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82화 (182/241)

182화. 세레나 윌리엄스

세레나가 본격적으로 실력 발휘를 하고 얼마 후.

경기의 분위기는 이전과 아주 많이 달라졌다.

이전까지 경기가 그녀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게 일방적이었다면 이제야 볼만한 대결이 그려졌던 것이다.

[게임 세레나 2-4.]

“와!! 봤죠! 세레나가 골든 보이의 서비스게임을 브레이크했다고요!”

“······.”

중년 남자는 에밀리의 환호성에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지혁의 승리가 확실한 상황에서 갑자기 브레이크가 나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브 차례까지 넘어왔으니까 이번 게임도 이길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스코어도 3-4이 되어서 역전도 충분히 가능하죠.”

에밀리는 세레나가 중요한 경기 때마다 강해지는 모습을 예로 들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 기고만장한 태도에 아주 잠깐 굳어있던 남자의 얼굴에 빠르게 조소가 깃들었다.

“그래. 지금이라도 마음껏 좋아하라고. 어차피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할 테니까”

“훗. 방금 전 세라나의 활약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다니 고집이 강하시네요.”

“누구 말이 맞을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가 내기에서 이길 거라고 확신하고 있을 때.

스피커에서 경기의 재개를 알리는 체어 엠파이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비스게임의 순서는 세레나였다.

“하앗!”

쿵!!

무거운 타격음을 내며 서비스 라인을 때리는 고속 서브.

지혁은 세트 초반에 비해 현격하게 빨라진 타구의 속도에 리턴이 약간 흔들렸다.

전광판에 찍힌 125마일은 어지간한 남자 탑랭커들을 뛰어넘는 위력이었다.

‘···허. 200km가 넘는다고? 여자 선수라고 믿기지 않는 속도네.’

말이 쉽지 200km의 서브는 남자 프로들에게도 절대 쉽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에서 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프로들이 대부분이었다.

내로라하는 몇몇 선수를 제외하면 평균 기록이 180~190 근처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내가 그랜드슬램과 마스터즈에서 상대했던 빅 서버들에 비하면 할 만 해.’

테니스 팬과 전문가, 심지어 동료 선수에게까지 최강으로 인정받은 페더러의 서브도 버텼는데 고작 이 정도의 공격을 처리하지 못하겠는가.

탕!! 탕!! 탕!!

세레나는 경기가 지속될수록 자신이 어째서 WTA에서 10년이 넘도록 최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증명했다.

서브에서 얻어낸 우세를 이용해서 지혁을 쉴 틈 없이 압박한 것이다.

그 결과 랠리는 자연스럽게 이전에 없던 긴박한 느낌이 생겼다.

ㅡ 드디어 볼만해졌네 ㅋㅋㅋㅋ

ㅡ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ㅠ

ㅡ 냉정하게 말하면 아직도 언론이나 기사에서 호들갑 떨던 수준은 절대 아님.

ㅡ 이지혁이랑 세레나 윌리엄스 실력 차이가 너무 나네. 똑같은 레전드 선수여서 경기력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솔직히 기대 이하다···.

ㅡ 애초에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한 거지. 테니스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전부 이지혁이 압도적으로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음.

ㅡ 그동안 세레나가 워낙 자신감 있는 태도로 호언장담해서 나도 속았다 ;; 남녀 프로 선수들이 리그가 달라도 실력은 거의 차이가 없다고 했었잖아.

ㅡ ㄷㄷㄷ 그 말을 진짜로 믿었냐?? 나 제발 보증 좀 서주라. 스포츠 종목에서 그딴 개소리가 통할 리 없잖아.

ㅡ 그래도 오늘 이지혁한테 참교육 당했으니까 앞으로 우승 상금을 동일하게 맞춰야 한다는 소리는 못하겠네.

ㅡ 일단 걔는 여자 그랜드슬램부터 남자들이랑 똑같이 5세트로 맞추라고 해. 꼴랑 3세트 하고 양심도 없네 ㅡㅡ

ㅡ ㅋㅋㅋ 리그 통합되어 봐야 제대로 정신 차릴 듯. 페나조이랑 경기해야 하는 선수들 마음을 알겠냐고 ㅋㅋ ATP 그랜드슬램에 1년 정도 참가해봐야. 아, 내가 편하게 대회를 해왔구나 하고 정신을 차리지.

***

[세트 리.]

1세트는 게임 스코어 6-3으로 끝났다.

세레나가 모든 실력을 발휘했음에도 결과를 뒤집지 못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이것도 지혁의 전력이 아니라 적당히 경기의 분위기를 살펴가며 장단을 맞춘 결과였다.

이벤트 매치에서 너무 잔인하게 행동할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평소 지혁이 세레나에게 좋은 감정이 없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망신을 줄 필요는 없었다.

‘사람들에게 누구의 실력이 우위인지 명확하게 증명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벤치로 돌아가는 세레나 윌리엄스.

관중들이 대등한 경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그녀는 지혁이 봐주고 있는 것을 일찍히 눈치챈 모양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받아보는 그 배려에 세레나의 자존심은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모든 대회에서 항상 승리했던 선수가 어딜 가서 이런 경험을 해봤겠는가.

‘아마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하고 경기를 하면 이길 수 없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을 거야. 그건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들도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는 결과니까.’

하지만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실을 은근히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본인이 자진해서 이벤트 매치를 잡지 않으면 대결이 성사될 일도 없었으니 뒷감당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말을 내뱉었던 거겠지.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하하하. 아가씨도 눈썰미가 조금은 있구만. 무작정 억지를 부리는 바보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지혁의 승리를 확신하던 중년 남자는 테니스 초보인 에밀리가 수면 아래에 감춰진 진실을 어느 정도 파악한 듯하자 즐거운 목소리로 그녀를 칭찬했다.

“···네?”

“골든 보이가 봐주고 있는 걸 알아챈 거잖아. 내 말이 맞지?”

“아!”

힌트를 듣고 나서야 자신이 느끼고 있던 이질감의 정체를 깨달은 에밀리.

그러자 내기에서 이길 거라고 희망을 품었던 그녀의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식었다.

어떤 수를 동원해도 결과를 바꾸기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빅4급의 실력자에게 요행을 바라는 건 불가능했다.

“그···그게.”

에밀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의 질문에도 차마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억지로 빈말을 해봤자 금방 들통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줄곧 활기차던 그녀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세레나의 승리를 말하던 자신에게 크게 부끄러움을 느껴서였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리.]

에밀리의 곤란한 처지를 배려한 듯 금세 다시 재개되는 2세트.

중년 남자는 마음 같아서 자신의 안목을 더 자랑하고 싶었지만 선수들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

[게임 리 1-0.]

[게임 리 3-0.]

[게임 리 5-1.]

2세트가 시작되고 나서도 지혁의 경기력이 부쩍 상승하는 일이 없었지만 스코어의 격차는 이전 세트보다 훨씬 심각하게 벌어졌다.

세레나가 승리에 대한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린 영향이었다.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힘을 낼 텐데 승률이 0%에 수렴하는 상황에서 기력이 생길 리가 있겠는가.

[이제 매치 포인트입니다. 생각할 것도 없이 마지막 대결도 골든 보이의 완벽한 승리로 돌아가겠네요.]

[동감입니다. 성별에 따른 격차를 제대로 확인시켜준 경기였어요.]

[물론 그것도 크지만 선수들의 수준 차이도 컸습니다. 후반에 들어가서는 스트로크의 위력이 거의 엇비슷했잖아요. 샷의 숙련도 차이가 너무 현격했어요.]

[···솔직히 리의 재능이 월등하긴 했죠. 저희들이 생각한 것처럼 이벤트 매치에서도 천재적인 면모가 빛을 발했네요.]

쾅!!

굉음을 내며 서비스 코트로 날아가는 지혁의 무시무시한 플랫 서브.

이벤트 매치의 마지막 득점은 에이스로 깔끔하게 종료되었다.

[게임 세트. 매치 리. 6-3, 6-1.]

우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

오늘 경기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빅 매치였던 만큼 관중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대한 환호성과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몇몇 세레나의 열렬한 팬들이 승부를 부정하며 울상을 짓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뒤바뀌는 일은 없었다.

남자 랭킹 1위와 여자 랭킹 1위가 정면으로 붙었을 때.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건 남자 선수라는 게 비로소 증명된 것이다.

“하아···. 역시 이렇게 됐구나.”

예상한 것과 비슷하게 경기 결과가 나오자 길게 한숨을 쉬는 에밀리.

그녀는 2세트가 시작될 무렵부터 승패를 짐작하고 있었기에 순순히 결과를 받아들였다.

“아직도 골든 보이가 세레나 윌리엄스하고 비슷한 실력이라고 생각하나? 설마 오늘 경기의 결과가 그저 운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저는 바보가 아니에요. 분하지만 당신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할게요.”

“드디어 정신을 차렸군. 하긴 방금 전 경기를 봤다면 구제불능이 아닌 이상 생각이 바뀌는 게 당연하지.”

“여기 약속했던 돈이요. 가져가세요.”

“됐어. 어차피 얼마 되지도 않는 푼돈인데. 게다가 돈을 벌 목적이었다면 처음부터 100배를 제시하지도 않았을 거야.”

중년 남자는 에밀리가 얌전하게 결과에 승복하자 김이 샜는지 흥분한 어조가 많이 가라앉았다.

이미 결판이 난 상황에서 한참이나 어린 상대를 몰아붙여봤자 본인의 체면만 깎아 먹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바에는 차라리 연장자의 배포를 자랑하며 여기서 내기를 끝내는 게 훨씬 나았다.

여기서 쫌생이처럼 20달러를 챙겨봤자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사 먹지 못하니 말이다.

“재경기를 하더라도 세레나가 리를 이길 가능성은 없겠죠?”

“그래. 다른 빅4가 상대라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야. 솔직히 탑20도 간당간당하다고. 이것도 넉넉하게 잡아준 거야.”

“이때까지 그녀의 말을 전부 믿고 있었는데 충격적이네요···. 그게 전부 허세였을 줄이야.”

“원래 현실은 냉혹한 법이지. 그냥 종목이 다르다고 생각해. 피지컬부터 심각하게 차이가 나서 극복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까. WTA에서 가장 강력한 서버도 ATP에 오면 평범한 선수가 돼버리거든.”

이게 남자 단식이 그랜드슬램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이유였다.

세레나는 인터뷰 시간도 갖지 않고 무언가에 쫓기듯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상당수의 관중들은 처참하게 패배한 선수의 마음을 심정적으로 공감했기에 나무라는 반응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년 호주 오픈에서는 세레나 대신 골든 보이의 경기를 봐야겠네요. 전력을 다하는 모습도 궁금하니까요.”

“개인적으로 조코비치와 하는 매치를 추천할게. 물론 페더러, 나달과 붙는 경기도 엄청나지만 전자는 정말 차원이 다르거든.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장담하시니 분명 맞겠죠. 저는 오늘하고 비슷한 수준이기만 해도 만족할 거예요. 이번 이벤트 매치도 제 인생에서 최고로 수준은 대결이었거든요.”

“고작 오늘 경기가? 허···. 골든 보이의 진짜 실력을 보면 기절하겠구만.”

남자는 에밀리의 말을 듣고 마침내 이해가 간다는 듯이 반응했다.

세레나의 승리를 장담했던 건 단 한 번도 지혁이 그랜드슬램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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