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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78화 (477/1,559)

제 478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침묵하는 뱀파이어를 더는 추격하진 않았다.

이전이라면 이놈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 캐냈겠지만, 이번엔 그 원흉에 대한 정보를 모두 들었으니 말이다.

나는 마왕이되.

마족들의 신임보다는 적의를 받는 존재다.

내게서 빠져나갔던 마왕의 권위 중 일부를 흡수한 이가 자신이 가진 마왕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이들을 부추겼다고 하면 이야기는 더 할 것도 없었다.

한 차례 난동을 부렸고 그 소식을 들었을 텐데도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에디손과 그를 돕고 있는 골고다 장로는 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며 옥신각신 싸움하고 있었다.

반면 륀느는 한 손에 커다란 슬랫지 해머를 들고 금속 파츠를 여지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보통 저 정도의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면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큰 망치로 주로 두드리는 작업을 하기엔 힘의 균형 분배가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별로 좋은 도구가 아니었다.

보통은 큰 면을 두드릴 때 사용하는 장비이지만 륀느는 그 작디작은 몸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나뭇가지 휘두르듯 오함마를 휘둘러대고 있다.

“륀느가 농땡이 피는 데이비님을 낮게 평가.”

어이쿠.

내가 덫을 깔러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잔뜩 심통이 난 모양이었다.

조용히 공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페르세르크가 내 팔을 잡았다.

“음?”

“잠시…… 조금 있다가 들어가지 않겠어?”

그녀의 말에 침묵하고 있던 나는 피식 웃어주었다.

* * *

조용한 풀밭.

사람 하나 없지만, 하늘에 뜬 수많은 은하수와 별, 그리고 두 개의 달이 아름답게 비치는 밤하늘이었다.

티오니스 대륙의 하늘은 여타 어떤 세계의 하늘보다 아름답다.

가장 상위의 차원이라서 그런 것일까.

차원 간에 상위 하위라고 해봐야 큰 차이가 없다는 게 내 지론이었지만 이곳에서 살면서 이리저리 확인해본 결과.

티오니스는 다른 차원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이런 것도 오랜만이네.”

나는 페르세르크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 중얼거렸다.

“그동안 쉬지도 않고 움직였으니, 조금은 쉬어줄 때도 된 게지.”

“그래서 지금 이 타이밍에?”

“그것보다 그대와 상담할 게 있어서.”

나름의 배려였다.

이 이상 에디손에게 손을 보태주어 그의 자부심을 망가뜨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설계도와 중요 부분을 모두 내가 해결해버린 탓에 그가 할만한 것이라곤 금속 파츠를 빠르게 제작해 조립하는 게 전부이지만 말이다.

에디손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골렘은 기본적으로 디셉티콘 편대에 비하면 상당히 수준이 떨어지는 저급 골렘이다.

실제로 투자한 시간도 작으니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가능한 선은 내가 아는 방식에서 양산형 마도 골렘을 만드는 게 전부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이미 연금학파를 뒤집어놓기엔 충분하지만 말이다.

“데이비, 그대가 만들고자 하는 것의 동력 핵으로 그 공허 에너지인지 뭔지를 사용하려 하는 게지?”

“일단은, 될지 안 될지는 직접 해보기 전까진 몰라.”

“안된다면?”

“차원 열쇠를 이용해보던지, 아니면 대체할만한 동력수단을 만들던지.”

뭐가 되었건 연금술사에게 도전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지만 열성적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연금학파의 기술고문, 에디손처럼 말이다.

“그 과정에서 마족들이 그대에게 반발한다면…… 그들을 죽일 게야?”

“죽일까?”

내 질문에 그녀는 묘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본녀를 떠보는 건 관두어.”

“죽이기 싫잖아, 안 그래?”

인간들은 모른다. 마족도 결국은 하나의 종족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티오니스 대륙을 공습했던 마족들은 참다못해 폭발해버린 이들이지만 아마 그들이 사는 마계엔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숫자의 마족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개중엔 미래를 꿈꾸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이와 아이를 키우며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데이비, 이런 말 자체가 모순인 건 알지만……”

“알아.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줄게.”

“미안해.”

그녀가 옅게 웃어 보였다.

비록 그녀를 이용해 마왕으로서 인간과 전쟁을 벌이게끔 한 게 마족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마왕으로서 마족들을 돌보며 보았을 것이다.

마족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말이다.

“물론, 공짜론 안되고.”

내가 픽 웃으며 말하자 그녀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하지만 곧 내가 뭘 원하는지 깨달았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진짜 그걸 원하는 게야?”

“더한 것은 참았다가 나중에 한다지만 적어도 결혼을 앞둔 연인관계인데 너무 빼는 거 아닌가?”

“여, 여기서?”

“그래. 여기서, 나우.”

단호하게 말하자 그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찰나의 고민 끝에 그녀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와의 혼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천만한 선택 같은데.”

“하기 싫다고 도망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마.”

도망가면 잡아와서라도 앉혀놓을 테니.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내 뜻을 깨달았는지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조용히 다가온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내 눈과 마주쳤다.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아니면 태양신의 상징인 붉은 달의 빛 때문인지 붉어 보였다.

“……”

한참을 침묵하던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올려다보다 조용히 마주 눈을 감아주었다.

부드러운 촉감이 내 뺨에서 느껴진다.

아주 천천히, 놀라울 정도로 느린 속도지만 그녀와 나는 서서히, 아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비록 수천 년에 달하는 차이를 가진 그녀와 나였지만 그런 시간 따위 신경 쓸 생각이었다면 그녀에게 마음을 품지도 않았으리라.

첫사랑은 비록 회랑에 있던 스승이었지만 그녀는 내가 다가가기엔 너무 먼 존재였다.

산 자인 나와 이미 죽은 자인 데스로드 [로 아이아스]는 애초에 맺어질 수 없는 관계였고 그것을 알기에 그녀는 어쩌면 나와 거리를 둔 것일지도 몰랐다.

첫사랑은 실패한다더니.

부드럽고 황홀한 감촉에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촉촉한 느낌이 떨어지자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리고는 장난스런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호오, 데이비. 그대 얼굴이 빨개졌어.”

이 와중에도 나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것인지 그녀가 키득거리며 나를 놀려온다.

이에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에 거짓은 없었으니 아마 뺨에 하는 키스마저도 괜히 얼굴에 피가 쏠렸던 모양이었다.

“네가 시작했다.”

“뭣? 꺅!”

동시에 나는 그대로 그녀의 어깨를 짓눌러 풀밭에 그녀를 쓰러뜨렸고 동그랗게 눈을 뜨는 그녀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뺨으로 끝내려고? 진도 한번 늦게 빼시네. 간질간질한 썸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곧 혼인을 치를 사이에 너무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느리다.

그렇다면 거기에 기름 한 번 부어주리라.

“읍?!”

당황한 채 입술을 입술로 틀어막힌 그녀가 버둥거린다.

내게 깔린 채 다리를 동동 구르며 빠져나가려 애쓰는 그녀였지만 나는 그녀의 머리에 붙인 뿔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막고서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한참 동안의 침묵.

숨이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페르세르크의 저항이 멈추자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투명한 은빛 실타래가 그녀의 입술과 내 입술 사이에서 이어져 천천히 늘어졌다가 끊어졌다.

그러니까, 어딜 까불어.

좀 전의 장난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눈물까지 고인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페르세르크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은 얼굴이었다.

“적당히…… 적당히를 몰라 이것이!”

그녀가 성을 내며 내 가슴팍을 올려친다.

하지만 그 안에 힘은 담겨 있지 않았다.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던 내가 천천히 물러나자 그녀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한 손으로 제 입가를 만졌다.

이성과의 첫 키스가 처음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본능이 각성했던 에이리아 황녀에게 한 차례 입술을 빼앗긴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정확히 페르세르크와의 진한 스킨쉽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족끼리도 해줄 수 있는 서로를 보듬어주는 행위에서 이성 간에만 가능한 행위를 처음으로 해버린 것이다.

빨개진 얼굴로 나를 향해 계속해서 투닥거림을 보여주던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수치심과 부끄러움, 그리고 나를 향한 복수심이 신나게 저울질을 한 것일까.

그녀에게서 돌아서는 내 뒷덜미를 그녀가 낚아채더니 그대로 당겨 나를 드러눕게 했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비슷한 성정을 지니고 있다.

누군가를 괴롭히고 키득거리길 좋아하는 성품이라는 소리였다.

실제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여유를 잃지 않고 나를 향해 우위를 점하려 하지 않았던가.

“본녀가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다시 입을 맞춰왔다.

저돌적인 행각에 잠시 멍해진 나는 한참을 침묵하다 천천히 손을 뻗었다.

“네가 먼저 시작했다.”

서로 누가 부끄러움에 나가떨어질지 하는 웃기지도 않은 자존심 싸움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 고인 얼굴로 내게서 떨어진 페르세르크의 패배로 끝났다.

* * *

시합의 예정일이 다가왔다.

경합은 깔끔한 규칙을 준수했다. 준비된 투기장 내에서 서로가 만든 전투 골렘이 서로의 전투능력을 선보인다.

주제는 대인전이었으니 누구의 골렘이 이기냐에 따라 모든 것이 갈리리라.

총장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골렘이 천에 덮인 채 거대한 수레에 실려 수십 명의 인부들의 손을 타고 투기장 내부로 들어왔다.

반면 에디손이 만든 골렘은 어딜 봐도 없었다.

골렘 제작으로 유명한 연금학파 총장과 기술고문의 경합은 이미 수많은 연금학파 일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인간, 수인 드워프.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 투기장을 내려보고 있는 가운데 에디손이 굳은 얼굴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돼요?”

“음? 그, 그럴 리가 있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목소리는 상당히 떨리고 있다.

“할배! 우리 열심히 했잖아요! 이길 수 있을 거야!”

“고년 참…… 어여 들어가서 발 닦고 잠이나 처 자거라!”

“에잉, 할배 진짜 정 없이 말할 거야?”

“정 없기는 이년아!”

투닥거리는 할아버지와 손녀와의 대화를 보고 있던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쫄지 마세요. 저쪽에서 뭘 가져오건 죽어도 질 일은 없으니.”

레벨 5짜리 골렘과 레벨 99짜리 골렘이 싸우면 결과는 뻔하다.

세상에 100퍼센트와 0퍼센트는 없다고 하지만.

99.99999퍼센트는 존재하는 법이다.

“후후후, 에디손 기술고문, 간밤엔 잘 지내셨소이까.”

말없이 완성된 골렘의 다리 부분을 두드리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에디손에게 두 사람이 다가왔다.

연금학파 총장과 듀란 왕자였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하는지 상당히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런 더러운 수작까지 부렸는데 질 거라고 생각이나 하겠는가.

내가 강하기에 중간에 트러블이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더미 파츠를 부수는데에도 성공했고 우연히 설계도도 노획했으니 금상첨화라 여기는 모양이었다.

“언제부터 기술자가 주둥아리만 나불거리게 되었나. 총장, 어서 시작하시지.”

“그전에 확인하지요.”

느긋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듀란이 나섰다. 그는 나를 보더니 이내 비웃음을 던졌다.

아마 자신이 그런 짓을 했으리라곤 내가 전혀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쪽에서 이기면 당신의 기술고문직을 박탈하고 당신의 이름으로 된 작품들의 권한을 모두 회수하겠소. 그리고, 당신의 손녀딸인 티아라 영애와의 혼사를 거절하지 않아야 할 터.”

“흥!”

에디손이 코웃음을 치자 그는 짐짓 다 이긴 것처럼 굴었다.

“그리고…… 그 잘나신 대륙의 성자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해주셔야 하지 않겠소?”

그의 말에 나는 어깨만 으쓱여 보였다. 아주 자신의 계획대로 되었다고 신이 난 모습이다.

그런 그의 자신만만한 행동에 한편에 앉은 포고스의 국왕이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게 보였다.

그의 표정에 서린 감정은 우환이었다.

포고스의 국왕은 이전 뱀파이어와의 전쟁에서 나를 한 번 본 적이 있는 만큼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그렇소?”

놀리듯 말하는 듀란을 향해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래, 뭐 만에 하나 기적이라도 발생해서 이기면 그렇게 해드리지.”

“뭐라……”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 한기 서린 웃음에 그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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