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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50화 (849/1,559)

제 850화

“아아…… 결국은…….”

아비트의 목소리에 체념이 서렸다.

어떤 경우의 수를 대입해도 이제는 한계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력, 육체의 힘. 그리고 방대한 방식의 힘.

모든 게 완벽해 보이지만 새로운 세상의 씨앗인 붉은 공허의 저항은 놀라울 정도였다.

데이비가 쓰러진다.

절망이 앞선다. 기적 따윈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결국, 2대맹주인 그도 실패하는 것인가.

그가 실패하면 아비트의 고향이던 티오니스 또한 사라질 터다.

씁쓸함과 슬픔이 앞서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가 바스러져 가는 걸 볼 수밖에.

하지만 모든 불씨가 꺼져가려던 그 순간. 또 한 번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은…….”

코오나를 통해 확인해보려 했던 것이 눈앞에 들이닥치자 아비트는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지치지 않지만 지배력이 극도로 약했던 헤라클래스와 반대로, 지배력은 점차 강해지지만, 점차 지쳐가 죽어가던 데이비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 죽어가던 데이비가 아닌 완전히 회복한 존재가 되어서 말이다.

“코오나! 내 말 들리느냐!!”

다급히 자신의 사역인을 부른 아비트가 자신의 의념을 보낸다.

기적이다.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것이 성공하고 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듣거라! 맹주께서 계신 곳으로 가! 시공을 베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닌 소녀에게 내 말을 전해라!”

* * *

아비트의 명을 받은 코오나는 황급히 그가 열어준 틈을 이용해 티오니스로 향했다.

그리고, 하인스 영지에 도달했을 때. 슬픈 감각이 감돌고 있는 영지를 볼 수 있었다.

보는 사람조차 슬퍼지게 만드는 그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코오나는 황급히 움직였다.

이럴 때가 아니다.

“멈추십시오! 이곳은 함부로 들어가실 수 없소!”

그녀의 존재를 발견한 근위병이 그녀를 막아선다.

“들어가야 합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요!”

“안됩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명이!”

“더 늦기 전에 가야 합니다!! 데이비 님을 살릴 유일한 방법이에요!”

그 말에 근위병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그게 무슨…….”

쉽사리 믿지 못할 소리였다.

근위병들이 우물쭈물하자 코오나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자신의 힘을 발현했다.

[선녀화.]

화아아악!!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이 빛나며 변하기 시작했다.

분홍빛 의복은 하늘거리는 날개옷과 흡사했다.

“무슨?!”

[행복한 꿈을 꾸길.]

그 한마디와 함께 근위병들이 노곤한 표정으로 쓰러졌다.

선녀의 힘을 이용해 그대로 근위병들을 재워버린 것이다.

그렇게 그녀를 막아서던 이들을 제치고 영주성으로 들어간 그녀는 아비트가 말했던 힘을 뿜는 이를 찾기 위해 내달렸다.

“누구세요?!”

당황한 한 소녀가 눈을 크게 뜬다.

순진무구해 보이는 눈동자를 말끔하게 뜨며 코오나를 저지한 그녀가 눈꼬리를 살짝 찡그렸다.

“외부인이신 것 같은데 어떻게…….”

“이곳에 시공을 벨 수 있는 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요! 빨리!”

“그게 무슨…….”

“데이비 맹주를 살릴 방법은 그뿐이에요!”

그 한마디에 그녀를 막아섰던 소녀, 에이미가 눈을 크게 떴다.

“어서 빨리!”

* * *

완전한 지배가 끝난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끝도 없을 것 같던 극한 상황이 끝을 맺는다.

저항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를 거부하던 붉은 공허는 이제 없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의 영역 안에 놓였으니까.

그렇게 난동을 부렸음에도 아직도 방대하기 그지없는 생명력을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손을 휘저었다.

여기까지 와서 이제 와서 포기할 수야 있나.

나는 붉은 공허를 그 근본부터 서서히 흩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공간을 만들어낸 막대한 힘을 모조리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목표는 프리아 여신의 영역에 존재하는 달. 타나토스.

심연의 신 타나토스의 신격이 가지고 있던 생명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생명력의 물줄기가 수십 수백 갈래로 갈라지며 흩어지고 내가 만들어낸 균열을 타고 빠져나간다.

금기의 힘은 이제 완전히 내 것이 되었고, 이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신격을 완전히 얻은 것은 아니지만 이 공간 안에선 내가 태초 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 불완전한 태초 신.

붉은 공허에서 티오니스로 이어지는 틈을 열고 막대한 생명력을 쏟아붓기 시작하자 변화가 일어난다.

지금의 내 눈에 보이는 티오니스의 상황.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나 마치 속은 다 닳아버린 것 같은 티오니스에 활력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부서진 핵은 다시 새살이 돋아나듯 복구되기 시작했고 언제고 부서질 것처럼 흔들리던 차원의 균열은 다시금 견고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막대한 생명력이 모조리 빠져나간다.

그 끝에서 나는 말 없이 붉은 공허를 바라보았다.

의지가 존재하지 않으나 의지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공간.

이공간의 가능성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이에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가출했으면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언제까지고 떠나있을 거냐.”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너희는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저 이사를 가는 것뿐이야.”

불완전한 태초 신이 아닌 진짜 완벽한 태초 신이 조율하는 세상으로.

“그곳에서, 올바르게. 태어나라. 너희들의 앞날을 이곳의 지배자인 내가 축복하겠다.”

내 말에 붉은 공허의 가능성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그렇게 흩어지는 생명력을 뒤로한 채 나는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아비트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이걸 하면서 알아낸 게 있는데 아비트.”

“말씀하십시오. 맹주.”

“나…… 여기서 못 빠져나가겠지?”

“……죄송합니다.”

붉은 공허의 끝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공허의 지배가 끝나갈 때 즈음 아비트와 나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붉은 공허의 힘을 모두 그곳으로 빼내면, 더 이상 이곳에서 나는 빠져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다.

“그렇게 열심히 달렸는데 결국은 이루지 못하네.”

“맹주.”

“준비해라 아비트. 네게 영면을 줄 테니.”

내가 선언하듯 그에게 말했다.

“맹주.”

“죽고 싶어 했잖아. 3만 년 동안.”

“…….”

“내가 여기에 얼마나 있었냐.”

내 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을 거야. 헤라클래스도 그랬을 테니.”

“맹주께선 초대 맹주였던 헤라클래스 님보다 월등한 속도로 이곳을 지배하셨습니다. 방법의 차이였지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헤라클래스는 불가능했지만, 나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습니다만, 맹주를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거대한 붉은 고대룡은 본체로 현현한 채 내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생 많았다. 아비트. 이제 푹 쉬어.”

“제가 마지막 고대룡이라 하였지요.”

그렇게 말하며 그가 내게 작은 알을 건넸다.

“알?”

“3만 년 동안 동면시켜두었던 알입니다.”

“누구 알인데?”

“……이클립스 님의 알입니다.”

그 한마디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장난해? 이럴 거면 알부터 먼저 줬어야지. 이렇게 되기 전에 내보냈을 거 아니야.”

내 짜증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내 손짓을 따라 그의 육신이 서서히 가루가 되듯 흩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수명을 한참 넘어 살아있었던 한시대의 절대 포식자인 마지막 고대룡이 그렇게 바스러진다.

죽어가면서도 편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를 보며 내가 물었다.

“네 사역인이라던 코오나는?”

“이미 내보냈습니다.”

“……그래.”

“죄송합니다. 맹주.”

그가 건넨 사람의 상체만 한 알을 든 채 내가 물었다.

“코오나에게 이 알도 쥐어서 보냈어야지.”

“맹주께서 그 알의 대부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대부라…….

“고대룡은 태어남과 동시에 자아가 확립되니까요. 고대룡에게 성인식이라는 것은 그저 힘의 각성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육신이 대부분 흩어졌다.

“억울하지 않으십니까.”

“더럽게 억울하지.”

하지만 살릴 수 있었다.

헤라클래스도 포기한. 로 아이아스도 불가능하다 말했던.

프리아 여신조차 손을 대지 못했던 세상의 붕괴 흐름을 해결했으니까.

또다시 이런 상황이 온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내릴 것이다.

물론, 그땐 내가 살아남을 방법도 찾아내야지.

“맹주. 부디.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사십시오.”

“여기 갇혀서 죽어갈 내가 행복한 삶을 얼어 죽을. 미안한데 나는 한번 죽으면 윤회고 뭐고 없어.”

그대로 소멸이다.

물론 데스 로드 로 아이아스의 저주 흐름 거부를 이제 와서 해제 수는 있다지만 그건 별로 원치 않았다.

그렇게.

아비트는 마지막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3만 년 동안 자신을 죽여줄 맹주를 기다려온 붉은 공허의 파수꾼이 그렇게 사라졌다.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본래대로 환원하며 흩어지는 공간에 남은 건 나와 이클립스가 남긴 알이 전부였다.

“궁금한 건데. 이클립스는 대체 널 어떻게 낳은 거냐?”

우스갯소리를 던져보지만, 동면에서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알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알이 대답하는 것부터가 웃긴 일이지.

“하…… 씨 최악의 수는 반드시 생각해놨어야 했는데.”

설마 최악의 수가 이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지금이라도 생명력을 남기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되면 티오니스의 붕괴는 다시 눈을 뜰 것이다.

이렇게 내가 희생하는 건 억울하기 그지없다.

나는 지금의 내 삶을 쉽게 버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방법이 존재하기나 할까.

그런 나를 포함하여 서서히 붕괴되는 세상을 보며 나는 알을 내려놓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부서지는 세상을 올려다보며 회상에 잠겼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나섰지만 결국 나를 구하는 건 없다.

그 한마디가 괜스레 서글프게 다가왔다.

일리나가 했던 말인가.

애초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라는 거창한 명목은 아니었다. 단순히 내가 사는 세상 훼방 놓는 놈들을 부수고 다니다 보니 이 지경까지 온 것뿐.

참 운명이란 얄궂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간이 붕괴하며 이 공간을 완전히 지배하던 나 또한 사라지기 시작한다.

“돌아…… 가야 하는데.”

막대한 무력감이 전신을 감싼다.

그렇게 의식이 흐려가던 찰나.

내 앞에 있던 공간이 찢어지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꿀을 머금은 듯한 밝은 금발을 휘날리는 소녀.

그녀는 내상으로 인해 피를 토하고 창백해져 있으면서도 끝내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네가 거기서 왜 나와?

경악한 얼굴로 내가 그녀를 보자 그녀는 조용히 쓰러진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내가 말했지. 세상을 네가 구하고.”

세상을 전부 구원했음에도, 네가 망가진다면.

그땐.

“내가 널 구한다고.”

“정……신 나갔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너 지금 죽어가고 있는 거 알아?”

내 물음에 그녀가 피식 웃어 보였다.

“너 예전에. 내게 이거 준거 기억 안 나?”

그녀가 꺼내 든 것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물건이었다.

꺼져가는 잿불에 활력을 불어넣는 하난의 불씨.

[잔불]

“하…….”

“내 남편 구하는데 목숨 하나면 싼값이야.”

그 한마디와 함께 내 정신은 샐 수 없는 시간을 이 공간에서 방황해온 피로로 인해 서서히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다만 의식이 가라앉기 전 나는 그 말을 잊지 않았다.

“알 챙겨.”

그렇게 그녀에게 부축되어 걸음을 옮긴 나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생명력이 퍼져있는 티오니스의 땅에서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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