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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81화 (180/1,559)

# 18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5화

아주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그래, 이런 경우도 예상해볼 순 있다.

확실히 페르세르크의 존재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모를 수도 있다.

"크......크흡!"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게 통하는 게 아니다.

입을 틀어막은 채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나와는 반대로 정작 당사자인 전(前) 마왕님은 눈물까지 머금으며 폭소했다.

마왕 페르세르크가 부활하려 한다니.

증오로 똘똘 뭉친 마왕이 다시 깨어나는 순간 대륙은 피바다가 될 것이라니.

'정말 증오스럽냐?'

-꺄하하하하하!!!

페르세르크가 보이지 않는 이상 이그드라실이 보는 것은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내 모습뿐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웃긴 것이더냐?]

"아니, 뭐 됐어. 내 대답은 한결같다. 거절한다. 유리아는 이미 하인스 영지의 영지민이다. 마왕 같은 건 내 알 바 아니야."

그리고, 부활한다 하더라도 그녀는 이제 전쟁에 이용될 이유도 명분도, 제약도 없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튕겨 에이션트 가드들에게 걸려있던 환각마법을 해제했다.

"컥?!"

"후웁?! 하아......하아......"

동시에 숨을 격하게 들이켜며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고 싶으면 덤벼. 이쪽도 그쪽도 서로 타협할 여지가 없는 이상 남은 건 야만적인 무력 충돌뿐이겠지."

적대관계에서 타협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서로의 의지를 물릴 수 없는 입장이라면 남은 결과는 뻔하다.

제법 씁쓸한 일이다.

다만, 예상했던 결과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대는 왜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가. 절대악인 마왕 페르세르크가 깨어나면 그 분노를 그대가 감당할 수 있다 자만하는가.]

"애초에 이렇게 될 거 알았으면서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아, 이것도 해보고 싶었는데.

-또?

질렸다는 듯한 페르세르크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가볍게 무시한다.

"쫄리면 뒤지면 되는 거지."

에이션트 가드들은 아직까지도 내가 보여준 지독한 공포 속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했는지 눈물을 흘리고 침까지 질질 흘리며 숨을 헐떡거렸다.

자신들을 받쳐주던 무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숨 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지독한 상황 속에서 도망치고 또 도망쳤을 것이다.

아무도 남지 않은 어둠 속에서 믿을 것은 자신의 감각뿐이건만.

환각이라는 단어가 괜히 환각이 아니다.

그들은 평범한 인간 수준의 육체 능력을 가지고 전기톱을 들고 쫓아오는 지독한 괴물들 수십 명을 피해 정체 모를 미궁을 돌았을 테니 제정신을 유지할만한 작자는 그리 없는 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어서는 것조차 못한 채 숨을 헐떡이는 그들은 좀 전 아이나 헬리샤나를 몰아붙였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무력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짝!!

그때였다.

가만히 있던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화신체가 조용히 박수를 치며 주변의 공기를 뒤바꾸어놓았다.

"크흡?!"

"흡!"

동시에 패닉에 빠져있던 에이션트 가드들이 눈을 부릅뜨며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공포에 찌들어있던 그들의 몸은 아직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반대로 완전한 패닉에서 빠져나올 수는 있었는지 눈에 총기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아, 미안하지만 이 어미가 미흡하여 인간 아이를 설득하지 못했구나.]

그녀가 하는 말의 뜻은 간단했다.

"크흐......으읏......."

정신을 차린 듯 숨을 헐떡이며 이그드라실과 대치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에이션트 가드들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제 무기를 꺼내 들고 나를 견제하듯 에워쌌다.

와들와들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시키면서도 그들은 이 사태의 원흉으로 추정되는 내게 공포와 적개심을 내비쳤다.

[당장 널 죽일 확신은 들지 않는다만, 반대로 마냥 쉽게 당하진 않음이니.]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엘프들의 주변으로 연녹빛의 기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계수의 축복.

당연하다면 당연한 과정이었다.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파르르 떨고 있던 엘프들은 곧 내 행동에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무기들을 겨누었다.

일반적인 화살과는 다르게 정령석이 박힌 화살들이다.

단순한 화력만 논하고 보면 아주 작정하고 나를 죽이겠다는 심산이 보였다.

"인간....... 우리를 우롱한 죄는 반드시 처절하게 치러야 할 거다."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남성 엘프 하나가 레이피어의 끝을 내게 겨누었다.

동시에 나 또한 손에 들고 있던 레이피어를 그에게 겨누고는 천천히 뒤로 당기며 중얼거렸다.

"손에 마땅한 무기가 없으니 이거라도 빌리자."

내 말에 엘프 중 하나가 자신의 무기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허둥지둥거렸지만, 괜히 마스터급 존재가 아니라는 듯 단궁을 뽑아 들고 후위로 빠져나갔다.

"감히......우리 엘프의 무기를 사용하겠다는 것인가? 그것도 인간이?"

"레이피어가 언제부터 엘프의 전유물이 됐나. 혓바닥이나 놀리라고 내가 마법을 풀어준 게 아니야."

스트레스 발산을 해야겠으니 어서 덤벼라.

괜스레 난 짜증에 일격부터 물 흐르는 듯한 기수식이 잡혔다.

확실히 레이피어류의 무기는 근력이 약하고 속도가 빠른 이들에게 잘 맞는 무기다.

당연, 신체 근력이 인간보다 낮은 대신 유연하고 민첩한 엘프들에게 가장 잘 맞는 무기이기도 했다.

아이러니 한 일이다.

레이피어라는 무기를 만들어낸 건 인간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무기에 제대로 파고들고 더욱 심도를 쌓은 것은 엘프다.

과거의 그런 사실을 모르는 엘프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앞마당에 눈독을 들이는 인간이 고까워 보였을 것이다.

방금까지 자신들이 무엇을 당했는지.

또 내가 누구인지도 잊은 멍청이들의 최후는 간단했다.

실제로 그들의 자존심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저래 보여도 결국 저들은 신목에서 내로라하는 최정예들일 테니 말이다.

다만.

상대가 너무 나빴을 뿐이다.

단순한 찌르기의 자세.

하지만 내 자세는 살짝 낮아져 있었다.

실상 내게 레이피어에 대한 기술은 많지 않다.

내가 주로 다뤄온 무기는 거검이었고, 두 자루의 환두대도 형태의 검이다.

찌르기 형태의 무기는 내게 익숙지 않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검이란 결국 무기.

상대를 죽이는 데에 효율적인 방법이라면 결국 그 방식은 똑같을 수밖에 없다.

찌르고, 베고, 찢는다.

"감히 레이피어를 주로 다뤄온 내게 레이피어로 싸움을!"

"막지 마라."

담담하게 말한 내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괜히 막으려다 뒤지는 수가 있다."

[마령검 28초식]

[악귀나찰(惡鬼羅刹]

단순한 찌르기.

하지만 그 일 점이 향하는 곳은 반드시 상대의 틈을 비집는다.

밀리미터 단위 아래의 수준으로 정밀하면서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찔러지는 공격을 막고 싶다면 막아보시던지.

"흐읍."

숨을 짧게 고르는 나를 향해 파고들던 에이션트 가드 전위 중 가장 선두에 있던 사내가 급히 팔목에 차고 있던 금속 방패를 들어 올렸다.

막지 말라고 했던 내 경고를 반사적으로 무시한 그가 치러야 할 대가는 절대 가볍지 않을 것이다.

"막지 마라니까."

쩌엉!!!

진각을 밟듯 내딛어진 왼발이 지면을 강타하기가 무섭게 거대한 쇠울림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주변을 한번 밝힐 정도로 번뜩인 섬광이 일순간 고요하게 사라졌다.

명치, 미간, 비중.

정확하게 파고들었다가 빠져나온다.

하지만 정작 그 대상인 사내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듯 그대로 내게 덤벼들어 왔다.

당연, 관성의 법칙처럼 움직인 그의 공격이 내게 닿을 순 없었다.

내 앞에 당도하기가 무섭게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그의 무릎을 걷어차 부서뜨리기가 무섭게 힘없이 그의 육신이 무너져 내렸다.

"소......솔라 대장!"

"빌어먹을 놈!!"

무엇에 당했는지도 몰랐는지 내게 처음 달려들던 그때 그 표정 그대로 무너져 내린 엘프의 모습에 분개한 다른 엘프들이 사각으로 파고들 듯 내게 덤벼들었다.

아무리 세계수가 엘프 한정으로 뛰어난 회복술을 가지고 있다곤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

그것도 이미 죽어버린 엘프를 살릴 힘은 없을 것이다.

뒤이어 내 목젖을 관통할 듯 검을 내질러 들어오는 엘프를 보던 나는 피하거나 막는 것을 버리고는 그대로 파고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목을 살짝 빗겨내어 공격을 피해낸 나는 눈을 부릅뜬 채 다시금 나와 거리를 벌리려는 엘프 여성의 어깨를 틀어잡고는 이를 악물었다.

[마왕 유르그식 제어기]

[빡통깨기]

빠악!!!!

그리고는

-윽...... 보는 본녀가 다 아플 지경이군.

그녀의 머리를 부숴버릴 듯 그대로 그녀의 이마에 내 이마를 가져다 꽂아버렸다.

콰드득!!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또다시 한 명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가진 무력이 자신들의 예상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일까.

기겁한 마지막 전위 엘프가 급히 내게서 벗어나려 들었지만 이미 그의 뒤는 내게 잡힌 후였다.

뚜둑!! 뚜둑!!

"끄아아아악?!"

순식간에 어깨가 탈골되고 오금을 짓밟혀 제압당한 엘프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죽이지 않은 채 나를 향해 날아드는 무언가를 정확히 노리고 손에 제압했던 엘프를 들어 올렸다.

푸욱!!!

그리고.

섬뜩한 소리와 함께 정령의 힘이 머금어진 화살이 방패로 내세워진 엘프의 미간을 관통하고 후두부를 찢은 채 튀어나와 버렸다.

정령의 힘이 담긴 정령석이 꽂힌 화살은 정확히 내 비중을 노리고 파고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제 동료의 머리통을 관통해버렸다.

날카로운 화살 끝은 그의 머리를 완전히 관통하지 못했는지 내 코앞에서 힘을 잃고 멈춰져 버렸다.

"꺄악!! 매......맨비!! 안 돼!"

나를 견제하기 위해 쏘았던 화살이 제 동료의 머리통을 꿰뚫고 숨통을 끊어버렸기 때문일까.

활을 들고 있던 여성 엘프가 차가운 표정을 잃어버린 채 비명을 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젠장! 괴물 같은 놈!"

반대로 그나마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다른 후위는 급히 내게서 거리를 벌리며 화살을 다시 활시위에 메겼다.

"레이피어는 가볍잖아."

"윽?!"

"던지기에도 좋아. 잘 기억해뒀다가 다음 생에는 꼭 연습해두라고."

푸욱!!

활대에 화살을 두 개나 머금고 당장 공격을 퍼부으려던 엘프의 머리통이 마치 내게 잡혀 머리가 뚫린 엘프처럼 깔끔하게 사망했다.

결국, 남은 것은 제 동료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에 경악한 여성 엘프 하나.

마스터급 존재이니 상위 정령과의 계약자이니 그런 건 이제 그녀에게 상관없어 보였다.

눈앞에서 자신의 동료이자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강자 넷이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하지 않았던가.

유일하게 자신들을 지켜주고 지켜봐야 할 세계수는 정령왕 노아스의 견제로 인해 자신들을 도울 수 없는 상태.

애초에 인간이 정령왕을 소환했을 때부터 알았어야 했다.

그렇게 여기고 있는 듯 보였다.

눈앞이 캄캄해진 그녀가 털썩 주저앉는 모습에 나는 성큼성큼 그녀에게 걸어갔다.

"......"

그녀의 얼굴에 새겨진 감정은 지독한 공포와 혼란, 그리고 자괴감이었다.

점차 가까워지는 내 걸음에 그녀는......

결국, 푸른색의 짧은 에이션트 가드 제복 아래로 실금을 하고 말았다.

눈을 부릅뜬 채 떨리는 동공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입조차 열지 못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살려둘 생각이 없었기에 흑마법을 거둬들인 나였다.

말없이 한 손에 마나를 끌어 올리자 그녀의 동공이 천천히 내 얼굴에서 내 손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말조차 잇지 못할 만큼 떨리는 이를 딱딱 부딪치며 힘겹게 말했다.

"이......이건 거짓말이야......"

인간이든 이종족이든.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벌어졌을 때 보이는 반응은 똑같이 다섯 가지로 나뉜다.

그 첫째가 바로......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이런 괴물이 존재할 리가!"

"고통 없이 보내주마."

사실에 대한 맹목적인 부정이다.

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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