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42화 (42/59)

〈 42화 〉 외전) 누나와 동생의 이야기. 피폐 주의!

* * *

*주의*

초반부 한정으로 개개인에 따라 약피폐 이상의 피폐함을 느끼실 수 있으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본편에 큰 영향이 있는 내용은 아니니, 만약 피폐함을 버티시지 못할 것 같으면 13페이지 이후의 후반 부분만 읽거나, 아예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주인공 한겨울의 누나인 한봄의 시점입니다.

­­­­­­­­­­­­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사이비 종교의 교인들, 그 중에서도 포교를 하는 인간들은 교활하게 평범한 사람을 끌여들인다. 흔히 말하는 명상 교실이나 심리치료 단체라는 팻말을 내걸고 말이다.

들어오는 수입을 모조리 ‘신의 현신’이라고 믿는 주교에게 바치고, 매일매일을 괴상한 음율의 기도문을 외우면서 살아왔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부모님께, 교주님에게, 같은 신도분들께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우리가 다니는 교회만이 이런 게 아니라, 전국의 다른 모든 교회들도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고 귀에서 피가 나도록 들었었다.

그랬던 내가 우리가 믿고 있는 종교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게 된 사건은, 아주 간단하고 사소한 변화에서 기인되었다.

­언니! 오늘도 같이 놀자!

­미안, 오늘은 좀 피곤해서...

평소에 잘만 웃으면서 놀아 주었던 언니들이 피곤한 얼굴을 하며 내 손을 밀어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듯, 얼굴에 새카만 음영이 드리워 있었다. 대충 봐도 피곤한 것 같은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짐작이 가는 바가 없었다. 최근 들어 바쁜 일이 많았겠거니,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점차 큰언니들과 비슷한, 짙은 근심이 드리운 얼굴을 한 언니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의심은 커져만 갔다.

‘나만 빼고 밤에 모여서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나?’

처음엔 단순하고도 순진한 의심이었다. 마침 시기가 내 생일과 거의 맞아떨어져, 나만을 위한 깜짝 생일 파티를 기대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몇 년동안 꾸준히 일어나고, 결국 내 또래 아이들까지 언니들과 똑 닮은 얼굴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성전이라는 팻말을 내건 교주님의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방을 나서는 언니의 뒤를 몰래 따라붙었다.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따라간 언니의 발걸음은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장소 앞에서 멈춰섰다.

­왔니?

­네.

­들어오거라.

간단한 대화를 끝내고, 언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머지않아, 방문 앞에 귀를 대고 있던 내게 충격적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읏, 흐읏... 안에는, 제발...!

어린 나이였지만, 두꺼운 나무 문 바깥으로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애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옷이 풀어헤쳐진 맏언니가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방 밖으로 나왔다.

언제나 쾌활하고 긍정적이었던 언니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찰랑이던 머리칼은 반쯤 하얗게 굳어 있었다.

교주의 방문이 완전히 닫힌 것을 확인하자마자 소리를 죽인 채로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를 보며,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아, 아.”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경찰에 달려가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늘어놓았고, 경찰들은 내 말을 믿지는 않는 모양새였지만 일단 출동했다 다행히도 무능한 편은 아니었던 경찰들은 그 즉시 성행위에 사용된 콘돔 등등의명백한 증거품들을 입수했으며, 교주를 구속했다.

그러나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아서.'라는아주 간단하고도 당연한 이유 덕분이었다.

실제 범죄 사례 역시, 체내에성폭력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있던 맏언니를 제외하곤 입증할 수 없었다. 또다른피해자인 다른 언니들이 언급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형식적인 맏언니와 교주의 합의 끝에, 교주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심증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물증은 없었다. 피해자들은 입을 다물었고, 피해자들이 스스로 증거품을 숨겨 주었으며, 피해자들이 오히려 가해자인 주교를 옹호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법정에서, 증인으로서 나설 예정이었던 나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주교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쪽을 바라보길 기다렸는지, 타이밍 좋게 주교도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입꼬리가 살풋 올라갔다. 마치 내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전부 알고 있다는 듯한 의미심장한 웃음이었다.

그날 나는, 증인으로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법정에서 물러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벌였던 사건 이후로 주교가 ‘그 방’으로 나를 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한참이나 흘러갔다.

­­­­­­­­­­­­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을 바치고 나서야,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고는 한다.

나같은 경우엔, 그게 어느 날 뿔이 달린 여자로 바뀌어 버린 남동생이었다.

­단순한 고민상담이란다. 겨울 신도, 이젠 여신도가 되어 버린 그녀를 계몽시키기 위한 일이지. 예진 신도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제가 ‘걱정하는 일’ 말씀이시죠...?

내 의심스러움이 가득 담긴 눈초리에 주교는 허허로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걱정하는 일’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지는 뻔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잖나? 그리고, 내가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예진 신도는 아주 잘 알고 있겠지.

자칭 신으로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계명을 착실히 따르는 주교였기에,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진은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이 남자에게 반항해 봐야 돌아오는 건 가족들의 차가운 반응이었으니.

나는 남동생을 씻기며 바뀐 동생의 몸을 감상했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와 오팔처럼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마치 그림같은 비율과 몸매까지.

하나같이 상상 속에서 나왔다고 생각해봐도 좋은 미모였지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머리 위의 뿔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몸, 그리고 뿔이 합쳐지니 마치 신화 속 여인과도 같은 신비함을 풍겼지만­ 눈앞의 작은 소녀의 누나, 한봄은 그녀가 자신의 남동생이란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외모는 바뀌었지만, 그 특유의 말투와 자신감 없는 시선은 여전했다.

‘완전 귀엽게 변했네...’

이런 귀여운 동생이, 여자로 변해서 앞으로 겪을지도 모르는 끔찍한 일을 떠올리니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물론, 내게 말했던 일이 있으니 당장은 그런 쪽으로 건드릴 일은 없겠지만...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는 결국 모르는 것이다.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이렇게 매력적이게 생겼는데, 과연 그 미친 변태 주교가 정욕을 참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자세가 불편한지 움직이려는 동생을 붙잡았다.

­씻겨 줄 테니까 얌전히 있으렴.

­...읏.

­간지럽거나 아프다면 바로 말해.

그렇게 말한 뒤, 나는 털 하나 없이 맨들맨들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피부를 씻어내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어린 여동생들을 씻겨 준 경험 덕분에, 샤워는 효율적이고 빠른 시간에 끝낼 수 있었다.

­끝났어.

샤워를 끝낸 후 머리칼을 말리고, 간단한 화장을 했다. 화장은 단순히 내가 보고 싶어서 해본 것이지만, 너무나 동생과 잘 어울려서 차마 지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동생 역시, 자신의 모습에 다시금 놀란 건지 거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순진한 아이가 주교에게 물들지도 모른다니, 나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할게, 겨울아.

­응?

­미안해.

동생은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내게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사과였다.

이런 종교에서 널 빼낼 수 있는 누나가 아니라서 미안해.

잘못되었단 걸 알고서도 도망치는 못난 누나라 미안해.

이런 무력한 누나라서 미안해.

그렇게 사과 한 마디만을 남긴 채, 나와 내 가족들은 우리 집을 떠났다.

동생의 회개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바라면서.

그러나 알 수 없는 불안함에, 나는 ‘지갑을 두고 왔다’는 핑계로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의 새된 비명소리가 집 안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집앞의 화단에서 벽돌 하나를 꺼내들었고­

­­­­­­­

하급 마법: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간단한 손짓에 마나가 사출되고, 마나는 뇌전의 형상을 이뤄 목표물들에게 연쇄적으로 작렬했다.

“끄아악!”

시끄럽기 짝이 없는 비명과 함께 널브러진 경비들을 뒤로 하고, 겨울은 예진이와 함께 경기장에 올라서 있던 세 사람에게 물었다.

“이 건물, 맞지?”

“네, 맞습니다! 맞아요! 저쪽 지하실에 계실 겁니다!”

겨울은 거짓말이라면 각오해야 할 것이란 엄포를 남기며 그들의 안내를 따라 건물로 들어섰다.

“...누나.”

건물의 지하실, 으슥한 방의 침대 위에서 겨울은 곤히 잠들어 있는 누나를 구해낼 수 있었다.

영양 상태도 정상이고, 딱히 구타를 당하거나 약물에 당한 흔적은 없어 보였다. 그냥 곤히 잠들어 있는 상태란 소리였다.

“...운이 좋았네, 너희들.”

감히 손이라도 댄 흔적이 있으면 누나의 납치와 관련된 유저들은 직접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지만­ 그들 입장에선 다행히게도, 경찰과 판사에게 신원을 넘겨도 무방할 것 같았다.

“알아서 자수하거나 해. 만약 하루 내로 경찰에게 자수하지 않으면... 알지?”

겨울은 손목을 목에 가까이 둔 채로 까닥이며 목이 잘린다는 제스쳐를 취해 보였다.

“...”

하나같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는 꼴이 보기 좋았다. 결국 자업자득이지 뭐.

더 이상 저들의 얼빠진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겨울아?”

“아, 누나. 일어났어?”

“...응. 분명 방금 전까진 방 안이었는데, 이젠 네 품 안이네. 어떻게 된 거야?”

“설명하자면 긴데... 저기 얼음 보여?”

겨울은 축구 경기장을 가득 채우다 못해 넘쳐흐른 거대한 빙하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나를 납치한 나쁜 놈들은, 내가 전부 얼려 버렸어. 죽든 말든 알아서 하라지.”

누나를 건드린 이들에 대한 은은한 분노가 담긴 말에, 한봄은 웃으며 동생을 쓰다듬었다.

“...장하네. 고마워, 겨울아.”

“...뭐래.”

툴툴대면서도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십수 년 전의 어린 시절의 동생과 똑 닮았다.

기특한 동생의 품 안에 안긴 채로, 한봄은 이젠 까마득하게 보이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사람과 자동차가 개미 한 마리 크기로 보이는 높은 높이였지만, 동생의 품 안에 안겨 있으니 딱히 무섭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동생은 나를 싫어한다고 여겼다.

평생 트라우마가 남을 만한 일을 내 탓에 겪게 되었으니,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못난 누나에게, 동생은 종종 안부를 물어 오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누나가 곤란에 처한 순간에도­

옛날 이야기의 영웅들처럼 등장해서, 나쁜 누나를 무서운 악당들에게서 구해 주었다.

안심이 되기도 하고, 굉장히 대견해 보여서, 언제나 작아 보였던 동생이 이젠 거대하게 보여서 나도 모르게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누나... 괜찮아요?”

“으, 으음?”

“...울고 계셔서요. 역시 그 [헬반도]놈들 탓이죠? 얼려 버리는게 아니라, 지옥불에 던져 버렸어야­”

“아냐, 정말로 괜찮아! 그냥, 어느새 이렇게 많이 자랐구나 싶어서...”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울지 마요.”

누나가 울면 자기도 슬프다며, 동생은 주머니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섬세한 손길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눈물을 닦아 주는 얼굴이 어째선지 조금 멋있어 보였다.

“얼굴도 조금 빨간 것 같은데, 혹시 열이 있다거나...?”

“아니야!”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