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65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여겼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넬타리드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
아마 한계치는 존재하겠지만 그냥 방치하면 피해가 커질 거라는 건 분명했다.
비화는 그가 차원의 틈새에 있다고 말했지만 나로서는 아무리 차원의 틈새를 오갈 수 있어도 그의 위치까지 파악할 수단은 없다.
하지만.
그가 넬타리드라는 것을 알아낸 이상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넬타리드의 본산을 찾은 나는 소식을 전해 듣고 쪼르르 뛰어오는 작은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아가사.”
“스승님!”
나를 스승님이라 부르는 아가사의 표정은 밝아 보였지만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피로가 엿보였다.
이렇게 작은 아이까지 현장에 투입되어 부상자들을 치료해야 할 정도라는 사실이 퍽 우습다.
넬타리드는 이 사태를 예측했을까.
그렇기에 아가사를 내게 맡긴 것일까.
주기적으로 내게 많은 것을 배우는 아가사는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쑥쑥 성장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다.
현재 넬타리드 교단의 본산은 굉장히 시끄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친 천사로 인해 넬타리드 교단의 입지를 흔들려는 음모론이 나돌면서 소란이 벌어진 것이다.
때문에 현재 교단의 본산은 외부의 이런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부단히 바쁜 모습이었다.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다들 엄청 바쁘셔서…….”
“아가사. 신의 연못은 멀쩡해?”
“시…… 신의 연못이요? 아…… 네. 있어요.”
신의 연못은 본산의 교단 안에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였다.
성국 발샤스가 지키는 성역과도 같은 곳이지만 신의 연못은 넬타리드가 직접 힘을 내려 만들어낸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엔 왜…….”
“안됩니다. 아무리 티오니스 성자님이라 하셔도 신의 연못…….”
“이거 보여?”
이걸 모르는 걸 보니 아직 고위신관이 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그…… 그것은?!”
“오래전 넬타리드가 내게 내린 성흔이다. 이 정도면 자격은 충분하겠지?”
“그…… 그렇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다른 분은…….”
그는 나를 제외한 일리나나 이실디의 입장까지는 꺼리는 듯 보였다.
“이봐 인간. 짜증나게 하지 말고 안내해.”
이에 심연의 공주 이실디가 짜증스레 압박하자 그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만두세요. 대신관님. 이분들은 자격이 있으신 분들이세요.”
“하지만 성녀님…….”
“저를 믿고 길을 열어주세요.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아가사의 부탁에 대신관이라 불린 중년의 사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신의 연못으로 가는 결계를 해제하게.”
대신관의 말에 일부 신관들이 외부 결계를 해제하기 위해 이동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가사가 따라온 셈이다.
이윽고 결계가 해제된 뒤 신성한 느낌이 드는 복도를 지나자 연녹빛의 아름다운 반짝임을 내고 있는 커다란 연못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자연의 힘이 스며든 것처럼 주변엔 예쁜 초목들이 가득했다.
“위험하니까 따라오지 마.”
뒤이어 내가 아가사를 말리자 그녀가 볼을 잔뜩 부풀린다.
아이 특유의 내가 삐졌다! 라고 말하는듯한 모양새였다.
“저도 있을 거예요! 뭔가 중요한일을 하시는 거잖아요! 넬타리드 님께 드리고 싶은 말도 많단 말이에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하는 말이야.”
“넬타리드 님께 가는 길인데 어떻게 위험할 수가 있죠?”
그냥 진실을 말해 털어내 버릴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이었다.
“야. 온다.”
그말과 함께 신의 연못이 한차례 크게 번뜩이더니 거대한 빛의 기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일리나는 막대한 신력의 여파에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켰고
“저…… 저도 갈 거예요!”
고집을 피우는 아가사를 그냥 기절시켜서 두고 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넬타리드와 이어진 통로는 이것뿐이다.
이곳을 통해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을 때. 만약 아가사가 그것을 보고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제자인데. 괜히 과격한 수를 쓰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녀를 다독였다.
“그럼 여기서 기도를 올려.”
“네?”
“넬타리드에게 문제가 생겨서 도우러 가는 거다. 그러니까 네가 여기서 기도를 올리면서 기다리다 보면 일이 잘 풀렸을 때 우리가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기도를 올려주면 돼.”
사실 필요 없는 행위였지만 아가사는 진실을 모르는 듯했다.
“저…… 정말이죠?”
“그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결국 아가사는 속아 넘어간 듯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끌어모았다.
쉽네.
피식 웃자 이실디가 표정 관리하라는 듯한 시선을 보낸다.
“굳이 따라올 필요 없었는데.”
“나름대로 빚도 있고. 오랜만에 몸도 좀 풀어야 하고.”
이실디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결과적으로 한때 적이었다고 해도 세상을 위해 살아온 넬타리드가 이렇게 타락해버린 것이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이윽고 거대한 빛이 나와 일리나, 그리고 이실디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주변의 풍경이 엄청난 속도로 변한다.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이 주변을 휘감기 시작했고 이내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며 새로운 한 세계를 구성해내기 시작했다.
“여긴…… 거기네.”
기억 속에서 본 잿빛 하늘이 가득한 공간.
일리나는 나를 통해 넬타리드의 기억을 엿보았기에 이곳을 처음 보는 게 아니었지만, 이실디는 달랐다.
“조금 께름칙…….”
말을 하던 이실디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뭐야. 여기…… 에르펜타 고원이잖아.”
“에르펜타 고원?”
“그러니까…… 어? 내가 이걸 왜 알고 있지?”
스스로 의아해하는 그녀였다.
“아무래도 타나토스의 기억 파편인 거 같은데…… 여기…… 1만 년 전의 티오니스야…….”
그녀의 말에 나는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알 수 있었다.
불타오르는 산. 끔찍하게 일그러진 공간.
그리고 수많은 검의 무덤.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을 때 나는 넬타리드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를 막아서는 두 존재가 보였다.
“케인!”
일리나가 눈을 크게 뜨며 그중 하나를 부르자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돌아가 주십시오.”
잘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했더니 이곳에 있었나.
발키리아 종족. 넬타리드에게 남은 사도 중 하나로 과거 전쟁에서 발키리아 종족은 넬타리드의 사도로써 그의 의지를 전달하는 존재였다.
“그분을 죽이실 겁니까?”
“그래야지.”
“그렇다면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말과 함께 프레이아와 케인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비록 은인이신 당신일지라도. 저희들을 만든 부모를 죽게 둘 순 없으니까요.”
“그게 이 세상을 뒤엎어버려도?”
“어리석은 저희들을 용서치 마십시오.”
그말과 함께 프레이아의 등 뒤에 돋아난 날개가 검게 변질되기 시작했다.
“꺄아악!! 끄으으윽!!!”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던 프레이아가 붉게 변한 동공을 내게 보였다.
“부탁이야. 그분을 해치게 둘 수 없어. 제발 돌아가……”
“그건 할 수 없네. 적어도 너희 신도 그걸 바라진 않을 거다.”
넬타리드는 이미 나를 부르고 있다.
준비를 마친 것인지 아니면 내가 결단을 내렸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신의 연못을 통해 우리를 불러온 건 그 탓이었다.
“제안에 있는 당신을 어머니로 모시는 그는 잠재웠습니다. 그는 절대 당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으니까요.”
성격이 꼬였어도 케인의 반쪽 인격은 일리나를 엄마라 부르던 존재였다.
그런 탓에 이런 상황에서 그를 내보낼 순 없다고 판단했는지 한쪽의 인격이 빛으로 된 검을 만들어냈다.
“부디 저희들을 용서치 마세요.”
“부탁이야. 케인…… 제발 길을 열어줘. 너희까지 해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일리나는 내면이 어떻든 케인에게 제법 각별한 마음이 있었던 만큼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윽고 케인까지 변하기 시작한다.
마치 이란성 쌍둥이처럼 똑같이 변해버린 두 신의 사도를 보며 일리나가 결국 눈물을 한 방울 떨구자 이실디가 한발 나선다.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너희는 가.”
“이실디.”
“그나마 저놈들하고 그렇게 정이 없는 내가 하는 게 맞아.”
그녀의 말에 일리나는 억지로 울음을 삼키고는 칼디라스를 뽑았다.
“데이비. 어서 가.”
결국, 결단을 내렸는지 그녀가 싸울 의지를 보이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죽이지 마.”
“알고 있어.”
이들은 그저 자신들의 신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이다.
비틀려버린 넬타리드의 힘을 이어받아 저렇게 변했을 뿐 본질 자체는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2:2로 대치되는 상황에서 내가 그들을 지나쳐 가려 하자 케인이 나를 막으려 한다.
뚫고 가고자 한다면 금방 뚫을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카아아앙!!!!
“미안한데. 여기서 나랑 시간 좀 보내자.”
적어도 이들 발키리아와 넬타리드의 힘의 연결을 끊어버린다면 이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으리라.
둘을 지나치기가 무섭기 기다렸다는 듯 뒤쪽에서 엄청난 폭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프레이아와 케인. 그리고 일리나와 이실디가 충돌을 시작한 것이다.
케인과 프레이아가 제법 강해졌다곤 하지만 이실디와 일리나를 상대로는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물론, 죽인다는 전제하에 그렇겠지만 단순 내가 넬타리드와 그들의 연결을 끊을 때까지만 버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자 주변의 대지가 변한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떠 있는 하늘의 대지 조각들이 모여들며 다리를 만들어냈다.
다 타고 남은 잿가루 같은 것들이 마치 눈처럼 쌓여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자국을 만들어냈다.
작은 언덕을 넘어서자 수백 개는 되어 보이는 검의 무덤들이 보였다.
이곳은 내가 본 곳과 조금 모습이 다르네.
하늘을 올려다보니 마치 태양처럼 뜬 엄청나게 거대한 눈동자가 나를 직시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넓은 공터의 끝에 익숙한 석장이 꽂힌 무덤과 그 무덤의 앞에 놓인 거대한 옥좌가 시야에 비친다.
새카만 안개처럼 만들어진 존재는 한쪽 팔을 괸 채 나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넬타리드.”
내가 그의 정체를 밝히자 눈을 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던 그는 천천히 황색의 안광을 번뜩이며 일어났다.
그리고 사방의 검의 무덤에 꽂힌 무기들이 하나둘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고 이내 그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들어 박히기 시작했다.
-크윽…… 큭!!!
고통스러운 듯 신음하며 비틀거리던 넬타리드는 마치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꽂힌 검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힘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 꽂힌 무기들이 일제히 검은 안개처럼 변하며 그에게 스며들었고 이내 칠흑의 갑옷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가 허공에 손을 뻗는다.
그러자 남은 무기들이 모여들며 새까만 대검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기본적으로 넬타리드가 가지고 있던 힘과는 가히 비교할 수 없는 압박감이 주변을 잠식했다.
“넬타리드.”
-왔는가.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이전과 달리 지독한 슬픔이 섞인 목소리였다.
이윽고 그의 등 뒤에 돋아난 뼈만 남은 검은 날개에 피처럼 붉은 화염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죽이지 않고 제압하고 싶은데.”
-이미 일은 돌이킬 수 없다. 나를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검을 양손으로 틀어쥐었다.
쩌적! 콰아아아앙!!
순간적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의 칠흑검과 내 손에 쥐어진 초단이가 충돌했다.
[끄윽!!]
초단이의 비명이 들려온다.
지금껏 이런 경험이 없었던 만큼 조금 당혹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괜찮아?”
[괘…… 괜찮아요. 아버지…….]
초단이의 권능은 강하지만 완전한 무적에 가까운 검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한 번의 충돌 끝에 나는 결단을 내렸다.
스팡!!!
초단이를 청단이와 홍단이로 분리한 나는 두 아이를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아공간 속에 넣어두었던 헬릭시윰제 무기. 튼튼함이 절대 장점인 신창 롱기누스를 꺼내 과부하 시켰다.
언월도의 형태로 변한 롱기누스를 손에 쥐기가 무섭게 그의 손에 쥐어진 흑검이 검은 화염을 일렁이며 휘둘러져 왔다.
그를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쉬이 손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 자아는 곧 사라질 것이다.
그때 넬타리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늦기 전에 나를 죽여라. 프리아.
그의 절박한 목소리에 나는 창끝을 겨누고 그대로 파고들었다.
[팔라디아식 행성분열창]
[지각 변동]
콰드드드득!!
무언가가 비틀어지며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나간다.
순간적으로 서로 튕겨 나갔음에도 그와 나는 멈추지 않았다.
화르륵!!
그의 손에 쥐어진 흑검의 검은 화염이 전보다 짙어진다.
[팔라디아식 행성분열창]
[맨틀깎기]
거대한 발톱이 허공과 대지를 할퀴듯 수십 갈래로 깎으며 그의 검과 충돌한다.
이번엔 전보다 더 강해졌는지 같은 공격을 했음에도 그는 쉬이 밀려나지 않았다.
그의 검에 서린 검은 화염이 더욱 짙어졌다.
마치 단계적으로 힘을 증폭시키는 것 같았다.
그럼 이쪽도 맞춰야지.
[팔라디아식 행성 분열창]
[외핵적출]
엄청난 힘을 응집시킨 공격이 넬타리드를 향해 파고든다.
하지만 일렁이던 그의 검에 서린 검은 화염이 이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내가 휘두른 창의 검기 중 대부분이 그의 검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검은 내 몸을 튕겨냈다.
-스으…… 아직도 나를 죽이지 않으려는 것이냐.
그를 죽이겠다고 말했지만 지독한 슬픔을 억누르고 있는 그를 도저히 죽일 마음이 들지 않았다.
-멍청하군! 네 앞에 있는 건 단순 악신일 뿐이다! 나를 베어라. 나를 죽여라!!
작정하고 싸우면 이렇게 타격을 허용할 이유도 없었을 거라는 걸 그는 잘 아는 듯 보였다.
마치 3스택이 모여 터진 것처럼 그의 검은 다시금 화염이 작아졌다.
그럼에도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단순히 그가 나의 조력자였고 그의 사정을 알며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알기에 죽이지 않으려 하는 게 아니었다.
“네가 죽으면 지구는 끝장이야.”
남들은 아직 인지하지 못한 한가지의 진실을 내가 꺼내놓자 그가 잠시 멈칫한다.
-지구의 모든 권한은 그 아이에게 넘길 것이다.
“개소리 집어치워라. 넬타리드. 비화는 지구를 감당할 수 있는 여신이 아니야.”
비록 위계가 비슷할지라도 비화와 넬타리드는 완전히 다른 계통의 신이었다.
비화가 할 수 있는걸 넬타리드는 할 수 없고. 넬타리드가 할 수 있는 것을 비화는 할 수 없다.
내가 그 사실까지 알고 있다고 여겼는지 넬타리드는 잠깐 물러나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지구는 이제 내게서 벗어나 독립할 때가 왔다.
“변명에 개소리까지.”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며 나는 다시금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냐!!!
한번 두 번 세 번.
순식간에 이어진 충돌과 동시에 그의 검에 머금어진 새까만 화염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이대로라면 좀 전처럼 공격이 먹히고 내가 역으로 튕겨 나가리라.
하지만.
“한번 당하지 두 번을 당할 수야 있나.”
푹!! 푹!!
폭발적인 힘이 서린 검을 휘두르려던 넬타리의 갑옷 뒤로 날아든 두 자루의 검이 그의 몸을 관통했다.
그럼에도 그는 안광을 일렁이며 내게 말한다.
-검을 들어라. 프리아.
“나는 프리아가 아니야. 이 개새끼야.”
-네가 나를 죽이지 않으려 한다면.
그가 말을 잠시 멈췄다.
동시에 하늘에 뜬 거대한 눈동자가 거대한 고동을 흘렸다.
-비화를 그 아이를 미친 천사로 만들어버리겠다.
그의 입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가가각!!! 카아앙!!!
그와 동시에 내 창이 그를 찍어누른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서 그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넬타리드가 자신의 죽음을 바라면서도 나와 이렇게 싸우는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죽고 싶다는 의지 이상으로 이 세상을 향한 증오가 너무 깊어져 버렸기 때문.
세상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면서 그 누구보다 증오한다니. 퍽 웃긴 일이다.
-네가 상대해온 미친 천사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뭐?”
-그들은 모두 너의 친구였으며 가족이었다. 네가 바란 평화를 위해 신이 된 나는 정작 이 빌어먹을 세상의 섭리에 잠식되어 내 영역을 지키고자 그들을 모두 내 손으로 죽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며 거짓 착각까지 하고 있었지.
-그 후로도 나는 세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그런 몰골로 만들어버렸다. 너는 그것을 견딜 수 있는가.
그가 말한다.
-제삼자가 보기에도 끔찍한 상황이거늘. 그 장본인인 내가 대체 이 지옥을 어찌 견디라는 것이냐.
과거 넬타리드가 보인 감정의 편린은 그저 흉내였을 뿐이다.
지금의 넬타리드가 내비치는 감정은 진짜 감정이었다.
신녀 프리아의 가족과 친구.
아마 그가 기억 속에서 부른 이들의 이름이 그들의 정체일 터다.
다른 말로 하면 신녀 프리아의 가족이자 친구는 넬타리드의 친구이기도 하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