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2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관심 없다. 그래도 전생에 나는 엄연히 게임을 좋아하던 골수 유저였다.
병실에 처박혀서 한다는 게 영화, 인터넷 게임이 전부였던 만큼 어지간해선 척 보면 척이라는 소리였다.
“무, 무슨?! 말도 안…….”
“안되긴 뭐가 안 돼. 돼! 인마.”
퍽!!!
그 말과 함께 전의를 상실한 인간 하나가 조각이 되어 부서져 나갔다.
시스템 자체는 간단했다.
돌아다니면서 나를 발견하고 덤벼드는 놈들은 모조리 죽인다. 게임을 하는 놈들이니 애초에 대화는 의미가 없다.
“데이비. 애초에 그대가 말한 이 게임이 정말 게임이 맞다면 말이야. 이곳을 관리하는 이들도 있다는 소리겠지?”
그렇게 말한 그녀가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그렇겠지.”
“허면 위험한 게 아닌 게야? 그들은 이 세상에 한정해서 신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을 텐데.”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마, 문제는 없을 거야.”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좀 전부터 나를 따라다니며 감시하는 인원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곳의 시스템이 뭔지는 모르겠다만 나를 부른 건 이 운영자라는 작자들일 테니까.”
회사의 대표이사도, 사원조차 누구인지 모른다. 알려진 게 하나도 없는 정체불명의 회사. 그런 회사가 지구에 버젓이 있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말인즉, 무언가 모종의 힘으로 녹아들어 가고 그 괴리감을 지워버렸다는 소리인데.
보통 인간이 그런 힘을 지니고 있진 않거든.
“그러니 알아봐야지. 이쪽에 호의적인지. 아니면 적대적인지. 뭐가 되었건 이번엔 내가 온 게 아니라 저쪽에서 날 초대한 거니까.”
그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핫챠! 먹이 발견했네요. 선빵필승입니다. 먼저 치…… 꾸엑!!”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한 여성이 호기롭게 외치며 활을 내게 쏘아 보내기가 무섭게 나는 화살을 낚아채고 그대로 흑염을 피워올려 그녀를 통째로 태워버렸다.
그러자 화력을 견디지 못한 그녀가 데이터 조각이 되어 바스러져 사라졌다.
“데이비, 좀 전부터 계속해서 사람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쯤 되면 누가 악당인지 모르겠네.”
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부른 것일까.
이미 주변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인간들이 보인다. 뭣 모르고 덤벼든 인간들은 모조리 데이터 조각으로 부숴버렸지만 덤비지 않는 이들은 굳이 건들지 않았다.
이쯤 되면 이상함을 눈치채도 챌만한데, 전혀 그런 요소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숨어서 나를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는 두 유저의 말 속에서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미친 게임사, 진짜 난이도 올린다더니 진짜 작정하고 괴물 같은 중립몹 가져다 놨네. 저거 대체 뭐야. 뭔 반응속도 실화냐.”
“들었어요? 우종석이 시작부터 리타이어 했다는데? 이건 기본 피지컬 문제가 아닌 거 아님?”
“애초에 잡으라고 만들어놓은 몹이 아니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템 효과 다 켜고 덤비는데 손도 못 쓰고 쳐발릴 수가 있나.”
“어지간해선 협력하면 잡을 수 있게 하던데……”
“사실 중립몹이 인간형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는데. 굳이 먼저 공격 안 하면 무시하는 걸 봐선 기믹형 중립몹 같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이들도 있다.
말없이 주변에 마나 파장을 퍼뜨리며 걷기를 한참.
나는 슬슬 체류 가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구는 지구인지 힘을 적절히 배분해서 사용했음에도 시간이 굉장히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다만 힘의 사용 자체에 서로 줄어드는 빈도의 차이는 분명히 보였다.
가장 적은 비율로 줄어드는 것은 다름 아닌 주술이었다.
확실히 고대부터 사신수 관련 설화들이 많긴 했지.
“어지간해선 주술 위주로 써야겠는데.”
남은 시간은 약 10여 분가량.
뭐 하나 제대로 건진 것도 없이 그저 이 데이터로 만들어진 도시를 배회하다가 멈추는 게 전부였다.
그 과정 중간에 내 손에 데이터 조각이 되어 흩어져버린 인간의 수만 수십이 넘었다.
시간은 줄어드는데 알아낸 건 없으니 오히려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소득도 없이 계속되는 탐색전이 이어졌을 무렵.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에 페르세르크를 곧바로 안아 들었다.
“꺅! 데이비? 뭐하는!”
“가자.”
익숙한 힘, 대부분 힘이 다른 잔향의 여파에 의해 사라졌지만 내가 이걸 모를 리가 없다.
콰앙!!!!! 쾅!!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거대한 폭음에 나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흐읏!”
공포에 질린 것처럼 표정을 찌푸리고 온몸을 잘게 떠는 페르세르크를 진정시키듯 내가 속삭였다.
“겁먹지 마. 내가 있잖냐.”
“데이…… 비…….”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그녀는 심연의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떨림은 굉음을 일으키는 존재에게 가까이 갈수록 점점 커져만 갔다.
“괜찮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두려워하는 그 모습에 내가 다시 한 번 다독이듯 묻자 그녀는 짧게 숨을 고르고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러자 파르르 거리며 전해져 오던 떨림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미안해. 데이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동길감이 느껴져서 그랬던 게야.”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힘을 내뿜는 존재는 심연의 존재가 맞았다.
하지만 유르기안 대륙에서 보았던 것처럼 작은 녀석은 아니었다.
그 크기가 수십 미터에 수백 개에 달하는 촉수와 수십 개의 눈을 지닌 외향적으로 끔찍하기 그지없는 괴물이었다.
[우리는……]
[하나.]
‘또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사념과도 같은 목소리였다.
“빌어먹을 진짜 이번에 중립몹들 난이도가 대체 왜 이래!!”
기겁하며 도망치고 반격을 가하는 유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있는 곳은 유저들과는 한참 떨어진 빌딩의 옥상이었지만 말이다.
분명 배틀로얄식 게임인 것 같은데.
갑자기 중립형 몬스터가 날뛰니 모두들 서로 죽고 죽이던 것도 멈추고 연합을 맺어 거대한 심연의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괴물은 물렁물렁한 몸체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공격을 튕겨내거나 아예 버티고 반격까지 가하는 위용을 선보이고 있었다.
“미친! 딜 박히는 거 실화냐?!”
“뭔 미친 방어력이야!”
짜증과 경악, 분노와 허탈함이 뒤섞인 외침이었다.
그나마 이곳에서의 죽음이 진짜 죽음이 아닌 이들이었기에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용감하게 괴물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멀리서 냉정하게 평가할 때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이에 나는 익숙하게 상태창을 활성화했다.
보통 주신 프리아 여신은 상태창 능력에 거래내용을 적어 보내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주신 프리아 여신은 침묵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 세상으로 넘어온 것 자체가 주신 프리아 여신의 의도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일까.
무엇이 되었건, 심연의 괴물을 그냥 둘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게임 속 데이터 조각이라 해도 이곳은 가상현실이다.
본래라면 존재할 수 없는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곳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게임과 흡사하면서도 다른 이 세상의 흐름 속에 심연의 존재를 그냥 방치해 두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데이비. 시간이 별로 없어.”
심연의 존재를 보고 두려움과 역겨움에 몸을 떨던 페르세르크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공간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아름다운 곡선을 지닌 단궁이었다.
다름 아닌 신궁 브류나크.
신궁 아폴론의 무기이자 현재 내 전용 활이기도 한 그 무기였다.
철컥.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짧게 중얼거린 나는 단궁을 빠르게 조작해 형태를 변형시켰다.
내가 만든 것은 커다란 장궁의 형태였다.
우웅…….
그리고는 가장 시간을 적게 잡아먹는 주술, 즉 도력을 끝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신수를 부릴 수 없다는 건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일단 있는 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치직…… 치지지직!!
“젠장! 더럽게 세네!”
짜증을 부리며 심연의 괴물의 어그로를 끌고 있는 인간들이 보였다.
물러섬 없이 싸우고 있는 모양새라 그냥 공격하면 그들도 휘말릴 가능성이 존재했지만 내겐 고민할 가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신궁 저격]
[일초섬광]
쫘아아악!!!
어마어마한 장력을 품은 줄이 당겨지는 소리와 함께 내가 딛고 있던 지면이 일순간 뒤틀리듯 내려앉았다.
치직…… 치지지직!!!
반면 내가 모으기 시작한 힘의 여파에 휩쓸리듯 거대한 빛의 화살이 아무것도 없던 활시위와 활대에 걸쳐져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화살이든 사용할 수 있으면 화살이 없어도 화살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내 주술을 마나처럼 이용해 활성화한 화살을 겨눈 나는 정확히 심연의 촉수 괴물이 유저들에게 정신 팔린 틈을 노렸고.
미련 없이 그대로 활시위를 놓았다.
쩌엉!!!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화살은 거대한 범이 되어 괴물의 육신을 거침없이 찢어발겼다.
* * *
“오 마이 갓……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기가 막힌다는 듯 말하는 금발 청년이 중얼거렸다.
22세의 젊은 청년인 마이클은 알프 온라인의 현 랭킹 6위에 빛나는 대단한 실력가였다.
현질 요소가 없어서 오로지 운빨과 임기응변, 그리고 노가다로 모든 게 정해지는 게임이 바로 이 알프 온라인이었다.
마이클은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립몹으로 추측되는 저 어린 소년과 소녀에게 덤비려다가 잠시 멈춘 게 그의 목숨을 구했으니 말이다.
처음엔 다른 이들을 방패 삼아 막타를 노리는 저격수였다.
하지만 그는 하필 저격 타이밍에 실수를 하는 바람에 공격하지 못했고.
그 덕분에 살아남았다.
비슷한 시기에 저격을 한 이는 소년이 쏘아 보낸 섬광에 찍소리도 못하고 데이터 조각이 되어 부서져 버렸으니 말이다.
싸움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반응속도, 임기응변, 반격능력 등등.
모든 면에서 저 괴물 같은 소년은 상대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었다.
그렇게 운이 좋아 살아남은 그는 대체 이 미친 게임사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무식한 중립몹을 만들었는가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 버그나 핵유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상현실 기술을 해킹할 수 있는 이는 지금 없거니와 그 어떤 경우에서도 버그는 없다는 게임회사의 호언장담 때문이었다.
실제로 서비스 시작 몇 년 동안 그 어떤 경우에도 버그는 발견되지 않을 만큼 놀라운 품질을 자랑한 게 바로 이 알프 온라인이었다.
그렇다면 저 인간을 초월한 듯한 반응속도와 전투 센스는 도저히 인간이라 보기엔 문제가 있었다.
결국 게임사에서 만들어낸 상위 AI 인공지능이라는 소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후 소년과 소녀를 따라다니며 몸을 숙이고 기척을 차단한 마이클은 곧 어디선가 나타난 또 다른 중립 몬스터의 출현에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 괴물은 척 보기에도 끔찍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중립 몬스터의 처단은 생각보다 굉장한 점수를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위험하게 서로를 죽고 죽임으로써 점수를 벌어놔도 중립 몬스터를 잘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고득점을 노려볼 수 있다는 소리였다.
결국, 대부분 인간은 그 흐름에 편승하는 편이었다. 실제로 작년 경기에서도 중립 몬스터가 나왔을 때 몇몇이 잠시 휴전하고 중립 몬스터를 챙겨 점수를 번 다음 다시 싸움한 사례도 있었다.
마이클도 처음엔 그렇게 하려 했다.
솔직히 소년과 소녀로 추정되는 중립몹은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두 번째로 나타난 괴물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이길 가능성이 있다.
그것의 차이는 제법 컸다.
다만 마이클은 평소처럼 괴물을 향해 덤벼들지 않았다. 묘한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이 들어맞듯 이동하며 공격해오는 모든 이들을 단 한방에 발할라로 보내버리던 소년 소녀 중립 몬스터 두 명이 움직임을 시작했다.
중립 몬스터는 중립 몬스터끼리 싸우지 않는다.
하지만 소년은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를 활을 들었다.
그리고 그 소년의 몸으로 무언가가 모여들기 시작하자 마이클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긴 채 동영상 활성화 버튼을 눌렀다.
그 누구도 두 사람을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소년의 화살에서 섬뜩할 정도의 힘이 풍겨 나온다.
인간을 공격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유저를 공격하려는 것인가.
그러던 중 소년의 뒤에 있던 은발의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이클은 눈을 부릅떴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이 그의 시선에 담겼다.
멍하게 굳어있는 와중에도 동영상 기능은 두 사람을 계속해서 촬영했고 이내 두 사람의 행동이 모조리 영상에 담겼다.
새카만 힘을 뿜어내며 거대한 마법을 스태프의 끝에 머금은 소녀가 스태프의 끝을 지면에 튕기자 거대한 촉수 괴물의 전신에 검은 사슬들이 옭아매 진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소년의 화살이.
허공을 뚫다 못해 아예 찢어버리며 거대한 촉수 괴물의 몸통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그 모든 영상은 모조리 마이클의 캡슐에 저장되었고 마이클은 뒤이어 자신이 기회를 보고 있던 다른 유저에게 죽임을 당했음에도 분해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머릿속엔 지금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립 몬스터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 그런데 소년 소녀가 촉수 괴물을 공격했다는 것은.
저 두 사람이 참가자라는 소리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비공식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랭커라 봐도 무방했다.
그것도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강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지닌 비공식 랭커말이다.
‘이건 조회수 대박감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캡처한 정체불명의 남녀에 대한 영상을 업로드해 관심을 끌 생각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