떨며 혹여 노여워하지는 않을까 봐 두려워했을 존재지만 지금의 레미에게는 가장 머리 아픈 트러블 메이커일 뿐이다.

루시의 말을 잘 들어주니 망정이고, 그 루시가 항상 쓴웃음지으며 수습하러가서 망정이다.

안 그랬다간 미궁 최초로 탈모 꽃잎 요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메인 던전의 결과가 전쟁이 아니라는 점은 다행이다.

침공 방어를 다시 할 생각을 하면 당장이라도 머리카락이 한두 올 빠질지도 모른다.

인간인 채로 이 스트레스를 감당하려고 했다간 이미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을 게 분명했다.

“흠, 악마를 진찰할 기회는 흔치 않지만 아주 건강하군. 너무 건강해.”

“싸움! 배틀! 파이트!”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욕구불만을 뿜어내는 바알을 진찰한 노의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늘 감사합니다. 스승님.”

“어이쿠. 왕국의 지배자께 스승이란 소리를 듣다니. 송구스럽구만.”

볼 때마다 그런 말을 한다. 태연하게 하는 것 보면 이 어르신도 즐기고 있다.

“공부할 시간이 점점 줄고만 있어요…….”

“외워야 할 것이 참 많지. 그래도 종족 보정은 잘 받고 있지 않나.”

“그러게요. 저절로 똑똑해지는 건 꽤 이상한 기분이네요.”

“으아아! 싸움이 부족해!”

바알에 대한 조치는 모두 끝났다.

적어도 왕국에 풀어놔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 같은 악마다.

이렇게 굳이 검진을 때린 것은 딱히 데빌도 데몬도 이블도 아닌 무언가였기 때문이다.

악마인 것은 맞으나 플레이어블 악마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염도 머리털도 덥수룩한 중년의 근육질 사내.

“바알, 진정하고. 이제 풀어드릴 테니 검술을 배워볼래요?”

“흠! 아주 좋다! 두 팔로 검을 쓰는 걸 드디어 배울 수 있군!”

본모습은 팔이 두 개가 아니었던 걸까?

레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바깥으로 나갔다.

고양이귀 천사가 엄청나게 떨떠름한 얼굴로 서있다.

“저는 충분히 힘들었으니 이제 제니씨가 책임지세요.”

“무서워……. 무서워…….”

“돌겠네. 진짜.”

우습게도 악마긴 했기에, 바알의 지금 육신은 마법에 특화되어 있다.

정말로 우습다.

쉽게 말해서 제니가 바알을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신체 성능이 너무 다르고, 활용 수단도 너무 다르니까.

변수라면 제대로 된 격투로 붙을 때인데, 만약을 대비해 일그림 파티의 치천사, 에리나도 함께하기로 한 참이다.

그 정도면 충분히 제어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건 아주 중요한 임무다.

바알의 세피로트에 앉아야 한다나 뭐라나 아무튼 공략의 핵심 요소라고 했으니까.

바알의 마음을 돌려놔야 한다.

몹시 다행스럽게 원하는 것이 아주 확실했다.

그리고 리더의 검술에 곧바로 적응할 수 없다는 사실은 바알 역시 동의했다.

미친놈 치고는 기묘할 정도로 건실하게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고 싶어 하고 있는 놈이다.

그래서 제니다.

리더가 단언하건대, 제니만큼 재능에 의지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함 검을 구사하는 검사도 드물다고 한다.

그 점만큼은 곧바로 납득했다.

레미 역시 마법에 특별히 재능이 있진 않았다.

꽃잎 요정이 되고나서 갑자기 재능이 샘솟는 것은 어색할 지경이다.

제니 역시 그렇다.

보통 사람이다.

하지만 해냈다.

어떻게 해냈는지, 이미 파티에서 도망쳐 버린 레미는 알 수 없다.

그만큼 대단한 사람인데 말이야.

“바, 바알 님? 바알 선생님?”

“당신이 선생님이에요.”

“앗아아. 대체 어째서…….”

“그때 그 라파엘 짝퉁이로군! 충분히 인상적이었지. 자 가자! 어디서 시작하지? 내 검은 어디 있지?”

바알이 와하하 웃으면서 제니를 붙잡고 달려 나갔다.

아니, 당신이 잡혀가면 어떡해.

억제할 수 있는 것 맞나?

에리나가 빨리 도착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겨우 시간이 남네. 도시락이나 만들어야지.”

파라켈수스는 잠깐 갔다 오더니 아주 초췌해져 있었다.

실제로 부활 스택이 한 번 나갔다고 한다.

“처음에는 약간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현재 왕국에서 레미의 입지는 아주 높다.

그것을 노렸을 확률이 크다.

신들이란 어떻게든 노련한 유배자이며, 따라서 꿍꿍이가 없는 편이 더 이상하니까.

“그래도 확실히 진심이란 말이지.”

진심이다.

레미의 약삭빠름을 싫어하는 사람도 제법 많았지만, 파라켈수스는 그 반대다.

오히려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진짜로……. 진심이란 말이지.”

살아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집무실에 찾아와 손을 꼬옥 잡더니 애처롭게 웃은 것이었다.

“후. 얼굴이 깡패야. 깡패.”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가더라.

다시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진다.

대단한 요리를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맛있을 것이다.

도시락에는 레미의 모발이 들어갔다.

꽃잎 요정의 신체는 그 자체로 최상의 식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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