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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75화 (174/216)

175화. 블랙 & 월드 미팅

아동문학상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뉴베리상.

그해 아동 문학을 크게 발전시킨 사람한테나 준다는 그 상 후보에 내가 들어갔다는 소식에 노아 회장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무슨 책이?”

“[사막의 제국]”

“......왜?”

“왜긴 왜야? 도서협회에서 그렇게 판단했나 보지.”

100번 양보해서 [드래곤 마스터]라면 이해가 된다.

일단 아동문학이기도 했고, [사막의 제국]보다 나온 지 시간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는 [사막의 제국] 출판일이 너무 늦었다.

“복잡하네...... 그래서?”

“1월 중순쯤에 연락이 올 거야. 1월 말에 시카고로 가야 할 거고.”

“시카고......”

가본 적 없는데.

무엇보다 거리도 멀었다.

거리로만 따지면 뉴욕보다 멀었다.

“끄응..... 안 갈 수도 없고.”

“거부한다면 거부할 수 있는 상이야. 근데 뉴베리상 특권을 놓치기에는 아쉬울걸?”

“하아..... 알고 있어.”

무슨 상이든 간에 상을 받은 책이라고 하면 수익률이 몇 배로 올라간다.

하물며 아동문학상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뉴베리상이다. 내 인지도와 합쳐진다면 그 수익률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내 첫 상이기도 하니 안 갈 수도 없었다.

“어차피 후보일 뿐이니 받지 못할 가능성도 크겠지.”

내가 받을 확률은 그리 높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미팅이나 하러 가죠.”

“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노아 회장은 자리에서 친히 일어났다.

***

회의실은 이미 이야기로 붐비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크, 크흠!”

“하하. 오래간만입니다.”

내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에드워드 선생님은 대놓고 헛기침을 하셨고, 총감독을 맡은 딜런은 보기 좋은 미소로 나를 환대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딜런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감독님이라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대화가 잘 통하는 느낌이었다.

간단히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자리에 착석함과 동시에 시나리오를 받아들였다.

‘시나리오를 볼 때마다 항상 대단하다고 느꼈지......’

시나리오를 볼 줄은 아는데 쓰는 법을 모르니 아이러니했다.

“음......”

꿀꺽

내 신음소리에 맞춰 시나리오 작가인 탈리아의 목젖이 연신 넘어갔다.

한눈에 봐도 긴장한 기색이었지만, 나는 그걸 알고 있음에도 아무 말도 없이 시나리오를 살폈다.

영화에 중요한 건 많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시나리오였기에 자세히 살필 수밖에 없었다.

“좋네요.”

“수정하실 부분은.....”

“몇 부분은 수정하고 싶기는 한데..... 이런 부분은 대화를 나누면서 수정해보기로 해요.”

본격적인 미팅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커피로 목을 축였다.

***

에드워드 선생님이 음악 감독을 맡으셨지만, 그래도 음악의 모든 평을 선생님한테 맡기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시나리오에 따라 수없이 음악과 BGM이 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후에 넣는 음악도 있지만, 만들기 전에 정해지는 음악도 있기 때문에 일단 선생님이 만들어온 음악들에 맞춰 머릿속에 간단하게 스토리를 그려봤다.

시나리오의 수정은 조금씩 계속 진행되었다.

글자 몇 개가 더 추가되거나 수정되는 경우도 있었고, 배경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도안으로 만들어진 의상 또한 내 상상에 맞지 않을 경우 더 변경되었다 보니 미팅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하지만 그 길어지는 미팅 속에서 감독님들 중에 지겹다는 표정을 하는 분은 없었다.

에드워드 선생님은 연세 때문에 조금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정신을 집중하셨다.

오후부터 진행되었던 미팅은 결국 저녁이 되어서야 끝을 맺었다.

“끌.....”

미팅이 완전히 끝이 나자 에드워드 선생님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눕히며 나를 바라봤다.

바라봤다는 표현보다는 노려봤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왜요?”

“전보다 표정이 좋아 보여서 그러네.”

“.....그런가요?”

“끌..... 최근에 안 좋은 일을 겪었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치고는 뭐..... 좋은 표정일세.”

“.....흠.”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리를 툭툭 쳤다.

“[드래곤 마스터] 음악 감독은 내 제자 중 한 명이 맡을 거야. 어이구..... 이 나이 먹고 작업하려니 피곤하구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사전에 차단해 버리셨다.

“늙은이는 이제 곧바로 가보려 하네. 미팅은 이걸로 끝인가?”

“예. 이 이상은 딜런이 중간중간에 수정하겠죠.”

“에구구.....”

선생님은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툭툭 치신 다음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얼른 돌아가서 SPA에서 등을 좀 지져야겠어. 요즘 나이 먹고 너무 무리했나 봐.”

“하하. SPA가 좋기는 하죠. 저도 다음에 가봐야겠어요.”

“그러고 보니 언제 올 거야?”

“.....예?”

“응? 연락 못 받았나?”

“무슨 연락이요?”

“자네 변호인한테 연락이 갔을 텐데?”

“그러니까 무슨 연락이요.”

“강연 말일세.”

“.....강연? 제가요? 그보다 어디서요?”

“줄리어드 스쿨이지 어디겠는가?”

“.....전 음악 안 하는데요?”

“문학인으로서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학생이 한둘이겠는가? 애초에 음대라고 해서 음악 하는 사람들만 강연한다는 건 대체 어느 상식인가?”

“아니 애초에 그게 당연하지 않아요?”

“에잉.... 쯧쯧. 핫도그에 케찹만 뿌려 먹을 녀석 같으니라고..... 음악, 소설로 나누기는 하지만 어차피 전부 ‘창작’이라는 이름 안에 들어가 있는 ‘문학’일세. 자네는 핫도그에 머스타드는 안 뿌려 먹나? 허니 소스는? 칠리 소스는?”

“.....비유가 좀.”

“아무튼 간에 할 건가 말 건가? 참고로 줄리어드 스쿨에서 강연하고 싶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네. 내 힘 좀 써서 자네를 추천했으니 거절은 웬만하면 하지 말게나.”

“.......”

에드워드의 발언에 힘이 들어간 것도 많지만, 애초에 제임스가 문학 쪽 세계에서 인기가 많은 것도 한몫했다.

학생들의 요청도 상당히 많았고 거기에 에드워드의 발언도 있었다 보니 제임스한테 문의가 온 것이다.

“하는 건 상관없는데...... 가서 뭐라고 말해요?”

“글 쓰는 방법이나, 네 생각이나, 성공 비결 같은 거나 말하면 되니까 어렵지 않을 걸세.”

“......”

보통 그런 걸 어렵다고 하지 않나?

“시기는요?”

“그건 조율해봐야지. 웬만하면 다음 주에 오고.”

“다음 주?”

“그때라면 학생들 말고도 외부인이 올 수 있으니까. 애초에 지금 방학 중이라 오고 싶은 학생들만 올 걸세.”

“사람이 적을 수도 있겠네요?”

“오히려 많을 수도 있겠지. 외부인이 들어오니까. 대강당에서 해야겠지.”

“근데..... 저 강연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요?”

“아까도 말했지만 별거 없네. 학생들의 공감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냥 자네 스스로가 생각하는 걸 입 밖으로 내뱉는 걸로 충분하네.”

“......”

“뭐. 그리 긴 시간 하는 강연도 아닐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걱정이 안 될 리가 있나......

아무튼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아까 노아 회장과 이야기했던 내용을 선생님한테 말씀드렸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제자를 어떻게 두셨어요?”

커피를 입에 가져가시던 선생님은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런 의견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었다.

“왜 갑자기 제자냐?”

“이번에 재단을 하나 설립할까 하는데..... 노아 회장이 제자를 들일 생각 없냐고 묻더라고요. 글 쓰는데 여러 소통을 하며 좋아질 수도 있다고.”

“튜터링 같은 걸 하려는 건가?”

“그럴 수도 있고요. 아무튼 궁금해서요.”

실없는 웃음을 짓는 선생님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제자라고 해서 별거 없네. 조엘 같은 녀석은 신입일 때 조금씩 건드려보니 반응이 괜찮아서 조금씩 가르쳐 준 것뿐이고, 그 외에 녀석들은 뭐..... 학생일 때 재능이 보인다거나, 아니면 오성이 괜찮아서 가르쳐주다 보니 제자라고 불리더군.”

“......별거 없네요?”

“자네의 상상만큼 제자와 스승의 관계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제자는 스승의 지혜를 훔치기 위해 노력하고, 스승은 제자한테 따라잡히지 않게 성장해야 하는 거지. 그게 다일세.”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가지 뜻이 숨겨져 있었다.

특히, 제자한테 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가 벽이 되어야 한다는 마지막 말은 내 가슴을 울렸다.

“뭐. 나름 특별한 경험일 걸세.”

“......”

선생님의 말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

미팅이 끝나고 딜런은 나한테 다가왔다.

“하하. 작가님.”

“아. 딜런......”

미팅 때는 바빠서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지 못했는데, 싱글벙글한 얼굴로 다가오자 왠지 더 반가웠다.

“혹시 오늘 시간 남으십니까?”

“네..... 뭐. 지금 집에 가도 늦으니까요. 하하.”

“이런..... 아쉽군요. 저녁 한 끼 같이 하자고 하려고 했는데 하하.”

“그럼 저희 집 근처에서 한 끼 하시겠어요?”

“저야 좋죠. 근데 내일 미팅이 또 있으시다고 들으셨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아무래도 술은 무리죠. 하하.”

“하하. 그건 아쉽군요. 아. 제가 차를 따라가겠습니다. 먼저 출발하시지요.”

“네.”

운전석에는 누나가 앉아 있었는데, 딜런이 차를 가지러 간 사이 나는 옆좌석에 앉았다.

“무슨 일이야?”

“딜런하고 저녁식사 하기로 했어. 누나도 같이 가자.”

“상관은 없는데..... 하긴, 딜런 집은 뉴욕이니까. 호텔에서 하루 묵고 가겠지.”

“딜런 집을 알아?”

“응. 옛날에 매스컴에서 나왔거든. 그나저나 미팅은 어땠어?”

“좋게 끝났어. 오래 기다려서 힘들었지?”

“회사일 보다 기다리는 게 더 좋지 뭐. 그나저나 재단에 대해서 생각해봤어?”

“응. 그냥 누나가 알아서 진행해줘. 그런 복잡한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까.”

“알았어. 참. 그리고 줄리어드에서......”

“그거 선생님이 말해줬어.”

“미팅에 집중하라고 저녁에 알려주려고 했는데 다행이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다음 주로 시간 조율은 해주는데..... 흐음. 일단 글 쓰는 걸 멈추고 강연 영상을 좀 봐야 하나.”

강연을 해본 적이 없으니 불안감이 더욱 커져갔다.

누나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불안감은 있었다.

“그리고 빌에이든 미디어하고 SC라스틱에서도 연락이 왔어. 이벤트에 관해서 여쭤볼 것도 있고, 이번에 보낸 소설에 대한 것도 있고 아무튼 연락 한 번 달라더라.”

“깜빡하고 있었네..... 지금은 시간이 늦었으니까 내일 아침에 해야겠네. 아. 왔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딜런의 차량이 내 차 뒤로 달라붙었다.

“출발하자. 내가 운전할까?”

“됐어. 미팅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그냥 푹 쉬어.”

출발하는 엔진소리에 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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