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542화 (542/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542화

심연 2857층 - 구원자(4)

사태는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생환한 요원들의 보고가 당도했다.

기사단장 전사.

그 순간엔 모두가 신음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있었다.

하이브 마인드 붕괴.

한순간 멈칫한 후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비보보다도 더 큰 낭보였던 탓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그 사실에 대해서는 요원들도 함구했으며 미군 수뇌부도 묻지 않았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어쩌면 인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나타난 불합리한 구원자 그 자체였다.

그걸 더 파고들자 하는 이들은 있었으나 더 자세히 아는 이들에게 제지되었다.

어차피 지금 중요한 것은 그의 정체 따위가 아니다.

“그럼 지금 시작된 공세는 하이브 마인드를 잃은 탓인가.”

“기사단장이 이번만큼은 틀려 버렸군.”

최악이긴 했다.

* * *

* * *

우주에서 몰려오는 것들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이건 싸움의 영역이 아니다.

그저 대피해야 한다.

방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다.

저 벌레들은 애초부터 그 압도적인 물량으로 지구를 정복했다.

상대가 불가능한 존재가 아니라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존재인 게 문제였다.

어느 오버시어의 경우는 단 한 개체가 지휘하는 개체의 숫자가 인류 전체보다 많았다.

“군인들이 희생해야겠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전선에 나선 장군들과 지휘관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꼬리를 잘라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막다가 죽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 후퇴해 보아야 늦었다.

그럼 그저 다 죽을 뿐이다.

각지에 건설하고 있던 만약을 대비한 방공호들이 있다.

벌레들은 이 잡듯이 쓸고 지나가지 않는다.

너무 깊숙이 숨은 대상을 굳이 파헤치기보다는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을 터였다.

물론,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면 지하까지 파헤치기 시작하겠지.

그러면 파괴되는 방공호도 있을 거다.

끝끝내는 모두가 여기서 끝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저것들이 마침내 떠날 어느 날이 온다면 그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

대통령은 말했다.

“일단 뭐, 우리는 그날을 보지 못하겠군.”

회의실의 사람들도 미소 지었다.

그들의 가족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 대가로 본인은 마지막까지 지상에 남아야 한다.

그렇게 정했다.

“마지막 일을 좀 해보자고. 우선 대피시킬 시간은 충분할 것 같으니까.”

임시 방공호도 많다.

그곳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일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지상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군대가 움직이고 몇 년간의 소강상태에서 느끼던 평화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덴버를 탈환한 보람이 없군그래.”

“잠깐이나마 희망을 보았으니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기계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므로 많은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이동하세.”

각자 할 일을 하러 움직인다.

비축한 식량을 방공호로 돌린다.

다른 지역의 생존자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린다.

벌레들의 눈에 띄지 않게 은폐하는 법도 많이 연구했다.

“검정색 도색이라고 했나?”

“그러더군요.”

“해보지 뭐.”

최후까지 며칠이나 더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면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대통령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원래 같으면 지금쯤 임기를 끝마치고 골프나 치고 있었을 건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담.

그리고 대통령은 혼자서 조용히 생각했다.

기사단장이 죽어?

흠.

그거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가장 가까이서 그를 보고 놀랐던 이가 대통령이다.

처음 느꼈던 그 알 수 없는 감각을 기억한다.

불과 며칠 만에 그런 임팩트를 남긴 괴물이다.

그래 괴물.

우리 괴물이었다.

하이브 마인드는 어떻게 재낀 거지?

비현실적인 괴물이긴 그쪽 역시 마찬가지지만 솔직히 말해 과학의 범주 안에 있긴 하다.

인류가 미처 닿지 못했을 뿐인 어딘가에 있는 생물학적 괴물이다.

그런데 기사단장은 그런 존재였나?

누구도 기사단장을 캐고자 하지 않는 제일 큰 이유.

그냥 대놓고 말이 안 되는 것들을 보여주어서다.

검격이 대체 어떻게 10미터씩 뻗어나가나.

차라리 마술이라고 생각하고 트릭을 찾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그냥 그게 일어났다.

남극은 어떻고?

하이브 마인드가 죽었다고?

지랄 똥 싸는 소리.

그게 그렇게 번쩍 하고 핵보다 센 걸로 죽을 수 있는 거야?

아니, 말 같지가 않지 않나.

뭘 한 건지 묻지 않음은 동시에 기사단장이 죽었을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

“확실히, 뭔가 서둘러 하고 떠나려는 사람 같았지.”

그래. 그냥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미쳤나 보군.”

세상이 미쳐 있으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그가 그러길 원한다면 그런 것으로 만들어줘야 한다.

어딘가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인지 잘 모르겠는 무언가가 인간 편을 들고 있으니 거스를 이유는 또 무엇인가.

“뭐 좀 더 해봐. 이 친구야.”

대통령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벌써 며칠을 못 감은 것인지 잔뜩 떡져 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하늘에서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게 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확실한 것은 그게 지구 상공의 어느 위치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구가 자전함에 따라 해처럼 지고 다시 뜨는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식인가?”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한 모양새였다.

거대하고 둥근 어둠 주변을 환한 빛이 감싸고 있다.

조금 더 천문에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그게 일단 일식은 아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해는 저기 있어.”

“달도 저기 있군.”

사실 천문 지식도 필요 없다.

그건 해도 달도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금환 일식과도 닮았기에 다들 적당히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어차피 급박한 와중이었다.

달과 화성에서 벌레들이 출발했다고 한다.

유지되던 질서의 귀퉁이가 무너졌다.

살인 약탈 방화 따위의 무질서가 어느 곳에서는 번져 나간다.

그래도 아직 문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일단 정부를 신뢰했다.

최근에 뽕을 최대로 채워둔 탓도 있다.

기사단장이라는 기묘한 이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그리고 하이브 마인드의 죽음 역시 발표된 덕이기도 했다.

비보와 낭보가 온통 뒤섞인 혼란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정부는 이 지경이 되고 나서 오히려 평화롭던 시절보다 신뢰를 받고 있었다.

죽음을 실감할 수 있는 지난 11년 덕이다.

그나마 살아 있는 것이라도 윗사람들이 노력한 덕이라고 다들 깨달아 버린 탓이다.

적지 않은 수의 불운한 이들을 남기고, 그럼에도 다수인 문명인들이 지정된 곳으로 대피한다.

당연히 자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버지들은 바깥에 남았다.

나이든 노인들도 바깥에 남았다.

너무 사람이 많거나 방공호가 작았던 지역에서는 어머니들도 바깥에 남는다.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려는 이들도 있었다.

시민들 선에서 제압되었다.

차라리 재앙 직후라면 모를까, 이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왔던 이들은 여러 가지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들뿐이다.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미래를 남길 극소수의 어른들만이 방공호에 자리를 잡았다.

아주 수많고 다양한 감정의 격류가 터져 나온 후, 바깥에 남을 이들은 방공호 밖에서 살아보고자 노력했다.

그냥 죽을 수는 없으니 별수 없다.

그랜드 캐니언 같은 황무지로 이동하거나, 아예 바다에 배를 띄워 떠난다.

각자 그렇게 준비하고 노력했다.

그것도 거의 꼬박 하루는 걸렸다.

사실 경이로울 정도로 빠른 것이다.

처음 겪어본 일이 아닌 탓이었고 그런 세상인 탓이었다.

바쁘게 움직이느라 하늘을 볼 정신이 없었던 어른들을 대신해 아이들이 무언가 눈치챘다.

“엄마!”

“왜 그러니?”

“저기 좀 봐요! 커졌어요!”

그제야 어른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일식이라고 퉁 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하늘의 이상 현상이 누가 보더라도 더 커져 있었다.

“꿈틀거려요!”

“정말이구나.”

그래도 그게 뭔지 알 수 있는 이는 없다.

혹자는 잠깐의 짬을 내 망원경을 들이대었다.

“덩어리 같은데.”

“어둠이 덩어리진다고? 그게 가능해?”

“뭔들 불가능하겠어.”

“벌레 놈들 짓인가.”

“아니, 또 뭘 하려고…….”

좋은 일일 거란 생각이 들긴 힘든 무언가였다.

다들 한숨이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일식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정도 이상의 고위 마법을 자유롭게 다루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정령이다.

그것도 정령왕급이 있다면 더더욱 좋다.

실피드는 미아에게 가 있으니 내가 실피드를 사용할 수는 없다.

그럼 나는 무엇을 꺼내는가.

오래전에 솔로몬과 연구했던 항목 하나를 실험해 볼 생각이었다.

효율적이진 않아 폐기했으나 지금 같은 환경이면 가능할 수 있다.

우선 어둠을 고도로 응축하며 노심화시켜 마구 돌린다.

증식하는 어둠과 바깥에 널려있는 수많은 어둠을 다시 또 모아낸다.

어둠에 노출되지 않게 주의해야 했다.

요즘 멘탈이 영 좋지는 않아서.

“이야. 이게 되네.”

아주 특수한 환경이어서 가능했다.

이 세계에, 어쩌면 이 우주에 마법 사용자는 나밖에 없다.

고로 마법에 대한 인식을 가진 것도 나뿐이다.

이 세상은 내가 인지하는 대로 돌아간다.

문득 생각하건대, 신화 속에서 신이라 불린 존재들은 마법사였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마력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전사들이었거나.

수천만의 인식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빚어낸 마법이라는 현상이 아니라 단 한 명만이 인지하고 있는 마법.

그렇다면 그 마법사는 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힘을 휘두를 수 있다.

지금도 우주의 공허를 향해 손을 뻗는다.

거대한 어둠이, 그 누구의 의지도 개입하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의지에 속박당하는 원소들이 빨려들어 온다.

“이제 제어할 녀석이 필요하겠지.”

정령이 없다면…….

만든다.

나는 어둠의 중심부를 빠져나와 작업을 시작했다. 크래프팅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어둠이 부재하여 생긴 빛의 원소를 그릇 삼아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이윽고 구형으로 덮자 또 하나의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눈부셔진다.

미아처럼 원소를 보는 시야를 의식적으로 가동시킨 상태에서 더더욱 집중한다.

뭉치고 또 뭉친다.

그리고 그 안쪽에 의지를 깃들인다.

정령은 본디 자연스레 발생하는 원소의 권화다.

오랜 세월 간 어디서 응축되면 탄생하는 하나의 현상.

그러면 그 존재가 이미 마법이라 부를 수도 있다.

마법은 마법사가 구사할 수 있으니 마법이다.

어둠이여 있으라.

그 가운데에서 무수한 어둠의 응축을 통해 육신을 얻은 무언가가 탄생한다.

“후, 정령왕? 아슬아슬하게 그 급인가?”

나 홀로 마법사니까 별게 다 가능해지는군.

정령계라는 게 만들어지기도 전에 단독으로 탄생한 어린 정령왕이다.

계약의 과정 따위도 없다.

이건 내 피조물이다.

이름을 붙여야 한다. 이름은 마법에서 많은 의미를 가진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이름을 주었다.

“넌 지금부터 ‘오르골’이다.”

내 이름이 아니다.

여길 지키려던 어떤 악인의 이름이다.

애초에 내 오르골은 닉네임이라고.

갓 탄생하여 자아가 희박해도 너무 희박하다. 솔로몬과의 연구대로다.

억지로 만들어진 인공정령은 그 기능만큼은 하되, 정령다운 정령이 되긴 힘들 거라고.

그래도 어찌 기능은 할 수 있을 터.

연결이 이어지고 원소 제어 능력과 마법 연산 처리 능력을 확인한다.

“정령왕 치고는 되게 아쉽네.”

어린 실피드 정도만 되었어도 이 우주의 어둠을 그대로 휘둘러 저 벌레들을 수장시킬 수 있었을 텐데.

정령왕 자체로서의 기능은 아직 발휘되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원소제어는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정령왕다운 스케일은 아니다.

그래도 연산 보조는 얼추 쓸 만하다.

“자자, 김오르골이여. 세상을 구해보자.”

썩어도 준치라, 임시 정령왕도 정령왕이다.

나홀로 어둠을 수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힘이 모여든다.

이제 노심으로 따로 만들려고 심혈을 기울일 필요도 없다.

회전을 주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마력로가 완성된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힘들을 모조리 차출하여 술식의 일부로 만든다.

내가 방향을 지시하면 자아조차 없는 정령이 그것을 채워 나간다.

그것이 어떤 것이냐면.

“추억이군.”

1년 전을 추억이라고 느낄 수 있는 나 자신에 우선 놀라며, 실피드와 처음 계약했던 순간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근데 스케일이 너무 다르잖아.”

이제 혼잣말할 정신도 없다.

색적과 탐지, 그리고 요격.

모든 것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그래도 한 번에 할 필요는 없다.

일단 가장 생존자가 많은 곳.

북미의 위험한 곳부터 처리한다.

습관적인 소매틱으로 손가락을 튀긴다.

짙은 어둠의 파문이 전지구를 뒤덮기 시작했다.

시작은 북미다.

북미 바로 위에서 시작된 파문이 온갖 정보들을 오르골에게 전달한다.

한번 처리된 후 내게 전달된 그 결과값을 다시 만지작거려 ‘되다 만 포식자’ 카테고리로 만들었다.

확실하게 구분되고 있는지 시험 사격을 해본다.

검은 빛줄기가, 모순되지만 너무 짙게 응축된 그렇게 보이는 광선들이 일부 지역으로 날았다.

잠시 후, 그것에 맞은 벌레들의 생명 반응이 소실된다.

“역시 나야. 잘하는군.”

파문이 북미의 가장자리에 도달할 때까지 지정 작업을 계속한다.

정령왕급을 다시 만들긴 어렵더라도 대정령이나 최상급 정령은 더 만들 수도 있다.

점점 나 대신 술식적 노가다를 수행하는 보조 장치들이 늘고 내게 가해지는 부담은 줄어든다.

탐지의 파문이 북미의 가장자리에 도달했다.

북미 내의 모든 벌레들이 색적 완료되었다.

정령이 죽이는 건 아무래도 내 킬이란 말이지.

미궁은 계약한 정령은 독립적인 객체로 인식해 주지 않는다. 슬픈 일이다.

일종의 소매틱으로서, 몸짓이나 태도는 마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대로 오른팔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검은 광선들이 빛의 구체에서 쏘아져 나온다.

장관이라면 장관이다.

그리고 크게 포물선을 그리면서 지상을 향해 비가 되어 내렸다.

구름이 단숨에 걷히고, 지표면의 민낯이 드러났다.

환하게 빛나는 지상을 향해 검은 빗줄기가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 궤적이 남아 있었다.

이미 방어선으로 들이닥친 포식자들의 위치상 밀집된 구간이 벽처럼 보였다.

인간을 보호하는 새장의 벽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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