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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80화 (179/1,559)

# 18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4화

새카만 어둠 속에서 엘프들은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마치 시력이 멀어버린 것처럼 한 치 앞도 느낄 수도 없는 어둠은 그들로서도 처음이었다.

시력이 멀쩡한 자는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는 이상 시력을 잃었을 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시각이란 생명체에게 있어서 가장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단이다.

그런 수단이 일순간에 봉인 당했으니 결과는 뻔했다.

히히히히히히!!

그때였다.

그들의 귓가로 섬뜩한 여성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스르륵

"흐읏?!"

촤악!!

순간적인 살기와 기척에 놀란 에이션트 가드 하나가 급히 레이피어를 뽑아 휘둘렀다.

비록 그들이 소드마스터는 아니지만, 단순히 파괴력을 올리는 것이라면 그들도 할 수 있다.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히히히히히히히!!

하지만 끔찍한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고 그들의 귓가에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이, 인간의 사...... 사술이다! 현혹되지 마! 시각을 포기하고 마나를 찾아라! 분명, 이 근처에 있다!"

"신목의 어머니를 지켜라! 절대 손가락 하나도 대게 두지 마라!"

가장 먼저 상황을 판단한 사내가 급히 소리쳤다. 보이지 않는 시야를 어떻게든 확보하려고 허둥거리는 것보다는 확실히 그게 좋을 것이다.

그런 큰 외침에 다른 이들도 정신을 차린 듯 동조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스르륵.

"흐억?!"

퍼억!

어둠 속에서 기척도 없이 날아든 무언가가 누군가를 때려눕혀 그대로 쓰러뜨렸다.

"인간이건 드워프건 엘프건 다 똑같은 지성체인데. 너희들은 뭐 풀만 먹고 산다고 공포를 느끼는 감각도 다른가?"

마치 놀리는 듯한 질문이었다.

"지금 너희가 대화하고 있는 게 너희 편인 건 맞냐?"

그 말과 동시에 섬뜩한 무언가가 그들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에서 닿는 접촉은 상상 이상의 경계를 불러일으킨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에이션트 가드들이 눈을 부릅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너희를 지켜줘야 할 세계수도 침묵하고 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드나? 사실은 너 지금 너 혼자 남아있는 걸지도 모르는데."

말끝을 흐리기가 무섭게 서늘한 한기와 정체 모를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다.

오싹한 소름이 돋은 엘프들의 표정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마치 놀리는 듯한 발언에 에이션트 가드들의 굳건한 정신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 * *

"뭐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우선 이쪽부터 처리할 테니까 좀 기다려 줄 수 있나?"

담담한 내 질문에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던 여성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정말 상상 이상으로 신비로운 아해구나. 여도 제법 놀랐음이니, 뭐, 좋다. 여도 딸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니.]

"말은 잘하네."

그녀의 말에 나는 말없이 바닥에 쓰러진 밝은 갈색의 피부를 가진 여성을 살폈다.

가슴을 관통당한 치명상이다.

지독한 부상이라 당장 죽어야 할만한 그런 부상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어, 데이비.

기적적이라고 할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는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 불릴 만큼 처참했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이 젊은 나이에 종족 전체를 등졌나 몰라."

엘프의 나이를 가늠하는 것은 머리 끝단이 얼마나 가는지, 확인하거나 귀를 보면 알 수 있다.

분명 확인했던 아이나 헬리샤나의 나이는 대략 120대.

엘프의 수명이 인간의 수 배라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젊은 나이라 할 수 있다.

집념인지, 아니면 그녀와 계약한 어둠 속성의 정령이 출혈을 막고 있는 것인지.

정황만 보면 둘 다 해당하는 꼴이다.

실제로 그녀의 상처 주변엔 검은 기류가 넘실거리며 출혈을 막고 그녀의 찢어진 살점을 강제로 이어붙여 부상의 심각함을 막아내고 있었다.

파괴를 즐기는 성질을 지닌 어둠 정령이 이렇게 계약자를 살리고자 필사적인 경우는 나로서도 조금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아이들에게 건 마법은 일반적으로 인간이 익히고 있는 마법이 아니로구나, 이 느낌은...... 사이한 흑마법이로고.]

여성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5명의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균형 감각까지 잃어버려 그대로 쓰러진 그들은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을 뱉으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8서클 흑마법]

[피어]

효과는 간단하다. 마법 저항이 낮은 이들의 오감을 뒤흔들어 혼란을 주는 저주계통의 환각 마법이다.

흑마법사를 상대할 때 위험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자연의 흐름을 조종하고 연구하는 원소마법과 다르게 흑마법은 좀 더 현실적으로 생물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그런 만큼 효과가 파괴적인 것보다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육체에 간섭하거나 정신에 간섭하는 류의 마법이 많다.

저들은 분명 어지간한 마법이 통하지 않는 마스터급 존재들이지만.

지독한 맹신을 가진 이들은 어떤 부분에 한해서 상당히 심약한 편이다.

실제로 바닥에 쓰러진 그들은 간헐적으로 비명을 지르고 발작을 일으키며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보여준 오감의 혼란과 환각은 단 한 가지.

지독한 어둠 속에서 홀로 떨어져 끝도 없는 미로를 헤메이는 현실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물론, 단순한 미로는 의미가 없으니 공격도 상식도 통하지 않는 그저 상상 속의 귀신을 투영해 붙여주었을 뿐.

평범한 생명체가 미치고 펄쩍 뛸 정도로 공포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다.

손에 머금어진 검은 사령마나가 난폭하게 움직이는 것을 가까스로 진정시킨 뒤 익숙하게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마치 오랜만에 자신을 사용한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듯 거칠게 포효하는 사령마나의 제어는 이전보다 더 어려워져 있었다.

불안정하지만 환골탈태를 겪은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쓰러진 아이나의 가슴 위에 손을 올린 나는 곧장 나를 경계하듯 내 손을 집어삼키는 검은 기류를 바라보았다.

-접근하지 마!

이윽고 검은 기류가 일정한 형태로 고정되며 작은 고슴도치의 형태를 취했고 절박한 외침을 뱉어냈다.

-떨어져!

"너나 떨어져라."

퍽!

현 상황 유지밖에 못 하면서 고집은.......

우웅!!

순식간에 정령왕과의 계약의 인이 스며든 정령마나로 밀어내버린 뒤 회복마법을 시전하자 처참하게 뚫려있던 상처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다만, 시간이 꽤 흐른 상황이기도 하거니와, 상대가 상대인 탓인지 완전한 회복이 되진 않았다.

의식을 잃어버린 채 침묵하고 있는 아이나를 적당한 곳에 뉘어둔 나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느긋하게 나를 구경하고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생각이 좀 있는 거목인 줄 알았거든, 조금 의외인데......."

[여의 행동과 생각을 이해하려 들지 말거라. 운명을 거스르는 아이야.]

"아이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세계수의 의지 교체는 최근에 되지 않았나?"

[여의 정신체는 300년은 더 되었음이니, 고작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수천 년을 살아가는 신목의 의지를 가늠할 것이 못 되는 일이지.]

담담한 그 말에 나는 침묵을 고수했다.

[하나 정말 놀랍구나, 여가 생각하고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아득히 뛰어넘지 않았는가. 그래, 너무 긴장하진 말지어니, 여는 그저 그대와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온 것뿐이니라.]

"대화, 대화라......."

낮게 중얼거리던 내 얼굴에 어이없음이 서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대화하겠답시고 함부로 쳐들어오나."

쿠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주변에서 튀어 오른 수많은 바위의 기둥이 나를 향해 파고든다.

동시에 내 등 뒤의 지면이 일순간 격변하기 시작했다.

"노아스, 파리채블로킹."

투쾅!!!

바닥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손이 가차 없이 바위기둥들을 박살 내는 건 순식간이었다.

게다가 거기에 멈추지 않고 이그드라실의 형체를 짓이겨버릴 듯 내리쳐졌다.

투웅!!!!

하지만 정령의 힘과는 다른 모종의 힘이 모여들며 거대한 흙벽을 만들어냈고 노아스의 일격을 받아낸 뒤 그대로 튕겨내 버렸다.

그그그그그극!!!!

역시 자연의 근원 중 하나인 세계수다웠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노아스는 내 요구도 잊은 채 거대한 형체를 만들어내며 이그드라실을 향해 일갈했다.

[세계수, 오랜 숲의 조율자여, 결국 미친 것인가?]

미묘하게 화가 난 듯한 정령왕 노아스의 목소리엔 노기가 담겨있었다.

자연 그 자체인 정령왕의 입장에서 자연을 지키는 종족인 엘프, 그것도 엘프의 구심점인 세계수가 오히려 자연을 파괴하려 했다는 게 믿을 수 없다는 태도였다.

[호오, 역시 노아스가 아닌가. 지고의 존재가 이 땅에 강림할 줄은 몰랐거늘. 태초 세계수의 의지와의 계약에 따라 정령왕급 존재는 그에 따른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만 강림하는 것이 이치일 터. 혹, 그 작은 인간 아이에게 속기라도 한 것인가?]

도발하는 듯한 그 말투에 노아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비록 존귀한 세계수라 해도 네까짓 젊은 세계수에게 품평을 받을 만큼 내가 가벼워 보였더냐.]

근엄한 목소리와 함께 압도적인 힘을 내뿜는 노아스의 격노.

가만두면 내가 나서기도 전에 노아스가 세계수와 말싸움하다 한쪽이 아작 날 것 같은 형태였다.

"노아스 물러나."

[계약자여.]

고집을 부리는 노아스의 모습에 나는 그저 웃음만 지어주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싸늘한 시선에 침묵하는 노아스를 뒤로 한 채 나는 눈앞의 여자를 지켜보았다.

[여의 이름은 이그드라실, 지고의 거목이며 세계를 떠받치는 기둥이니라.]

"데이비 올 라운이다."

[그래, 시원시원하여 좋구나.]

곱게 웃어 보인 그녀가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빛냈다.

[여가 어찌하여 자잘한 규칙을 어기고 이리 그대를 만나러 왔는지 알겠는가?]

그녀의 질문에 나는 말없이 페르세르크의 권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연녹의 빛뿐이었다.

-세계수는 신의 의지에게 이름을 부여받은 상위존재. 현재 본녀가 가진 힘을 빌리는 수준으론 그 속을 엿볼 수 없어.

권능을 막을 것은 권능뿐이라는 소리다.

세계수는 확실히 어지간한 기사들보다 육체 능력이 낮다.

아니 평범한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품고 있는 힘은 엄연히 기괴한 힘의 일종이었다.

심연의 권능이 처음으로 막힌 꼴이다.

"말을 안 하면 모를 일이지."

[쿡쿡, 어디 한번 예상해보는 건 어떠하느냐.]

"말해 무엇하나, 본인이 아니라고 잡아떼면 나만 등신이 되는 건데."

담담한 내 대답에 그녀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 웃어댔다.

[좋다. 이런 장난을 치기엔 여도 그리 시간이 많지 않음이니.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꾸나. 유리아, 그 아이를 돌려다오.]

누가 보면 내가 유괴한 줄 알겠네.

직접 찾아올 정도로 그녀의 존재가 중요했던 것인지.

"그 말을 하려고 서대륙에서 여기까지 직접 찾아오셨나?"

[호오....... 여가 서대륙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도 알고 있더냐.]

"생각보다 당신이 아는 것 이상으로 나는 많은 걸 듣고 봤거든. 대답은 거절한다. 유리아는 이제 하인스 영지의 영지민이 됐어. 세계수고 제국이고 내 허락 없이는 건드리지 못해."

[흐음. 곤란하구나.]

"곤란한 건 그쪽 상황이고, 아쉬울 게 없는 건 이쪽이야."

[참으로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로고. 확실히 노아스의 힘이 있다면 여의 권능중 일부는 막을 수 있을 테지. 어찌 인간이 대지의 지고지순한 존재를 불러냈는지는 의문이다만.]

담담하게 사실을 인정하는 그녀였다.

결국, 그녀는 별수 없다는 듯 조용히 말했다.

[아이야, 이번 일은 사적인 욕심을 떠나서 결코 그냥 넘겨선 아니 되는 일이니라.]

"사적인 욕심이라......."

[아이야, 너는 마왕이란 존재를 아느냐.]

"마왕?"

[그래, 3천 년 전 존재했던 대륙의 모든 존재를 공포로 몰아넣은 마왕이 하나 있었음이니.]

그녀가 마치 오래전의 이야기를 해주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마왕의 이름은 페르세르크. 대륙을 피바다로 물들였던 희대의 절대악이 다시 깨어나려 하고 있음이니, 오랜 시간 부활의 때만 기다려왔던 마왕이 가지고 있을 증오는 그 누구도 막지 못할 터.]

타이르는 듯한 그녀의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옆에 떠 있는 소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왕 페르세르크라고 하는데?'

-본녀라고 하는군?

반대로 나를 마주 보는 은발의 소녀는 나와 정확한 타이밍에 고개를 갸웃거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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