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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21화 (420/1,559)

제 421화

131. 심연의 공주와 동기화를 마친 괴물 (1)

초대 리치 닉스.

오랜 시간 끝에 부활하였고, 현 대륙의 모든 정세를 멋대로 쥐고 흔드는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가 바로 그였다.

다른 리치와 다르게 그가 가진 불사의 근원은 숙주를 옮기는 데에 있다.

8서클이라더니.

레이나는 그가 8서클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녀는 닉스의 끝을 보지 못했다.

그새 성장했나? 아니면, 애초에 봉인에서 깨어날 때부터 9서클에 도달했던 것일까.

단순한 8서클 흑마법사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마나를 지닌 닉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물론 그가 8서클이든 9서클이든 상관없었다.

그 힘은 실로 놀라운 성취라 할 수 있지만.

재수가 없다면 정말 없었을 뿐이니 말이다.

“힘 싸움은 자신 있는데.”

그런 마당에 고작 그 정도 서클의 마법 실력을 가지고, 사령 마나의 양만 믿고 덤벼드는 놈에겐 인생은 실전이다는 말을 새겨줄 필요가 있다.

“크윽?!”

마기를 내뿜어 나를 짓누르려던 그는 순식간에 자신의 힘이 역으로 제압당하자 안광을 흔들며 마구잡이로 몸을 뒤틀었다.

우웅!!!!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새카만 구체들이 삽시간에 수십, 수백 개 이상 생겨나기 시작했다.

“감히 내게 이런 굴욕을 안겨주는가! 결단코 네놈은 편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으리라!!”

격분하며 닉스의 손이 움직이자 그의 손끝을 따라 검은 구체들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위험해!!”

저 멀리서 쓰러져 있던 유리스의 외침이 들려온다.

하지만 나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닉스를 향해 접근했다.

과도한 개입은 내가 돌아가지도 못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게 한다.

그 말인즉, 힘이 많아도 무작정 사용하다간 뒷감당이 힘들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 힘 조절을 하고 있었는데.

닉스는 조금 예외의 존재였다.

이 모든 전쟁의 원흉이며, 끝없는 증오를 다시 이어붙이는 고리 역할을 하는 그는 그냥 두면 곤란한 존재였다.

평화를 추구하는 페르세르크와 다르게 닉스는 한쪽의 완전한 멸절을 바라는 존재이니까.

‘적어도 페르세르크가 내가 아는 그녀라면, 닉스가 죽어서 제어가 사라지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겠지.’

닉스가 죽으면 페르세르크에게 가해진 제약이 사라질 것이다.

그녀의 부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이 녀석이었다.

결국, 평화를 사랑하는 마왕님은 둘 중 하나가 끝장나는 선택보단 지금이라도 전쟁을 멈추고 현상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페르세르크는 그런 마족이었다.

[디스펠]

쩌엉!!

내 몸에서 옅은 마법의 파장이 퍼져나가자 닉스의 주변에 생겨났던 검은 구체들이 일제히 증발하듯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이…… 이건 무슨?!”

“뭐긴 뭐야. 디스펠이지.”

디스펠.

상대의 마법을 강제로 캔슬시키는 마법으로 주로 디스펠이 무리 없이 적용되려면 피대상 마법보다 2서클 이상 위의 실력을 지닌 이가 아니면 안 된다.

문제는 조금 전 닉스가 사용한 마법이…….

8서클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말해서 그의 마법을 지워버리려면 9서클 그 위 단계의 경지가 필요하다.

나 자신이야 내 경지를 잘 알고 있지만, 보통의 경우 내가 품고 있는 경지의 한계를 쉽게 믿고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하다.

“디스……펠? 디스펠이라고?! 웃기지 마라. 이놈!! 감히 날 우롱하는 것이냐?!”

“우롱이고 우롱차고, 뭔 개소리야 이게.”

“디스펠 마법은 최소 2서클 이하의 마법을 캔슬하는 마법! 8서클 마법은 이론상 디스펠이 불가능하다!”

경악하며 소리치는 그의 말은 데자뷔를 느끼게 하였다.

실제로 내게 한번 개박살이 난 닉스는 내게 똑같은 말을 했었다.

8서클 마법은 이론상 해제가 불가능하다고.

그놈이 그놈이니 새로운 참신함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너무 똑같으니 외려 식상한 맛이 돋는다.

“네가 못한다고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는 건 조금 오만하지 않나?”

담담하게 말하며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더없는 혼란을 느꼈는지 노호를 터뜨리며 미친 듯이 내게 마법을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7서클 다크홀을 시작으로 8서클 마법도 섞여 있었다.

대마법사는 대마법사인지 단번에 수 가지의 멀티 캐스팅을 시전하는 그 힘은 확실히 흥미로웠다.

쩌적!!

하지만.

그가 가능한 게 내가 불가능할까.

총 트라이 횟수, 13,372회.

닉스 놈을 쳐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그의 환영과 싸운 횟수였다.

놈의 뼛속에 있는 구멍 숫자까지 외울 지경으로 싸워댔으니 그의 습성도 내가 모를 수가 없다.

쩌저적!!

나를 집어삼킬 듯 일어나는 거대한 검은 균열이 일순간 일그러지더니 그대로 깨어져 부서진다.

그가 발현한 수많은 마법이 모조리 디스펠 당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마법을 시전하는 것보다 부수는 것이 더 난이도가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결과가 가져오는 대답은 딱 한 가지였다.

현재 나는 닉스가 가진 마법의 경지보다 아득히 높은 경지에 있다는 것.

“있을 수 없다!!!”

격노하며 소리치는 그가 한 손을 뻗었다.

동시에 그의 손에 새카만 뼈가 쥐어졌고, 마치 광선검처럼 새카만 검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법이 모조리 차단당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괴성을 지르며 놈이 몸을 일으키고 내게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검은 광검을 내게 휘둘러 들어왔다.

스릉……

물론, 그가 검을 들건 마법을 들건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그는 이곳에서 죽을 테니까.

내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검은 광검이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내 손이 번뜩이는 듯하더니 붉은 잔상과 푸른 잔상이 일대를 모조리 집어삼켰다.

두 자루의 쌍둥이 검 중 하나인 청단이가 힘을 발현한 것이다.

순식간에 그의 방어마법이 부서져 내리고 홍단이의 검기가 놈의 몸을 깔끔하게 도려내 버렸다.

“네…… 이놈.”

마치 깔끔하게 잘려나간 대나무가 미끄러져 내리듯 무너지는 그를 향해 양손에 쥔 검을 가볍게 털어냈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멍청이도 아니고 수차례의 차이를 겪었다면 알 수밖에 없다.

불신과 오만이 가득하던 닉스의 안광은 이젠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불사자인 그가 두려움을 느낀다?

사실 그것만큼 웃긴 말도 없지만, 그가 느낀 두려움의 방향은 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 단 한 명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인간 중에…… 네 녀석 같은 존재가 있다는 보고는 들은 바 없다……. 지금까지 나타나지도 않았다.”

“전쟁을 잊고 평화에 익숙해지니 약해지는 건 당연하긴 하지.”

닉스는 엄연히 3천 년 전 검신 하레스가 있던 시대의 존재였다.

지금과는 다른 압도적으로 상성 우위에 있던 강자들이 날뛰던 세상에서도 악명을 자자하게 떨치던 그였기에 내 말을 가장 잘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 대륙은 마족이 승리했고, 난 그걸 전부 뒤집을 생각은 없어.”

마족이 이기건 인간이 이기건 그건 흐름의 일부일 뿐이다.

세상의 균형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소리였다.

주신 프리아 여신이 괜히 대적자와 마왕을 만들어냈을까.

“끝을 판가름할 수가 없군. 말하라! 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야!”

그가 발작하듯 소리 질렀다.

이에 나는 그를 향해 다가가며 검은 기류를 손에 피워올렸다.

닉스의 생명 근원은 숙주를 옮기는 힘.

청단이로 베어낸다 해도 그는 청단이에 베여 죽기 전에 혼령이 빠져나와 차원단절을 일으킬 것이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질긴 생명력이 아닐 수 없다.

놈을 죽이기 위해선 수르트가 만들어놓았던 그 화살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엔 그런 화살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일 것인가.

실제로 본래 세계에서도 보옥을 써서 잠깐 지금과 같은 힘을 냈지만 죽일 방법이 없어 수르트의 화살을 쓰지 않았던가.

완전히 침묵시킬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꺼내지 못하게 완전히 봉인해버리는 수밖에.

제압당한 닉스와 그를 앞에 두고 마법진을 펼치는 내 모습.

그 어떤 이들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거나 방해하지 못했다.

닉스가 내뿜는 힘도 주변을 짓누를 정도이지만 내가 내뿜는 기류는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힘이었으니 말이다.

“검신 하레스가 널 봉인할 때 제법 애를 먹었지?”

“네놈…… 어떻게……”

“어떻게 아냐고? 본인에게 들었으니 아는 거지 뭐, 별거 있나.”

허풍에 가까운 소리이지만 그는 이제 무작정 부정할 수 없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모든 현실이 거짓말 같으니 거짓말이 진실이고 진실이 거짓말 같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웅!!!!!!

검신 하레스는 마법을 쓰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를 봉인할 때엔 닉스를 무력화시키고 고서클 마법사가 대량으로 동원되어 그를 봉인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봉인이 완벽할 수가 없다.

그들의 개개인 실력에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9서클 상위 초월경.

[대 결계]

이윽고 9서클을 넘어서는 대량의 마나가 쏟아지며 닉스를 감싸듯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곧이어 바닥에서 수십 가닥의 사슬이 부서진 그의 골격 전체를 감싸 구속하기 시작했다.

“그아아아아! 난 이대로 다시 봉인될 수 없다! 다시 그 끔찍한 어둠에 떨어질 수 없단 말이다!!”

“패자에게 선택권이 있을 리가 있나.”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며 마법을 고정한 나는, 곧이어 사령 마나와 신성력을 동시에 내 뿜었다.

[9서클 흑마법]

[영혼 족쇄]

촤르르르륵!! 철컹!!

동시에 사령 마나가 [대 결계] 마법진을 포함하여 통째로 그를 한 차례 감쌌다.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한번 봉인된 내가 두 번을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으냐!”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말도 많네.”

담담하게 말하며 이번엔 신성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심연과 본래 세계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라면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동전의 앞면이 마주 보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 중앙에 있는 프리아 여신에겐 양쪽 모두 해당한다는 소리였다.

문제는 이놈의 세상은 본래 세계와 다르게 주신의 영향력이 더욱 약해져 있는 상황.

제대로 효능을 볼지는 미지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할 순 없다.

[만물을 굽어살피는 주신 프리아 여신이시여. 당신의 어린양이 당신께 간절히 바라옵건대, 힘. 내놓으시지요.]

이윽고 신성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족쇄에 끌려 땅속으로 처박혀 들어가던 그가 탄식을 흘렸다.

“있을 수 없다……. 있을 수 없어……. 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9위계 성마방진]

[데아 생츄어리]

놈의 부활에 힘을 실어줄 사령 마나의 유입을 신성 마법으로 차단해버린다. 완전히 공간이 격리된 그는 허탈한 목소리를 냈다.

“마법에 이어…… 흑마법…… 신성력까지…… 어떻게 불가능하나 현상이……”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으니까 좀 닥쳐, 시끄러우니까.”

신성 마법이 그를 감쌌다.

원소 마법으로 결계를 쳐 그를 일차적으로 가두고 9서클 흑마법과 9위계 신성 마법을 뒤섞어 대 결계 위를 덮었다.

거기에 멈추지 않는다.

딸랑……

아공간에서 끌려 나온 방울 가지와 섭선이 허공을 수놓듯 춤을 추었다.

동시에 빛으로 만들어진 부적 수백 장이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이내 비처럼 쏟아지며 일대에 날카롭게 박혀 들어갔다.

[1급 주박술]

[태극 음양궤금]

몸 안에 있던 도력들이 일제히 바들바들 떨며 공명하고 그의 발밑으로 태극문양을 만들어냈다.

쩌엉!!

동시에 부적들과 연동되며 빛의 띠를 만들어냈다.

“아, 아아……안돼!! 날 풀어라. 인간!! 나는 이대로 다시 끌려들어 갈 수 없다!!”

목소리가 일그러지기 시작하며 그의 육신이 지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의 지형이 뒤틀리며 그가 봉인된 자리에 거대한 석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둥들과 신을 상징하는 십자가였다.

“어디 그 속에서 영원히 썩어봐라.”

놈이 빠져나올 방법은 단 하나, 내 이상 가는 존재가 나타나 내 마법진을 부수거나, 청단이가 이 결계를 대여섯 번 이상 베어내는 것뿐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과할 정도의 간섭을 감행했다. 이 이상은 절대적으로 무리수에 가깝지만 그를 봉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세상에 가해진 그의 모든 힘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니까.

아직 완전히 빨려 들어가지 않은 채 혼령만 남아 나를 노려보는 닉스의 행동에 내가 느긋하게 마법을 마무리 지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후웅!!

하늘을 가득 메우는 그림자에 닉스의 시선이 하늘에 닿았다.

그리고는 환희에 어린 외침을 내뱉었다.

“그림갈! 오오…… 그림갈이로군! 마왕 폐하의 충실한 심복들! 제아무리 괴물 같은 네놈이라도 그만한 마법을 사용하면서 저들의 공격을 막아낼 순 없을 것이다!!”

그의 외침에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마법을 더욱 가속했다.

“그렇지. 죽일 순 없지만 절대 봉인을 풀지 못하게 제법 신경 좀 썼으니까.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긴 해.”

“자! 그림갈이여! 이 괴물 같은 인간을 공격해라! 아주 조금의 틈만 있으면 된다! 어서!”

아주 잠깐의 틈만 생겨도 그는 내 영역을 벗어나 도망칠 수 있다. 그가 노린 것은 그것이었다.

그림갈은 마왕의 명령을 따르는 존재, 그렇기에 그림갈이 배신할 리는 죽어도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볕이 들 거로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닉스는 곧 벌어진 일에 경악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마왕의 명령 이외에 어떤 것도 듣지 않는 흑룡들이 일제히 도열하듯 착륙하더니 내게 머리를 숙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 마왕의 명령이 아니면 절대 듣지 않는 흑룡들이 어째서……”

“어째서긴.”

서서히 지면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는 그를 보며 내가 싱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흑룡 한 마리의 콧등을 문질러주며 닉스에게 가장 익숙한 힘을 끌어냈다.

“……”

그의 안광이 거칠게 흔들렸다.

“마왕의……위계……”

“소개할게. 저쪽 세계에서 새로이 마왕이 된 데이비라고 한다.”

“무슨……”

“비록 같은 세상은 아니다만, 너도 마족인 이상 마왕의 명령은 절대 그냥 무시할 순 없지?”

마왕은 동시에 둘이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같은 마왕이 존재한다면, 마족은 이쪽도 저쪽도 말을 거부할 수 없는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만큼 나의 존재는 그들에게 혼란 덩어리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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