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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22화 (421/1,559)

제 422화

평생 마왕의 좌를 보필해온 존재로썬 가장 혼란스러울 것이다.

현재 마족과 전쟁을 하는 인간이 마왕의 힘을 품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닉스의 안광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워 보였다.

“혼란스럽나?”

내 질문에 그는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어떻게 인간이…….”

“마족은 마왕을 따르지. 그 명령은 절대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굉장한 영향력을 미친다.”

내 설명에 그는 침묵했다.

“그렇다면 마왕이 제정신이 아니면 누가 그를 막을까.”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마족이 막아야 하는 법이다.

“마왕 쟁탈”

그는 이제야 모든 것을 이해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마족에게 내려진 특권이다! 마왕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 쟁탈전을 승낙했을 리가 없다!”

그의 외침에는 마족을 향한 굳건한 믿음이 서려 있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를 지면으로 끌어당기는 구조물들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1급 주박술로 생겨난 검은 기둥과 신의 힘이 섞인 십자가.

그 다수의 힘이 섞인 봉인진에 끌려들어 가면서도 그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며 빠져나오려 하지만 부질없는 저항이었다.

그는 지독하리만치 운이 없었다.

그뿐이었다.

“적어도 네 방식을 원치 않았던 다른 마족이 있을 거라곤 생각은 안 해봤나?”

서서히 끌려들어 가는 그의 두개골을 짓누르며 내가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시간이 흘렀고, 마족 중에서도 전쟁을 원치 않는 자가 있다.”

“궤변이다, 인간! 마족은 잊어선 안 된다! 인간에게 패배해 그 끔찍한 곳으로 내몰렸을 때의 그 비극을!”

“전쟁의 시작은 너희들이야, 개자식아.”

“……”

내 말에 그의 안광이 크게 한번 번뜩였다.

“모를 줄 알았나? 역겹다고 해줄까?”

“아니다……. 아니야! 우리 마족은……!”

“그리고.”

그의 말을 자른 내가 그의 두개골을 지면 속으로 쑤셔 박았다.

“적어도 정말 왕을 충직하게 따르는 충신들의 입장에선, 넌 왕을 멋대로 굴리고 있는 간신일 뿐이야.”

“……”

“네 왕이었던 페르세르크는 왕좌에 올라 조화를 꿈꿨지만, 이쪽이나 저쪽이나 너로 인해 전쟁에 휘말렸잖아? 양심이 있으면 두 번 그러진 말았어야지. 알아들었으면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봐. 그 두개골에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할 거다.”

하나라도 있었다면 소중한 모근이 사라지는 경험을 시켜주려 했었으니.

내 마지막 말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지면 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이 대륙의 수준을 생각하면 아마 그가 다시 봉인에서 깨어날 일은 없으리라.

시간이 오래 흘러 이 마법조차 퇴색되는 그 순간이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초대 리치 닉스, 그는 자신의 육신이 부서졌을 때 차원을 단절시켜 영혼을 빼내고 다른 숙주로 옮기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를 죽이기 위해선 수르트가 만든 화살이 필요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소멸하는 것.

멘탈을 우수수 쪼개놨으니 아마 스스로 소멸한다는 선택도 어쩌면 나올지 모를 일이다.

말없이 닉스의 소멸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곧이어 내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흑룡들을 향해 소리쳤다.

“마족, 마수, 그리고 잠식된 몬스터. 모조리 처리해. 단, 도망치는 놈들은 잡지 마라.”

-크르르르르릉!!

-크아아아앙!!!!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십 마리의 변이된 드래곤 헤츨링.

흑룡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흉포하고 강력한 놈들은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내 명령에 따라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 시작되었다.

닉스를 따라온 마족들은 대부분 마족 중에서도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일반 병력이었다.

애초에 메인 병력은 그림갈(흑룡부대) 이였고, 닉스는 묘한 의문이 서려 이곳으로 잠시 왕림한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비명 속에서 묵묵히 걸어간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숨을 삼키고 죽은 듯 나를 바라보는 두 여성을 내려다보았다.

구타로 인해 정신을 잃은 촌장과는 다르게 눈물을 머금고 있는 에오니샤나 구타에도 버텨낸 유리스는 의식이 존재했다.

아공간에서 모포를 꺼내 든 나는 곧바로 에오니샤의 몸을 감싼 뒤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우우웅!!

옅은 빛이 그녀의 몸에 스며들자 그녀의 종아리까지 흘러내렸던 상처들이 일제히 낫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인에게 이 같은 포박은 너무 가혹했다.

곧바로 에오니샤의 팔을 포박하고 있는 밧줄을 끊어내자 그녀가 필사적으로 내게 매달려왔다.

“아이! 내 아이들이 아직 잡혀있어요!”

엉엉 울며 필사적으로 외치는 그 모습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알겠으니 여기서 기다려.”

“제발…… 제발…….”

도움을 요청할 존재가 나뿐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는 내가 누가 되었건 정체가 무엇이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후 유리스의 팔을 묶고 있던 밧줄까지 끊어낸 나는 촌장과 그녀에게 상위 회복마법을 걸어준 뒤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감각이 강화되기 시작하며 이 커다란 전초기지 전체가 내 시야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작은 시험관에 갇혀 죽은 듯 침묵하고 있는 두 갓난아기를 찾을 수 있었다.

[명령이다. 두 아이를 데려와.]

이어서 내 의지가 흑룡들에게 전해지기가 무섭게 한쪽에서 거대한 폭음이 일어났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브레스를 쏘고 거친 발톱으로 전초기지를 유린하는 흑룡부대는 그야말로 귀신같은 위력을 보여주었다.

후웅!!! 쿠웅!!

이윽고 입에 커다란 시험관들을 물고 돌아온 흑룡 두 마리에게서 관을 받아든 나는 곧바로 시험관에 걸린 동결 마법을 부숴버린 뒤 시험관을 열어 두 아이를 꺼냈다.

목숨은 붙어있었다.

하지만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신성력을 이용해 치료한다면 멀쩡하게 되살릴 순 있지만 굳어버린 혈도가 평생 유지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곧바로 두 아이의 배에 손을 올려 마나, 아니 정제된 내공을 끌어올렸다.

너희, 기연 얻었다.

[전신절맥 강제 타관]

순식간에 하단전을 관통하는 내공이 급기야 중단전을 관통한다. 그리고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곧바로 백치, 혹은 즉사해버리는 상단전까지 망설임 없이 밀어 올려버렸다.

스스로 서고 걸을 수만 있게 되면 아마 역대급으로 재능이 좋은 아이들이 되리라.

갓 태어난 아이 중에서도 필요조건이 충족된 아이에게만 해줄 수 있는 방법이며, 지금의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마법이면 마법, 검술이면 검술, 그 외에 기술들까지. 작정하고 노력만 한다면 천재 소리 듣는 건 한순간이다. 거의 확정적인 재능 보장권이 아닌가.

이 사실이 대륙에 알려지면, 거 상황 참 재밌게 돌아가리라.

이윽고 상단전까지 내공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두 아이가 울컥하며 피를 토해냈고, 나는 곧바로 두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피가 기도를 막지 않도록 응급처치 후 에오니샤에게 다가갔다.

“아, 아아! 내 아이, 내 아이들…….”

엉엉 울며 두 아이를 끌어안는 에오니샤는 지친 몸에 모진 일을 당할뻔한 터라 고통이 상당할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를 향한 모성이었다.

그 작은 아이가, 이렇게까지 자신의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엄마가 된 모습은 정말 싱숭생숭하기 그지없었다.

콰앙!!!!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폭음들이 이내 천천히 멎기 시작했다.

드디어 정리가 끝난 것이다.

하늘을 선회하며 날아오르는 수많은 흑룡을 보며 나는 사망한 채 쓰러져 있는 한 마족을 흘끗 바라보았다.

전쟁은 역시 좋은 일은 아니다.

그것이 이권 다툼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면 말이다.

전쟁은 역시 좋지 않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얼마나 남았느냐 묻는다면 꽤 추상적인 질문이군, 한계에 가깝다는 것만 알아두게. 더 이상 상위 마족을 해체는 건 불가능해. 자네는 그 정체 모를 검은 힘이 있으니 괜찮지만, 자네와 함께 온 아가씨는 이곳에 묶이고 서서히 사라져 가겠지.]

주변 모두에게 잊히고 사라진다.

본인이 기억을 잃었고 그걸 이제야 해결했는데 이제 주변에서 그녀를 잊는다?

그렇게 둘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자네는 생각을 굳힌 모양이군.]

“틈새시장을 조금 공략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머리카락 하나를 가볍게 뽑았다.

아이고 아까운 내 머리카락…….

후욱! 소리를 내며 머리카락을 허공에 불자 내 몸에서 미약한 힘이 빠져나가며 나와 똑같이 생긴 존재를 만들어냈다.

도술 중 하나인 분신술이었다.

비록 저 분신체에 담긴 힘은 익스퍼터급으로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어차피 상대를 처단하기 위해 만든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이후 분신체를 말없이 바라보던 나는 가볍게 녀석과 정신을 링크한 뒤 손을 움직였다.

툭! 툭! 착!!

마치 합을 맞춘 것처럼 분신체의 주먹과 내 주먹이 깔끔하게 부딪혔다.

“브로, 고생해라.”

“브로, 고생해라.”

내가 자신 있는 건 무력뿐만이 아니다.

상황을 이용한 새치 혓바닥 또한 내 장기 중에 하나라는 걸 보여주리라.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어조로 대답하는 분신체를 만족스레 바라본 나는 황당하다는 시선들을 무시한 채 분신체를 흑룡 한 마리에 태워 보냈다.

“마족 본성으로 가. 그곳에서 마왕 페르세르크가 있는 곳으로.”

닉스의 힘이 끊어졌다면 페르세르크는 이제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게 되었을 확률이 높다.

전쟁은 좋지 않다. 내가 할 수 없다면.

강제로 전쟁을 멈추게 만들면 되는 노릇이다.

내가 아닌, 이 세계에 사는 주민들의 힘을 이용하여.

* * *

“읏?!”

갑작스런 변화에 침상에 누워있는 은발의 소녀가 눈을 부릅떴다.

“흐윽…… 끄윽……”

고통스레 숨을 헐떡이던 그녀는 자신의 뿔을 천천히 만져보고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자신의 땀을 닦아냈다.

“제약이…… 사라졌어……”

초대 리치 닉스.

그는 마족을, 마족에 의한, 마족의 세상을 꿈꾸는 급진파 중에서도 급진파였다.

비록 과거 전쟁에서 마족이 인간에게 패배해 인공마계라는 곳으로 쫓겨났지만, 그것은 3천 년 전의 일, 인공마계에 익숙해진 이들은 티오니스 대륙으로 돌아왔고 전쟁을 벌여 수많은 영토를 얻었다.

이제 와서 이 이상의 전쟁은 무의미하다 말하는 이들도 더러 존재했다.

페르세르크는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닉스는 그녀의 의지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모든 마족을 속이고서라도 그녀를 조종해 이 사태를 일으켰으니 말이다.

부활 당시, 육신에 무슨 짓을 해두었는지 닉스의 말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던 페르세르크는 그동안 벌어진 이 모든 참상에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라도……, 전쟁을 멈춰야 하는데.

이 이상의 희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이미 벌어진 전쟁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최대한 희생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그녀였다.

어째서 닉스의 제어가 끊어졌는지는 고민할 문제도 아니었다.

그가 사망했거나, 그의 힘이 닿지 않게 봉인되었거나.

그 범인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단신으로 세계수를 무너뜨렸던 그 기이한 힘을 품고 있던 인간.

인간 중에 아직 그런 존재가 남아있었다고 하는 사실이 어째서인지 안도감으로 다가오는 그녀였다.

“폐하, 뫼시겠습니다.”

말없이 머리를 감싸 쥐며 쓰디쓴 신음을 뱉어내던 페르세르크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서큐버스 두 명을 바라보았다.

고풍스러운 시녀복장을 입은 두 서큐버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페르세르크를 일으켰고, 그녀의 옷을 벗긴 뒤 깔끔한 마왕의 복장으로 갈아입혔다.

그리고는 상당히 피로해 보이는 그녀를 뒤에서 부축하며 그녀를 마족들이 모인 어전으로 모셨다.

“마왕 폐하께서 듭시오!!”

마족 병사 한 명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모여든다.

상위 마족들, 대공 아스타로트를 포함한 수많은 존재가 보인다.

인공마계에서 대거 넘어온 마족들이었다.

그리고 한쪽엔 인간 세상에 남아 수많은 공작을 펼쳐왔던 뱀파이어들도 보였다.

말없이 주먹을 꼭 쥐고 한숨을 내쉰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옥좌에 앉았고 그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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