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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몬스터가 되었다-102화 (102/407)

〈 102화 〉 #47 공동 전선

"……?"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끝이 다가오지 않는다… 어째서? 의아함에 고개를 들었을 땐, 어느샌가 스산한 검은 안개가 밀림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앞을 지키듯, 당당히 선 늑대 한 마리―

"알파…?"

튀어나온 말에 이은하는 자신의 입을 가렸다. 하지만 들려버렸는지 늑대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은인의 원수. 그리고 나를 죽이려 했던 늑대, 알파. 분명 죽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 붉은 눈과 마주하자 얼어붙고 말았다. 내면 깊은 곳, 영혼까지 파고드는 듯한 무저갱처럼 깊은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을 보았을 때, 부르르 몸이 떨려왔다.

[이, 이 버러지가…!]

영창하던 목소리가 늑대를 보곤 노한 듯 소리쳤다. 하지만 알파를 경계하는 듯 섣불리 다가오진 못한다. 무엇보다 들어 올렸던 괴인의 팔이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처럼 덜렁거리고 있었다.

"……!"

괴인으로부터 일어난 검은 마력이 해일처럼 밀려왔고, 이은하의 눈에는 그것이 파도치는 밤바다처럼 보였다. 모든 것을 침묵시킬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으나, 어쩐지… 평온함을 느꼈다.

'왜?'

…모르겠다. 어째서?

[Fulgere intermitente și fulgere!]

몰려오는 파도, 그리고 검은 섬전을 보았을 때, 질끈 눈을 감고 말았다.

"……!"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마력을 두른 늑대의 입이 타오르고 있을 뿐. 직관적으로 날아오던 번개를 알파가 씹어 삼켰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왜……?"

힐끔 고개 돌린 늑대의 눈에 담긴 작은 안도를 읽었을 때,

두근― 두근― 두근두근――!

―심장이 세차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

감성이, 가슴이 느낀 것을 이성이 애써 부정했다.

'그럴 리가…'

―그럴 리 없다고. 거짓말이라고.

왜냐면 너는, 너는 거기서 죽었잖아……?

'네가… 아니잖아?'

마른 침을 삼킨 이은하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며 손을 뻗다가, 다시 움츠렸다. 더없이 빨라진 맥박. 가슴이 다시 한번 소리치자, 머릿속이 도화지처럼 새하얘졌다.

"……!"

―격이 다르지만, 결이 같은 마력.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성질이 흡사한, 그런 마력. 그걸 눈앞에서 보고도 모를 정도로 아둔하진 않다. 복잡한 머리가 상념을 이어나가고, 서서히 엉킨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내 은인.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다시 헌터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리고, 원수……?

―나는 여태 널 죽이기 위해……?

'왜, 왜?'

머리가 뒤죽박죽이었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두근대는 심장이, 하얗게 변한 머리가 생각을 이어지게 두지 않았다. 혼란과 모순 속에서 어지러워하던 그녀에게,

"……가라."

―늑대는 조용히 선고했다.

해일 같은 마력과 무수한 마법을 막아 등지면서, 오롯이 선 늑대.

그 목소리에 이은하는 저도 모르게 뺨을 훔쳤고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

외마디 소리가 흘러나왔다.

수많은 가정이 떠올랐다가, 계속해서 사라졌다. 더듬더듬, 풀린 실타래는 새로운 진실을 짜내기 시작했다.

"……!"

직감적으로 또 억지로라도 끼워 맞춰 마침내 남은 답이 하나가 되자, 그녀의 심장이 여태까지보다 거세게 고동쳤다.

―모든 게 내 착각이었다면.

그날, 법계사에서 살아남은 게 워그가 아니라 너였던 거라면… 만약,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진실이 사실은 전부 가짜였고 무언가 다른 진실이 있었던 거라면…?

"나는……"

여태 무엇을 해왔던 걸까? 은혜를 갚기는커녕……!

쿵―! 쿵―! 쿠웅―!

괴인의 발소리가 커지자 이젠 시간이 없다는 듯, 앞을 지키고 선 늑대가 자세를 낮추고 으르렁거렸다.

"……!"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원수가 아니라, 은인이었다. 나를 구해줬던… 그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계속된 착각 속에서 마침내 진실을 찾자, 마음 한 켠에 응어리진 무언가가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은하가 떠올린 것은 자신이 한심하다는 거였다. 이번에도, 이번에도 나는 지켜질 수밖에 없는 걸까……. 그런 심정과는 달리 상황은 그녀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움직이라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고.

…붉은 눈빛이 다시 한번 그녀를 재촉했다.

붉어진 눈시울. 소매로 흐르는 눈물을 훔친 이은하가 입술을 달싹였다.

"……죽지 마."

그렇게 팀장님을 업었을 때, 어디선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어딜 가려는 거냐! 한 마리도 놓치지 않는다! 이 버러지들아―!]

산통을 깨듯, 격노하는 목소리. 음성은 하나가 아니다. 수도 없이 영창하는 마법― 그것들이 셀 수도 없이 떨어졌으나 단 하나도, 그녀를 둘러싼 검은 장막을 뚫지 못했다.

"……!"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이를 악문 이은하는 공략대가 있는 곳까지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

'이걸로 됐어.'

―이은하와 구진하는 구했다. 다시 흑무를 불러일으키는 사이, 은신과 기습으로 보았던 이득이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반쯤 끊어졌던 어깨를 빙빙 돌리며 저거노트는 자신이 건재함을 확인하곤 크게 울부짖었다.

"――――――!"

잠깐 고개를 들어 2구획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다가 아까 통찰했던 놈의 스테이터스를 떠올렸다.

[저거노트(Juggarnaut)]

[신장 9.9m] [체중 6.4t]

[힘 712] [민첩 554] [체력 698]

[보유 스킬]

[거짓불멸(B)] [고속재생(B)] [질긴 피부(E)]

―저거노트. 막을 수 없는 힘.

미완성품의 살덩이를 엮고, 잇고, 찢고, 묶어서 억지로 만들어 낸 마도와 연금술의 산물인 최악의 키메라. 비록 마력은 없다지만, 그 스테이터스와 스킬 자체가 절망 그 자체인 불사신에 가깝다.

놈을 죽이기 위해선 대마법 정도 되는 화력이 필요불가결이지만, 이젠 그것도 불가능하다. 뭐니 뭐니 해도 놈의 안에 있는 것은 대마법사였던 것의 정수, 본체였으니까. 진짜 스퀘어 마스터를 불러오는 게 아니라면, 아무리 대단하고 뛰어난 마법을 준비하더라도 소용없다.

무한에 가깝게 재생하는 불사의 괴물.

극한까지 마도의 길을 갈고 닦은 대마법사.

그들 각자는 쓰러뜨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겠지만, 함께 하는 둘은 무적에 가깝다.

'―그러니까.'

먼저 둘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저거노트의 몸 어딘가에 숨겨진 침묵하는 입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흉부 깊숙이 심장 어림에 있다고 했었지.'

페리가 그랬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부정한 것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달려드는 두 괴물을 보며 늑대는 망설임 없이 뛰어올랐다.

***

무한에 가까운 검은 마력은 여태까지와는 격이 다르다. 여기에 있는 건 본체, 진짜였으니까. 매개체를 통해 마력을 전송받아 사용하는 꼭두각시와는 격이 다르다.

―마력을 먹어 치우는 흑무가 아니었더라면 상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괴물.

뛰어오른 늑대를 쳐내려는 저거노트의 손이 단번에 낚아채 으스러뜨렸지만, 아무것도 없다. 멍한 눈으로 손바닥을 바라보던 저거노트의 뒤집힌 손등을 타고 늑대가 거꾸로 달리고 있었다.

[이, 쓰레기가――!]

진심을 발하는 침묵하는 입으로부터 마력이 요동쳤다. 안개를 두른 늑대의 발길을 따라 불길이 타오른다. 검은 마력이 파도치며― 여태까지와는 달리 안개를 밀어내고 있었다.

"……!"

성질이 변한 게 아니다.

흑무는 여전히 마력을 압도하고 잡아먹는다. 상성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출력이었다. 안개를 밀어낼 만큼 무지막지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을 뿐. 그에 늑대는 바람을 둘렀다.

거센 돌풍이 불어오자 쉽지는 않았지만, 안개는 마력에 밀리지 않게 됐다. 늑대를 따라 귀화가 일어나고 저거노트의 팔을 시꺼멓게 물들이고 어깨까지 기어올랐을 때, 저거노트의 팔이 늑대를 덮쳤다.

다만, 이번에도 그림자 속으로 숨어든 늑대를 잡을 순 없었다. 저거노트가 늑대를 잡기 위해 손을 뻗으면 거기엔 그림자가 생겨난다는 뜻이었으니.

어지간한 지형이라면 모를까, 저거노트의 불사에 가까운 몸은 그 자신의 힘으로도 쉽게 부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저거노트의 강함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꼴이다. 이를 갈던 마법사가 주문을 영창했고,

[Fulger în formă de balaur―!]

그에 뇌전의 용이 날갯짓했다. 그림자로 숨어들어봤자 마력을 이용한 공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탄력으로 빠져나와 뛰어오른 늑대가 단번에 뇌전의 용을 지나쳐 발판을 밟아 뛰어올랐다.

[―Inversare]

반전의 주문. 용이 선회해 순식간에 간격을 좁혔으나, 옅어지기 시작했다. 3절의 주문조차도 검은 안개 속에서 오래 견디기는 힘들다. 결국 늑대에게 닿기 직전, 돌풍에 갈가리 찢겨 사라지고 말았다.

발판에 발판을 밟으며, 늑대는 저거노트의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A클래스 헌터 이상의 민첩을 가진 괴물이나, 단순하고 변화 없는 공격은 늑대에게 있어 느리고 둔중하게 보일 뿐이다.

―내려서기 직전, 저거노트의 커다란 손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덮어졌다. 늑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촉수를 뻗었고 손가락 사이에 단단히 고정된 촉수를 당겼다.

와이어를 타듯, 현란한 움직임. 늑대의 공중전은 비천망과의 싸움에서 이미 경지에 달했다. 순식간에 저거노트의 머리를 지나쳤지만, 애초에 늑대가 노리고 있던 건 머리가 아니었다.

마력을 안개가 뚫어내고 그 뒤에 짓쳐들어오는 마법― 이것만큼은 늑대도 보지 못했다. 섬전이 다가오자, 늑대는 턱을 벌려 번개를 씹어 삼켰다.

악식은 마력과 마법조차 먹어 치운다. 완화가 있다지만 데미지가 없을 순 없다. 입안에서 연기가 타올라 흩날렸고 늑대는 심장 어림이 있는 저거노트의 배후에서 발판을 만들어 촉수를 뻗었다.

그러나 역시 무리였다. 귀화가 타오르긴 했으나, 저거노트의 재생과 체력은 그 데미지를 우습다는 듯 무시했다.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하다.

피하고 싸울 수는 있었지만, 스테이터스 자체가 부족한 늑대에게 저거노트를 뚫을 방법은 없다.

결국 다시 거리를 뒀을 때, 침묵하는 입이 비웃었다. 거보라는 듯한 조소에도 늑대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저거노트를 따돌리고 침묵하는 입의 마법을 피할 능력은 있었지만, 힘이 부족하다. 늑대는 그걸 담담히 인정했다.

그렇다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오면 될 뿐이니까.

***

공략대… 아니, 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남았던 결사대는 세검사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가 벌어준 시간 동안 정비해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뀨우우웃…!"

그러는 사이, 갑자기 나타난 요정용을 보고 헌터들이 당황했다. 반사적으로 무기를 꺼내든 자도 있었지만, 은자림의 손이 그들을 제지했다.

―후발대장. 지금 그녀보다 지위와 권위가 높은 이는 결사대에 남아있지 않다.

"…은공?"

고개를 갸웃거리는 은자림. 헌터들의 머리 위를 빙빙 날아다니자, 빛가루가 뿌려졌다. 아연한 듯 보고 있던 헌터들은 놀랍게도 빛이 닿는 족족 상처가 회복되어 감을 느끼고 동그랗게 눈을 떴다.

"사, 상처가…!"

아물어간다. 심지어 어지간한 회복 스킬보다도 우위에 있다. 대전의 밤에서 페리에게 도움받았던 은자림은 원래 그런 효과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리치, 생전과 사후 평생을 마도에 매진했던 마법사가 만들어낸 매개체. 부정하디 부정한 그것을 먹은 어린 용이 단번에 몇 단계나 성장한 것이다.

용― 원종(原種)과는 다르지만, 틀림없는 용.

환수 중의 환수가 가지기에 마땅한 힘. 모든 상처를 회복한 건 아니었으나, 원기까지 북돋는 힘에 헌터들은 눈을 빛냈다.

이거라면, 다시 싸울 수 있다…!

"―결사대 전원, 이동합니다!"

은자림의 호령에 따라 지쳐 쓰러졌던 헌터들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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