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36화 (36/216)

36화 생일

우리 가족은 서로의 생일을 잘 챙기지 않는다.

생일상에 필수인 미역국도 잘 끓이지 않는다.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미역을 구하기가 어려웠기에 그냥 저녁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생일을 대신하자고 했었다.

지금은 한인마트나 아시안 마트가 있어 비교적 미역을 구하기 쉬워졌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미역국은 잘 먹지 않았다.

미역국=생일 이라는 공식은 우리집에서 성립하지 않았다.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고.

“아들 여기.”

엄마는 밥을 먹고 있는 나에게 작은 박스 두 개를 내밀었다.

“아빠 것도 있어.”

“또 이거예요?”

상자를 열어보자 ‘그러면 그렇지.’ 하고 한숨부터 나왔다.

상자에는 군대가기 전과 똑같은 저금통 두 개가 담겨 있었다.

“이놈의 저금통은 왜 항상 주시는 거예요?”

“돈 절약하라고.”

모양은 매년 달라지지만 작은 저금통이라는 건 항상 똑같았다.

돈을 허투루 쓰지 말고 절약하는 정신을 갖자는 의미였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받은 저금통에 동전을 꽉 채우지 못했다.

특히 옛날에는 몰라도 지금 같은 시기에 누가 동전을 사용하겠는가.

“아무튼 고마워요.”

나는 선물을 식탁에 올려놓은 다음 실실 눈치를 보고 있는 캐서린과 이사벨을 바라보며 말했다.

“꼬맹이들한테 선물 받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밥이나 먹어.”

“나 꼬맹이 아니야! 고등학교도 졸업했어!”

“그럼 선물 내놔. 내일까지 현금으로 주던가.”

참고로 월리도 나한테 선물같은 건 챙기지 않는다.

이유야 별건 없고 나도 월리의 생일을 챙기지 않아서다. 그냥 생일날 만나서 가볍게 맥주 한 잔 기울이는 것으로 끝낸다.

‘이 나이 먹고 생일에 연연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태어나서 축하한다는 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

“밥이나 먹어.”

“.....웅.”

*****

뉴욕에 살고 있는 에드워드는 제자가 어렵게 구했다던 [블랙 & 월드]를 읽으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흐음..... 조엘, [사막의 전갈]을 썼다는 친구가 이걸 적었다고?”

“네. 어떠세요?”

“물어 뭐해? 잘 쓴 글이지. 다만 같은 작가가 썼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구나.”

“네?”

“묘사력이나 흡입력은 [사막의 전갈]보다 높구나. 그때보다 한 단계 진화된 글 같은데?”

“아. 그건 아마도 집필 시기가 달라서일 거예요. [사막의 전갈]은 고등학교 시절에 적었다고 들었거든요.”

“흐음......”

에드워드는 조용히 [블랙 & 월드]의 표지를 쓰다듬었다.

서늘한 감촉이 느껴져서 기분 좋았지만, 그 기분과는 달리 책의 내용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신인 작가라는 느낌이 전혀 없구나. 몇십 년 동안 글만 쓴 노병의 글 같은 느낌이다.”

“네?”

“그런 녀석들이 가끔 있지. 돈, 명예, 권력 그딴 거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초심을 유지하며 글을 쓰는 녀석들. 그런 녀석들은 이 정도 수준의 글을 쓰곤 하지. 너한테 처음 들었을 땐 믿을 수가 없더구나. 고작 스무살 중반 밖에 안 된 녀석이 이 정도 수준의 글을 썼다는 것을 말이야.”

“.....”

“‘그 녀석’이 생각나는군. 마그누스 녀석이 극찬할 만해. 다만, 영화로 이 감동을 전부 담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인가요?”

“물론 간혹 수정하면 더 좋을 흐름들이 보이긴 하지만 그건 차차 고쳐질 문제이니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제임스라고 했던가? 이 녀석 노래 가사도 잘 만들겠구나.”

“네?”

“원래 글 잘 쓰는 사람들은 노래 가사도 잘 쓰는 법이다. 조엘, 일주일 뒤 약속은 무리라고 했지?”

“네. 제임스가 그때 양장본 발매 때문에 캘리포니아로 가야한다고 해서요.”

“최대한 빨리 만나보고 싶구나.”

“그럼 최대한 빠르게 시간을 조율해볼까요?”

“아니, 그냥 캘리포니아에서 볼일 다 보면 바로 뉴욕으로 오라고 해라.”

“그렇게 빨리요?”

“그래. 빨리 보고 싶구나.”

조엘은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얼굴을 하고 있는 에드워드를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소설이라고?’

선생님이 과거 월드 미션 컴퍼니의 총음악감독 시절엔 이름을 떨쳤던 작가들과 함께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들었었다.

그 중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도 있을 만큼 선생님의 명성은 대단했다.

최근 신인작가들이 무서운 기세로 ‘과거의 영광’을 넘어서려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선생님 눈에는 거기서 거기였다.

‘[블랙 & 월드]..... 한 번 읽어봐야겠어.’

어째서 선생님이 저 정도의 반응까지 보이시는 건지 알고 싶었다.

“선생님 그럼 이제 그 책은.....”

“내가 가지마.”

“예?”

“너는 또 하나 사거라. 벌이도 좋은 놈이 늙은이한테 선물 하나 해주지 않을 생각이냐?”

“아, 아니 그래도 그 책을 구하려고 제가 얼마나 돌아다녔는데......”

“크흠! 나는 이제 피곤해서 그만 일어나보마.”

그러더니 책을 들고 안쪽으로 들어가셨다.

“선생님......”

과거의 영광이라는 별명답게, 에드워드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린 시절의 향기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 선생님이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자 조엘은 피식 웃음 지었다.

****

저녁을 먹은 뒤 나는 소파에 앉아 오늘 만난 에일리의 말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주인공은 남자로 하자.’

조금 뜻밖이긴 했지만 여자보다는 남자가 극단적인 상황에서 더욱 잘 묘사될 것이라 생각했다.

‘패션 디자이너...... 도망간 여자..... 굶주림, 힘든..... 모든 것을 집어넣자.’

주인공의 상황을 아주 처절하고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게 좋으리라.

‘한류 드라마식 전개로 간다.’

1화부터 12화까지 온몸에 고구마 몇백 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주지만, 후반부에 갈수록 몇 배가 되는 사이다를 주는 그런 소설을 적고자 했다.

‘극단적인 상황을 자주 보여주자.’

우선 주인공 설정은 그대로 가져가자.

얼굴에는 주근깨가 있고, 몸은 왜소하며, 키가 작고 거기에 말까지 더듬어 주위로부터 왕따라 불리는 학생으로 말이다.

‘주인공의 그 벼랑 끝에 선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스토리를 구상하고 있던 내 옆으로 캐서린이 다가왔다.

“야.”

“넌 뭐 없으면 반말하더라. 왜?”

“이거 받아.”

고개를 돌려 캐서린을 바라보니, 캐서린의 손 위에는 작은 상자 하나가 있었다.

“생일선물이냐?”

“응. 방금 가서 하나 사왔어.”

“......”

집에서 바로 나가 사올 수 있는 건 한정적이다.

상자를 집어 안을 확인해보니 문방구에나 팔 것 같은 작은 인형 하나가 있었다.

“팡이한테 놀라고 줘.”

“뭐야. 그럼 팡이 선물이지, 내 선물이 아니잖아?”

“아무튼 받을 거야 말 거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받을게.”

“이사벨 선물도 겸해서야. 내가 돈을 내고 이사벨이 사왔으니까.”

어차피 이 둘한테 선물 받을 생각도 없었다.

거기에 내 생일이라는 걸 알은 뒤에 선물을 해줬으니 딱히 감동적인 건 아니었다.

‘그래도 준 거니까 고맙게 받아야지.’

인형을 주머니 안에 넣고 캐서린을 보며 말했다.

“웹소설을 적을 때 주의사항은 이제 없지?”

“없어. 나도 뭐 유료화도 안 해본 초보 중에 초보인걸. 나머지는 직접 경험해보는 게 좋을 거야.”

“하긴, 그것도 그렇지.”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며 스트레칭을 했다.

“끄응......”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높이 들어올린 손을 내리자, 온몸에 혈액이 빠르게 순환되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 시작할 거야?”

“아니, 아까도 말했지만 일단 몇 화만 끄적여 볼 거야. 올리는 건 내일이나 모레가 되겠네.”

“그럼 글 쓰기 전에 SNS라도 하는 게 어때?”

“응?”

“[블랙 & 월드] 성공 조약 있었잖아?”

“흐음...... 아직 하루도 안 됐는데.....”

“전 서점이 품절사태라고 들었는데, 이 정도면 이미 성공한 거 아니야? 이번 사태에 대해 독자들도 듣고 싶은 말들이 있을 거야.”

“또 Q&A를 하라고?”

“그건 마음대로 하고. 아니면 게시글 하나 올려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라도 표현하던가.”

라울과 함께 팬들과 약속한 것이 있었다.

500만부 달성.

달성만 한다면 나는 라울이 원하는 책을 써주겠다고 약속했고, 팬들하고는 사인회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게. 네 말이 맞다.”

다만, 시간이 늦었으니 Q&A는 공지 없이 바로 열어서 필요한 내용만 딱 말하고 끝내는 게 좋겠지.

“너도 이제 그만 들어가.”

“대머리 불렀어. 늦었으니까.”

아무리 익숙하게 산 마을이라도 밤이 되면 코요태와 같은 짐승들이 나올 수 있기에 밤길을 조심해야했다.

이리저리 다투어도 동생을 챙기는 착한 오빠였다.

캐서린을 뒤로 하고 방으로 올라간 나는 곧장 컴퓨터를 켜 SNS에 들어갔다.

“그냥 바로 시작해도 되려나?”

바로 시작한 적이 없어서 과연 사람들이 Live 방송에 몇 명이나 들어올지 의문이었지만, 발매 후 시간도 상당히 흘렀으니 지체 없이 시작하기로 했다.

[Live 방송을 시작합니다.]

그 말과 동시에.

-헐! 갑자기 Live 방송이라니요?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알람 소리 들리자마자 들어왔다.

-난 목욕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거품도 안 닦음

-난 여자친구 만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난 밥 먹는 중이었음

-난 똥 싸는.... 아 젠장

-그나저나 갑자기 왜 방송이시지?

-그러게?

나는 치솟아 오르는 채팅장을 보며 컴퓨터에 짧게 한 줄 적었다.

[3분 후 Q&A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채팅장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루시아는 [블랙 & 월드]를 읽으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정말 잘 쓴 글이네요!”

“그렇지? [드래곤 마스터]나 [사막의 제국]에 버금갈 정도야. 빌에이든미디어가 작정하고 칼을 뽑을 만해.”

팀장인 제임스는 호쾌하게 웃으며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자신할 만해. 올해 최고의 장르소설이 맞아...... 다만, 올해가 아니라 한 분기라고 칭해야 할 테지만.”

“바로 시작하실 생각이세요?”

“응.”

빌에이든미디어의 단점은 베스트셀러가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반면 SC라스틱은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배출했고, 그걸 바탕으로 한 인지도와 명성으로 시장조사까지 모든 면이 완벽하다고 자부했다.

“로건 대표의 행복은 기껏해야 몇 달 가지 않을 거야. 우리는 무기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

“[사막의 제국].....말이죠?”

“응. 그런데 그거 수정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

“거의 다 끝냈어요..... 만족하실진 모르겠지만요.”

“대체 뭘 얘기했길래 작가님이 너한테 다이렉트로 맡긴 거야?”

그 말에 루시아는 우물쭈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벼, 별 이야기..... 안 했어요.”

“그러지 말고 이야기해주면 안 돼?”

“진짜에요. 정말 별 이야기 안 했어요.”

“뭐라고 말했는데?”

“제가 먼저 말씀드리기가 좀...”

“뭐. 네가 수정한 걸 확인하면 알게 되겠지.”

스티븐은 루시아가 읽고 있던 [블랙 & 월드]를 가져갔다.

“아앗! 왜, 왜 그러세요!”

“내거니까 다시 가져가겠다는데 왜?”

“그, 그래도.....”

“그리고 아직 일할 시간이잖아? 일 다 하고 직접 구매해서 봐.”

품절대란까지 일어난 책을 대체 어디서 구하란 말인가.

꼭두새벽부터 서점에 줄을 섰지만, 결국 자신의 앞에서 책이 품절되어 구하지 못한 루시아는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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