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킬 자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지 해당 스킬을 습득하기 위한 ‘조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습득 전제 조건, 한 신체에 심상을 2개 가지고 있거나 혹은 2가지 심상이 융합하여 형성된 심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습득 페널티. 심상이 2개로 나뉜다. 요컨대 이중인격이 된다. 마지막으로 습득 영향. ……심상이 2개면 밤과 낮의 인격이 바뀜. 심상이 융합되어 하나가 된다면 습득자의 정신 상태에 따라서 정신에 모종의 영향을 끼침.’
……너무나도 불길하기 그지없는 습득 전제 조건, 습득 페널티, 거기에 습득 영향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습득한 자의 정신에 너무 거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심상……. 심상이라는 게 도대체 뭐야? 알 수가 없는 고유명사에 대해서는 설명을 첨부해달라고.’
머리에 두통이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껴 이마에 손을 짚으며 공선자는 심각하게 찡그려진 표정으로 이를 악무는 것이었다.
……아니,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심상이 무엇인지 예측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현재의 공선자의 지적 능력은 상당했다. 평범한 사람 정도의 지적능력에 더불어 감정이 거의 억제 된 상태이기에 자신의 뇌를 거의 100% 가까이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뇌를 100% 활용할 수 있다고 해서 갑자기 초 천재가 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인간이 평소에 뇌를 10분의 1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헛소리였으니 말이다.
무의식이 의식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거의 대부분의 뇌 성능을 사용하고 있기는 했다.
허나, 그것은 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디까지나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성능이 10% 정도라는 이야기.
무의식이 확실하게 90% 이상의 뇌를 활용하고 있었다. 즉, 인간은 늘 의식과 무의식이 합쳐져 100% 뇌를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러니 공선자가 뇌를 전부 활용한다는 것은 무의식이 담당하던 90%의 영역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아니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니었고,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지적 능력이 그렇게 크게 상승하지도 않을 거다.
그야 원래부터 각종 무의식이 담당해야 하는 영역은 의식이 담당하게 되었으니 그쪽으로 리소스가 쏠려서 본래 사용하던 것과 다를 게 없는 영역만 다룰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오히려 정신력만 잡아먹히겠지. 그야 무의식이 담당하는 영역은 그 대부분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활동에 해당하는 영역이었으니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영역들 아닌가?
심장을 뛰게 한다든가, 소화기관이 일을 하게 만든다든가,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이 자라게 만든다거나 하는 세포 활동들 말이다.
그러니 공선자가 뇌 성능을 십분 활용한다는 것은 의식이 담당하는 10%에 해당하는 수준의 범위를 평소에는 5~7% 사용하는 것을 10% 전부 가동시킨다는 것을 의미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비몽사몽 하던 뇌가 피로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상태로 각성할 수준?
그러니 그렇게 높은 지적능력이 상승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평소보다는 훨씬 똑똑한 상태라는 이야기.
그렇게 어느 정도 똑똑해진 공선자이기에 심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대충 유추할 수는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영혼’과 비슷한 의미일 터. 그럴 것이 일야몽의 습득 전제 조건과 페널티, 습득 영향 등을 설명하는 설명문의 문맥만 보면 명확했다.
이 심상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개인의 ‘인격’과 크게 연관이 있었다. 허나, ‘인격’ 그 자체는 아니었다.
그야 인격이었다면 그냥 인격이라고 표현하면 되지 굳이 ‘인격’과 ‘심상’이라는 단어를 따로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즉, 심상과 인격은 다른 개념. 하지만 심상의 영향에 따라서 개인의 인격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했다.
당장 습득 페널티로 인해 심상이 2개로 나뉜다고 하는데 여기에 추가 설명으로 이중인격이 된다고 이야기되고 있었다.
즉, 본래 하나의 심상이기에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있었을 존재가 심상이 2개가 되며 인격도 2개, 다시 말해서 이중인격이 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인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그러면서도 심상이라는 단어에 부합한 개념을 추측해본다면 단 하나, 영혼이라는 개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심상을 직역하자면 마음의 형상. 그리고 보통 오컬트 쪽에서 사람의 마음, 기억, 그리고 인격은 영혼에 깃든다고 하지.’
그와 같은 이유로 심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부분에 대신해서 영혼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너무나도 잘 어울리지 않는가?
한 신체에 심상을 2개 가지고 있거나 2가지 심상이 융합하여 형성된 심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
이것은 영혼을 2개 가지고 있거나 2가지 영혼이 융합되어 형성된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게 된다.
……그리고 이 전제 조건은 공선자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럴 것이 공선자에게는 자신이었지만 자신이 아니었던 존재가 늘 함께 자신의 신체에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형은 단순히 내 다른 인격이었던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내 반신. ……내 또 다른 영혼이었던 거야.’
어째서 단순히 인격이 나누어진 것이 아닌, 영혼이 나누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추측이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허나, 현재의 공선자는 일야몽을 습득하고 있음에도 심상이 2개가 아니었다. 그야 현재 공선자의 인격은 어디까지나 1개였으니 말이다.
정신을 잃기 전과 정신을 잃은 후의 인격은 확실하게 같았다. 그저 ‘감정이 제어되고 있다는 차이’만 존재할 뿐.
즉, 이것은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습득 전제 조건’을 충족했다는 이야기. 그럴 것이 그렇지 않았으면 습득 페널티에 의해서 이미 심상이 2개로 나뉘어 이중인격이 되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거기에 시안의 경우를 생각하면 애초에 각성 스킬의 습득 전제 조건은 SP로 습득하는 경우가 아닌 처음부터 각성 스킬이 ‘각성’된 상태일 경우 굳이 습득 전제 조건을 맞출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애초에 습득 전제 조건이라는 녀석 자체가 각성 스킬을 처음부터 각성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충족된 형태로만 발현된다고 해야 할까?
요컨대 그거였다. 각성 스킬의 습득 전제 조건이란 본래부터 각성 스킬을 각성한 사람들의 ‘특징’에서만 발현되는 이야기.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어떤 각성 스킬을 각성하게 된다면 그 각성 스킬의 습득 전제 조건은 그 각성 스킬을 가장 처음 각성한 사람의 ‘특성’에서 결정된다는 느낌인 것이었다.
그럴 것이 각성 스킬은 본래 처음부터 각성 스킬을 각성한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것이 스킬 시스템에 의해서 다른 챌린저들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적어도 공평성을 논다는 에볼루션 시스템은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을 추가해 각성 스킬을 처음부터 습득한 이들에게도 공정한 보상을 줄 필요성이 있었을 터.
그 중 하나가 각성 스킬을 습득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것이었다. 즉, 각성 스킬은 ‘본래부터 각성 스킬을 각성한 사람이 아니면 습득하기 위해서 특정 조건을 만족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조건은 다름 아닌 각성 스킬을 처음부터 각성한 사람들과 최대한 비슷한 특성을 가지는 것이 될 터였다.
그야 각성 스킬을 각성한 이들은 어떠한 원인이 있어서 스킬을 각성했을 터. 그러니 최대한 그 원인에 해당하는 요소를 똑같이 맞추는 것으로 스킬을 습득할 때 부작용을 줄인다, 라는 느낌이 아닐까?
약도 사람의 체질마다 부작용이 있을 때도 있고 부작용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니 각성 스킬도 이와 비슷한 느낌인 것.
처음부터 각성 스킬을 각성한 이들은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각성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이들이었던 것이고, 다른 사람이 이들처럼 부작용 없이 각성 스킬을 습득하려면 각성 스킬의 습득 전제 조건을 달성해야 하는 것.
그리고 각성 스킬의 습득 전제 조건은 부작용 없이 각성 스킬을 각성한 이들이 어째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인지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원인이 될 터였다.
그것이 체질이든, 아니면 경험이든 처음부터 각성 스킬을 각성한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특수한 ‘특성’이 말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각성 스킬을 처음부터 각성한 사람이 가진 특성을 습득 전제 조건으로 만드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각성 스킬의 ‘희귀성’을 지켜내는 것으로 ‘공평성’을 세우는 것이다.
각성 스킬을 SP만 지불한다면 익힐 수 있는 스킬로서 만드는 것이 아닌 특정 조건을 달성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존재하는 스킬로서 만들어 배울 수 있는 이들을 한정시킨다.
이를 통해서 각성 스킬을 처음부터 각성하고 있는 이들에게 ‘각성 스킬을 아무런 부작용 없이, 그리고 SP 소모 없이 습득할 수 있다는 우위성’을 확보시켜두는 것.
그리고 그렇기에 각성 스킬을 처음부터 각성한 이들은 이미 습득 전제 조건을 만족시켰을 수밖에 없었다.
말했다시피 각성 스킬의 전제 조건은 처음부터 각성 스킬을 각성한 이의, 더욱 정확히 가장 처음 해당 각성 스킬을 각성한 이가 가진 ‘특성’에서 비롯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딱히 각성하고 싶어서 각성 스킬을 각성한 것이 아닌데 멋대로 익혀진 스킬 때문에 부작용에까지 시달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런 원리에 따라서 공선자가 일야몽을 각성하고 있는 이상 일야몽은 공선자의 ‘특성’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었다.
시안 역시 마찬가지. 시안의 경우에는 공선자가 경험했던 ‘타인의 눈을 이식한 경험이 있다는 특성’에서 습득 전제 조건이 발현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일야몽은? 볼 것도 없었다. 공선자의 가장 소중한 경험. 지옥 같았던 인생에서도 단 1점밖에 존재하지 않는 소중하기 그지없는 경험.
자신의 반신의, 자신만을 생각해주는 또 다른 ‘인격’이 탄생했던 경험. ……그리고 그 인격이 결국 자신을 위해서 희생했던 경험.
그 경험을 토대로 발현된 습득 전제 조건인 것이었다. 한 신체에 심상을 2개 가지고 있거나, 혹은 2가지 심상이 융합되어 형성된 심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2개의 인격을 가지고 2개의 인격이 융합된 인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으로도 치환시킬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공선자에는 그에 맞는 경험을 했었다.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반신이 희생하여 자신과 융합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겪은 것이다.
그렇기에 공선자는 습득 전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충족시켰기에 심상이 2개로 나뉜다는 페널티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이건 나밖에 습득할 수 없는 각성 스킬이야. 그리고……, 아마도 이 스킬은, 이 권능은, 초능력은……, 내가 가지고 있던 게 아니야. 내 형이……, 내 반신이…….’
심상. 지금 떠올려보면 자신의 반신이 천사와 이야기를 나눌 때 심상에 관한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도 분명히 천사는 심상을 영혼과 비슷한 것이라 이야기했다. 단, 영혼과 다르게 윤회전생이 불가능하다고 했던가?
허나, 개인의, 자아를 가진 존재의 근본이라는 점에서 영혼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그것이 바로 심상.
……그리고 아마 권능, 공선자가 알고 있던 초능력이라는 것은 이 심상과, 영혼과 비슷한 개념과 아주 크게 연관이 있었을 터였다.
그럴 것이 각성 스킬의 설명문에서 공선자는 각성 스킬은 본래 권능이었던 것이 격하되었던 것이기에 심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문을 보았던 것이다.
이것은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모조권능으로 격하되지 않는 권능이라면 심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
……그리고 공선자가 알고 있는 권능, 초능력이 한 사람당 하나 밖에 습득할 수 없다는 점.
여기에 자신의 반신은 단순히 자신의 다른 인격이 아니라 아마도 높은 확률로 자신의 또 다른 ‘심상’이었을 것이라는 점. 즉, 또 다른 ‘영혼’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하나의 영혼이 가질 수 있는 초능력은 하나뿐. 허나, 나한테 깃들었던 영혼을 두 개. ……그리고 그렇기에 내가 가진 초능력은 2가지.’
하나는 본래 공선자가 지니고 있었던 시안. 또 하나는 공선자에게서 비롯되었지만 완전히 다른 영혼이기도 했던, 그의 반신이 가지고 있었을 ‘일야몽(日夜夢)’인 것이다.
그 일야몽이, 어처구니없게도 반신이 공선자에게 흡수된 지금이기에 각성 스킬로서 각성한 것이다, ……라고 공선자는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