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이가을은 대답 대신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며 인상을 썼다. 그 모습에 아차 하며 이하늘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눈치를 보는 걸 아는 걸까, 모르는 걸까. 이가을은 제 할 말만 했다.
“불편하겠지만 눈 가릴게. 손목도 묶고.”
“왜……?”
“안 보는 게 좋고, 날 놓지 않는 게 좋으니까.”
아까부터 땀을 흘리던 이가을이 더웠는지 쓰레기가 되기 직전의 외투를 벗어 던졌다.
왜 손에 피가 묻었는지 안 알려준 것처럼, 왜 외투가 저렇게나 지저분해졌는지도 안 알려주겠지.
그나마 깨끗한 긴팔 티 소매를 이로 물어 길게 뜯은 이가을이 그대로 이하늘의 시야를 가리고 두 손을 묶었다.
시야가 새카매졌다. 곧이어 뒤쪽 허벅지 아래에 단단한 게 느껴지더니 이하늘은 그대로 허공에 들렸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균형을 잃는 이하늘을 누가 받쳐줬다.
“목에 팔 둘러.”
“나, 나를 안으면서 가려고? 오빠 힘들어.”
“목에 팔 둘러.”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이하늘은 결국 이가을 목에 두 팔을 걸었다. 손목이 묶였으니 팔을 위로 들지 않는 이상 그를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내가 좀 뛸 건데…….”
겨울바람에 실려오는 이가을의 음성. 날 들고 어떻게 뛸 거라는 건지, 이하늘이 미미하게 미간을 좁히는 그때.
“놀이기구 타는 거라고 생각해.”
“놀이기…….”
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하늘은 몸이 붕 뜨는 감각에 이를 악물었다.
그 뒤로는 멀미 대장정이었다.
텅―!
믿기지 않지만,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오빠가 저 큰 소리를 내면서 높게 도약하는 거거나.
머리카락이 뺨을 때리는 것을 여과 없이 느끼며 이하늘은 혼란에 빠졌다.
혹시 이거 꿈인 걸까? 지진이 일어나고 이상한 구멍이 생기고, 거기서 오빠가 떨어지고.
오빠는 하늘 높이높이 뛰는 사람이 된 거.
꿈 아닐까?
묻고 싶은 게 잔뜩이었지만 멀미가 심한 이하늘은 울렁거림을 잠재우기 위하여 말을 줄였다.
촤아악―!
이가을이 크게 상체를 움직이면서 귓속으로 파고드는 날카로운 소리. 철퍽, 하고 무언가가 떨어지는 징그러운 소리도 들린다.
그뿐인가, 멀리서 기괴한 울음도 들린다.
하늘 위로 날 수는 있다고 치자. 사실 그것도 말이 안 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치자고.
하지만 이 소리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뭐, 뭐야, 방금?”
“……방출형.”
“바, 방 뭐?”
“시끄러워.”
신랄한 말투였다. 당연하게도 이하늘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몇 분.
후욱 떨어지더니 가볍게 착지한 이가을이 이하늘의 팔을 빼며 내렸다.
캄캄했던 시야가 환해졌다. 이하늘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걸 인지했다.
하지만 머리를 정리하기에 앞서 벌써 집 앞에 도착한 걸 깨닫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 대체 뭐야……?”
보통 초등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근데 체감상 5분도 안 걸린 것 같았는데.
이가을이 이하늘의 손을 잡고 대문을 넘다가 멈칫했다.
한참을 멈춘 상태로 있던 그는 무심하게 귀를 문지르고 돌아봤다.
“몰라. 헌터? 래.”
“……넹?”
“……다른 말로는 각성자. 더는 묻지 마. 나도 잘 몰라.”
님이 모르면 누가 아오.
일단 이하늘은 대문을 넘었다.
시야를 가렸던 탓에 집으로 오면서 여전히 뭐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하늘에겐 눈치란 게 있다.
세계가 SF 영화가 되었어.
외계인이 쳐들어온 걸까? 저 탑이 생긴 날부터 지구를 차근차근 정복하려고…….
그리고 오빠는 히, 히어로? 어×저스 같은?
부러 한없이 가볍고 우스운 생각을 하던 이하늘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다.
애써 외면했던 불안함이 터졌다.
휙 돌아섰다. 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이가을과 마주했다.
“그래서 영이랑 활이 어디 있냐니까.”
현관에 신발이 하나도 없었다. 서쪽에서 해가 뜬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이 신발을 신발장에 넣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까 둘은 아직 집에 없다. 그럼 대체 어디에 있는가.
“어디 있냐고. 오빠랑 있었잖아.”
“……하늘아.”
“뭔데? 벼, 병원에 입원했어? 그 정도로 아프대?”
이하늘은 울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울지 않기로 결심했다.
태어난 직후부터 이곳의 구성원이었으나 이하늘은 안다. 알게 되었다.
원래 바깥에 있었던 걸 안으로 들여준 것을.
아, 그래서 우리가 하나도 안 닮았구나.
그래서 오빠는 우리한테 마음을 안 열어주는구나.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실제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하늘은, 하늘은 어렸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작았다.
이가을이 서늘하게 쳐다볼 때마다. 왜 남매가 닮지 않았느냐고 누군가가 물을 때마다.
점차 마음이 곪아 터졌다. 의심하게 되었다.
이가을은 우리를 가족이라 생각 안 해.
남들 눈에도 우리는 가족으로 안 보여.
부모님이 우리한테 친절한 이유는 역시.
티를 내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 끔찍한 의심과 불신을 혼자 안고 삭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러다가 말겠지. 나중에는 점점 단단해져서 아무렇지 않아질 거야. 결과만 봐.
그래도 이가을은 내 오빠고, 부모님은 우리를 키워주시며.
피가 이어지지 않아도…….
그러던 어느 날.
화창한 날씨인 10월.
가을답게 하늘이 드높고 공활했던.
찬란한 어느 날.
네 남매를 키우던 부부가 죽었다.
이하늘의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하늘아. 너무 미워하지는 마. 엄마가 하늘이 불안하지 않게 매일 사랑할게.’
‘그럼 아빠는 하늘이를 훈육하는 못된 역할 할까.’
‘어이구, 하늘이가 울상만 지어도 손 덜덜 떠는 인간이.’
‘무슨? 아니야, 하늘아. 아빠가 얼마나 무서운데.’
뭐가 됐든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렇게 가지 마요.
눈앞에서 맞이한 부모님의 죽음은 작은 하늘에게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하늘은 울지 않았다.
마음이 곪아 터지는 걸 숨기는 건 이제 특기였으니까. 드러내지 않기로 했으니까. 괜찮은 척을 해야 했으니까.
그러니 지금.
세계가 SF물로 변하고 오빠는 히어로가 된 지금.
쌍둥이들이, 동생들이 집에 없다는 사실에도 울면 안 되었다.
“어디 있는지만 말해 주면 되잖아. 그거 어려워?”
“…….”
“왜 말을 안 해? 오빠가 말을 안 하면, 나보고 어쩌라구…….”
침묵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사람이란 상상을 하게 되는 법이다. 그것도 최악으로.
병원에 있으면 그렇다고 말하고도 남을 사람인데. 아니, 어디에 있든 솔직하게 말해 주고도 남을 사람인데.
이 무뚝뚝한 오빠가 유일하게 말하지 않을 때는 딱 하나뿐.
얘기하기 힘든 사실일 때다.
“주, 죽었어?”
“……아니야.”
“그, 그럼 됐어. 죽지만 않으면 돼. 애들 어디 있는지 이제 말해 줘. 나 안 울잖아, 잘. 오빠 언짢게 안 할 테니까 말해.”
“…….”
제발 말 좀 해.
이하늘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까부터 머리가 욱신거려 이마를 짚었다가 한 가지 드는 생각에 눈을 떴다.
“그 구멍에, 오빠가 나온 그 이상한 틈 같은 거에 빨려 들어갔어?”
“…….”
“……어디야? 어딘지 당장 말―”
이하늘은 신발을 벗고 집 안에 들어가는 길 대신 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가을이 이하늘의 어깨를 잡았다.
“잘 들어.”
“무슨.”
“나 가봐야 해.”
“뭐? 어……디를? 애들한테?”
“아니. 걔네한테 안 가.”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럼 어디를 간다는…….
이하늘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러나 이가을의 눈동자는 한없이 잔잔하다.
“어딜 간다는 거야. 알아듣기 쉽게 말해.”
“어디든. 구하러 가야 해.”
“구하러? 누굴? 애들한테 안 가고……? 누굴, 지금 누굴 구한다는 거야.”
누구겠어.
세계는 이상하게 변했고 이가을은 검붉은 틈에 빨려 들어간 다음에 빠져나왔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공과 이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게 아니라면. 운이 지지리도 없는 게 아니라면,
그 검붉은 틈에 빨려 들어간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오빠는…… 지금 가족보다 그 사람들을…….
“오빠 미쳤구나. 정말 히어로라도 된 것처럼 구네.”
“…….”
“사람 구하는 거? 좋아. 하지만 영이랑 활이부터 구하면 안 돼? 그 뒤에 해도……. 아니, 아니야.”
이하늘이 고개를 거칠게 저었다. 절박했다.
“그 뒤에도 할 필요 없어. 아니, 하면 안 되지. 우리 가족만 신경 써도 모자랄 판에…….”
이하늘이 거기까지 말하고 멈칫했다.
가족?
……아, 아. 우린 그런 평범한 가족이 아니었지.
하지만 오빠가 분명히…… 말해 줬는데.
이하늘은 멀지 않은 과거를 그려보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점점 슬픔에 무뎌져 갈 때.
부모님의 부재가 익숙해지고 부모님의 사진을 보아도 더는 슬퍼하지 않고 말을 걸 수 있게 됐을 때.
이하늘은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