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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82화 (181/1,559)

# 182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6화

거대한 폭음과 함께 난폭한 먼지 바람이 일어났다.

충격의 여파를 이기지 못한 지면이 뒤집히면서

거대한 파장을 만들어낸 덕분이었다.

어지간한 이들조차 견디지 못 할만큼의 강대한 일격.

하지만 나는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미묘한 감촉에 망설임 없이 물러났다.

상대의 마나 흐름을 잡아 내부를 진탕으로 만드는 기본적인 마나 활용법이다.

마나 저항력이 강한 이들은 금방 떨쳐낼 수 있는 불안정한 기술이긴 하지만 좀 전의 여성처럼 패닉에 빠진 이들에겐 고통 없이, 또 육체의 파손 없이 죽일 수 있는 기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 공격은 그녀에게 닿기 일보 직전에 강제로 방향을 뒤틀어버렸다.

그 탓에 정작 대상이었던 엘프 여성은 무사했지만, 그녀의 바로 옆의 지면은 마치 흉포한 무언가로 할퀸 듯 사정없이 뒤집혀 있었다.

"흐끅!"

딸꾹질을 하며 주저앉은 그녀의 얼굴에 지독한 공포가 어렸다.

"......"

-데이비?

갑작스레 공격을 멈춘 내 행동에 의아한 듯 페르세르크가 나를 불러왔다.

-왜 공격을.......

'권능을 써봐.'

담담하게 말한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노아스의 힘을 받아내고 있는 이그드라실을 바라보았다.

세계수는 멍청이가 아니다.

이 정도 수준으로 여길 쳐들어와서 무력충돌을 해본들 결과는 저들의 전멸이라는 것을 뻔히 알 텐데도 굳이 찾아왔다.

그리고 내가 받아들이지도 않을 제안을 내던졌다.

정말 생각이 없어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일까.

정말.

정말 생각이 없어서 배 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산모까지 이곳으로 데려온 것일까.

"이런 x발."

그쯤 생각이 미친 내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세상에......

반대로 내 말에 따라 주저앉은 엘프 여성에게 심연의 권능을 사용한 페르세르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무리 때려죽일 적이라도 죄 없는 아이까지 품고 있는 여성을 죽이는 게 좋을 리가 없다.

이건, 상식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

"세계수."

[역시 그대는 무언가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구나.]

"돌았냐?"

콰앙!!

그 말과 동시에 노아스의 힘을 버텨내던 이그드라실의 몸이 있는 곳 공간이 찌그러지며 거대한 공기폭발을 일으켰다.

분명 일반인 이하의 육체 능력을 지닌 세계수에겐 큰 효과를 지닐 수 없는 공격이다.

하지만 인상이 찌푸려질 대로 찌푸려진 나는 다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덤벼들어 세계수의 목을 틀어쥐고 들어 올렸다.

키가 작은 세계수의 몸은 결국 내 손에 잡힌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

[크읏......]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그녀를 향해 내가 표정을 지웠다.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나면 오히려 냉정해진다더니.

내가 엘프 산모의 처우에 분노할 이유는 없지만, 아이를 품고 있는 여자를 내부에서부터 터뜨려 죽이게 만들려 했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x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미성년 엘프는 완벽한 보호 대상이고. 세계수에게 엘프들은 모두가 자식이라더니."

담담하게 말한 내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분명 상황은 이쪽이 훨씬 상위에 있다.

하지만 이그드라실은 전혀 거리낄 것 없다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최후통첩이니라. 지금이라도 유리아를 돌려주거라.]

"거절한다."

[그렇다면 엘프와 인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뿐인게지.]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시선을 돌렸다.

[페넬라...... 미안하구나.]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일까.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애쓰던 페넬라라고 불린 여성 엘프가 눈을 크게 떴다.

[너희 희생을...... 여가 영원토록 기억하마.]

담담한 그 중얼거림에 페넬라는 곧 결심을 굳힌 듯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레이피어 하나를 집어 들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웃기지 않느냐, 여는 세계수이니라. 엘프의 근원이자 그 지주임이지.]

"......"

[하지만 신목에는 유리아와 같이 여의 생각에 의문을 품는 자들이 있음이니.]

그녀가 말하는 것의 뜻을 깨달은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푸욱!!!

동시에 레이피어를 들어 올린 페넬라가......

스스로 제 심장을 찔러 자결했다.

5명의 에이션트 가드 엘프 전원이 사망한 것이다.

사방은 고요한 침묵이 감돌았다.

[쿨럭...... 여의 승리로구나. 그대를 이용한 꼴이긴 하지만 어찌할꼬, 정해진 세계의 흐름에 대처하기 위해선 꼭 해냈어야 할 일이거늘.......]

그녀는.

내가 이들을 모두 처참하게 죽이게 만듦으로써 명분을 만들어냈다.

애초에 승산도 없는 싸움을 당당하게 걸어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건만.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이그드라실의 중얼거림에 나는 말없이 그녀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곧 그녀의 머리를 틀어쥐는 내 우악스런 손길에 옅은 신음을 흘렸다.

"남의 땅에 개 짓거리한 것도 모자라서 이젠 남의 집에 와서 이딴 말 같지도 않은 수작을 부려? 그래서, 그쪽은 화신체일 뿐이니 죽어서 돌아가면 그만이다?"

동족들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아이를 품고 있는 여성도 섞여 있었다.

엘프의 정신적 지주인 세계수의 화신체 또한 인간의 손에 죽었다.

싸움에서 죽은 게 아니다.

세계수 이그드라실은 신목의 성지에 있는 엘프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인간과 평화적으로 교섭하겠다고.

당연, 사실을 모르는 엘프들은 평화를 추구하는 세계수의 결정에 감복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계수의 화신체는 소멸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따라나섰던 에이션트 가드들이 무참히 살해당했다.

꽤 재밌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 소식을 신목의 성지에 알릴 수 있는 건 오로지 세계수뿐.

결국,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행동에 놀아난 꼴이다.

이로써 신목의 성지에 있는 엘프들에게 나는 피와 살육을 즐기는 무자비한 악한이 되었고,

세계수는 평화를 위해 인간을 다시 믿었으나 배신당하고 처참하게 당한 피해자가 되었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좋아. 이딴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마음대로 해."

신목의 성지 엘프들과 척을 진 건 처음부터 변함없다.

상대가 이딴 식으로 나와준다면 이쪽도 더럽게 가는 수밖에 없으리라.

머리를 움켜쥐지 않은 한 손을 옆으로 뻗은 후 검지와 중지를 붙였다.

그리고는 사령마나를 끌어올린 내 눈에 검은빛이 감돌았다.

그렇게 나를 향한 적개심이 필요하다면 까짓거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마.

"너희 신목의 성지 안에 있는 모든 엘프들의 적개심 바짝 올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덤벼라. 유리아에게도 했던 말이지만 눈앞에 있으니 내가 직접 말해줄 테니 귓구멍을 열고 잘 쑤셔 박아."

마치 어서 죽이라는 듯 저항하지 않는 세계수를 향해 내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네 본체가 내 눈에 띄는 순간. 그때가 세계의 기둥이 벌목되는 날일 거다. 전쟁은 너희가 시작했다. 책임은 네 몫이다."

[쿡......쿡쿡......]

사람을 농락했다면 엿이라도 먹으셔야지.

다수의 강력한 상위 저주를 머금은 힘이 손끝에서 요동친다.

사이한 기운이 주변을 채웠지만 이그드라실은 저항할 생각도 없다는 듯 그저 옅게 웃어 보였다.

권능을 끌어올리면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음에도 그녀는 마치 어서 죽이라는 듯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언젠가 모든 엘프들이 그대를 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올 테지. 그뿐인가, 엘프에게 호의적인 존재는 어디든지 존재해. 견딜 수 있겠느냐. 갑자기 세상에 드러난 수많은 이 종족이 그대 하나만을 향해 적개심을 내비치며 공격해온다면.]

그 빌미는 고작 엘프 다섯의 사망에 세계수 화신체의 사망이지만.

전쟁이라는 게 본래 시작하는 데에 큰 이유가 필요 없다.

지구의 과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당시.

그 원인이 무엇이었던가.

고작 사람 두 명이 암살당했을 뿐이었다.

싸늘하게 대답한 내가 그녀의 머리를 틀어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m자가 좋아? 원형이 좋아?"

[뭐라?]

퍼엉!!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대량의 저주가 머금어진 흑마법을 그대로 처박아 넣었다.

간단한 저주부터 신목을 침식하는 저주까지.

어디 데스로드표 주문 제작용 저주를 견뎌봐라.

탈모와 아토피는 덤이다, 빌어먹을 년.

"그래, 전쟁...... 전쟁 좋지, 올 테면 와 봐."

[크읏?!]

"먼저 오는 새끼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화신체의 형상을 보며 내가 낮게 경고를 뱉어냈다.

"개 박살 내줄 테니!"

퍼석!!

아직 남아있던 화신체의 머리통이 완전히 박살 난다.

한 종족 전체와의 선전포고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섬뜩했다.

* * *

"으......으읏."

고요한 들판.

쓰러져 있던 밝은 갈색빛 피부의 여성이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회복마법을 받았음에도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았는지 한 손으로 제 빈약한 가슴을 압박하며 상체를 일으킨 그녀는 곧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난 분명히 죽었는데......"

그렇게 말하던 그녀가 이윽고 나를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오랜만이다 잭."

그동안 모습도 보이지 않더라니.

이어지는 내 말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리고는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깨달은 듯 순식간에 제 가슴에 손을 올리고 더듬거렸다.

"모......목걸이가!"

"변장은 집어치우자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 아이나 헬리샤나."

내 말에 그녀가 침묵한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명백히 경계 어린 눈빛이었다.

"제 이름을 당신이 어떻게......"

"자잘한 건 나중에 물어, 지금 친절하게 답해줄 정도로 좋은 기분이 아니니까."

씁쓸하게 중얼거린 내가 말없이 그녀를 둘러업었다.

"당분간은 절대 안정이다.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겨우 살린 거니까 쓸데없이 나대다가 피 쏟을 생각하지 말고 얌전히 업혀있어라."

내 말에 그녀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거대한 빛을 내뿜고 있던 거대한 나무의 잎들이 거칠게 흔들렸다.

바닥을 뚫고 나온 뿌리의 위로 한 여성이 천천히 형체를 구현화 시키기 시작했다.

그녀의 정체는 세계수 이그드라실.

거목의 본체이자 화신체였다.

[읏......]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며 그대로 주저앉은 그녀가 숨을 헐떡였다.

지독한 고통이었다.

화신체는 본체가 아니지만 신목의 일부나 다름없다.

그 일부가 고작 한 인간의 손에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당연히 많은 것을 담았던 만큼 리바운드가 가볍진 않았다.

[콜록]

아무도 없는 고요한 제단 위로 내려선 그녀는 거친 기침을 내뱉으며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내렸다.

순식간에 나신이 된 그녀는 급히 걸음을 옮겼고 뿌리의 한쪽에 고여있는 맑고 투명한 호수에 그대로 몸을 담갔다. 이곳의 존재들에게 가장 신성시되는 호수였다.

마치 벌레 소굴에 던져졌다가 나온 결벽증 환자처럼 파르르 떨며 광적으로 몸을 씻어 내려가던 이그드라실의 몸이 우뚝 굳었다.

동시에 몸을 씻어내리던 그녀의 주먹이 부서질 듯 강하게 쥐어졌다.

[감히 신목의 본체에 저주를 퍼붓다니. 간도 크구나. 여가 태초의 제약만 없었다면 당장 그 영지에 존재하는 자연적인 지기를 지워버렸을 것을]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녀가 뽀얀 살결을 호수 속에 담갔다.

일차적인 목표는 이루었다.

본래 유리아를 데려오는 계획은 실패했지만, 그 덕분에 신목의 성지 내부에서 암암리에 나뉘고 있던 정치적 입장을 한곳으로 끌어모을 수 있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했던가.

서로 충돌하는 과격파와 온건파는 이제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그 어린 인간과 그 인간이 있는 영지를 향해 끝없는 분노를 토해낼 터.

비록 화신체가 소멸하기 직전 그 인간에게 수많은 저주를 고스란히 넘겨받은 꼴이 되어버렸지만 '이 정도 저주쯤이야' 해주는 것이 무에 어려울까.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가 몸을 담그고 있는 이 호수는 맑은 것만 남기고 더러운 모든 것을 씻어내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

이제 몸 안에 스며든 저주는 금방 사그라질 것이다.

[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그드라실의 형체는 곧 자신의 긴 머리카락 일부가 손끝에 걸려 흘러내린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손가락에 걸린 것은 대량의 머리카락이었다.

"크...... 큰일이다! 신목의 어머니의 가지 잎이 떨어지고 있어!!"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제사장들은 어서 어머니를 뵈러 제단으로 들어가! 나머지는 전부 물의 정령을 소환해 치유의 주문을 외워!!"

다급한 외침이 예리한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이 상황에 아이들이 들어온다고?

[......]

침묵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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