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제 01계-챕터 02: 의도치 않은 인연
‘여기에서라면 수레를 사도 괜찮을까? 사람들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으니 아마 문제는 없을 거야.’
수레를 구매하기 위해서 여관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공선자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혹시라도 여관에서 나오다가 아는 얼굴, 구체적으로 밀리언들과 마주치게 되면 어째서 여관 밖으로 나가는 것인지 설명하기 곤란했기 때문.
제가 여러분들하고 만나기 전에 쌈닭을 20마리 가까이 사냥해서 그 중 하나를 팔기 위해 시체를 운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레를 사러 가요! ……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에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침의 공선자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괴로웠다.
본능의 영역에서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거짓말을 내뱉을 때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마치 자신의 인생이 거짓으로 점철된 것처럼 느껴져 자괴감에 빠지는 그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할 수 있다면 그냥 파티원들과는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몰래 여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그게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
‘2T. 이게 가장 싼 수세라니……. 지구에서 팔던 것에 비교하면 잘못 사용했다가는 몇 번 쓰지도 못할 것 같은데.’
그렇게 조심스럽게 움직인 덕분에 아는 얼굴을 물론 여관에서 묵고 있는 다른 챌린저들과도 마주치지 않고 여관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공선자.
여관을 빠져나온 뒤 일단 인적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골목길에 들어온 공선자가 주변을 살펴보며 상점 시스템의 수레를 구매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중세 시대 분위기의 도시에서 골목길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위험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공선자는 어두운 세계에 대해서는 도가 튼 인물.
위험하기에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골목길과 그저 어쩌다 보니 인적이 드문 골목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에 실제로 밤의 공선자가 잠깐 도시를 살펴봤을 때 소나타는 꽤 치안이 괜찮은 도시였다.
그런 만큼 전혀 위험하지 않다! 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골목길도 중세 시대의 그런 골목길을 상상했던 것치고는 덜 위험한 것이었다.
때문에 공선자는 어렵지 않게 여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사람의 인기척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골목을 찾아낼 수 있었고, 거기서 상점 시스템을 통해 수레를 구매하기로 하는 것.
스르륵!
몇 번이고 진짜로 사야 하나? 그냥 조금 민폐를 끼쳐도 질질 끌고 가는 방식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던 공선자였지만 이내 각오를 마치고 상점 시스템을 통해서 수레를 구매하는 공선자.
그리고 직후 놀라서 흠칫 어깨를 떨며 몇 발자국 서 있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었다. 아무런 소음도 내지 않으며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수레.
“지, 진짜로 갑자기 허공에서 튀어나왔잖아?! 도, 도대체 에볼루션 시스템은 무슨 원리로 이런 물건들을 튀어 보내는 거야?”
예상은 하고 있었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튀어나와버린 나무 재질의 수레에 역시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몇 번이고 흠칫흠칫 놀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일단 곧바로 진정하고 자신이 구매한 수레를 살펴볼 수 있었던 공선자는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결과물을 확인하고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었다.
‘역시 재질을 나무네. 뭐, 가장 싼 가격의 수레였으니 어쩔 수 없지. 내구력이 영 믿음직스럽지 않지만 조심해서 쓰면 몇 달은 쓸 수 있겠지. 그리고…….’
수레를 만지작거리며 살펴보던 공선자의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수레가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현상. 허나, 방금 전과 다르게 공선자는 크게 놀란 눈치가 아니었다.
그야 그가 만지는 순간 수레가 사라진 이유는 그가 한번 인벤토리에 수레가 보관되는지 확인해보려고 했던 것이 이유였으니 말이다.
‘……역시나. 본래 지금 인벤토리의 공간이라면 수레를 보관할 수 있을 리가 없어. 하지만 보관되었다는 건 인벤토리라는 공간에 물건이 보관될 때 보관된 물건마다 공간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공간에 보관되어 있는 물건들이 적절하게 배치된다는 의미야.’
현재 공선자의 인벤토리는 쌈닭들의 시체로 거의 꽉 찬 상태. 그렇기에 본래라면 공선자가 앉아 있어도 충분할 크기의 수레가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수레는 인벤토리가 보관되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에볼루션 시스템의 인벤토리가 게임에서처럼 특정 공간을 직육면체의 형태로 나누어 그 직육면체의 공간을 하나의 물건이 차지하고 있으면 다른 물건은 결코 그 공간을 공유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보관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공선자가 시험해본 바로는 인벤토리 내부에 보관되어 있는 물건들은 서로 상호 작용을 일으키지 않았다.
요컨대 기름과 불을 함께 보관한다고 해도 인벤토리 내부에서 기름과 불이 반응을 일으켜 화염이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렇다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게임에서처럼 보관된 물건들이 각각 격리된 공간을 사용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물건들이 각각 격리된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은 격리공간의 어떤 형태로 구성되는가에 따라서, 그리고 보관되는 물건의 부피와 형태에 따라서 사용하지 못하는 공간이 생길 수 있지 않은가?
창과 방패를 인벤토리에 보관한다고 생각해보자. 창과 방패를 겹쳐서 보관해두면 보다 효율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데 게임에서 보면 창이 인벤토리 창 1칸을, 방패가 인벤토리 창 1칸을 차지하지 않는가?
그냥 창과 방패를 겹쳐 놓는다면 조금 큰 인벤토리 공간 1칸을 같이 써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게임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라면 확실히 물건끼리 격리되어 서로 간에 상호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맇기에 공선자도 처음에는 자신이 사용하는 인벤토리 시스템이 그런 식으로 물건을 보관하는 줄 알았다.
허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수레를 보관하는 것으로 시험을 해보니 그런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게임에서 주로 쓰는 시스템은 장롱 안에 물건을 보관할 때 일일이 박스를 포장을 하여 그 박스를 장롱 안에 쌓아두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의 보관법은 물건끼리는 확실하게 격리시킬 수 있지만 물건을 보관하는 박스 내부의 빈 공간을 낭비하지 않는가?
그에 비하여 에볼루션 시스템의 인벤토리는 장롱에 그냥 물건을 들입다 쑤셔 넣는 느낌이었다. 정확히는 보다 계산적으로 공간을 활용하여 상자 포장 같은 것 없이 물건을 쑤셔 넣는다는 느낌?
단, 물리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물건을 보관하면 당연히 물건끼리 접촉이 일어나 서로 상호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횃불과 기름을 함께 보관했을 때 두 물건이 접촉하는 순간 당연하게도 불길이 치솟는 것처럼.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벤토리 시스템은 그런 상호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인벤토리 보관되는 물건들은 죄다 냉동처리 되어 보관되어 서로 접촉한다고 해도 상호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느낌?
‘쌈닭을 한 마디 더 보관할 정도의 부피는 아무리 쌈닭들을 꾸역꾸역 압축해도 만들어낼 수 없었지만 수레의 경우에는 안에 빈 공간이 있으니깐 말이야. 그 빈 공간에 쌈닭을 끼워 넣는 식으로 인벤토리에 보관한다면…….’
……수레가 쌈닭으로 가득 찬 인벤토리에 보관될 수 있었던 이유도 납득할 수 있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공으로 빽빽하게 가득 찬 공간에 책갈피를 꽂는다는 느낌?
공끼리 부대끼어 더 이상 하나의 공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이라고 해도 공과 같은 수준으로 긴 책갈피는 꾸겨 넣으면 들어가지 않겠는가?
그런 느낌인 것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밀집된 물건끼리 서로 상호 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상대시간이 동결된 것이 원인 같은데 애초에 시간이라는 게 어떻게 동결될 수 있는 것인지도 제대로 추측이 가질 않는 것.
‘권능, 즉, 초능력에 의한 능력이니깐 그러려니 해야지. 그보다는 다행이다. 사고 나서 조금 아차 했었는데…….’
각설하고 그렇게 쌈닭을 운반하기 위한 수레를 산 뒤에 인벤토리에 보관할 수 있었던 공선자는 안도의 의미가 담긴 숨결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구매할 때만 해도 할 수 있는 고민은 전부 했다고 생각했는데 사고 난 직후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떠올랐었기 때문.
그것은 다름 아닌 토벌 증표가 아닌, 몬스터의 사체를 들고 가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모험가 길드에서 처리해야 하는지 그 자세한 과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의 공선자는 그냥 쌈닭의 시체를 들고 가면 길드가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시체를 들고 가는 당사자가 해야 할 일도 분명히 있을 터. 아니, 애초에 공선자는 몬스터의 시체를 정말로 모험가 길드에 들고 가는 게 맞는지조차 확실하게 파악해둔 상태가 아니었다.
모험가 길드가 매각을 해준다고는 했지만 그게 모험가 길드가 매각하는 과정 그 자체를 ‘중계’를 해준다는 건지, 아니면 공선자가 의뢰인에게 매각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중계’해준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것 아닌가?
전자는 그냥 모험가 길드에 가져가서 시체를 맞기면 모험가 길드가 알아서 해줄 것이었다.
허나, 후자라면 공선자는 모험가 길드의 중계를 받아 쌈닭의 시체를 어디서 팔아야 하는 것인지 확인한 뒤 쌈닭의 시체를 모험가 길드가 아닌, 중계받은 매각처로 가져가서 팔아야 하는 것.
즉, 매각처가 따로 존재할 가능성이 제로는 아닌 것. 때문에 수레에 쌈닭의 시체를 올려둔 뒤 모험가 길드로 갔다가 괜히 다른 사람들 눈만 끌 수 있는 것 아닌가?
미리 쌈닭의 사체를 온전하게 구해오는 자유형 채집 의뢰에 대해서 확실하게 파악한 사람이라면 모험가 길드 회관이 아니라 매각처로 가져가는 게 당연한 상식으로 자리 잡은 상황일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레에 쌈닭의 시체를 올려둔 뒤 길드 회관까지 끌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시선을 모으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을 터.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싶지 않은 공선자로서는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부끄러운 것도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에 대해서 알려지는 것을 본능의 영역에서 무서워하고 있는 공선자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본래라면 확실하게 쌈닭의 사체를 어떻게 매각할 것인지를 확인한 뒤에 수레를 구매한 뒤 수레를 이용해 쌈닭을 매각하러 갔어야 했다.
그전에 수레를 구매하면 쌈닭의 시체는 인벤토리에 보관한다고 해도 수레를 끌고서 다녀야 하지 않겠는가?
불행 중 다행이라고 소나타라는 도시가 워낙 사람들이 많은 도시이다 보니까 수레를 끌고 다니는 것 이상으로 이상한 행색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는 만큼 수레 정도 끌고 다닌다고 그렇게까지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지는 않았다.
저 정도야 뭐 어디서 운반업이라도 하고 있나 보지……! 라는 인식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수레를 이용하기 전에 미리 쌈닭의 사체를 어떻게 매각해야 할지 알아두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매각하고 싶었던 것.
그러나 그런 생각을 떠올린 것은 쌈닭의 시체를 운반하기 위해서 수레를 구매한 직후였다. 때문에 어떡해야 할지 조금 당황하다가 혹시 인벤토리에 보관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생각에 보관을 시도해봤는데 보기 좋게 성공한 것.
그렇다면 이대로 인벤토리에 수레를 보관한 뒤에 길드 회관에 찾아가서 쌈닭의 시체를 어떻게 해야 매각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는 것.
인벤토리에서 수레와 쌈닭의 사체를 꺼내는 것은 그 뒤에 해도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한 공선자는 일단 슬쩍 골목을 나와 주변을 살펴본 뒤 보는 사람이 없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공선자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 길드 회관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 후 공선자가 한 일은 간단했다. 일단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는 길드의 간판 아가씨가 있는 카운터는 최대한 피하면서도 사람들이 덜 몰려 있는 사무원에게 자신이 알고 싶었던 사실을 문의하는 것이었다.
챌린저가 아닌 혼자 모험가 활동을 시작한 새내기인 척하며 말이다. 솔직히 시도를 하면서도 이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공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