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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199화 (1,199/1,559)

제 1199화

“그럼 이 영혼은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그런데…… 영혼의 강에 넣어서 회복시킬까요?”

“갈가리 찢어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야 할 거다. 그냥 보내.”

“알겠습니다.”

“아 참. 에반젤린의 별장에 독특한 영혼을 감지한 적이 있냐?”

“아니요, 우치 님께서 권능으로 알아보셔도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일반적으로 감지가 됐으면 내가 못 알아볼 리가 없지. 고생했어.”

“저…….”

내가 돌아가 보라며 손을 휘젓자 그가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대체 얼마나 죽이실 겁니까.”

눈치 빠른 놈.

그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승현을 찌른 놈은 이미 내 손에 찢겨 나갔다.

다만 이 일 자체가 나차라는 외곽차원의 황제가 시킨 일이냐면 그건 참 애매모호했다.

그는 승현의 존재 자체도 모를 테니까.

즉, 직접적인 원한 관계는 레이나가 전부 갚아버린 꼴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열받는데.”

남이 열심히 만들어놓은 차원 통로, 그중 불완전하여 내 제어를 벗어난 것들이 있다지만 결국은 내 작품들이다.

생명체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이 세상에 골고루 생명력이 통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통로이건만.

그걸 침략의 교두보로 써?

효과적인 침략 수단인 건 인정한다.

한쪽만 제어가 가능하면 일방적인 침략도 가능하니까.

그 방식이 수호신의 잔재라는 게 웃기지만.

“당장은 아니야. 말로 해서 들어 처먹을 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눈치가 빠른 자라면 알아서 사려주겠지.”

제 차원 안에서 얼마나 싸움을 벌이건 그건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면 상관없지만.

그걸로 민폐나 끼치고 다니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후…… 적당히 하십쇼. 솔직히 저 진짜 죽습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이라도 좀…….”

“너처럼 미친놈이 세상에 많은 줄 아나.”

그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 저승사자가 되었다.

저런 케이스가 흔한 케이스는 아니리라.

“후…… 알겠습니다. 그러면 하다못해 대량으로 영혼이 승천할 때 언질이라도 해주십쇼…… 준비해놓겠습니다.”

“그래.”

저승이가 영혼을 데리고 떠난 뒤 페르세르크와 레이나는 조용히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그 수호신이란 건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저도 감이 안 잡히네요. 레인보우 슬라임이 그 수호신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면 알을 낳은 존재라는 거겠죠. 혹시 이 아이는 알까요?”

레이나가 레인보우 슬라임을 콕콕 찌르며 물어보지만 동물 정도의 지능만 가진 녀석은 그저 레이나의 손가락에 몸을 맡겨 장난을 칠 뿐이었다.

“한번 본적은 있어. 정령조차 기억 못 할 정도로 독특한 존재이긴 했다만.”

“어디서?”

“에반젤린의 레어.”

그놈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위치를 떠나 존재가 확실하다는 것만 입증되었으면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도 없었다.

그때였다.

[어머나 오빠. 그 수호신이라는 거 말이야.]

내 그림자에 숨어 상황을 들었는지 보팔 레빗의 본체가 말을걸어왔다.

“왜.”

[찾은 거 같은데? 지금 내 분신체와 함께 있어. 그런데…… 수호신치고는 굉장히 엉뚱한 존재네 이거.]

* * *

황금빛 동그란 눈동자. 슬라임처럼 동글동글하지만 뾰족 솟은 두 귀가 있는 검은 존재.

그 존재는 눈앞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갸우뚱하는 새하얀 거대 근육 토끼를 그저 올려다보았다.

-뀨.

묵직하며 짧은 음성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던 토끼가 내려다보길 한참.

검은 형체는 고요하게 토끼를 올려다보다 이내 그와 똑같이 몸을 갸우뚱했다.

귀여우면서 대체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지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보팔 레빗의 분신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실연의 슬픔에 부어라 마셔라 상태가 되어버린 박승현과 그를 다독여주는 미식연구회 그리고 에반젤린이 전부 레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반젤린을 보호하기 위해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보팔 레빗이지만 기묘한 기시감을 느껴 지하 레어에 왔다가 이 검은 블랙 슬라임을 발견한 것이었다.

통! 통!!

이윽고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길 잠시.

블랙 슬라임이 고개를 돌려 어디론가로 향하기 시작했고, 보팔 레빗의 분신체는 그저 한 손에 덤벨을 들었다 놨다 하며 녀석을 따라 저벅저벅 걸었다.

데이비와 만날 땐 경계심이 강했던 존재였으나 이상하리만치 블랙 슬라임은 보팔 레빗의 분신체에겐 경계심을 품지 않았다.

이윽고 레인보우 슬라임의 알이 있던 곳에 도착한 녀석은 이내 통통 튀어가 몸의 일부를 마치 입처럼 벌렸고, 무언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맛있게 삼킨 뒤 물속에 담긴 알 중 하나를 날름 집어먹었다.

-뀨?

의아해하는 보팔 레빗의 분신체를 돌아본 녀석은 이내 몸을 이리저리 흔들 듯 저어 보인 후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퉤! 하고 알을 다시 뱉어냈다.

그러자 레인보우 슬라임의 알이 조금씩 미동하는 게 보였다.

자신의 일을 마쳤다는 양 만족스레 녀석이 다시 어디론가로 향한다.

그리고는 인적이 드문 동굴까지 간 뒤 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하나 날름 집어삼켰다.

우물우물…….

그리고는 다시 뱉어낸 모습은 작은 덤벨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뀨.

만족스러운 듯 보팔 레빗의 분신체가 자신의 덤벨을 들었다 놨다 하자 블랙 슬라임은 제 몸에서 작은 촉수 하나를 끄집어낸 뒤 똑같이 흉내 내기 시작했다.

마치 같이 노는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 * *

“저 존재가…….”

“이제야 알겠네. 인간이 가진 불행과 행운. 그중 불행이 저 녀석의 양식인 거야. 그리고 그걸 먹고 행운을 불러다 주는 레인보우 슬라임을 만들어서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하지.”

상성으로 따지면 정말 이로운 녀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저 레인보우 슬라임을 모두가 가지면 어떻게 될 거 같은 거야.”

페르세르크의 질문에 나는 어깨만 으쓱였다.

“전체적으로 운은 좋아지되 같은 인간끼리 만나면 다를 게 없어지겠지.”

보팔 레빗의 분신체와 놀고 있는 블랙 슬라임에겐 가까이 가지 않았다.

말이 통하는 녀석도 아니고, 나를 감지하는 건 기가 막히게 잘하는 녀석이다.

그래서 존재만 찾되 섣부른 접근은 하지 않았다.

“그대가 가까이 가면 바로 도망친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정확히 말하면 피하는 느낌이었지.”

“그럼 찾아봐야 소용없는 게지.”

“그래서 생각 중이야. 저놈이 왜 날 경계하는지. 저 토끼 놈은 왜 괜찮은지.”

그때였다.

“우와아!! 몰랑이야!”

“귀여워!”

언제 빠져나갔는지 홍단이와 청단이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도도도 뛰어가 슬라임의 곁에 앉았다.

놀랍게도 녀석은 도망치지 않았다.

아니 놀랍게도 홍단이가 녀석을 끌어안자 그녀의 품에 안겨 마치 마주 끌어안아 주듯 보듬는 모습까지 보였다.

“홍단이와 청단이는 괜찮네. 혹시 인간은 안되는 건가?”

“단언하기엔 조금 이른 판단이로구나. 단순히 그렇게 따지기엔 저 슬라임은 과거 인간들과 함께 공존했다고 했지.”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뭔가 떠오른 듯 나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저 슬라임은 어디로 도망갈 거 같지 않으니 우연을 가장해서 저쪽으로 가보는 것도 괜찮겠지. 이번에도 도망칠지.”

그녀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동굴 속 슬라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하지만.

토옹!!!

홍단이의 품에 안겨 몸에 비비적거리던 블랙 슬라임이 갑자기 흠칫 놀라더니 급히 도망치듯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우아아앙!! 몰랑이 사라졌서!!”

“갔어…….”

울적해하는 두 아이는 사라져버린 블랙 슬라임을 찾아 헤맸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내가 가까이 가면 도망친다는 것인데. 사람차별도 적당히 해야지.

“푸훕…… 혹시 그대처럼 미친놈이거나 비틀려버린 존재를 경계하는 게 아닐까?”

“넌 네 남편을 그렇게 까고 싶나 보지?”

“그대가 좋은 사람인 것과 별개로 비틀린 건 사실일 테지. 마치 그 황제처럼.”

“혼나는 수가 있어. 망할 슬라임은 잡아서 돌려 보내버릴까.”

내 투정에 페르세르크가 귀엽다는 듯 내 뺨을 꼬집었다.

“수호신이 에린이의 레어에 있는 건 확인했고, 녀석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도 확인은 했는데. 이제 어쩔 게야.”

“뭐라도 건질 줄 알았는데 의사소통조차 안 되면 그때부턴 답이 없지. 직접 찾아가 보는 수밖에.”

나차 제국에서 온 선발부대는 명백히 침략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당장 이놈들이 티오니스를 침공한 건 아니라지만 그냥 두면 아마 백에 가까운 확률로 지구와 충돌하리라.

물론, 저들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안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곤 해도…….

지구와 전쟁이 벌어지면 아마 많은 수의 사람이 죽을 터였다.

그것도 내가 만들어놓은 통로를 통해서 벌어진 싸움이.

결론적으로 달가운 일은 아니다.

“적당히 경고는 해줘야겠네.”

놈들은 차원 통로를 통해 이곳으로 넘어왔다.

기본적으로 그 차원 통로를 이용하는 건 놈들이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의 온전한 제어권은 내게 있다.

그 목적지에 대한 정보가 없기에 찾는 게 쉽진 않을지라도 한번 이어졌던 통로를 다시 찾아내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치직…… 치지지지직!!!

놈들이 넘어올 때 사용한 차원 통로를 역산하여 문을 만들어낸 나는 걸음을 옮겼다.

“저…….”

그때 나를 부르는 레이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무기…… 빌려주세요.”

“롱기누스? 전부터 느낀 건데 왜 창을 고집하는 거야.”

“전, 검을 쓸 자격이 없어요.”

그녀가 마나를 응축시켜 만든 기검을 주로 사용하고 멀쩡한 검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같은 일리나 데 팔란이었던 만큼 그녀의 검에 대한 재능은 빛을 많이 잃었다 할지라도 사라진 게 아닐 터였다.

“칼디라스 때문이냐?”

신검 칼디라스.

과거 레이나는 초대 리치 닉스에게 포로로 잡혀 정신이 붕괴될 정도로 실험에 이용당했다.

마나의 회로가 끊어지는 고통과 인류를 배신할 수 없다는 집념이 만들어낸 충돌은 한 인간이 버텨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망가진 그녀의 정신을 다시 되돌려준 것은 신검 칼디라스.

평행선 너머에 존재하는 칼디라스의 마지막 힘이었다.

그 후 칼디라스는 자아를 잃었고 모든 힘을 잃어 스스로 바스러졌다.

레이나에게 있어 칼디라스에 대한 트라우마는 쉬이 사라지는 게 아닐 것이다.

“나차 제국이라는 곳 말이다.”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블랙 슬라임이 손을 댄 특수광물을 잘 이용하면 좋은 무기가 나올 거야.”

내 말에 그녀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때까지만 이걸 써. 그 후에 네 무기. 하나 만들어줄게.”

물론, 내가 아니라 회랑에서 놀고먹고 있는 놈팡이 대장장이에게 맡길 생각이지만 말이다.

새로운 광물이라면 아주 기를 쓰고 손을 대려 할 게 틀림없으니 문제는 없으리라.

이윽고 레이나와 페르세르크가 먼저 균열 너머로 사라진다.

이후 내가 통로 너머로 넘어가려던 그 순간.

파직! 하는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좌표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 망할 여신이 지금 어디다 대고 호작질이야!”

프리아 여신의 아바타. 그녀가 영웅들을 이용해 개입한 게 틀림없었다.

* * *

정신을 차리고 모습을 드러낸 풍경은 굉장히 우울해 보이는 도시였다.

도시라고 할까 거대한 채석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인간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넝마 같은 옷만 입은 채 그저 죽은 얼굴로 돌과 광석들을 나르고 있었다.

먼저 떠난 페르세르크와 레이나와 다르게 나 홀로 다른 곳에 내던져졌다.

[둘만 남았네?]

마치 놀리는듯한 말투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유부터 설명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최대한 정중하게 내가 말하자 간편한 복장만을 입고 있는 여신 프리아의 아바타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리고는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어때. 예쁘니?]

“아니 대답부터 하시라고. 내 와이프가 지금 홀로 떨어졌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갈 걸 그랬나.

내 물음에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태블릿을 두드렸다.

[그 아이들은 걱정 마. 지금 걱정해야 하는 건 오히려 너야.]

그녀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어디 가서 맞을 상은 아닌데.”

[네가 섣부른 판단을 하면 그땐 돌이킬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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