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97화
쾅!!
밤늦게 나를 찾아온 레이나에게 무슨 일이냐 물을 것도 없었다.
그녀가 안고 온 사내가 누구인지 모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피를 너무 흘렸어요.”
“일단 여기 눕혀.”
나는 피가 철철 흘러 바닥이 붉어짐에도 신경 쓰지 않고 그를 바닥에 눕힌 후 손을 뻗었다.
우우웅!!!!
이미 대부분의 생명력이 빠져나갔다. 보통 의술, 어지간한 신성 마법으론 늦었으리라.
하지만, 가능하다.
망설임 없이 신성력에 신력을 섞어 그의 몸에 밀어 넣었다.
어쩌다가 그가 이 꼴이 됐는지 그녀가 왜 그를 데리고 왔는지.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치료에 열중했다.
창백하던 그의 피부가 서서히 색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침묵하던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습격을 당했어요.”
“상대는?”
“모르겠어요. 처음 보는 장비, 그들이 말을 하는 걸 들어보면 티오니스나 지구 관련 인간은 아닌 것 같았는데.”
“관련 인간이 아니라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살려야 하니까 그들을 제압하고 돌아온 게 전부라.”
“고생했어. 그런데 이상하네.”
상처가 완전히 아문 모습을 점검하며 나는 생각한 대로 떠벌렸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왜 이 녀석이 공격을 받은 거지?”
“그건 저도 잘…….”
“일단 상처는 잘 회복시켜놨으니까. 깨어날 때까지 돌봐줘. 어차피 할 말이 있었던 거 아니야?”
“……알고 계셨네요.”
“모를 수가 있나.”
그녀가 아무리 아니라 해도 결국 근본은 일리나인 것을.
“솔직히 나는 네가 바라는 대로 됐으면 싶지만, 개인적인 욕심으론 그와 이어지는 건 반대야.”
“어째서요?”
“넌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문드러져 있다.
이건 레이나를 위한 판단이기도 하지만, 대상을 향한 배려이기도 했다.
“아마 절대 좋게 끝나진 않을 거야.”
“쿡쿡……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페르가 그러더라.”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솔직히 두 사람 다 똑같은 거 아니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년, 삼천 년 모태솔…….”
“쓰읍”
레이나가 혀를 쏙 내밀었다.
“그러지 않아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누워있는 승현을 스윽 바라보았다.
* * *
데이비가 조사를 위해 떠난 뒤 레이나는 시종들의 도움을 받아 그를 객실의 침대에 눕혔다.
지구에서 하인스로 초대된 몇 안 되는 사람이라.
레이나는 그저 묵묵히 그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적어도 그에게 상황에 대한 설명은 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닿은 것일까.
죽은 듯 잠들어있던 승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죽음에 이르는 치명상이었음에도 금방 깨어나는 것만 봐도 데이비의 회복이 얼마나 경이적인지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정확히는 그가 운이 좋았던 것이지만 말이다.
“으윽…….”
“정신이 들어?”
“레이나 누님? 여긴…… 어딥니까?”
“하인스 영지야.”
담담하게 말하며 곁에 있는 약병을 내미는 그녀였다.
“쭉 들이켜. 원기 회복은 해야 하니까. 당분간 방송도 하지 말라고 하더라.”
“…….”
그렇게 약병에 손을 뻗으려던 그가 흠칫 놀라 손을 뺐다.
그의 그런 행동에 의아함을 품은 레이나는 곧 이유를 눈치챈 듯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네 잘못 아니야. 괜찮아.”
“죄…… 죄송해요. 몸이 멋대로 반응해서…….”
그는 파르르 떨리는 자신의 손을 원망스레 노려보았다.
“보통 사람은 칼에 맞을 일이 없으니까.”
“그건…….”
“기억해?”
그 질문에 승현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기이한 기척이 느껴져서 방에 들어갔는데 그 방안에서 무언가가 갑자기 번뜩였고 정신을 차리니 이곳이었다고 말했다.
반응도 못 할 속도로 당한 꼴이었다.
“그런데. 누님. 제가 왜 여기 있는 겁니까?”
“네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아갔다가 네가 쓰러진 걸 봤어.”
그녀가 중얼거렸다.
“아…….”
우연이 그를 살렸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는 결국 죽었으리라.
“그런데 저를 찌른 놈들은 대체…….”
“잘 모르겠어. 지구도 아니고 티오니스도 아니야. 그들의 장비는 처음 봤거든. 혹시 아픈 곳 있어?”
그 질문에 승현은 어렵사리 입을 다물었다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하. 괜찮아요. 저 생각보다 튼튼해서…….”
“1분만 늦었어도 죽었어.”
눈치가 빠른 승현은 어떻게든 상황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레이나는 틈을 주지 않았다.
“너 죽을 뻔했다고.”
“…….”
“네가 죽으면 많이 슬플 거야. 오래전 너랑 비슷한 녀석이 그렇게 허무하게 갔거든.”
그 한마디에 담긴 무게. 슬픔 그리고 안타까움이 절절히 느껴지자 승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살아서 다행이야…… 내가 널 보러 가서 다행이고.”
“저…… 누님.”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누님께 관심 있습니다. 지금 아니면 다시는 말을 못할 거 같아서요.”
눈치가 빠른 절제는 레이나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이런 일이 또 벌어질 수가 있으니 마음 접으라고 하는 것이겠지.
인간은 간혹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판단을 내릴 때가 있다.
그리고 그는 현재 레이나가 무슨 말을 할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누님.”
“그만…….”
“저, 아무래도 누님을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방금 죽다 살아난 주제에.
하지만 그에게 모질게 말할 수 없었다. 죽다 살아났으면서도, 본능적인 PTSD가 새겨져 그녀가 내민 약병 하나에도 겁을 먹을 정도면서 억지로라도 용기를 끌어내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런데 대답은 듣지 않아도 알 거 같네요.”
“미안해.”
레이나의 대답에 그가 쓰게 웃었다.
“알고 있었어요. 누님에 비하면 전 사실 빈약하기 그지없으니까요.”
“그런 말 하지 마. 누가 너더러…….”
“그만해줘요. 그게 더 비참하니까.”
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요. 살려줘서. 그리고 미안해요. 이 와중에 이런 말이나 해서.”
“…….”
“누님이 왜 저를 찾으러 왔는지 알게 됐네요.”
눈치가 빠른 건 어떤 때엔 참 슬픈 일이다.
그 말 이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승현을 뒤로한 채 레이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푹 쉬어. 원기가 조금 회복되는 대로 돌려보내 줄게. 그동안 편히 지내.”
그렇게 떠난 레이나의 뒷모습을 보며 승현은 말없이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원치 않는다.
단순히 나무를 찍어 넘기는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서글펐다.
차라리 조금만 더 늦게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후우…….”
그의 한숨 소리에 씁쓸함이 깊게 묻어났다.
그때 그의 곁으로 누군가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누구, 아!”
그녀는 다름아닌 륀느였다.
“륀느 씨?”
“미식연구회의 연회에 초청. 아종 크라켄의 맛을 륀느가 높게 평가.”
륀느는 무표정한 얼굴로 독한 술병을 보여 흔들어주었다.
“저…… 방금까지 사경을 헤맸는데요.”
“데이비 님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보고해.”
사람 쉽게 안 죽는다고.
“바로 깨어난 시점에서 사실 몸은 거의 멀쩡하다고 봐도 무방.”
“들키면 혼나지 않을까요?”
“안 들키면 예술.”
평소라면 거부했을 것이다.
“에반젤린도 있다고 보고.”
눈치 빠른 것들은 벌써 상황을 알았던 모양이었다.
평소라면 거절했을 텐데. 이번만큼은 술이 땡겼다.
“까짓거 마시고 죽읍시다.”
웃는 얼굴이지만 그의 표정은 검에 찔렸을 때 이상으로 괴로워 보였다.
아직까진 마음을 추스르는 데에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 * *
짙은 피 냄새가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신고가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괜한 위험을 감수할 수 없기에 나는 바로 결계부터 집 근처에 둘렀다.
“피 냄새…….”
일리나가 코를 틀어쥐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절제가 쓰러져 있던 장소와 레이나가 베어버린 기사들의 시신을 확인한 뒤 내게 말해왔다.
“저 셋은 레이나가 말한 침입자가 맞아. 추가 인원은 없는 거 같네.”
있었다면 시신이 저렇게 깔끔하게 방치될 리가 없을 터였다.
“알아낸 거 있어?”
“이거 무기. 티오니스나 지구 쪽 무기가 아니야.”
“그럼? 아트렐리아나 페스리사…….”
“그쪽도 아닌 거 같은데?”
“엥? 그럼 이 자들은 어디서 온 거야?”
“장착하고 있는 장비. 매개가 되는 주요 마석의 구조패턴이 달라. 이런 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곳에서 왔겠지.”
레이나의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마나를 사용하는 이들과의 교전에도 익숙한 듯 보였다.
단순히 일반 병사나 일개 기사라고 보기엔 장비의 질이 굉장히 좋은 거로 봐선 일반 병사는 아닐 것이다.
장비를 지원받은 상급 기사나 혹은 특수작전을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리라.
그렇다면 이놈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생존자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애석하게도 모두 죽어 영혼이 빠져나간 후였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 왜 이들이 승현의 집에 나타나 그를 찔렀는가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그럼…….”
“잠깐만.”
잠시 말을 끊은 나는 아주 희미하게 느껴지는 흔적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흔적대로라면 승현이 칼을 찔린 장소가 바로 이 방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안은 이렇다 할 흔적이 없었다.
하지만, 차원 전체에 간섭을 하는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근처에서 생명력이 흘렀다.
나는 아주 미약하게 남은 생명력에 강제로 간섭력을 가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여기 차원이 열렸었네.”
내 말에 일리나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차원문? 설마 너와 내가 열 수 있는 그거?”
“어.”
그 말인 즉 침입자들이 이 차원문을 열 기술력을 가졌다는 뜻일까.
황당한 상황 속에서 나는 애써 한 가지 사실을 숨겼다.
이놈들이 차원을 넘어온 건 기술력이 아니었다.
이미 열려있는 통로, 혹은 미약해져서 절로 열리는 차원문을 이용해 넘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 차원문을 만든 범인은 바로 나였다.
별일 없겠지 싶어서 방치했는데 이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복잡한 심경을 애써 숨기고 있던 찰나.
불안정하던 차원이 다시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도 당당하게 한 인영이 그 차원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단단한 갑옷을 입은 기사는 마법이 각인된 롱소드 한 자루만 든 채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했군. 대체 누구에게 당한 거지?”
그는 자신을 나와 일리나가 보고 있다는 것도 신경을 쓰지 않은 채 홀로 중얼거렸다.
언어가 자연스레 해석이 되기에 그가 하는 말을 들은 나는 그저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우선 시신을 회수하고 추가 선발대를 파견해야…… 아 원주민이 있었군.”
그제야 나를 발견한 것일까.
그는 망설임 없이 검을 내 쪽으로 겨누었다.
“원한은 없지만, 이곳은 우리 신수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다. 나를 원망해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그가 자세를 잡았다.
“데이비?”
이에 일리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리던 찰나.
나는 자연스레 닫히려는 차원문을 맨손으로 잡아 강제로 잡아 벌렸다.
“무슨?!”
“안 그래도 정보원 하나 필요했는데 잘됐다.”
씨익 웃은 나는 순식간에 자신의 옆을 장악당했다고 여겨 급히 물러나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컥!!”
보이지 않는 염동력이 그를 제압한다.
그의 무기는 확실히 마나를 흐트러뜨리게 하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대상이 이래서야 효과를 볼 턱이 있나.
“걱정 마. 그나마 신사적으로 대해주마.”
내 말을 알아들은 그가 눈을 크게 뜬다.
내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에 경악한 것이다.
레이나 때도 그랬을 텐데.
그는 현 상황이 쉬이 믿기지 않는지 경계하듯 소리쳤다.
“물러나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이 갑옷과 무기가 장난감 같나?!”
사내의 위협에 나는 가볍게 기검을 만들어낸 뒤 그에게 다가갔다.
“어리석은 놈!!”
전신을 염력으로 제압당해있던 그가 억지로 검의 장치를 활성화하자 염력의 흐름이 살짝 옅어지기 시작했다.
굉장한 방해 파장을 보아하니 저건 좀 돈이 되어 보인다.
자신의 몸이 어느 정도 해방되었음을 깨달은 그는 더 이상의 접근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거침없이 검을 휘둘러 들어왔다.
레이나의 말대로라면 기검을 이루는 마나의 구조배열을 저 장비가 흩어버린다고 했던가.
굉장하긴 하지만 그는 한가지 착각을 하는 듯했다.
서걱!!
“이…… 무슨?!”
기검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의 롱소드를 갈라버리자 그의 얼굴에 혼란과 경악이 서렸다.
“그 정도 재머로 흩어질 정도면 마스터 못 해 먹지.”
빠악!!!
순식간에 그를 후려쳐 기절시킨 나는 그를 둘러맸다.
“된 거야?”
“그래. 데려가서 조사해보자. 방금 이놈이 신수님의 흔적을 찾아왔다고 했지?”
“신수라…… 그런 게 여기 있는 거야?”
“나도 모르지. 그 신수가 뭔지도.”
다만 뭔가 느낌이 싸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