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테니스 천재가 되었다-197화 (197/241)

197화. 슬럼프?

[인! 세트 나달!]

더블 폴트가 경기에 영향을 준 것일까.

타이브레이크는 지혁이 전력을 다했음에도 아주 미세한 차이로 나달에게 넘어갔다.

자신감이 가득한 모습을 보였던 게 그저 허풍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만큼 단기전에서 나달이 보여준 경기력은 지혁도 깜짝 놀랄 정도로 대단했다.

“와아······. 아무리 리버스 포핸드라고 해도 어떻게 저런 바운드 각도가 나오지?”

“정말 엄청난 스핀량이야. 이게 말로만 듣던 탑랭커들의 그 날인가. 빅4의 컨디션이 좋으면 여기까지 할 수 있구나.”

“거기다 클레이 코트잖아. 아무래도 오늘 골든 보이의 운이 좋지 않은 것 같네. 이 상태의 나달을 롤랑에서 이기는 건 어떤 탑랭커가 와도 불가능해.”

감탄을 흘리며 홀린 듯이 나달을 쳐다보는 관중들.

지혁의 슈퍼 플레이를 완벽하게 막아낸 클레이의 제왕은 그 기세가 위풍당당했다.

솔직히 평균보다 훨씬 길었던 1세트에서 이겼으니 그간의 고생을 전부 보상받은 느낌일 것이다.

‘장난이 아닌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최악이야.’

그동안 나달과 경기를 한 경험이 꽤 많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압박감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매번 비장의 무기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던 찰나가 먹히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상황의 심각성은 확실했다.

‘수비가 너무 단단해서 뚫고 들어갈 만한 틈이 안 보여. 그렇다고 정상급 베이스라이너를 상대로 랠리를 길게 가져갈 수도 없는데 말이야.’

지금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달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곰곰이 생각을 이어가던 지혁은 결국 휴식 시간 안에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애초에 쉬운 일이었다면 타이브레이크에서 패배하는 일도 없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플레이어 레디. 서브 나달.]

순조로운 기세를 이대로 이어갈 생각인지 순식간에 경기 준비를 마치는 나달.

곧이어 보기만 해도 자신감이 느껴지는 서브가 서비스 코트를 강타했다.

비록 타구의 속도는 지혁에 비해 많이 느렸지만 반격의 여지를 대부분 차단한 코스였다.

탕!!

지혁은 200km도 안 되는 서브를 백핸드로 여유롭게 받아쳤다.

채찍처럼 쭉 뻗는 타구의 모습은 꽤나 위력적으로 보였다.

물론 고작 이 정도로 나달에게 리턴 에이스를 얻는 건 무리였지만 말이다.

탕!! 탕!! 탕!!

그렇게 랠리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베이스라인 근처에 있던 나달의 위치는 점점 뒤로 물러났다.

스트로크를 더욱 오래 보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사실 공격력이 뛰어난 지혁에게 이런 무지막지한 짓을 할 수 있는 선수는 극히 소수였다.

돌발적으로 드롭샷이나 슬라이스가 코트 앞쪽으로 떨어지면 이 먼 거리를 누가 감당을 할 수 있겠는가.

이건 유독 바운드가 느린 클레이 코트의 특성과 수비 범위가 비상식적으로 넓은 나달의 장점이 절묘하게 결합해서 가능한 전략이었다.

“골든 보이를 말려 죽이려는 생각인가. 역시 나달, 체력에 자신이 있다는 거지.”

“이상한 일도 아니잖아. 그동안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수도 없이 당했으니까.”

“나달에게 익숙한 상황으로 들어가는 건 별로 현명한 선택이 아닐 텐데. 이렇게 주도권을 뺏긴 상태로 끌려다니기만 하면 승산이 별로 없어.”

“이게 골든 보이가 의도한 상황이겠어? 어쩔 수 없어서 저러는 거야. 장시간 랠리에 강제로 들어간 거라고.”

그 말대로 지혁은 회심의 스트로크를 나달의 수비에 번번이 막히고 있었다.

위너 들어갈만한 수준 높은 샷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서티 러브.]

[포티 피프틴.]

[게임 나달 1-0.]

큰 격차로 1게임이 마무리되자 한국의 팬들의 반응은 심각해졌다.

비록 안목은 부족했지만 본능적으로 불길한 경기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국내 스포츠 채널들의 해설자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었지만 시청자들의 눈치는 정말 빨랐다.

ㅡ 아···. 이지혁이 힘을 못 쓰는데? 역시 롤랑 3연패는 어려운 건가. 조코비치 대신 나달이 올라왔을 때 엄청 좋아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네.

ㅡ 뉴비들이나 라파를 무시하지 원래 클레이 본좌는 나달이다. 그동안 부상이랑 슬럼프 때문에 거저먹은 거지 슬슬 본래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거임.

ㅡ 그러면 각 코트에서 1티어를 분류하면 잔디 페더러, 클레이 나달, 하드 조코비치네? 우리 지혁이 자리 어딨누 ;;;

ㅡ 진짜 토 나오는 조합이네 ㅋㅋㅋ 그래도 잔디 코트는 비벼볼 만하지 않나?

ㅡ 올해 하는 거 봐야 알겠지. 아마 작년보다 성적이 좋을 수는 없을 걸.

ㅡ 그건 당연한 거고. 요즘 조코비치도 그렇고 메이저 대회들의 경쟁률이 미쳐 돌아가잖아.

ㅡ 7월에 런던 올림픽도 있는데 짜증 나네 ㅠㅠ 무난하게 최초 우승 가져올 수 있을 줄 았았는데

***

나달은 그동안 쌓여있던 것을 풀려는 생각인지 2세트에서도 엄청난 실력을 발휘했다.

무지막지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경기의 주도권을 완벽하게 쥔 것이다.

쿵!!

오랜 랠리 끝에 나온 세트 포인트.

사이드라인을 강타한 나달의 그림 같은 다운 더 라인에 경기장은 커다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아무래도 이번 세트는 결승전의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지혁을 응원하고 있던 팬들도 그걸 아는지 표정이 상당히 어두웠다.

“이러다가 3-0으로 지는 거 아니야?”

“설마, 이때까지 골든 보이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패배한 경기는 없었잖아. 상대가 그 무결점의 조코비치라도 말이야.”

그들은 나달의 심상치 않은 기세를 보고 이미 역전하는 건 포기한 상태였다.

그만큼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의 격차가 컸던 것이다.

“그럼 다행이지만···.”

그는 그다지 확신이 가지 않는 듯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그렇게 경기장이 관중들의 이런저런 대화로 웅성거리길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3세트가 재개되었다.

터벅터벅.

돌아가는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부쩍 지친 걸음으로 코트 안에 들어가는 지혁.

다행히 먼저 서비스게임을 가져가게 된 터라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조금은 있었다.

‘이길 확률은 20% 이하인가······. 이럴 바엔 차라리 남은 세트를 생각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네.’

어차피 결승전을 3-0으로 패배하면 여력을 남겨둔 의미가 없었다.

기왕 질 거면 1세트라도 가져오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조만간 있을 리벤지 매치를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서브 리.]

지혁은 준비 시간 동안 생각을 대부분 정리했다.

이번 3세트에서 모든 걸 쏟아붓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아마 계획대로 이기더라도 4, 5세트에서 무력하게 패배하겠지만 지금 상황과 다음 대회를 고려하면 이게 가장 옳은 판단이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지혁의 표정은 이내 편안해졌다.

그랜드슬램 결승전에 대한 무거운 부담감을 모두 덜은 덕분이었다.

게다가 3세트에서 모든 체력을 사용한다면 상대가 누구라고 해도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기도 했다.

탕!!

마치 도발하듯이 나달의 정면으로 떨어지는 탑스핀 서브.

그 모습에 관중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간간히 따내던 에이스를 포기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속 서브의 이점마저 없다면 경기는 지혁에게 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탕!!

나달은 랠리를 원하는 듯한 지혁의 의도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스트로크 대결에 들어가면 이길 자신이 있어서였다.

상대가 알아서 자신의 무덤을 파는데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의 전략을 정면으로 박살 내버리면 자잘한 문제쯤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탕!! 탕!! 탕!!

그렇게 경기가 진행될수록 나달은 1, 2세트처럼 완성형 베이스라이너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이 빈틈없고 탄탄한 플레이에 지혁이 속수무책으로 당했었다.

아마 똑같은 전략으로 3세트에 임했다면 경기는 똑같이 흘러갔겠지.

[피프틴 러브.]

하지만 지혁이 남은 세트를 고려하지 않게 된 이상 경기의 판도는 급격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서티 러브.]

[포티 러브.]

어······어···.

무서운 속도로 쌓이는 스코어에 놀란 반응을 보이는 관중들.

지혁은 그들이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주지 않고 서비스게임을 순식간에 마무리했다.

[게임 리 1-0.]

엄청난 기세로 게임을 가져왔음에도 지혁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이런 상황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수들이 코트를 교체하고 이번에는 나달의 서브 차례가 되었다.

나달은 갑작스러운 실력 변화에 큰 위기감을 느낀 건지 느슨하던 고삐를 조이고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동안 지혁이 역전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내었기에 또 다른 희생양이 될까 걱정한 것이다.

수비적인 플레이가 더 노골적으로 변하자 지혁도 이전처럼 쉽게 위닝샷을 따내지는 못했다.

[피프틴 포티.]

허억···허억···.

선수들은 경기가 더욱 치열하게 변하자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전신이 흙과 땀으로 더럽혀진 모습은 팬들에게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제 한 포인트만 더 따내면 골든 보이의 브레이크가 성공해. 이렇게 순조로웠던 적은 처음인데.”

“설마 기적적인 역전이 나오는 건가?”

“여기까지 와서? 솔직히 너무 늦었지 않나.”

“그나저나 두 사람의 꼴이 말이 아니네. 온몸이 흙 투성이야. 옷을 갈아입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클레이 코트에서 허슬 플레이를 그렇게 많이 했으니 당연하지. 그랜드슬램 우승 트로피의 가치는 엄청나니까 마스터즈와 각오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어.”

“이번 대회에서 누가 이기게 되든 패배한 쪽은 타격이 크겠네.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얻는 게 거의 없을 테니까.”

“응? 2등의 상금만 해도 100만 달러는 되는데?”

“나달하고 골든 보이 입장에서는 푼돈이지. 빅4는 스폰서 수입만 기본 수천만 달러잖아. 다른 선수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빅4에게 준우승은 그다지 의미가 없어.”

“하긴······. 그렇긴 하지.”

원래 스포츠 세계에서 2등은 1등을 장식해주는 조연일 뿐이었다.

우승 타이틀이나 기억되지 몇 년만 지나면 준우승을 누가 기억하겠는가.

빅4들이 마스터즈보다 그랜드슬램의 승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대회에서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한 것이다.

아마 이런 숨겨진 사정이 아니었다면 다른 상위 랭커들이 간간히 마스터즈에서 우승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쿵!!

그렇게 지혁은 이때까지 당했던 것을 곱절로 갚아주었다.

비록 기세등등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솔직히 지금 당장은 통쾌했다.

[게임 리 3-0.]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스코어가 점점 벌어져가자 ‘혹시?’ 하는 얼굴로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충분히 가질만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달도 마찬가지인지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혁이 워낙 차원이 다른 경기력을 보여줬기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전반적인 상황들이 승리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정작 지혁은 자신이 점점 한계점에 도달해간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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