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64화
넬타리드가 풍기던 분위기는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내가 알던 넬타리드와는 확연히 달랐다.
대체 무엇이 그를 그 지경으로 만든 것일까.
그리고,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신은 대체 왜 침묵하는 것일까.
물론, 프리아 여신이 이렇다 할 힘이 없는건 사실이지만 희생의 권능을 양도하면서 일정이상의 힘을 깨운 것도 분명했다.
일리나는 내가 대체 붉은 광석의 기억 안에서 무엇을 봤는지, 내가 기억을 엿봄으로 인해 급히 튀어나온 넬타리드가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괜한 의구심을 심는 건 위험했으니까.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미친 천사의 사후처리는 빠르게 이어졌다.
사실상 몬스터의 사체 같은 게 남은 것도 아니기에 봉쇄를 풀고 혹시나 있을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데이비. 말해줘. 대체 뭘 본 거야?”
일리나는 내가 홀로 싸매고 있는게 답답했는지 조심스레 물어왔다.
“아직 확실한 게 없어. 한 번 더 확인해봐야 해.”
마치 단계적으로 봉인되어있듯. 마치 드라마를 여러 편으로 나눈 것처럼 내가 확인한 것은 단편적인 정보뿐이었다.
“미친 천사를 더 찾아야 해.”
그래야 넬타리드가 왜 저렇게 변해버렸는지 알 수 있을 테니.
아니. 어쩌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미 상황은 늦어버렸다는 뜻일 테니.
* * *
미친 천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번엔 두 마리의 미친 천사가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다수의 미친 천사를 다루기엔 어렵다는 내 생각과 달리 넬타리드는 두 명의 미친 천사를 현신시키는 데에 성공해버렸다.
위치는 이라크의 한 사막지역.
한때 독재 정권이 있던 석유국가이지만 과거 이어진 전쟁에 이어 몬스터의 습격으로 참 큰 피해를 본 국가이기도 했다.
변해버린 각성자는 A급 각성자와 B급 각성자.
생각보다 수준이 낮지만 그게 미친 천사의 힘을 약화시키는 수준은 아니었다.
미친 천사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재앙인 것은 분명하니까.
-우우우우우우우우!!
마치 거대한 고래의 울음소리처럼 기괴한 울음소리를 토해내는 거대한 미친 천사들은 딱히 이렇다 할 협동심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단일 개체만으로도 이미 많은 피해로 인해 국력이 흔들리고 있는 이라크엔 지옥과도 같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탓…… 타다다다다다닥!!!
아무것도 없는 황폐화되어버린 도시를 유영하던 미친 천사 하나를 향해 누군가가 빠르게 진입한다.
가히 생명체가 낼 수 있는 속도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파고든 인영을 발견한 미친 천사 하나가 거대한 하울링을 터뜨리려 했지만, 놈의 입이 벌어지기도 전에 은빛의 가늘고 길며 순간적인 섬광이 한차례 번뜩였다.
-끼익?!
미친 천사의 신형이 우뚝 굳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똑같이 가늘고 긴 은빛 섬광이 두 갈래로 번뜩이며 놈의 몸을 난자했다.
촥!! 촥촥!! 촤촤촤촤촥!!
뒤이어 점점 수를 늘려가던 섬광은 이내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의 수준으로 빠르게 번뜩였고 범위 내에 있는 모든 공간을 강제로 굴절시키며 비틀었다.
온전한 신조차 위험하다고 판단할 정도의 힘이다.
그런 힘을 고작 미쳐버린 신격. 미친 천사가 견뎌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수십 수백의 조각으로 나누어져 버린 천사는 어떻게든 몸을 복구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갈라져 버린 공간은 놈의 그런 수복을 방해하려는 듯 움직임을 틀어막았고 한참 동안 버둥거리던 미친 천사 하나가 완전히 방전된 듯 추욱 늘어졌다.
콰아아앙!!!
동시에 저 멀리 있던 또 다른 천사의 육신이 비틀어지며 으깨지고 짓이겨지는 게 보였다.
수백 조각으로 나뉜 천사의 상태도 절대 온전하지 못했지만 저 멀리서 완전히 짓이겨지는 천사의 몰골은 더 심했다.
후우우우웅!!! 쿠웅!!!
막대한 에너지가 비틀리며 천사 하나가 완전히 소멸했고 그 광경을 만들어낸 데이비 올 라운은 굳은 얼굴로 황급히 다가와 일리나가 조각내버린 미친 천사의 핵에 손을 가져다 댔다.
“데이비! 잠깐만 너 표정이!”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줘.”
데이비의 말에 일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가 두 번째 미친 천사의 핵에 간섭해 붉은 광석의 기억을 읽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데이비는 말해주지 않았다 해도 일리나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게 없더라도 데이비에게 힘이 되고자 그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데이비의 몸이 그녀의 마나를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하며 데이비의 붉은 광석과의 공명이 더욱 안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어떤 기억이 동시에 일리나에게 같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 * *
국가적인 문제를 뒤로하고 뒤틀려버린 넬타리드에게 정신이 모든 집중을 쏟아붓고 있다.
그가 그런 짓을 해야 했던 이유의 실마리가 이 미친 천사들의 안에 있을 테니까.
나는 공간을 찢고 다시금 심층의식으로 진입해 넬타리드의 기억 파편과 동화했다.
붉은 광석 속에 박힌 그의 기억은 이전과 같은 장소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넬타리드가 간섭하기도 전에 일리나의 마나가 그의 힘을 보호하듯 감싸며 넬타리드의 간섭을 흔들어놓았다.
기억이 동화될 텐데. 이걸 잘했다고 칭찬해야 할지. 겁도 없이 행동한다면 화를 내야 할지…….
중요한 건 일리나가 만들어준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청년은 석장이 박힌 묘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말을 했다.
-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떨리는 목소리는 넬타리드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했다.
-내 모든 생을 바쳐 너를 지키려 했다.
그는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말했다.
치직…….
넬타리드의 방해가 있는 것인지 노이즈가 끼긴 했지만 마치 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점점 먹먹해지며 잠기던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네가 바란 평화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쳤다.
그가 말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모를 수는 없었다.
넬타리드가 말하는 프리아라는 여성. 여신 프리아가 아닌 프리아 여신에게 프리아라는 이름을 주게 만든 존재.
초월적인 의지의 신녀.
1만 년 전의 내 전전생. 신녀 프리아.
넬타리드가 말하는 건 그녀를 향한 말이었다.
-너를 지키기 위해 신이 되었으나. 그 신위가 나로 하여금 너를 죽이게 만들었다.
그의 고개가 떨구어지며 목소리에 짙은 슬픔과 증오, 그리고 절망이 어렸다.
그의 목소리의 떨림이 점점 커졌다.
-넌 나를 원망하지 않는구나. 이런 상황이 되었음에도.
마치 그를 위로하듯 석장에서 옅은 빛가루들이 흘러나와 그를 다독이듯 스며든다.
-하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에 결국 울음이 섞였다.
-나는 그럴 수 없다. 감정이 없을 때와 달리 지금은 견딜 수가 없다.
천천히 고개를 드는 그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를 내 손으로 죽이고도 실리만 따져 뻔뻔하게 죄책감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지. 그저 죄책감이란 껍질을 덮어 썼을 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들었다.
감정이 없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신녀 프리아를 죽여버렸다.
정작 그녀를 지키기 위해 신이 된 주제에 그녀를 죽여버린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파괴의 일면이 폭주한 감도 없잖아 있지만, 감정이 없었기에 제대로 된 슬픔이나 증오조차 느끼지 못했다.
-내가 원망스럽다……. 너를 죽여버린 내가…… 너를 죽인 나의 사도가……. 너를 죽게 만들도록 만든 이 세상이!! 이 섭리가!!!
보통의 넬타리드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
하지만.
지금 내가 보는 넬타리드는 평소와 달리 비화처럼 감정이 분명 존재했다.
그것도 온전한 감정이.
-너는 평화를 바란다 하였지. 나는 네 바람대로 이루어진 이 세상을 아직도 사랑한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미워서 견딜 수가 없다. 실리라는 이름 아래에 쌓여진 끔찍하고 잔인한 이 세상이 구역질이 난다.
하지만.
-하지만 내 안에선 아직도 세상을 지키고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본능이 나를 갉아먹는다. 아아…… 프리아. 대답해보아라. 그저 감정이 없던 때가 옳았던 것이냐. 영겁의 세월을 슬퍼해야하는 이것은 네가 내게 내리는 형벌이더냐.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오열하는 넬타리드의 목소리가 조금씩 비틀어진다.
-나는 버틸 수가 없다…… 난 그리 완전하지 못해…… 당장이라도 세상을 으깨고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고 싶단 말이다.
동시에 그의 손에 붉은 결정들이 모여든다.
저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붉은 결정과 동일했다.
-이 모든 것이 정해진 섭리일지라도. 비록 내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을지라도.
감정이 없었던 신이 저지른 행동은 감정이 생겨버린 후 다시 되돌아봤을 때 너무도 잔인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의 혼을 이용해 가짜 신격까지 만들어낸 이 세상을 용서치 않으리라.
붉은 결정들이 그에게 스며들기 시작하며 그의 몸이 검게 변해간다.
그의 등 뒤에 돋아난 한 쌍의 날개는 결정화되듯 딱딱해졌고 이내 바스러지며 끔찍한 뼈가 드러났다.
-어쩌면 파괴는 내 안에 남아있던 감정의 잔재가 아니었을까.
완전히 검게 변해버린 그의 육신은 이내 칠흑의 갑옷을 입은 무언가로 변해버렸다.
쿠웅!!!!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끔찍하게 생긴 눈동자들이 떠오른다.
-너는 나를 원망할까, 아니면 못났다고 비웃음을 던질까. 그 또한 아니라면…….
완전히 갈라진 목소리로 말한다.
-불쌍하다 여길까.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의 주변 모든 공간이 일그러지고 파괴된다.
지금 느껴지는 힘은 본래 넬타리드가 가지고 있던 것 이상으로 강대해진 힘이었다.
-더이상 평화로워진 세상에 나 같은 죄인이 존재할 장소 따위는 없다.
괜찮다고. 신경을 안 쓴다고 입에 발린 말을 해줄 생각은 없었다.
비록 내 전생의 존재였다곤 하지만 신녀 프리아는 나와는 엄연히 다른 존재.
혼의 본질만 같을 뿐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혼의 본질이 같다는 것은 신의 입장에선 다르게 비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네 손으로 나를 베어다오.
짙은 슬픔이 공명하며 정신을 어지럽힌다.
-프리아…….
마지막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신으로서의 넬타리드 따위가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했고 지독한 결말을 맛봐야 했던 지독한 비극의 한 주인공의 목소리였다.
그것을 끝으로 내가 알던 넬타리드는 완전히 사라졌다.
* * *
쩌엉!!!
공간에서 튕겨 나온다.
손에 쥐어져 있던 붉은 광석은 완전히 바스러져 가루가 되어버렸고 내 몸은 튕겨 나가듯 밀려났다.
그런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고 지지하던 일리나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은 채 멍한 얼굴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멍하니 나를 직시했다.
“데이비…… 내가 본 게…… 대체…….”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일리나가 그리 느끼듯 나 또한 그리 느꼈다.
넬타리드가 이렇게 변해버린 이유는 아마 감정의 생성 유무였겠지.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던 신이 이렇게 된 이유에는 아마 프리아 여신이 그에게 감정을 개화시켜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신은 어찌 이리 잔인한 짓을 했을까.
아니.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두는 게 더 잔인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가능성은 하나.
감정을 얻은 것이 그의 선택이며 여신과의 약속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 감정을 지니고 있는 여신의 아바타는 넬타리드에게 얼마나 지독한 슬픔과 미안함을 느끼고 있을까.
상상하기가 무서워질 정도였다.
그동안 넬타리드가 내게 호의적으로 굴었던 것. 그리고 프리아라며 나를 아꼈던 것은 모두가 신으로서 효율과 실리를 따졌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진위는 이토록 잔인하고 슬픈 것을.
“데이비…….”
일리나가 자기도 모르게 흐느끼며 내 팔을 잡았다.
“나……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해? 대체 어떻게…….”
그녀의 말에 나는 굳은 표정으로 침묵하다 말했다.
“돌이킬 수 없어. 넬타리드는 결정을 내렸고…….”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선택뿐이다.
그에게 동화되어 이 세상을 원망하던지.
아니면 내가 지켜온 가족을 위해 이 세상을 지켜온 한 명의 신을 또 소멸시켜야 할지.
애초에 고민할 것도 없는 사안이었지만 도저히 쉽게 입에서 결단이 나오진 않았다.
파괴가 사라진 평온의 일면.
넬타리드가 세상을 사랑한 건 진실이었으니까.
“넬타리드를 소멸시킨다.”
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다.
넬타리드가 정말로 바라는 것은 세상을 향한 자신의 증오와 슬픔의 발산.
그리고.
자신이 죽였던 존재. 신녀 프리아의 환생인 내 손에 소멸하는 것.
“파괴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
물론, 마지막에 가서 비틀리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넬타리드의 파괴는 신이 되기 전 풍부하게 품고 있던 넬타리드의 감정이 만들어낸 하나의 기폭제가 아니었을까.
아픈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