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48화 (247/1,559)

# 248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22화

86. 한계

"숲이......너무 고요하네......"

생각 이상으로 조용한 숲의 모습에 타냐는 활동하기 편하게 입은 복장에 묻은 나뭇잎을 털어내며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시험에 대한 이야기는 막연하게 들어본 적이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벌써 숲에 들어온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본래라면 숲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숲의 수호신이 시련을 내려준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직까지 그녀가 발견한 것이라곤 시험자를 인도해준다는 이 숲의 수호신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이는 신비로운 반딧불이 전부였다.

"하아......하아......저기! 어디까지 가는 거야!"

당연 대답이 들려올 리 없지만 타냐는 계속해서 점점 깊은 숲으로 자신을 안내하는 반딧불의 모습에 숨을 몰아쉬며 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반딧불은 처음과 같은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타냐를 안내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타냐의 걸음이 멎은 곳은 커다란 동굴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거대한 무언가를 만날 수 있었다.

"고......곰?!"

덩치가 일반 곰의 수십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곰이었다.

샤르르륵! 소리를 내며 일순간 사라져 버리는 반딧불을 본 타냐는 정말로 시험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크아아앙!!!!

그리고, 그런 타냐의 생각이 정리가 되기도 전에 거대한 곰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고 덤벼들었다.

콰앙!!!!!

묵직한 앞발 스매시가 타냐가 있던 공간을 후려쳤다.

"흐읏?!"

육중한 덩치에 맞지 않는 거대한 움직임에 당황한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해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르르릉......"

"시험에 정말 목숨을 위협할만한 위험요소는 없다고 했는데......"

아무리 시험이라지만 응시자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자칫하면 큰일 날 수 있는 산짐승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다니 역시 뭔가 이상하다.

-그르르릉......

이윽고, 거대한 곰이 한발 한발 그녀에게 다가오자 타냐는 침을 꼴깍 삼키며 활을 빼 들고 활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큰 효과가 있을지 알 수 없다.

오라버니가 알려준 기술 방식으론 놈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과 같이 피하는 데에 급급한 상황이라면 도저히 그것을 실현해낼 자신이 없는 그녀였다.

인간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을 택한다.

몸을 웅크린 타냐는 반사적으로 몸 안에 있는 마나를 활성화 시켰다.

[바람이여, 나의 부름에 답해다오, 헤이스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영창이 펼쳐지기가 무섭게 연녹빛의 기류가 타냐의 다리에 스며들자 그녀는 거침없이 자리를 박차고 벗어나며 활시위를 강하게 당겼다.

그리고는 정확히 곰의 눈을 겨누고는 그대로 화살을 쏘아 보냈다.

피잉!!!! 카앙!!

하지만.

화살은 곰의 눈에 닿기도 전 놈이 후려친 앞발에 그대로 튕겨 나갔다.

아무리 거칠고 질긴 가죽이라도 이렇게 날카로운 화살에 맞으면 찢기고 피가 나야 정상이건만.

마치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거대 곰은 상처하나 입지 않고 타냐를 압박했다.

"읏?!"

기겁한 그녀가 재빨리 자리를 이탈하며 두어 발의 화살을 더 쏘아 보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타냐의 판단은 빨랐다.

쉽게 정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곧장 놈에게 노출되어있는 것보다 몸을 피해 기회를 엿보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렇게 둘 생각이 없는지 곰은 타냐를 정확히 노려보며 거대한 포효를 흘렸다.

"윽?!"

동시에 지잉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한순간 강렬한 섬광이 타냐의 시야를 뒤집어놓았다.

"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곧 이어지는 상황에 타냐는 눈을 부릅뜨고 절망 어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일순간 강하게 터진 섬광은 그녀의 시야에 어마어마한 부담을 가했다.

순식간에 시야를 빼앗긴 그녀는 마치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무너져 내렸고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파르르 떨었다.

-그르르르르......

그리고, 예리해진 귓가로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곰의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그런 곰의 위협 속에서도, 타냐는 움직이지 못했다.

인간은 가장 자주 사용하는 감각기관인 눈을 잃어버리면 쉽게 패닉에 빠진다.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멍한 얼굴로 그저 신음소리만 뱉을 뿐이었다.

특히 보통 경우도 아니고, 가장 시력에 의존을 많이 해야 하는 궁술을 익힌 자라면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앙!!!

이윽고 지척까지 다가온 곰의 거대한 포효와 함께 타냐가 공허한 얼굴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어째서인지 곰이 앞발을 들고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피잉!

-크어어엉!!

그때였다.

갑작스레 들려온 놈의 포효소리와 함께 억센 손길이 뒷덜미를 낚아채는 걸 느꼈다.

"정신 차려요! 왕녀!"

"아......아아아......"

마리아 공주의 목소리였다.

시험의 응시자들은 대부분 따로 활동한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그녀가 이곳에 있는가.

한참을 달리는 동안 그런 의문을 품지도 못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곰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는 두 사람을 쫓지 않았다.

"하아......하아......다행히 더 쫓아오진 않네요. 이건 시험이 아니야......무언가 잘못됐어......"

그런 마리아의 중얼거림에 타냐는 자신의 눈을 마구 비비며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마......마리아 공주님......흑......흐흑......눈이......눈이......"

"괜찮아요......여기 뭔가 이상하다는 건 저도 겪어봐서 아니까......"

"마......마리아 공주님?"

"나......눈이 보이기 시작했어요......이상해......이런 건 너무......"

본인도 상황이 좋진 않다.

타냐는 시력을 잃어버렸고.

마리아는 오히려 시력을 되찾아버리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타냐 왕녀님, 마음 굳게 드세요. 이건 뭔가 이상해요."

"네?"

"본래 시험 응시자들은 시험이 끝날 때까지 서로 만나지 못해요. 서로 헤치거나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하려고."

담담하게 말한 그녀는 벽면을 막아서고 있는 새빨간 반투명의 벽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어떤 시험에서도 이렇게 시험 응시자가 밖으로 향하지 못하게 막는 경우는 없어....... 결계를 넘어서는 순간 시험 탈락이 있을 뿐이지 이렇게 가두는 경우는 없다구요!"

그녀 또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지 언행이 살짝 격해져 있었다.

"그말은......."

"그러니까...... 무슨 일이 터졌어요. 그리고......이건 지금 시험 같은 게 아니라, 실전이고요. 좀 전 왕녀님을 습격했던 괴물만 봐도 충분하지 않나요?"

"괴......괴물이라뇨......곰이......"

"곰? 하......"

헛웃음을 터뜨린 그녀가 타냐의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스터급 이상의 마나를 품은 곰이 보통 곰처럼 보여요? 게다가 녀석의 하울링과 정체 모를 힘에 눈을 잃은 왕녀님은 어떻고요."

"아......아아......나 어떻게......어떻게 해요?"

시력을 잃은 타냐는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든 마리아를 찾아 애쓰던 그녀는 주변 바닥을 더듬다가 마리아의 손을 찾아 꼭 쥐고는 엉엉 울었다.

"미안해요......나......지금 너무 무서워서......"

"이해해요. 그러니까......괜찮아요. 왕녀, 내가 반드시 지켜줄게요. 그러니까 나만 믿어줘요."

"마리아 공주님......"

"친구잖아요? 우리......비록 위치의 차이가 있고, 이제 왕녀님은 돌아가겠지만......친구니까......내가 지켜줄게요."

씁쓸하게 중얼거린 마리아 공주는 그래도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

타냐와 다르게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기에 사용할 수 있던 것들을 잃어버렸지만 적어도 타냐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은 아니니 말이다.

"시력이 멀어버린 게 그저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 우리는 놈의 공격을 피해서 당분간 버텨내야 해요. 밖의 일이 정리될 때까지......"

"고마워요......"

울먹거리며 손을 꼭 잡은 타냐가 힘겹게 웃어 보였다.

"제가 이러면 안 되는데......"

"시력을 한순간 잃어버리면 정말 고통스러울 거에요. 나는 알아요. 타냐 왕녀님, 그러니까 나만 믿어요."

긴장한 얼굴로 중얼거린 그녀는 붉은 기운이 감도는 반투명한 벽을 몇 차례 두드렸다.

아무리 봐도 자신들의 힘으론 깨뜨릴 수 있는 강도가 아니었다.

"가만......그렇다면 그 곰의 공격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그녀는 조금 위험하지만, 강수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 * *

-그냥 둬도 돼?

페르세르크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보면 돼."

좀 더 몰아붙여야 한다.

극한상황에서 사람은 발전하는 법이니까.

타냐에겐 미안하지만, 시험이 끝날 때까진 시력을 잃어줘야 했다.

정말로 그녀의 눈에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순 타냐는 환각에 걸려있는 상태였다. 그저 눈앞이 캄캄해진 환각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갑자기 시력을 잃어버린 동생은 당황했고 그런 그녀를 지켜줄 마리아 공주를 이쪽으로 유도하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만남을 만들어냈다.

"자자......움직여라."

-진짜, 흑막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있었군.......

마리아 공주는 내가 쳐둔 결계를 저깟 반 시체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여긴 듯 보이지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둘 생각 따윈 없었다.

곰의 환상을 덧씌운 것은 다름 아닌 내게 한차례 당한 뱀파이어 겔루스의 육신이다.

내 눈에는 겔루스가 멀쩡히 보이지만 두 사람에겐 거대한 곰으로 보이는 상황이기도 하다.

"자. 충분히 쉬었으니 몰아붙여야지."

몰아붙였다가 놓아줬다가를 몇 차례 반복하면 슬슬 저들도 지칠 것이다.

그리고 한계에 몰릴 것이고.

그것을 이겨내는지 한번 지켜보마.

음산한 내 미소에 페르세르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대의 동생인데 너무한 거 아닌가?

"내가 없어도 스스로를 지킬 힘은 있어야 해. 타냐는 그런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그러니까, 할 수 있을 때 엄하더라도 가르쳐놔야지."

타냐는 이미 내게 배운 바 있었다.

그것을 기억해내게 만들어주는 수밖에.

진정 남을 잘 가르치는 자는 재능있는 상대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멍청한 돌대가리라도, 고기 잡는 법을 떠올리고 시도해볼 수 있게 상황을 만들고 유도하는 것.

또 그걸 전혀 눈치 못 채게 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게 이런 것이구나 라고 깨닫게 하는 것.

나는 그게 진짜 잘 가르치는 스승이라 생각한다.

* * *

"하아......하악!"

숨이 거칠어진 타냐는 이젠 발까지 꼬였다.

"꺄악!!"

"일어나요! 타냐 왕녀님! 이대로 무너지면 안 돼요! 달려요!"

크아아아앙!!!!

거대한 포효소리와 함께 미친 듯이 달려드는 곰을 보며 마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하아......하아......저는 틀렸어요.......마리아 공주님, 저를 버리고 가세요!"

타냐가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시력이 사라진 탓에 모든 것이 적응되지 않으니 달리기마저 제대로 될 수 없었다.

거기다가 다리를 삐어버렸는지 타냐는 쉽게 일어서지도 못했다.

-그르르르르......

결국, 곰에게 지근거리까지 접근을 허용한 두 사람의 표정이 점차 파랗게 질렸다.

"아......안돼......"

절망하는 타냐와 반대로 마리아 또한 적응되지 않는 시야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숨을 짧게 들이켰다.

"타냐 왕녀님, 잘 들어요. 눈이 보이지 않아도 할 수 있어요. 내가 시간을 벌어볼 테니까......그 틈을 노려요."

담담하게 말한 마리아가 활대를 쥐었다. 그리고는 타냐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아......안되요! 마리아 공주님도 지금 눈이......!"

"보여요! 보여서 오히려 더 힘들어! 하지만 어떻게 할건데요?! 일단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시력을 잃어도 정신을 차리면 돼! 그러니까 나를 믿어요......."

그녀의 힘없는 중얼거림에, 타냐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에 채워둔 단궁을 꺼내 꼭 쥐었다.

마리아가 선물해준 베고의 수염을 끼운 활시위는 강한 장력이 느껴졌다.

"......해볼게요."

그리고, 점차 침착하기 시작한 타냐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