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26화 (26/241)

26화. 호주 오픈

6%의 시청률로 시작한 SBC의 테니스 중계.

해설자들은 중계석에 앉아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경기 초반부터 지혁이 열세에 처했기 때문이다.

원칙상으로 중계를 편파적으로 하면 안 되지만 자국의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는 만큼 그게 지켜질 리가 없었다.

애초에 PD나 시청자들도 그런 걸 원하지 않았고 말이다.

쾅!!

번개처럼 떨어지는 마린 칠리치의 서브.

자세를 낮추고 있던 지혁은 빠르게 움직여서 라켓을 내밀었다.

퉁!

그러자 간신히 라켓에 맞춘 탓인지 공은 붕 떠서 날아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상대하는 입장에서 타구의 속도가 느리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게 늘어난다.

샷의 종류는 물론이고 코스까지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쿵!

곧이어 지혁의 옆으로 공이 빠르게 지나치면서 바운드 소리가 났다.

어느새 네트 앞으로 달려온 칠리치가 발리로 다운 더 라인을 성공시킨 것이다.

[칠리치가 서브 앤 발리로 다시 한 번 득점을 했습니다.]

[이지혁 선수가 고속 서브에 상당히 고전을 하네요. 뭐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습니다.]

[박 해설님은 오늘 경기가 이렇게 흘러갈 줄 예상하고 있었습니까?]

[네. 저뿐만 아니라 국내 테니스 전문가들은 이번 경기가 힘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지혁 선수는 프로에 데뷔한지 1년도 되지 않았잖습니까. 그동안 출전한 대회들도 아시아 주변에서만 치렀고 말이죠. 저런 정상급 서브에 대한 경험이 없을 겁니다.]

지혁은 1세트 후반까지 브레이크를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박해설이 말한 것처럼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프로 활동을 한 게 몇 년인데 그 시간 동안 고속 서브를 경험해 보지 못했겠는가.

오늘 지혁이 고전하고 있는 건 순전히 칠리치의 컨디션이 말도 안 되게 좋았기 때문이다.

추측이지만 만약 칠리치가 오늘 같은 실력을 계속 발휘할 수 있다면 16강의 델 포트로와 8강의 앤디 로딕에게도 쉽게 질 것 같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지혁은 경기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자 서있는 위치에서 두 발자국 물러났다.

조금이라도 서브를 더 오래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분명 이렇게 하면 슬라이스 서브에 취약해지고 리턴의 위력도 줄어들어서 주도권을 뺏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라도 쓰지 않으면 도저히 브레이크를 따낼 자신이 없었다.

쾅!!

다시 시작된 칠리치의 서비스 게임.

코트 뒤로 물러난 효과가 있었는지 지혁은 이전보다 수월하게 리턴을 해낼 수 있었다.

대처법이 먹혀 들어서 에이스를 당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 든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이나 실책 없이 리턴을 해내자 칠리치는 곧바로 플레이에 변칙을 주기 시작했다.

플랫 서브를 줄이고 슬라이스 서브와 발리의 비중을 늘린 것이다.

퉁! 그 덕분에 지혁은 코트를 미친 듯이 뛰어다녀야 했지만 그래도 스코어 득실을 따져보면 확실하게 이 방법이 더 괜찮은 것 같았다.

[음? 갑자기 이지혁 선수의 리턴 성공률이 올라간 거 같은데요? 아직 1세트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칠리치의 서브에 적응을 한 걸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지혁 선수가 결국 고육책을 썼네요.]

[고육책이요?]

[그렇습니다. 지금 이지혁 선수가 위치를 보세요. 경기 초반보다 두 발자국 정도 뒤로 물러났죠?]

박 해설이 지혁의 리시브 위치를 지적하자 중계 화면에서 비교 영상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확실히 베이스 라인에서 더 멀어졌네요. 그런데 이게 불리한 일인가요?]

[그렇죠. 괜히 선수들이 베이스라인 가까이 서는 게 아닙니다. 당장은 괜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저렇게 경기를 하면 체력이 빠르게 고갈 될 겁니다. 지금 이지혁 선수의 활동량을 보세요.]

[확실히 평소보다 많이 뛰는 것 같습니다만.]

[칠리치의 서브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더 많이 뛰는 방법을 사용해서 그렇습니다. 기술대신 체력으로 때우고 있는 거죠. 이틀 전 바브린카를 상대하면서 상당히 무리를 했는데 저 방법을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타다다닷!

지혁은 왼쪽 코트로 날아오는 스트로크를 받아치기위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흐읍!”

탕! 양손 백핸드에 실리는 묵직한 무게감.

잠시 후 플랫 스트로크가 레이저처럼 쭉 뻗어나갔다.

[피프틴 서티.]

“허억··· 허억···,”

칠리치는 지혁의 백핸드에 실점을 했지만 동요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서브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는 만큼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러브 포티 상황에서도 긴장하지 않는데 겨우 이 정도에 멘탈이 흔들릴 이유가 없다.

[세트 칠리치 6-3.]

그 차분한 마음가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칠리치는 서비스 게임을 지켜내면서 1세트를 가져갔다.

[이지혁 선수, 1세트를 아쉽게 내주고 말았습니다. 경기 초반에 브레이크를 당한 게 컸어요.]

[그래도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아있으니 승산은 충분합니다. 2세트부터 침착하게 대응하면 돼요.]

‘······바브린카보다 더 나은 거 같은데?’

1세트를 마친 지혁은 볼키즈에게 수건을 건네받으며 마린 칠리치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해봤다.

물론 3~4년 후에 그랜드 슬램에서 우승하는 전성기의 바브린카에게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틀 전에 상대한 2010년의 바브린카보다는 확실히 실력이 더 뛰어난 것 같았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리.]

다시 시작하는 2세트.

이번에 서브권을 가진 건 지혁이었다.

“흐읍!”

아치 형태로 휘어진 허리가 회전하자 라켓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탕!!

그리고 198km의 강서브가 T존에 정확하게 내려 꽂혔다.

[피프틴 러브.]

이틀 전에 있던 경기에서 체력을 많이 소모해서 그런지 벌써 서브 속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플의 영향으로 그때보다 서브의 숙련도가 늘어서 인지 위력은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아마 대부분의 관중들도 전광판을 보지 않으면 서브 속도가 낮아진 것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이지혁 선수의 에이스! T존을 노린 정교한 서브였습니다.]

[역시 컨트롤이 좋으니까 속도가 빠르지 않아도 위력적이네요. 칠리치도 전혀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팽팽하게 흘러가는 경기.

두 선수는 서로의 서비스 게임을 철저하게 지키는 플레이를 했다.

브레이크를 하는데 집착하지 않고 패배하지 않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

2세트 6-6.

“진짜 쉬운 경기가 없구나···.”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음에도 2세트가 타이 브레이크에 돌입하자 지혁은 투덜거리며 지금 상황에 불만을 토해냈다.

어째서인지 경기를 할 때마다 이런 상황에 처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전 경기도 5시간이 넘게 했는데 지금 경기가 흘러가는 걸 보니까 오늘도 그리 다를 것 같지 않았다.

적어도 4시간 이상의 혈투가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섹션에서 올라오는 탑 랭커들은 3-0으로 거저먹으면서 올라오던데···.”

지혁이 배정된 6번 섹션은 이상하게 빅3만 없을 뿐이지 강적들이 빽빽하게 포진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페나조를 피해갔다는 생각에 좋아했지만 직접 경기를 해보니까 절대 좋은 대진이 아닌 것 같았다.

“이래서 선수들이 랭킹을 올려서 시드를 얻으려고 하는 건가.”

만약 ATP랭킹 32위 안에만 들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상위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드를 받은 탑 랭커들은 초반에 만나는 일 없이 대진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플레이어 레디. 타이 브레이크 게임. 서브 리.]

“후···.”

심판의 콜이 떨어지자 지혁은 서브를 준비했다.

휙! 테니스공을 하늘로 토스하자 공이 정점까지 치솟았다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탕!!

[1-0.]

지혁의 득점으로 시작한 타이 브레이크는 쉽게 결판나지 않았다.

2세트에서 했던 것처럼 두 선수가 자신의 서브를 철저하게 지켜냈기 때문이다.

1-2, 3-2, 3-4, 5-4, 5-6, 7-6.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결국 경기는 듀스까지 오게 되었다.

[상당히 질척한 경기네요.]

[두 선수 모두 장점이 확실하다 보니 쉽게 결판이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번 2세트를 반드시 따내야 합니다. 경기가 길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건 이지혁 선수에요.]

[14-13. 어드밴티지 리.]

결국 27번 째 서브에서 먼저 우위를 잡은 건 지혁이었다.

타이 브레이크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상대의 서브권을 끊어낸 것이다.

그렇게 한 포인트가 넘어가자 아슬아슬하던 2세트의 균형이 서서히 기울어졌다.

[세트 리.]

우와아아아!

마침내 2세트의 승자가 결정되자 조용하던 경기장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들렸다.

혹시나 선수들의 집중을 깨트릴까봐 숨소리조차 조심하던 관중들의 고삐가 드디어 풀린 것이다.

렛츠 고 리!

지혁아 잘했다!

응원 소리가 제법 길게 이어졌지만 체어 엠파이어는 별다른 주의를 주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포인트로 2세트가 끝나서 120초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지혁은 자신을 응원해주는 관중들에게 화답을 하며 벤치에 앉았다.

턱!

타들어가는 갈증에 물을 마시고 있자 옆에서 볼키즈의 기척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리자 동경하는 눈빛으로 수건을 건네는 16살 정도의 소녀가 보였다.

소녀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경기 중에 돌발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교육받았기 때문에 우물거리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지혁이 눈인사를 하면서 수건을 받아들자 소녀는 붉어진 얼굴로 도망치듯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프로 테니스 선수를 목표로 하는 볼키즈들에게 지혁은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나이로 구름 위에 존재하는 탑 랭커들을 무찌르고 있었으니 처음부터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혁은 힐끗힐끗 훔쳐보는 볼키즈들의 시선을 흘리면서 땀으로 흥건한 상의를 벗었다.

그러자 고강도의 피지컬 훈련과 포인트로 만들어낸 근육질의 상체가 드러났다.

주변에서 꺄악하는 작은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지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후···. 이제 좀 살 것 같네.”

수건으로 땀을 닦고 뽀송뽀송한 옷으로 갈아입자 무거운 짐이라도 벗은 것 같았다.

그렇게 편안한 자세로 벤치에 몸을 기대고 있자 약간이나마 체력이 회복되었다.

무리한 움직임으로 생긴 근육통이 점점 줄어들었던 것이다.

“3세트도 같은 방법을 써야겠지?”

웬만하면 2세트처럼 고생을 하고 싶지 않지만 이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잠깐 동안 고민하던 지혁은 결국 한숨을 쉬면서 기존의 전략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플레이어 레디.]

“읏차!”

그렇게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자 3세트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지혁은 코트 위로 걸어가면서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지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경기를 이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