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56화 (56/407)

〈 56화 〉 #27. 뒷정리

멍하니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이겼다.'

실감은 들지 않았지만, 숨이 끊어진 아가일이 있었다. 그 시체를 보고도 부정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

최후의 최후, 놈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었다. 강욕. 아마 놈이 바랐던 것은…

'아니. 생각할 필요 없어.'

그건 내 몫이 아니다.

놈을 태우기 위해 불을 일으키려다 그만뒀다.

'필요해.'

시체를 물고 위층으로 올랐다. A동에 남은 바닥이 더 드물 정도라 굳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필요도 없었다.

'페어리 드래곤은?'

가장 먼저 녀석이 휘말리지 않았을까 걱정됐다. 하지만 다행히 잘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런데…

'너네 왜 같이 있는데?'

은자림. 창선의 제자, 은자의 숲의 클랜 로드. 그녀가 가지란히 모은 손 위에 페어리 드래곤을 올려놓고 황홀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반대로 녀석은 심드렁한 눈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마치 심통 난 고양이 같다.

'……?'

머릿속에 떠오른 갈고리를 집어넣었다. 다가갈지 말지가 고민이었다. 당장 은자림이 덤벼들면 도망칠 자신이 없었으니.

'마력도 거의 없고.'

마력 재생이 없었다면 정신 고갈로 쓰러졌을 터. 덕분에 그나마 견디고 있다. 그러는 사이, 날 눈치챈 페어리 드래곤이 날개를 펄럭였다.

빛가루를 뿌리며 황홀하게 보던 은자림의 시선이 따라간다. 그러더니 날 보고 화들짝 놀라 창을 겨눴다.

'저런 캐릭터였나?'

소설 속에선 얼빠진 면이 부각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놈! 은공을 놔줘라!"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랄.'

은공이란다. 은공.

몬스터인 내게 말을 거는 건 둘째치고. 물끄러미 페어리 드래곤을 봤더니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는 양 갸웃거렸다. 아마 내게 손이 있었다면 이마를 치지 않았을까.

'그래도 덤비진 않네.'

대놓고 똬리를 하품하는 녀석을 보고도 인질이라 생각하는 모양. 정말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이다. 슬쩍 훑어보니 은자림의 복부에 아물어가는 상처가 남아 있었다.

'얘가 치료한 건가?'

통찰로 본 스킬에는 없었지만, 요정용이라는 종족이 가진 힘일지도 모르겠다.

'…….'

물끄러미 보다가 물고 있던 시체를 툭 던졌다. 은자림은 복부를 감싸며 물러났고, 두 바퀴 구른 시신이 바닥에 엎어졌다.

***

"설마?"

시체를 던진 늑대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뒤집어 얼굴을 확인했다.

"이 남자는…!"

아까까지 싸우고 있던 마법사. 언뜻 듣기로 아가일. 아가일이라고 했었지? 알고 있는 이름이다. 퍼플 스퀘어의 후계자이자, 자신을 몰아붙였던 마법사.

세검사와 마법사 여성은 어쩌고 저 몬스터가 이 남자의 시체를 들고 있는 걸까?

"……."

은자림은 경계심을 돋우며 늑대를 노려봤다. 스산한 기운을 흩뿌리는 스컬 울프. 언뜻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 요즘 들어 새벽의 여명이 쫓고 있는 스컬 울프에 대한 이야기를.

'이길 수 있을까?'

페어리 드래곤의 도움으로 상처는 얼추 치료했지만… 창을 쥐던 은자림은 늑대의 빈 눈두덩이― 그 너머에서 타오르는 귀화를 본 순간, 딱딱히 얼어붙고 말았다.

'…….'

창을 쥔 두 손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아마 이백섬 헌터를 죽인 건…'

바로 눈앞의 몬스터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계속 쫓고 있던 마력, 검은 털. 짐승의 발톱 자국. 모든 게 설명이 된다… 긴장이 깊어지는 가운데, 늑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은자림이 두 눈을 크게 떴다.

"―탕아들을 쫓아라."

"……?!"

"아래층. 연구실 뒤. 공간이 있다."

소슬한 음성.

짐승의 울부짖음이 아니라 확실한 언어였다. 살기는 담겨있지 않아도 한기를 동반한 목소리. 물끄러미 지켜보는 시선에 은자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참을 지켜보던 늑대는 유유히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하아아."

깊은숨을 뱉은 은자림이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한심하게도 놈에게 위압감을 느꼈다. 만약 방금 싸웠다면…

'이겼을 거란 생각이 안 들어.'

은자림은 늑대가 사라지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

덜덜 떨리는 손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

[위압(E) Lv.1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위압(E) Lv.1 → 위압(E) Lv.2]

시체를 넘겼으니 뒷 일은 알아서 할 터.

'안 싸워서 다행이다.'

은자림과 싸우는 걸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위압 스킬의 덕을 본 모양이다. 아지트 바깥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소란이 그렇게 일어났는데 당연하지.'

돌풍을 일으키자 갑자기 불어온 강풍에 인파가 갈라졌다. 휘몰아친 바람과 흩날리는 먼지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은신으로 유유히 빠져나왔다.

'끝이야?'

흑린이 입가를 두드리더니 흥미가 가셨다는 듯 모습을 감췄다.

[흑린 스킬이 사라집니다]

제멋대로 왔다가 제멋대로 가는구나.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그럴 거라 예상은 했으니까…

'데릭은?'

데릭 클라크. 놈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후각이 놈의 위치를 찾았고,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흉부를 꿰뚫었을 때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죽은 모양이다.

'…….'

이백섬. 데릭 클라크. 아가일 모레스트. 그리고 사각지대까지 대전에서의 일은 모두 끝을 맺었다.

'예정에는 없었지만.'

오히려 좋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이 메시지를 보냈다.

[멸망 확률 99.78% -> 97.93%]

[1.85%만큼의 업을 획득합니다]

[업(業) 1.97%]

'……?'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다음엔 숨을 멈췄다. 그렇게 뛰어다녀도 죽어라 떨어지지 않던 멸망 확률이 단번에 2% 가까이 내려갔다.

'미친.'

여태 했던 건 다 뭐였던 건가.

하수도의 재앙. 경산의 코발트 광산. 신전에 잠입하려던 구마준. 환계의 던전. 그걸 모두 처리해도 얼마 내려가지 않았는데…

"뀨룩?"

머리 위에 똬리를 튼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꼬리를 잘랐어.'

꼬리인 이백섬을 죽였다. 그 결과로 은자의 숲은 결백해졌고 후에 은자림이 의심받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각지대.'

그 이름을 생각하기만 해도 다시 끓어오를 것 같다. 억지로 속을 가라앉히고 생각했다. 이후 사각지대는 인류의 발목을 잡는 조직 중 하나로 성장한다. 아가일의 아래, '제대로 된 마법사' 수십 명이 탄생하는 미래를 막은 것이다. 좋던 싫든 간에 사람들을 갈아서 마력을 추출한다는 방법이 가능하긴 했으니까.

'이젠 일어나지 않을 일이야.'

원래 죽었을 사람들을 구했다.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중에서 뛰어난 헌터가 나올지도 모른다. 거기에 더해 이런 조직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인류는 경계심을 가질 터.

'분명히.'

이렇게까지 큰 소동이 일어났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번 일은 절대 숨길 수 없다.

'놈들도 움츠러들 거야.'

탕아들은 물론 다른 조직들까지 움츠러들 터. 이번 일은 분명 타격을 줄 거다. …그러고 보니 아지트에 미완성품이 하나도 없던데.

'아가일이 없었던 이유가 그거였나?'

미완성품을 건네주러 갔기 때문에.

그래서 놈이 돌아오는 게 늦었고, 덕분에 아지트를 먼저 처리할 수 있었다?

'얼추 아귀는 맞는데.'

세검사와 여마법사가 함께 있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을지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거 말고는 설명이 안 돼.'

여 마법사의 수준은 아가일에 비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비록 구진하가 있었다 하지만 아가일과 비교하긴 어려웠다. 빈집털이. 아마 놈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각지대를 일망타진한다는 게 계획이었으리라.

'그래. 아가일.'

놈은 마지막까지 패를 숨기고 있었다.

사실 귀화를 생각하면 강욕이 모습을 드러내도 싸워볼 만하겠다고 여겼는데.

'검은 장미.'

설마하니 거기까지 몰리면서 5절 영창을 보류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아가일과의 싸움은 솔직히 말해서 운이었다.

'뜻하지 않은 운.'

흑린이 없었다면 죽는 건 내가 됐을 테고, 모조 엘릭서도 도로 뺏겼을 거다. 당연히 정해진 결말대로 인류는 멸망했을 테고.

'…그래도.'

분했다.

이기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기대고 말았다. 환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시스템과 페어리 드래곤의 도움을 받아서였다. 검은 장미를 불사른 건 내가 아니라 흑린이었다. 누군가는 행운이라 말하겠지만, 그 뜻하지 않은 운이 분했다. 마지막에 아가일과 맨몸으로 싸웠던 것도. 흑린의 힘을 빌리지 않았던 것도. 흑린이 바보라고 비웃은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분해.'

기댈 수밖에 없었다는 건 이해하고 있다. 적어도 검은 장미만큼은 내가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 불가항력이란 건 알겠다.

'…….'

알고 있다. 알고는 있는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맹세는 지켰다.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아가일의 숨통를 끊은 감촉은 아직도 생생히 느껴진다. 그래도 비참함이 남았다. 뜻하지 않은 행운에 도움을 받고 말았다.

'그래. 이번에는 그랬어.'

그래도.

'다음번에는.'

그런 행운에 의지하지 않을 만큼 강해지겠다. 그런 열망이 가슴 속에 강하게 아로새겨졌다.

'아직 남은 재앙은 산더미만큼 있어.'

이단의 탕아들. 네버랜드 사태. 자색의 흑호. 바다의 재앙…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손가락으로 세기 힘들 정도였다. 하물며 내가 모르는 재앙도 있으리라. 그것들을 막기 위해서는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모자랄 거다. 그래서 인류의 경계심을 돋울 필요가 있었다.

'1.85%.'

다시 생각해보니 적당한 수치였다. 사각지대의 괴멸과 아가일의 죽음. 거기에 더해 놈들에게 빼앗은 모조 엘릭서. 이후, 모조 엘릭서를 누가 마시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잘된 일이야.'

최고의 결과였다.

모르긴 몰라도 아가일을 처단한 것보다, 사각지대를 무너뜨린 것보다도 모조 엘릭서를 확보한 것이 멸망 확률을 떨어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으리라. 상념에 빠져 걷고 있던 와중, 어느샌가 도시를 빠져나와 대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치 참.'

끝내주네.

멍하니 경치를 보고 있었더니 페어리 드래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얘는 왜 왔대?'

위험할까 봐 혼자 왔는데 기어코 따라왔다. 설마 요정도 따라온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다.

"뀨루룩~"

꼬리를 늘어뜨리고 귀를 간질이는 녀석. 그래. 이제야 다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아찔했던 대전의 밤이 지나가고, 마침내 아침이 밝았다.

[진화 루트를 공개합니다]

***

"일어나세요."

강한 마력이 세검사를 깨웠다.

멍하니 있던 그는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털어내기 위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다만 확실한 건, 아가일의 마법에 당했다는 것. 왜 깨닫지 못했던 걸까? 환상 속에서 벌어진 일들은 돌이켜보면 위화감투성이였는데.

"……."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구진하는 자신을 깨운 은자림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아가일은 쓰러뜨린 겁니까?"

내뱉고 보니 그것보다 '어째서 아직 살아있나.'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그리고 그 의문에 답하듯 은자림이 창을 들어 가리켰다.

"……!"

아가일의 시체. 그리고 아지트 곳곳을 헌터들이 수색하고 있었다.

"죽었군요."

믿기 힘들지만, 아가일을 쓰러뜨린 모양이었다. 당연한 의문에 구진하가 은자림을 쳐다봤다.

"당신이 쓰러뜨린 겁니까?"

"아뇨. 몬스터… 스컬 울프였어요."

"스컬 울프? 알파, 알파가 말입니까?"

구진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환영에 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떠오른 기억은 분명… 아가일이 보류하고 있던 4절 영창을 쏘아낸 것이었다.

"알파도 당했을 텐데…"

설마 자력으로 빠져나왔다는 말인가.

환영 자체가 통하지 않는 키메라라면 모를까 4절 영창의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게 아니면 마법을 피했던 걸까?

'…….'

놈에 대한 것은 모든 게 의문이었다.

"일단… 깨워줘서 고맙습니다. 혹시 제가 얼마나 오래 쓰러져 있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은자림은 말하는 대신 옆으로 비켜섰다. 무너진 천장 사이로 밝아온 햇살. 얼마 되지 않았단 뜻인데… 환상 속에서 수십 년을 지낸 것 같은 괴리감이 들었다.

'4절 영창.'

5절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넬라와 자신이 한 번에 당했을 정도다. 아가일의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설마하니 마법사와 싸우면서 밀릴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

영창은 물론 수인을 맺는 것까지 그가 알고 있는 마법사의 상식을 뛰어넘었다. 그런데 그런 아가일을 알파가 쓰러뜨렸다고?

"잠깐. 설마 그걸 알고 있다는 건."

은자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 찾아왔어요. 시체를 던져주며 말하더군요."

"말… 말을 했다는 겁니까?"

강태호가 들었다고는 했지만 은자림까지 이렇게 말하니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놈에겐 지성이 있다. 그것도 단순히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구조를 이해하고 언어를 깨우칠 수 있을 만큼의 지능이. 구진하의 물음에 은자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탕아들을 쫓으라고 했어요."

은자림은 헌터들에게 구조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아래층 연구실 뒤에 공간이 있다고 알려줬어요."

"……."

"이제 제가 물을 차례군요. 대답하세요. 세검사. 당신이 쫓고 있는 그 알파라는 늑대가 도대체 뭔지."

은자림은 가지고 있는 창의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어째서 은공, 아니 페어리 드래곤이 놈에게 복종하는지를."

복종… 구진하는 뒤늦게 떠올렸다.

'그래. 요정용이 알파를 돕고 있었지.'

요정용. 이현 공원의 던전. 그 자리에 떨어져 있던 비늘. 역시 착각이 아닌 모양이다. 은자림은 '복종'이라고 말했다. 알파가 요정용을 강압적으로 억누르고 있다는 말일까? 생각을 정리하며 구진하는 은자림의 물음에 답했다.

"모릅니다. 우리도 지리산에서부터 쫓고 있었을 뿐이니.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뭘 묻는다는 거죠?"

"당신이 비록 고원 소속은 아니라지만 창선의 제자라는 건 사실입니다."

담담하게 끄덕이는 은자림의 눈빛을 보며 구진하는 속으로 갈등했다.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기회. 그녀를 떠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왕 내뱉은 말에 그는 마음을 정했다.

"알파에 대한 정보를 넘긴 건 바로 당신의 스승인 창선이 이끄는 고원입니다."

"고원이요?"

의아하다는 듯한 반응. 표정을 살펴도 알고 있던 기색은 아니었다.

"고원. 그들이 익명으로 넘긴 정보. 알파를 쫓은 건 거기서부터였죠."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됐다.

고원의 정보를 시작으로, 지리산에서 알파를 쫓았다. 팀원이었던 이은하가 습격당했고… 놈은 도주했다. 어째서인지 죽이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그분이 거기 있었던 것부터가 의문이다.'

법계사 일주문에서 만났던 소녀.

물론 알고 있다. 스퀘어의 마스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

하지만 대체 왜 그녀가 거기 있었을까?

질병 그리고 역병을 막고 있어야 했을 그녀는 일주문에서 있었던 일이 '질병을 막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은하가 법계사에서 습격당한 일. 설마 그게 스퀘어 마스터를 움직이게 할 만한 일이었다고? 그랬다면 왜 구하지 않고 막아섰던 거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가?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모르겠다. 진실을 알고 있는 건 그녀뿐이리라. 생각을 정리하던 그는 은자림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모르겠어요. 스승님은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어요. 설마 지금 고원을 의심하는 건가요?"

질문했다는 건 자신의 의도도 드러나는 법. 당연한 리스크였다. 은자림의 되물음에 구진하는 긍정했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고원에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스승님께서 그럴 이유가!"

"모르죠. 일의 전말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으니까. 다만, 한낱 특수종 워그에 불과했던 알파가 고작 한 달 남짓한 사이에 저렇게 성장했습니다."

"……."

"앞으로의 일을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알파가 종을 뛰어넘지 못한다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또다시 자색의 흑호 같은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건…"

대립하는 둘. 구진하는 착각하지 말라며 강하게 일깨우듯 말했다.

"알파는 여전히 살아있고, 탕아들이라는 의문의 조직이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

"만약 고원이 정말로 이 일에 연루된 거라면… 여명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고개를 돌린 그는 아가일의 시체 앞에서 쪼그려 앉은 아넬라를 보았다.

"……."

답답한 심정에 품속에서 담배를 꺼냈다.

분명 아침이 찾아왔는데도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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