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마녀(1)
“일단 며칠 정도 머물 예정이오.”
댈런은 양갈비 하나를 집어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양갈비는 이 주점에서 가장 비싼 요리였다.
고기를 한 번 얕게 훈연한 다음, 약초에 감싸서 네 시간을 쪘다고 하던가.
댈런은 음식을 내온 종업원의 설명을 되새겨보며 갈빗대를 끝에서 끝까지 한 입에 훑었다.
“음.”
부드럽게 찢어지는 살결 사이로 입안 가득 육즙이 흘러나온다. 양고기 특유의 잡내는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약초의 은은한 풀뿌리 향을 짙게 머금은 육즙이 입안에서 감칠맛을 돋궈주었다.
“며칠이라도 쉰다니 다행이구만. 쉴 땐 확실히 쉬어줘야 하네. 특히나 이번처럼 긴 여정을 전후로는 더더욱 그렇지.”
볼크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양갈비를 더 시켰다. 그리고 본인도 갈빗대 하나를 집고서 물었다.
“그럼 두 사람은 계속 동행하시는 겐가?”
“예. 댈런이 성기사단의 의뢰를 받고 있는 동안은 함께할 예정입니다.”
대답한 건 댈런이 아니라 루시아였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옆을 쳐다봤다.
댈런은 입안 가득 고기를 우물거리며 다음 갈빗대로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시선을 받은 그는 눈썹을 슬쩍 올리더니, 다시 말없이 고기에 집중했다. 이 집 양갈비 참 맛있게 하네.
“성기사단의 의뢰라니? 혹시 나도 들을 수 있겠나?”
볼크마가 눈을 반짝였다. 루시아는 난처한 듯 고개를 저었다.
“의뢰의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예민한 사안인지라.”
“하긴, 성기사단의 의뢰라면 당연히 그렇겠지. 미안하네. 내가 주제넘었어.”
볼크마는 빠르게 사과했다. 그리고 그즈음 종업원이 양갈비 요리를 새로 내어왔다.
어느새 갈비 세 개째를 헤치운 댈런은 자연스럽게 새 접시로 손을 뻗었다. 금방 나오는 걸 보니 비싸도 인기가 많아, 미리 조리해두는 듯 보였다.
세 사람은 그렇게 식사를 계속했다. 테이블 위에는 양갈비와 스튜, 고기 파이, 맥주가 끊임없이 채워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볼크마는 말이 많아졌다. 도수 낮은 맥주 한 잔에 취해버린 것이다.
상인들이 쏟아지는 바람이 공급이 많아져 도시 물가가 내려갔다느니, 곧 열릴 특별 경매에 만드레이크가 무려 세 뿌리나 올라올 거라느니.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죄다 상인들이 좋아할 법한 내용뿐이었다.
까마귀 둥지에서 그 주사를 한 차례 경험해본 댈런은, 별 대답 없이 묵묵히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애매하게 중간에 끼인 루시아만 곤란해할 뿐이었다.
취한 상인의 수다에 적당히 맞장구쳐주다보니, 그녀는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닌 꼴이 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얼굴이 홍당무처럼 물든 볼크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하하! 그럼 나는 먼저 올라가 보겠네. 하루쯤 여독을 풀고 내일부터 제대로 일을 시작해봐야지. 점심값은 내 앞으로 달아뒀으니 원하는 만큼 먹고 마시다가 쉬러 가게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여관 위층으로 올라가는 상인.
댈런은 그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종업원을 불러 양갈비와 비싼 병술 하나를 추가로 주문했다.
그때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할 일이라는 게 대체 뭡니까?”
미궁도시를 떠나기 전, 댈런은 르비바흐에서 해야할 일이 있다는 걸 그녀에게 미리 말해두었다.
그게 정확이 어떤 일인지 아직까지 말하지 않았을 뿐.
댈런은 싹싹 발라먹은 갈빗대를 그릇 위에 올려놓고 대답했다.
“마녀를 죽일 것이오.”
루시아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
“마녀······?”
한 박자 늦은 반응. 댈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대번에 당황한 얼굴이 되어, 곧장 경계 어린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점심때가 넘어가는 여관 주점은 시끄러웠다. 그들에게 신경 쓰는 시선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하나밖에 없었다.
“양갈비 약초 찜과 르비바흐 특산품인 약주 나왔습니다. 약주는 도수가 높으니 물에 조금씩 타서 드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달칵.
접시와 술병, 나무잔 두 개를 내려놓은 종업원이 빈 그릇들을 모아서 가져갔다.
그가 사라지자 그 시선 하나마저도 사라졌다. 루시아는 긴장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말씀하신 게···제가 아는 그 마녀 맞습니까?”
“맞소.”
퐁.
마개를 따자 씁쓸하고 독한 향취가 코를 찌른다. 댈런은 씩 웃었다. 이거 맛있겠네.
“만드레이크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식물이지.”
쪼르륵.
댈런은 잔에 술을 따르며 운을 띄웠다.
“특유의 붉은 꽃이 피어나기 전에는, 경험 많은 약초꾼들이라도 잡초와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오. 사실 큰 상관은 없는 일이지. 꽃이 피지 않은 만드레이크는 아직 덜 자란 상태고, 약초로서의 효능이 아예 없다시피 하거든.”
“만드레이크 한 뿌리가 나온 곳에서는 못해도 주변에 서너 뿌리가 더 자라게 된다······. 그게 그런 뜻이었군요.”
“···의외인데. 요즘 성기사단에서는 그런 것도 배우시오?”
루시아는 살짝 웃었다. 그녀가 말했다.
“본단의 도서관에서 읽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독서광 기질이 좀 있었거든요.”
“그렇군.”
댈런은 짧게 대답하곤 잔을 기울였다.
르비바흐의 약주는 독한 술이었다.
술기운이 식도와 위장을 따라 내려가며 뜨겁게 덥히고, 약초 특유의 씁쓸하고 살짝 역한 잔향이 입안에 감돌았다.
“르비바흐는 원래 약초로 먹고 사는 도시요. 그런 이곳에서 만드레이크가 한 해에 몇 뿌리 정도 나는지 아시오?”
“두세 뿌리쯤 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약초의 도시라도, 원체 귀한 약초 아닙니까?”
“맞소. 대충 그쯤 되지. 그런데 근 한 달간 르비바흐에서 발견된 만드레이크가 얼마나 되는지 들었소?”
“성문 앞에서 오십 뿌리가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습니다.”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놓고 퍼진 소문만 그 정도요. 대륙 각지에서 상인들이 이토록 많이 몰려왔다는 건, 사실은 그 이상이라는 소리고.”
“그렇다는 건······.”
“숲에 피어난 만드레이크는 못해도 수백 뿌리. 풍년이 아니라 재앙이라 불려야 될 숫자일 거요.”
루시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만드레이크는 전설적인 효능으로 유명한 약초였지만, 동시에 뽑혀나 죽음을 맞이할 때 비명을 지르는 괴이한 식물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 비명에 실린 마력은, 듣는 이의 심장을 파괴하는 주문 그 자체.
수백 뿌리가 동시에 비명을 내지른다면, 숲 근방의 모든 이들이 몰살당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수백 뿌리가 단번에 뽑히는 일은 없겠으나, 그럼에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상황.
댈런은 술을 다시 따랐다. 그가 말했다.
“내가 알기로 이 근방에는 마녀가 한 명 살고 있소. 그것도 다른 마녀들에 비해 유독 인간에게 독기를 가득 품은 마녀지. 때 아닌 만드레이크 풍년은 아마 그녀가 벌인 짓일 테요.”
“그러면 당장 잡으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루시아가 벌떡 일어났다. 댈런은 피식 웃었다. 그가 반문했다.
“그 마녀가 어딨는 줄 알고?”
“그야 만드레이크가 발견된다는 숲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다짜고짜 그 숲으로 쳐들어가자?”
댈런이 웃으며 물었다. 그 웃음에 당장 그러자고 하려던 루시아가 말을 멈췄다.
그녀가 아는 마녀는 날 때부터 술사로서 완성된 존재였다.
재능과 노력으로 빚어진 초인들을, 혈통의 힘 하나만으로 압도하는 괴물들.
그리고 술사들이 무언가 일을 꾸밀 때, 자신의 영역을 수많은 주문과 함정으로 철저하게 방어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일이다.
즉 이대로 숲에 쳐들어가봤자, 마녀가 준비해둔 주문들에 휘말려 목숨이 위험해질 뿐이라는 소리.
설령 운이 좋아 그 주문을 죄다 뚫고 마녀의 심처에 도달한다 해도, 정작 마녀는 여유롭게 자신만의 탈출구를 통해 빠져나간 뒤일 테였다.
“···어렵겠군요.”
루시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로서는 딱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댈런은 다시 한 번 잔을 채우며 말했다.
“마녀에게 접근하는 법이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루시아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댈런은 낮게 웃으며 여관 창문을 고갯짓했다.
아직 해가 중천에 걸려, 햇살이 창살 사이로 쏟아져들어오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 되면, 마녀나 흑마법사들이 활동하기 딱 좋은 시간이 오니까.”
***
날이 저물었다. 댈런과 루시아는 도시의 뒷골목으로 향했다.
르비바흐는 작은 도시. 뒷골목의 규모 역시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도 요 근래 도시를 찾은 외지인들이 부쩍 늘어난 탓에, 뒷골목 상권 또한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자, 돈 놓고 돈 먹습니다! 주사위 눈금만 맞추면 은화가 금화로 바뀌는 마법!”
“거기 오빠들, 우리 가게에서 잠시 쉬다 가!”
창관과 불법 도박장, 마약상이 뒤섞인 홍등가를 지나, 두 사람이 다다른 곳은 한 허름한 건물 앞이었다.
“여기입니까?”
루시아가 물었다.
그녀는 품이 넓고 어두운 로브로 온몸을 가린 상태였다.
더불어 흑마법사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신성력을 감추기까지 했다.
‘그림자에 스며드는 빛. C등급 스킬이지. 기사단에서도 심문관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고.’
심문관들의 주 임무는 기사단 내부의 악을 추적해서 척결하는 것.
그 특성상 스스로가 성기사임을 노출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도 오기 마련이다.
신성력을 감추는 이 기술은, 게임에서도 루시아와 함께 잠입 임무를 하면 이따금씩 볼 수 있는 스킬이었다.
‘역시 스킬 C등급인가.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하군.’
로브로 온몸을 가린 루시아를 보며 댈런은 생각했다.
감각이 에민한 그마저도, 루시아에게서 평소 은은하게 느껴지던 기운을 감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라면 어떤 기운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루시아의 자세와 호흡으로 그녀가 실력있는 검사임을 눈치챌 수 있을 테였지만.
‘흑마법사 나부랭이들이 그런 눈썰미를 가졌을 리는 없지.’
댈런은 그렇게 생각하며 문고리를 잡고 세 번 두드렸다.
쾅쾅쾅.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안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리고 문 위쪽에 달린 작은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창문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게슴츠레 눈을 뜬 뻐드렁니 남자였다.
그는 댈런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흐아암, 누굴 찾나? 미리 말하지만 여기는 여자나 마약을 파는 곳이 아니야.”
하품까지 섞어가며 귀찮음을 다분히 묻어내는 말투.
눌러붙은 눈곱을 비벼 떼는 남자의 외견은, 별 특별할 것 없는 뒷골목의 거주민처럼 보였다.
그러나 초인의 경지에 접어든 마력 수치와, 옛적부터 그 경지를 넘어선 감각 수치는 분명히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불길한 마력이 남자의 주위를 멤돌고, 흐릿한 혈향과 시약의 냄새가 예민한 후각을 자극한다.
남자가 누구인지는 단박에 답이 나왔다.
‘흑마법사.’
당연한 일이다.
댈런이 방문한 이곳은, 이 도시에서 흑마법사들이 모여 자신들의 재주를 파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
동시에 재의 마녀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까지, 스스로의 정체를 숨기고 거처로 삼은 곳들 중 하나였으니까.
댈런은 괜히 코를 긁적거렸다. 그리고는 약간 어눌한 말투로 남자에게 물었다.
“그, 여기에 점을 잘 치는 노파가 있다 들었는데. 내가 잘못 온 건가?”
뻐드렁니 흑마법사는 미간을 슬쩍 올리더니,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쪽 손님이셨군.”
드르륵.
창문이 닫힌다. 곧이어 안쪽에서 자물쇠며 걸쇠를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무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어서 들어와. 안에서 이야기하지.”
뻐드렁니의 흑마법사는 슬슬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댈런은 문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문 안쪽은 어두웠다. 횃불 하나 없이, 복도인지 넓은 방인지도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댈런은 그 어둠이 두려운 듯 주춤거렸다.
그건 마치 흑마법에 대한 공포가 만연한 북부 출신의 어느 야만인과 같은 태도였다.
“······.”
그리고 루시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의 옷자락을 잡고 따라왔다.
여관을 떠나며 미리 정해둔 각본.
야만전사와 그를 따르는 낡을 로브를 걸친 하인으로서의 연기였다.
“흐흐흐. 그쪽 하인은 주인님한테 충실하게 붙어있는 강아지 같군.”
흑마법사가 루시아의 몸을 훑으며 말했다. 댈런은 로브 소매에 가려진 그녀의 손에 힘을 꽉 들어가는 걸 느꼈다.
“킁킁. 젊은 여자 냄새가 나는데. 그냥 하인으로 두기에는 아깝지 않아?”
“부족을 떠날 때 아버지가 물려주었소. 탐낼 생각은 마시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옷자락 잡은 손을 두어 번 토닥였다.
소리 없는 작은 한숨. 그리고 손에서 살짝 풀어지는 힘.
방금 목숨의 위기를 넘긴 줄도 모르는 흑마법사는, 두 사람이 실내로 완전히 들어서자 문을 쿵 닫았다.
그리고 다시 걸쇠와 자물쇠를 채우며 말했다.
“노파는 한동안 자리를 비웠어. 하지만 점 치는 일이라면 나도 좀 할 수 있으니까, 괜히 돈 안 내고 나갈 생각은 하지 말라고. 북쪽에서 온 손님이라면 흑마법사의 저주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잘 알겠지?”
히죽거리는 어조로 하는 말은, 회유인 동시에 분명한 협박.
그리고 문이 완전히 잠기자마자, 칠흑같던 어둠이 물러가고 넓은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앗―
타오르는 모닥불과 천장에 군데군데 박힌 마력석.
창문 하나 없이 사방을 둘러친 벽돌 벽에 폐쇄감이 느껴짐에도, 답답함이 없을 정도로 널따란 방의 면적.
외부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이 방은, 건물의 지하에 지어진 공간이었다.
본래라면 서로 이어져있지 않은 지상과 지하의 두 공간.
흑마법사들의 비밀스러운 거처답게, 문이 열리고 닫히는 걸 트리거 삼아 작동하는 결계진만이 두 공간 사이를 오갈 수 있는 통로였다.
“뭐야, 뻐드렁니? 개장하자마자 손님이냐?”
“덩치 큰 손님이네. 어서 와. 운명의 솥 앞에서 새끼 손가락을 걸고 미래를 맞춰보는 건 어때? 킥킥킥.”
넓은 방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치 약방처럼 약병과 서적들을 뒤에 쌓아둔 채, 카운터에 기대선 노인.
돗자리를 깔고 금이 간 수정구를 만지작거리는 대머리.
가마솥을 저으며 뭔가 이상한 색감의 스튜 비스무리한 걸 만들어내고 있는 산발머리 여자 등등.
그 앞에서, 댈런은 슬며시 웃으며 감각을 확장해나갔다.
마녀가 설치해둔 결계로 인해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와 문이 잠긴 순간, 결계 내부에 들어선 그의 감각은 제약에서 자유로워졌다.
그의 예민한 감각이 공간 전체를 훑고, 그 안에서 흐르는 마력의 바람을 느껴낸다.
뻐드렁니의 말이 맞았다.
재의 마녀는 여기 없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라곤 작은 도시에 빌붙어 사는 어중이떠중이 흑마법사들뿐.
더불어 흑마법사들이 막 활동을 시작할 시간대여서 그런지, 어중간하게 피해를 볼 손님들 역시 한 사람도 없었다.
“자 그럼, 우리 야만인께 필요한 행운이 뭘까···응?”
문을 완전히 잠그고 돌아선 뻐드렁니 흑마법사는, 댈런의 입꼬리에 맺힌 사나운 미소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함을 느낀 그는 뭐라 말하려 입을 열었다.
그러나 댈런의 손은 그보다 조금 더 빨랐다.
“커허억···!”
두툼한 손아귀가 뺨을 한 차례 훑어내자, 흑마법사가 털썩 엎어지며 부러진 이빨과 핏덩이를 우수수 쏟아낸다.
순간 얼어붙은 방 안의 공기.
댈런은 반쯤 실신한 뻐드렁니의 머리를 지그시 밟으며 말했다.
“인내하느라 고생했소. 이제 성기사의 본분을 다해도 좋소.”
루시아는 말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녀의 로브 틈 사이로 새하얀 빛이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