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98화
본래 차원의 벽이라는 건 타나토스 같은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가 아닌 이상 감히 뚫을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견고한 벽이다.
당연히 그 벽의 단단함으로 인해 본래라면 차원의 문을 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프리아 여신의 힘이 약해지면서 그 벽의 견고함이 상당히 물렁물렁해진 지금은 과거와는 달랐다.
물론 그렇다고 할지라도 일개 기술력으로 넘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건 분명하지만 말이다.
“인간이…… 벌써 차원을 이동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겐가.”
“음…….”
마법을 잘 알고 있는 페르세르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응?”
너무 선뜻 대답을 내놓자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째서?”
“그 통로…… 내가 연 거야.”
내 한마디에 페르세르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대가…… 열었다고?”
“정확히는 타나토스를 만들고 생명력을 순환시킬 때 내가 여러 통로를 만들어놨어. 그중 일부가 폭주해서 저쪽으로 이어진 모양이야.”
이미 열린 차원 통로를 어떤 매개채를 통해 이동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차원이 열린 것을 감지하거나 붙잡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할 텐데.”
“이 무기에 박힌 마석 보이지?”
처음 보는 구조의 마석에 페르세르크의 호기심이 동했는지 그녀는 내가 분리해둔 마석을 손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굴렸다.
“신기한 구조로구나. 지금껏 본 적이 없어.”
“이게 차원진과 융합하면서 큰 반응을 일으키는데 아무래도 그 틈이 고정되는 걸 이용한 모양이야.”
제법 많은 연구가 되었다는 말인즉 이렇게 된 지 꽤 오래되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신수라고 하던데. 일단 저놈 깨워볼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손에 커다란 물방울을 만든 뒤 기절한 채 의자에 묶여있는 사내에게 던졌다.
촤악!!
“흐읍!!”
어차피 이곳은 지하 공방. 딱히 과격한 고문을 할 것도 아니고 방해를 받지만 않으면 상관없었기에 나는 담담하게 그의 앞에 선 채 내려다보았다.
“내 말이 들리나?”
내 질문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나를 올려다본다.
“까마귀.”
그의 중얼거림에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커억!!”
“아직 정신 못 차렸네.”
“데이비. 너무 과격해.”
페르세르크가 말렸지만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응시한 채 답했다.
“이놈들이 그놈을 찔렀잖아.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사람 하나 죽었어.”
승현은 내게 있어서 에반젤린이 독립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 은인이나 다름없다.
그런 사람을 칼로 찔렀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다리가 부러졌는지 끙끙거리는 그와 눈높이를 맞춘 내가 조용히 물었다.
“네가 답해야 할 건 딱 세 가지뿐이야. 첫째. 왜 그를 찔렀고, 둘째. 니들은 어디서 왔고, 셋째. 왜 이곳에 왔는가.”
내 물음에 그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비웃음을 던지듯 무어라 중얼거렸다.
“제국을 위하여.”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눈을 감고 몸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이거 찾나?”
나는 손에 쥐어진 붉은 피가 잔뜩 눌어붙은 작은 장치를 보여주었다.
“폭발형 아티펙트. 자결도 생각해둔 모양인데,”
“그…… 그걸 어떻게!”
“그건 됐고, 중요한 건 이게 아니잖아. 안 그래?”
손에 쥔 장치를 부숴버린 나는 그의 몸에 빠르게 손가락을 찔러넣었다.
“크아아아아악!! 크흡!! 크으으윽!!”
통혈을 강제로 자극하는 점혈.
그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끔찍한 격통에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한참 동안 괴로워하던 그는 내가 다시 점혈을 짚자 숨을 거칠게 들이 삼키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아…… 하아…… 내가 말할 것 같은가?”
“말 안 하게?”
“제국의 기사의 입은 무겁다. 미개한 놈.”
“미개라…… 남이 만들어 놓은 차원 통로 훔쳐서 여기로 쳐들어온 놈들이 누굴 미개하다는 건지 모르겠네.”
내 중얼거림에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광오하군. 신께서, 그리고 수호령께서 만드신 자연현상을 네깟놈이 만들었다고 하고 싶은…… 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어쩔 수 없네.”
담담하게 중얼거린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막대한 생명력이 파장이 되어 퍼져나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굉장히 세련된 정복을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조만간 영혼 하나 데려갈 준비해.”
“…….”
내 대답에 그는 멍하니 묶여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누구입니까?”
“죽일 놈.”
그 말과 함께 나는 홍단이를 빼 들었다.
“하. 그래. 죽여라. 결국 네놈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나는 기회를 줬다. 적어도 살아서 실토할 수 있는 기회를.”
살아서 말하는 게 죽어서 기억을 뽑히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사령 마법은 영혼을 연구하며 그 존귀함을 파악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이런 학문들은 지금 같은 상황에 쓰일 가능성이 높았다.
터엉!!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손바닥을 뻗어 그의 이마를 밀쳤다.
그러자 크게 움찔한 그의 신형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단숨에 죽어버린 것이다.
고위 흑마법은 사람 하나 소리 없이 죽이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나는 아직 상하지 않은 그의 영혼을 향해 손을 뻗고 말했다.
“일어나.”
데스 로드의 권능을 이용한 한마디.
망자가 가지는 기억 소실 같은 건 개나 줘버린 듯 천천히 일어난 그의 얼굴은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기분은?”
“좋습니다.”
이전과는 달랐다.
기억을 온전히 가졌으나 그는 이제 내게 온전히 종속된 존재였다.
인권적으로 딱히 달가운 결정은 아니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미래였다.
“네가 선택한 결과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
“괜찮습니다. 명령을.”
“질문을 할 거다. 거짓 없이 답해.”
“받들겠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그를 향해 물었다.
“아까 물었던 질문부터 하지. 그를 왜 찔렀지?”
“그라 하심은?”
“너희들이 넘어온 곳에 살고 있던 사람.”
내 물음에 그는 잠시 침묵하는 듯하더니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너의 경우는 어떻게 할 거지?”
질문을 살짝 바꿔야 할 듯싶었다.
비어버린 그의 육신을 재 하나 남기지 않고 태워버린 나는 다시금 물었다.
“당시 상황을 알 수는 없으나 그를 공격한 이들은 모두 제 휘하의 기사단원이었습니다.”
“네 부하라 이거지. 그들이 그를 왜 공격했을 거 같나.”
“목격자니까요. 그 장소는 제국에서 이 차원에 이어붙인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곳에 대해 누군가가 아는 건 달갑지 않다는 소리였다.
참 김빠지는 이유였다.
“둘째. 너희는 어디서 왔지?”
“제국. 나차. 그곳에서 왔습니다.”
나차. 역시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왜 왔는데.“
“침략을 향한 교두보. 그리고…… 사라져버린 신수님을 다시 모셔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고 보니 너희는 신수님 어쩌고…….”
덜컹!!
그때였다.
자리를 비운 줄 알았던 레이나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가 있으라니까.”
“이번만큼은 저도 끼게 해주세요.”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편한 대로 해.”
레이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내 뒤편에 선 채 영혼만 남은 그를 노려보았다.
“그 신수님이라는 건 뭘 말하는 거지?”
“제국에 막대한 부와 흥을 가져다준 존재. 그 형태는…….”
기사의 영혼이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시선이 꽂힌 곳은 다름 아닌 레이나의 어깨에 달라붙어 있는 레인보우 슬라임이 있는 곳이었다.
“신수님…….”
그의 시선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움직이자 레이나가 움찔하며 물러났다.
“왜…… 왜요?”
“네가 신수님이라는데?”
“제가요? 장난치지 마요. 이 녀석을 말하는 거겠죠.”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표정이었다.
“슬라임이 너희가 말하는 신수님이라고?”
“정확히는 신수님이 만들어내시는 축복의 결정체입니다.”
축복의 결정체.
확실히 레인보우 슬라임은 본 사람조차 운이 좋게 만들어주었다.
“신수님께서는 그 축복의 결정체를 만들어내어 저희 제국을 풍요롭게 하시었습니다. 고작해야 작은 왕국이었던 저희를 삼국 최고의 제국으로 만들어주셨지요.”
“어떻게? 단순히 운이 좋다고 그게 가능한가?”
“제가 가지고 있던 장비들 모두가 신수님의 힘과 특수 자연 광물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기본적으로 아무런 효능이 없는 광물이었으나 그 신수님이라는 놈이 광물에 힘을 부여해주면서 엄청난 효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신수님은 저희 제국의 근본이셨습니다. 저희 제국을 최강의 반열에 올려준 특수광석을 만들기 위해선 신수님의 힘이 꼭 필요했으니까요.”
그런 신수가.
어느 날 도망쳐버렸다.
“2년 전쯤.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 허공에 가끔 박치기를 하시던 신수님께서 차원을 열고 도망쳐버리셨습니다. 그때까지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요. 혹자는 황제께서 초심을 잃고 욕심을 과하게 부렸기 때문이다. 라고 했지만…… 그들 모두 잡혀 처형당했습니다.”
그게 고작 2년 전이다.
“그 슬라임을 본 적이 없어서 판단이 안 되네.”
“이후 황제께선 신수님을 찾으라 명하셨습니다.”
“하지만 차원을 열고 도망쳐버린 그 신수를 고작 인간이 찾을 순 없었겠죠.”
본래라면 황제를 신격화하고 세뇌당해있는 눈앞의 기사로선 방금 발언에 대해 거품을 물고 화를 냈을 것이다.
충성심은 깊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가 충성하는 건 이제 황제가 아니었다.
“예. 본래라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황제께선 오래전부터 신수님을 찾을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왔습니다. 그리고, 신수님이 사라지신 통로를 신수님의 특수광석으로 고정시킨 뒤 지금껏 찾아 헤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지구나 내가 만든 격리 차원이 아니라 나차 제국이 있는 차원과 같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다른 차원이었다.
“황제는 생각했습니다. 신수님을 찾는 것도 찾는 것이지만 자원이 풍부한 타 차원을 침략한다면 자신의 위상이 더 올라갈 것이라고. 그래서 제국민들에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제국의 인종을 제외한 야만인들이 잘 사는 건 잘못되었다…… 라고.”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지구에서도 비슷한 개념은 있었다.
파시즘같은.
“2년 전부터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제국이 압도적으로 유리했습니다. 그리고, 잔혹했지요. 그 결과 지금 침략당한 차원은 독립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결국 패자의 저항이 되었습니다.
신수를 찾으면서 침략까지 한다라.
“웃긴 인간이네.”
페르세르크가 한껏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
결국 지구에 찾아온 것도 신수를 추적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곳과 이어졌고, 또 욕심을 부려 침략의 교두보로써 활용하려다가 나한테 걸렸다.
뭐 이런 뜻일 것이다.
“그런데 데이비. 결국 이 일의 원흉은 네가 차원 통로를 여기저기 열어놓고 제대로 안 닫아서 벌어진 거 아니야?”
그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들 목숨 내가 구해줬는데 그런 거까지 다해줘야 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뭘 어떻게 해. 일단 그 신수인지 뭔지부터 찾아야지.”
말이 신수지 놈의 말을 들어보면 그건 단순한 신수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